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효자. 계복(戒福)은 아버지 순평(順平)이 죽자 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셨다. 상을 치르는 3년 동안 소금과 간장을 먹지 않아 몸이 나뭇가지처럼 야위니 보는 사람마다 감복하였다. 또한 부모의 심정으로 동생을 보살피고, 재산을 나눌 때는 척박한 토지는 자기가 갖고 기름진 논밭은 어머니와 동생에게 주었다. 집에서 쓰는 가재도구와 곡식도 사사로이 차지하지...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담양. 자는 우경(虞卿), 호는 경재(敬齋). 1729년 정리된 담양 국씨 족보에는 성유(聖喩)로 적혀 있고, 1974년 족보에는 현남(賢男)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후에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국여명(鞠汝明)으로, 호는 정숙(靖肅)이다. 어머니는 문화 유씨로 유창수(柳昌壽)의 딸이다. 첫 번째 부인은 서령 유씨로...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국현남(鞠賢男)의 정려. 국현남[1589~?]의 본관은 담양(潭陽)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국현남은 아버지가 연로하여 점점 귀가 어두워져 잘 듣지 못하자 매일의 생활을 종이와 나무껍질, 그리고 목편에 글로 쓰고 그려 보여 드리고, 또 그것을 상자 속에 모아 놓았다. 1646년(인조 24)...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덕송1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기응세(奇應世)의 정려.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 팔봉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약 2㎞ 정도 가면 덕송1리에 이르는데, 기응세 정려(奇應世旌閭)는 마을 입구 도로 좌측의 남동향 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기응세 정려는 기응세[1539~158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85년(선조 18)에 명정을 받아...
-
조선 후기 서산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안동. 할아버지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의 5대손으로 인조 때 문장가였던 안풍군(安豊君) 김득신(金得臣)이다. 부인은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의 전주 이씨로 이동백(李東白)의 딸이다. 김가근(金可近)[1658~1740]은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죽어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할아버지는 김가근이 어려서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가근(金可近)의 정려. 김가근[1658~1740]은 안동의 안풍군 김득신[1604~?]의 손자로 1658년(효종 9) 충청북도 괴산의 능촌리에서 태어났다. 김가근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를 모셨다. 그러던 중 조부가 병이 들어 지극히 간병하였는데 갑자기 화적들이 집에 들었다. 김가근은 자기 몸으로 화적...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다. 김옥현(金玉鉉)[1781~1800]은 1797년(정조 21) 5월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붙잡혀 서산 감옥에 투옥되자 16세의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따라가서 곁을 지켰다. 김옥현이 하도 간절하게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니 옥리(獄吏)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였다. 주변에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관찰사...
-
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 호는 석경(石耕). 광산 김씨 서산 입향조인 김위재(金偉材)의 후손이다. 김용철(金容哲)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온후하고 성실하여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홀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여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하고, 공무로 문안을 거를 때는 뜰에 서서 바지를 걷고 종아리 맞기를 기다렸다고 한...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유경(金有慶)의 정려. 김유경[1669~1748]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0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나 예법대로 복을 입지 못한 것을 늘 애통히 여겼다. 그러던 중 71세가 되던 해, 즉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되는 해에 이르자 드디어 복을 입고 시묘(侍墓)...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자는 은담(殷膽), 호는 의암(毅庵)이다. 김학방(金鶴芳)[1764~1822]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일찍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효성 또한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들어 눕자 밤낮으로 시중 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병세를 알기 위해 변을 맛보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에는 여막을 지어 6년 간 시묘살이를...
-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에 있는 개항기 효자 김학방(金鶴芳)의 정려. 김학방 정려(金鶴芳旌閭)는 부친을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던 김학방[1746~1822]의 효자 정려이다. 김학방은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768년(영조 44) 무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냈고 통정대부 증직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김홍익(金弘翼)의 정려. 김홍익[1581~1636]의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黙齋)로 경주 김씨(慶州金氏) 서산 입향조인 김연(金堧)[1494~?]의 증손자이자 찰방(察訪) 김적과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 화순 최씨(和順崔氏)의 아들이다. 1632년(인조 10) 충청도 연산현감으로 재직...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인 최청(崔淸)의 사당. 모송사(慕松祠)는 경주 최씨(慶州崔氏) 관가정파(觀稼亭派)의 파조인 최청[1344~1414]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청은 고려 말의 문신이자 충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재(直哉), 호는 관가정(觀稼亭)·송음거사(松蔭居士)이다. 국도 29호선 구 도로변에 있는 지곡...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최치원(崔致遠)을 기리는 사당. 부성사(富城祠)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치원은 통일 신라 육두품 출신의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868년(경문왕 8)부터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특히 879년(헌강왕 5)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종사관이 되어 「토황...
