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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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29년에 후손 김여웅이 자료를 모아 간행한 성주 출신 학자 김우굉의 문집. 김우굉(金宇宏)[1524~1590]은 자가 경부(敬夫)이고 호는 개암(開巖)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부친은 삼척부사를 지낸 김희삼(金希參)이며 김우옹(金宇顒)[1540~1603]의 형이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여 향시와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1566년에 별시 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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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부(敬夫), 호는 개암(開巖).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지낸 칠봉(七峯) 김희삼(金希參)이며, 어머니는 곽인화(郭人和)의 딸 청주 곽씨(淸州郭氏)이다. 형은 이계(伊溪) 김우홍(金宇弘)[1522~1590]이고 동생은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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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김우옹(金宇顒)[1540~1603]의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숙부(肅夫), 호는 동강(東岡)·직봉포의(直峰布衣)이다.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지낸 칠봉(七峯) 김희삼(金希參)이며, 어머니는 곽인화(郭人和)의 딸 청주 곽씨(淸州郭氏)이다. 24세 때 조식(曺植)[1501~1572]의 외손녀와 혼인하였다. 이계(伊溪) 김우홍(金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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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면부(勉夫), 호는 이계(伊溪).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지낸 칠봉(七峯) 김희삼(金希參)이며, 어머니는 곽인화(郭人和)의 딸 청주 곽씨(淸州郭氏)이다. 부제학을 지낸 개암(開巖) 김우굉(金宇宏)[1524~1590]과 이조 참판을 지낸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이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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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문신. 김희삼(金希參)[1507~1560]은 조선 전기 명종(明宗) 대에 주로 활동한 문신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남명(南冥) 조식(曹植),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1540년(중종 35)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정랑, 삼척부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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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각시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대가면 각시 바위」는 각시 바위와 신랑 바위가 있는 칠봉산(七峯山)과 관련한 이야기로, 나라를 어지럽힐 큰 인물이 나올까 두려워 그 맥을 끊었다는 명당 쟁취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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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에 간행된 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학자인 김우옹의 개인 문집. 『동강선생문집(東岡先生文集)』은 동향 출신의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함께 양강(兩岡)으로 불리며, 남명 조식(曺植)으로부터 성성자(惺惺子)[스스로 경계하여 깨닫게 하는 것]를 물려받아 남명학을 이었고, 또 퇴계 이황의 문하에 출입하며 성리학의 맥을 계승했으며,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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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의병. 임진왜란 때 김산(金山)[현 경상북도 김천시] 여남현(汝南峴)으로 형 배설(裵楔)[1551~1599]을 만나러 가다가 왜적을 만나 싸웠지만,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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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성주 출신의 의병장. 임진왜란 때 늦은 나이에 의병을 일으켜 성주성을 구하고 백성의 희생을 막은 의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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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에 있는 문중에서 대대로 적장자를 중심으로 부계 혈통이 이어져 내려온 집과 그 집에서 존속되어 온 문화. 원래 ‘종(宗)’은 사전적 의미로 집[宀]과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대(臺)의 상형을 합친 회의 문자이다. 즉, 조상신을 모시는 집, 사당(祠堂)을 뜻한다. 또한 조상이나 족장(族長)을 의미하거나 특정 시조의 자손을 포함하는 친족의 범주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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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문인이자 학자.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신연(新淵)에 복거(卜居)하였다.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고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 등 거유와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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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을 시조로 하고, 김용초를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의성 김씨(義城金氏)의 시조는 신라 말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 김석(金錫)이다. 김석의 9세손 김용비(金龍庇)는 고려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태자첨사(太子詹事)에 오르고 의성군(義城君)을 이어받았다. 김용비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숙파(叔派)[찬성공파] 김영(金英)의 둘째 손자인 김수덕(金修德)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