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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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登伽倻山 |
영어공식명칭 | Climb Gayasan Mountain |
이칭/별칭 | 「가야산에 올라」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종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347년 - 이숭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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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392년 - 이숭인 사망 |
배경 지역 | 가야산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
성격 | 유산시(遊山詩) |
작가 | 이숭인 |
[정의]
고려 후기 성주 출신 문신인 이숭인이 가야산을 유람하고 남긴 한시.
[개설]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와 함께 삼은(三隱)으로 알려져 있다. 자는 자안(子安)이다. 저서로 『도은집(陶隱集)』이 있다. 『관광집(觀光集)』, 『봉사록(奉使錄)』, 『도은재음고(陶隱齋吟藁)』 등을 지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구성]
「등가야산(登伽倻山)」은 『성산지』에 「가야산(伽倻山)」으로 되어 있다. 오연 율시로 기구에는 가야산의 지정학적 위치, 승구와 전구에는 산수(山水)의 정경, 결구에는 작가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숭인이 귀양지에서 벗어나 고향인 성주로 풀려나게 된 이후 은거(隱居)할 때 지은 시이다.
[내용]
1376년(우왕 2)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1338~1384],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1342~1398] 등과 함께 북원(北元)에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청하다가, 고향인 성주로 유배되었다. 이후 청휘당[현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파리]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은 “이 사람의 문장은 중국에서 구할지라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명나라 태조(太祖)는 “표의 문사가 참으로 절실하다.”라고 평가하였다. 「등가야산」에는 고향 산수를 바라보며 감격하는 모습이 잘 나타난다. 이숭인은 관료 생활을 하면서 늘 고향을 그리워하였다. 이숭인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의 감회는 새로웠을 것이다. “성주 땅의 진산이 되어, 합천군 동쪽으로 뻗어 나갔네.”라고 하여 가야산이 성주에 있음을 자부하고 있다. 나아가 정상에 올라서는 “나 이제 돌아와 정상에 올라 보니, 우뚝한 제일봉 망부봉일세.”라고 하여 자부심이 극대화되고 있다.
[특징]
이숭인이 직접 가야산 정상에 올라 고향 성주의 산수를 살펴보고, 지정학적 위치 및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원숭이와 학이 노닐고, 안개와 노을은 아름다움의 절정을 드러내고 있다고 노래한다.
[의의와 평가]
이숭인은 자질이 뛰어나고 문사(文辭)가 전아(典雅)하다고 평가받는다. 숙옹부승(肅雍府丞), 장흥고사 겸 진덕박사(長興庫使兼進德博士), 예의산랑(禮儀散郎), 예문응교(藝文應敎), 문하사인(門下舍人), 전리총랑(典理摠郎), 성균사성,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 동지사사(同知司事),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 예문관 제학, 지밀직사사, 동지춘추관사 등의 벼슬을 하였다. 유배와 관직 생활을 번갈아 경험하였기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등가야산」은 고향의 산수에서 노닐며 은거하고자 하는 뜻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결국 이숭인은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의 즐거움을 시로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