-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 부조묘는 조선 시대의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예부터 종갓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위로 4대에 해당하는 선조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문제는 제사를 모시던 자가 죽은 경우인데, 죽은 후 그 후손은 뒤를 이어 제사를 모실 때 죽은 이를 포함하여 선조 3대를 모시게 된다...
-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시청에서 서산시 온석동 방향으로 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70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향교골이 보인다. 향교골로 난 골목길을 따라 250m 정도 더 들어가면 옥녀봉과 성왕산 자락이 만나 배산을 형성하는 곳이 있는데, 서산향교(瑞山鄕校)는 이곳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산향교는 조...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당리에 있는 회안대군(懷安大君)을 기리는 사당. 서산 숭덕사(瑞山崇德祠)는 조선 태조의 넷째 아들 회안대군[1364~1421] 이방간(李芳幹)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회안대군은 조선이 건립되자 회안군에 봉군되었고, 1398년(태조 7) 회안공으로 개봉되면서 의흥삼군부좌군절제사가 되었다. 제2차 왕자의 난으로 1400년(정종 2) 토산(兎...
-
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했던 교육 기관. 서원은 주로 조선 전기 이후에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인 동시에 교화 기구이다. 서원은 서재(書齋)·정사(精舍)·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사(祠)·리사(里社)·영당(影堂)·별묘(別廟)·세덕사(世德祠)·유애사(遺愛祠)·생사당(生祠堂)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서산 지역에서...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선성군(宣城君)을 기리는 사당. 운산면사무소의 전면 주유소 사잇길로 1㎞ 정도 가면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경로당과 마을 창고 사이에 서편으로 난 소로가 나타난다. 소로를 따라 300m 가면 우측[북쪽]에 샛길이 있는데, 선정묘(宣靖廟)는 샛길을 따라 다시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정묘는 조선 정종의...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성암서원(聖巖書院)의 제향 인물은 고려 말 공민왕 대의 문신 사암(思庵) 유숙(柳淑)[1316~1368]과 조선 후기 인조부터 효종 대의 문신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다. 사암 유숙은 고려 때부터 서산 지역의 토착 성씨로 성장한 서령 유씨(瑞寧柳氏)로 자는 순부(純夫), 호는 사암이다....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성암서원의 연혁과 관련 인물에 대해 기록한 책. 성암서원(聖巖書院)은 서산시 읍내동 서문 밖 부춘산 기슭에 자리한 서원으로, 1719년(숙종 45)에 건립되어 1721년(경종 1)에 사액을 받았다. 서원의 제향 인물로는 고려 말 공민왕 대의 문신 사암(思庵) 유숙(柳淑)[1316~1368]과 조선 시대 인조에서 효종 대의 문신 학...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송곡서원(松谷書院)은 서산에서 배출된 향현들을 제향한 향현사(鄕賢祠)로서, 제향 인물은 정신보(鄭臣保)[?~1261], 정인경(鄭仁卿)[1241~1305], 유방택(柳方澤)[류방택, 1320~1402], 윤황(尹璜), 유백유(柳伯濡), 유백순(柳伯淳)[?~1420], 유윤(柳潤)[?~1476], 김적(金積...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송량환(宋亮煥)[1841~1871]의 본관은 여산이다. 성품이 올곧고 효심이 깊어 아픈 어머니를 정성껏 간병하였다.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흘려 넣기도 하였다. 장례 후에는 3년 동안 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다. 1867년(고종 4) 암행어사로부터 포상되었다....
-
개항기 서산 출신의 효자. 신대남(申大男)은 음암면 점촌[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에서 도공(陶工)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삼형제가 물가에서 소라 한 개를 주워 똑같이 셋으로 나누며 우애를 다짐하니 사람들이 모두 기특하게 여겼다. 신대남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자기 굽는 일을 하였다. 돈이 생기면 좋은 음식을 마련하여 어머니를 정성으로 봉양...
