조선 후기 성주 지역에서 노강서원의 설립을 두고 벌어진 논란. 노강서원 설립 논란은 18세기 전반 남인 세력이 강했던 영남에서 노론계 서원인 노강서원의 설립 추진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다.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서인이 남인의 근거지였던 영남에서 서인 계열의 노론 세력 확산을 위해 노론계 서원을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1702년(숙종 28) 노론계 인물인 이지완(李志完)[166...
고려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 도응(都膺)[?~?]은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사람이다....
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유학자이자 문신.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출신의 유학자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문하에서 유학에 입문하였다. 1519년(중종 14) 현량과(賢良科)에 효렴(孝廉)과 학행(學行) 덕목으로 천거되어 급제하면서 벼슬길에 올랐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 을사사화(乙巳士禍)로 파직되어 독서와 강학에 힘썼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인 도형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18년에 세운 정려각. 성주 도형 정려각은 조선 전기 학자인 도형(都衡)[1480~1547]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과 정려각이다. 도형의 본관은 성주, 자는 국전(國銓), 호는 행정(杏亭)이다. 할아버지는 도이경(都以敬), 아버지는 진사 양진당(養眞堂) 도맹녕(都孟寧), 어머니는 단양 우씨...
성주 지역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성씨. 삼국 시대 때 성씨는 왕족과 귀족만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특권이었다. 후삼국 시기를 거치면서 호족이나 고려의 개국 공신들이 성씨를 사용했고, 시조(始祖)의 출신지나 거주지를 본관(本貫)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고려 시대를 지나면서 성씨를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특권이 차츰 사라졌고, 조선 시대에는 일반 백성들까지...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한조(漢朝), 호는 뇌헌(磊軒). 문목공(文穆公)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정재설(鄭在卨)이며, 성재(省齋) 정재기(鄭在蘷)[1851~1919]의 조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