-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 고려 후기 유학자인 안향(安珦)의 14세손이다. 서산의 순흥 안씨는 병조판서 안국인(安國仁)이 입향한 이후 수백 년 간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와 양길리 일대에 모여 살았다. 순흥 안씨는 서산의 토성으로 여러 기록에 나오는데, 조선 초기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안만흥(安萬興)은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에서 태어났으며,...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 한내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안만흥(安萬興)의 정려. 안만흥은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효심이 깊어 널리 알려졌는데, 특히 병든 아버지를 지극히 봉양하였다. 어느 날 안만흥은 아버지의 병에 죽순이 좋다는 말을 듣고 엄동설한임에도 불구하고 대밭에 나가 항아리를 엎어 놓고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이튿날 안...
-
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효자. 안천년(安千年)은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솥을 여러 개 걸어 놓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골라 드시게 하였다. 넉넉한 양을 준비하여 함께 먹고자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나누었다. 안천년은 또한 아버지를 위해 후처를 구해 드리고자 노력하였는데, 하루는 여자 거지가 동냥자루를 들고 찾아오자 대문 밖으로 나가 큰절로 맞이하였다. 그리...
-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孔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 및 맹자(孟子), 주자(朱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유교에도 중심 경전이 있지만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교조화된 신앙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즉 후...
-
광주광역시의 서령[서산] 유씨 설강공파 후손이 모시는 유사(柳泗)의 기제사. 유사 불천위제사는 병자호란 때 괴산현감으로 재직 중에 광주 송파에서 순절한 유사[1423~1471]를 위하여 지내는 묘제이다. 1704년 부조묘로 허락받았으며, 매년 음력 10월 16일 유사가 순절한 날짜에 문중에서 제를 올린다. 유사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문화(文...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사(柳泗)를 기리는 사당. 유사[1595~1636]의 본관은 문화, 자는 성부(聖夫)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관군을 이끌고 진영에 합류하여 경기도 광주 송파에서 적과 전투를 벌였다. 전투 중 병사들이 전사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사군사(死君事)’ 즉 ‘죽음으로 임...
-
충청남도 서산시 장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시채(柳始采)의 정려. 유시채[1681~1751]의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문보(文甫), 호는 봉암처사(鳳岩處士)이다. 아버지는 유중배(柳重培)이며, 연기군 남면 봉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늘 좋은 음식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1711년(숙종 37) 흉년으로 사람들이 추위와 허기에 지쳐 어...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서령[서산].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유백순(柳伯淳)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강진현감을 지낸 유억수(柳億壽)이다. 서령 유씨는 고려 시대 이래로 서산에 자리 잡은 토착 성씨이다. 유흡(柳洽)은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 유억수가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먹게 하였다. 또 종기가 나서 침과 약으로 치료해도 차...
-
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열녀. 이검손(李儉孫) 처 덕비(德妃)는 어려서부터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들려도 잔칫집에 가지 않았을 정도로 정숙하였다. 이검손과 혼인하여 1남 2녀를 낳고, 살다가 스물다섯에 남편을 잃었다. 삼년상을 치르는 사이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그만할 것을 권했으나 기어이 기한을 지켰다. 사람들이 위로할 때마다 덕비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잃은 사람은...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열녀. 아버지는 이관순(李寬順)이고, 남편은 청주 한씨 한병두(韓秉斗)이다. 이내희(李來嬉)는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품성이 바르고 효심이 깊었다. 19세 때 어머니가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며 정성껏 간병하였고, 병세가 위독해졌을 때는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하여 회생시켰다. 이내희는 원북면 장대리[현 태안군 원북면 장대리...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만원(李晩遠)이다. 이상여(李商礖)[1774~1854]는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에서 태어났다. 평소에 쌀뜨물로 미음을 끓여 부모가 잡숫게 하고, 가볍고 따뜻한 옷을 지어 드렸다. 어느 날 밤 삼경쯤 별채에 불이 났다. 이에 이상여는 평소 우레 소리를 무서워하는 아버...
-
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효자. 이수(李秀)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집이 가난하였지만 성품이 강직하여 성실하게, 도리를 지키며 살았다. 문과에 급제하여 30여 년 간 옥천군수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 부인은 복씨(卜氏), 아들은 이병제(李秉濟), 며느리는 강씨(姜氏)인데 모두 효자, 효부이다. 이영식(李永植)은 1824년(순중 24)에 어머니가 담병(痰病)으로 고생 중 생선을 먹고 싶어하나 가세가 빈곤하고 때마침 엄동설한으로 봉양할 길이 없어 생각다 못해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노모에게 대접하였는데 병이 나았다. 185...
-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이다. 어머니는 서산 정씨로 광주목사 송효명(宋孝命)의 손녀이자 참봉 송유징(宋有徵)의 딸이다. 이이수(李頥壽)는 딸 하나를 두었는데, 판서 권극지(權克智)에게 시집보냈다. 외손녀의 남편은 좌의정에 오른 월사(月沙)이정구(李廷龜)이다. 이정구의 가문은 3대가 대제학을 지낸...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있는 효자 이종형(李宗馨)의 정려. 서산시 팔봉면 소재지 어송리에서 동편으로 3.5㎞ 가면 국도 32호선이 나오는데, 국도 32호선을 타고 태안 방향으로 2㎞쯤 가면 북측 도로변 송림 안쪽에 이종형 정려(李宗馨旌閭)가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경주 이씨(慶州李氏) 이종형의 효행이 알려져 1932년에 성균관(成均館)으로...
-
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열녀. 아버지는 방동(方同)이고, 남편은 이희석(李希石)이다. 아들은 이무안(李武安)이다. 막개(寞介)는 이웃 마을에 사는 이희석과 혼인하였다. 이희석은 활을 잘 쏘아 사수(射手)로 뽑혔는데 어느 날 호랑이 사냥을 하다가 다쳐서 죽었다. 막개는 가난한 살림에도 지극정성으로 남편의 삼년상을 치렀다. 제사도 정성껏 지냈다. 바른 몸가짐으로 수절하면서...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 자는 선화(善化), 호는 효당(孝堂).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의 입향조인 임윤(林潤)의 7세손이다. 임영주(林榮周)[1828~1865]는 천성이 후덕하고 효심이 깊어 어버이를 성심성의껏 섬겼다.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자 세 차례나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피를 흘려 넣었고, 수염을 태워서 약과 함께 먹게 하였다. 충청남도...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3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임영주(林榮周)의 정려. 임영주[1828~1865]의 본관은 평택으로 자는 선화(善化), 호는 효당(孝堂)이다. 천성이 후덕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어버이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니 임영주의 효행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 사실은 1905년(고종 42)에 이종림(李種林)이 쓴 정려기...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3리에 있는 장기덕(張基德)의 처 창녕 성씨(昌寧成氏)의 정려. 창녕 성씨는 정려가 위치한 호리에 살고 있는 장기덕에게 시집와 살다가 1933년에 남편이 죽자 따라 죽었다. 전언에 의하면 창녕 성씨의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온 집안사람이 모였는데, 창녕 성씨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이미 목숨을 끊은 후였다고 한다. 이 사실이...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정충신(鄭忠信)[1576~1636]은 원래 전라남도 광주 일대에 세거하고 있었는데, 1633년(인조 11) 당진에 유배된 이후 서산 대산에서 은거하다가 지곡면 대요리의 지세를 살펴보고 자신의 묘소를 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일대는 인조반정의 논공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이괄(李适)[...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강. 1670년경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로 입향한 채근후(蔡謹後)의 5세손이다. 부인은 한산 이씨이다. 채홍우(蔡弘宇)[1765~1836]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8세 때 이미 효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어른이 되어서는 부인 한산 이씨와 함께 정성껏 부모를 봉양하여 칭송을 받았다. 병든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끊어...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에 있던 개항기 효자 채홍우(蔡弘宇)의 정려. 채홍우[1765~1836]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성년이 되어서는 부인 한산 이씨(韓山李氏)와 함께 정성껏 부모를 공양하고 효행이 각별하여 내외가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병을 얻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병을 낫게...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최달제(崔達悌)[1669~1731]는 서산의 지곡면 독주동(犢走洞)[현 서산시 지곡면 장현리 애현마을 동남쪽]에 살았다. 부모가 희귀한 병에 걸리자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약을 구해다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에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리니 하루는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 약이 있는 곳을...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완산. 아버지는 최효민(崔孝敏)으로 세종 때 효행으로 유명한 완산 최씨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11세손이다. 서산의 완산 최씨 집안은 5세6효(五世六孝)로 널리 알려졌는데, 최효민을 비롯하여 그의 둘째 아들 최만징(崔萬澄), 셋째 아들 최운두(崔雲斗), 최만징의 아들 최위성(崔渭星), 손자 최종혜(崔宗惠), 후손 최흥철(崔興鐵)이 그...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일제 강점기 충신 최몽량(崔夢亮)과 효자 최호주(崔鎬周), 열녀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삼강 정려. 최몽량·최호주·나주 정씨 삼강정려(崔夢亮·崔鎬周·羅州丁氏三綱旌閭)는 충신 최몽량[1579~1627]과 효자 최호주, 그리고 최호문(崔鎬文)의 처 열녀 나주 정씨의 명정 현판을 한데 모은 정려각이다. 서산 지역 경주...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통일 신라 말의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최일진(崔日鎭)[1727~1781]은 효심이 깊어 정성과 예로써 부모를 섬겼다. 아버지가 병들자 6년 동안 백방으로 치료법을 수소문하였다. 부모의 병세가 위중해졌을 때는 그 상태를 알기 위해 대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켰다. 부모가 죽어 장사를 지낼...
-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나주. 아버지는 정명학(丁明學)이다. 남편은 최호문(崔鎬文)이고 시아주버니[남편의 형]는 효자 최호주(崔鎬周)이다. 최호문 처 나주 정씨(羅州丁氏)는 서산 지곡의 최호문과 혼인하여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최호문이 담질(痰疾)에 걸려 여러 달 고생하였는데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정성으로 약을 써서 완치시켰다. 이듬해 병이 재발하자 매...
-
조선 후기 및 개항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자는 귀혁(貴赫), 호는 옥천(玉泉). 경주 최씨 서산 입향조인 최사(崔泗)의 후손이다. 최사는 경기도 양주에 살다가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로 옮겨 갔다. 이때 고려 말의 충신 최청(崔淸)[1344~1414]의 영정을 가져가 부성사(富城祠)에 모셨다고 한다. 정묘호란 때 죽은 최몽량(崔夢亮)의 정려도 이때 옮겨 갔을 것으로 추정...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4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효민(崔孝敏)과 최만징(崔萬澄)의 정려. 서산 지역의 완산 최씨(完山崔氏)는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후예들로서, 최효민은 최유경의 11세손이다. 최효민은 부친이 병이 들자 잠시도 의대를 풀지 않고 매일 안색을 살피는 등 백방으로 간호에 힘썼다. 상을 당하여서는 예법을 따라 3년간 시묘(侍墓)를...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타고 북동쪽으로 약 1㎞ 정도 가면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향교말이 나온다.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향교말로 들어서는 큰길로 접어들면 홍살문이 보이고, 해미향교(海美鄕校)는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미향교는 조선 초 현유(賢儒)의...
-
충청남도 서산시에 명정의 현판이 보관되어 있는 개항기의 열녀. 본관은 창원. 아버지는 황민수(黃敏洙)이고, 남편은 홍종학(洪鍾鶴)이다. 홍종학 처 창원 황씨는 홍성군에서 황민수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당진군 석문면 삼봉리에 사는 홍종학과 혼인하였다. 2년 만에 남편이 죽자 삼년상을 치른 후 독약을 먹고 자진하였다. 충청남도 당진군 정미면 덕마리에 묘소가...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1리에 있는 개항기 열녀 홍종학의 처 창원 황씨(昌原黃氏)의 정려. 홍종학의 처 창원 황씨는 인근 홍성에서 황민수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당진 석문면 삼봉리에 사는 홍종학에게 출가하였는데, 혼인 2년 만에 사별하였다. 그 뒤 정성으로 삼년상을 마쳤으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1901년(고종 38)에 음독하였다. 서산 시내에서 국...
-
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효자. 황필대(黃必大)는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자 치료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산 사람의 피를 마시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피를 흘려 넣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7일 후에 죽었다. 황필대는 통곡하면서 10일 동안 물과 장을 입에 대지 않았다. 또 직접 흙을 져 날라 봉분을 만들고, 3년 동안 여막에 살면서 조석으로 상...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당리 숭덕사에서 지내는 회안대군(懷安大君) 이방간(李芳幹)의 기제사. 회안대군 이방간 불천위제사는 그의 위패를 봉안한 숭덕사(崇德祠)에서 매년 음력 3월 9일에 지내는 사당 제사이다. 불천위(不遷位)는 나라에 큰 공적을 세우거나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이들에게 내려지는 것으로, 사대 봉사(四代奉祀)의 원칙과 상관없이 자손 대대로 제...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2리 지파동마을에 있는 효자 유동원(柳東源)과 효부 밀양 손씨(密陽孫氏)를 기리는 정려. 효자 유동원·효부 밀양 손씨 정려(孝子柳東源·孝婦密陽孫氏旌閭)는 유동원[1789~1873]과 유동원의 처 밀양 손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려이다. 유동원은 서산을 본향으로 하는 서령 유씨(瑞寧柳氏)이며, 효자 유동원·효부 밀양 손씨 정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