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1797년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지금의 시흥을 경유해 화성 현륭원으로 간 행행. 정조는 억울하게 죽은 부친 사도세자의 추존(追尊)을 위해 노력하였다. 1789년(정조 13) 사도세자 묘를 수원으로 이장해 현륭원(顯隆園)을 만들고 화성(華城)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11년간 총 13번의 원행(園幸)을 하였는데, 이 중 10차 원행인...
-
1919년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경기도 시흥 지역으로 전해져, 1919년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까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 통치(武斷政治)를 반대하며 하부 통치 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소래산·대부도의 대몽 항쟁(對蒙抗爭)과 하우명(...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발발하였으나, 경기도 시흥 지역은 북한군의 주 공격 방향에서 비켜나 있어서 1950년 7월 초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 1950년 9월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시흥...
-
1900년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양안 작성을 위해 진행되었던 근대적 토지 조사 사업.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명에 의하여 1899년부터 1901년에 걸쳐 충청남도와 경기도의 실제 토지 측량 작업이 진행되었고, 양전(量田)에 토대한 양안(量案)[조세 부과를 목적으로 전지를 측량하여 만든 토지대장]이 만들어졌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은 당시 안산군과 인천부에 속해...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학교 설립과 근대 서양 문물 교육 운동. 국권 상실의 시기인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교육 계몽 운동의 영향으로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에서도 여러 학교가 설립되었다. 1906년 정윤영(鄭允永)이 세운 학교를 필두로 1908년 창흥측량학교(昌興測量學校)가 설립되었으며, 흥인의숙(興仁義塾)과 진명의숙...
-
한국화약주식회사에서 화약 성능 시험장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공유수면을 간척하여 매립한 사업. 한국화약주식회사[1993년 (주)한화로 상호 변경]는 1987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공유수면 147만 평[약 485만 9504㎡] 매립에 착수하였으나, 공유수면 매립법 개정 시기를 틈탄 특혜라는 사실이 알려져 1991년 2월 범시민 반대 운동에...
-
경기도 시흥 시민의 힘으로 특혜성 군자 매립지 공사 개발이익의 지역 환원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시흥 지역 최초의 주민운동. 한국화약주식회사[1993년 (주)한화로 상호 변경]에서 공사중이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공유수면 대규모 매립 사업이 재벌·권력 간 비리 의혹이 있는 특혜 사업이라는 사실이 시민사회에 알려지면서 범시민 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사회 운동을...
-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시흥 주민들이 군자공립보통학교의 학년제를 4학년에서 6학년까지 늘리기 위해 벌인 운동. 1930년대 시흥군 군자면[지금의 시흥시 군자동]의 유일한 공교육 기관인 군자공립보통학교[초등학교]는 4학년제였다. 4년제 학교는 졸업을 해도 상급 고등보통학교[중학교] 진학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1924년부터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학교 운영 의연금을 모으고 당국에 학년 연장...
-
경기도 시흥시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에서 1919년 3월에 일어난 독립 만세운동. 군자면 3.1운동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里)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를 반대하며 군자면사무소와 거모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펼친 항일 독립 만세운동으로, 시흥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광복운동이다. 시흥군 군자면은...
-
고려시대 시흥 지역에서 이루어진 몽고군과의 전쟁. 대몽 항쟁(對蒙抗爭)은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9차례에 걸친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촉발된 전쟁으로 항몽 전쟁, 여몽 전쟁 등으로도 불리며 한반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이다. 고려시대 대몽 항쟁 중 시흥 지역과 관련이 있는 시기는 몽골군의 6차 침입기인 1256년(고종 43)이고,...
-
경기도 시흥시 호조벌 방죽 일대에서 1895년 무렵 이루어진 개신교의 선교 과정. 1880년대 조선 선교에 나선 미국 감리회는 시흥 지역 호조벌 방죽 주변을 의미하는 '방죽뫼' 지역을 중요 선교 거점으로 보고 적극적인 농촌 선교에 나섰다. 1895년 무렵에는 교인이 되기 위해 학습하는 사람이 12명이었다. 1901년 김동현[1869~1928]에 의해 시흥 지역 최초 개신...
-
경기도 시흥시에서 보건 행정 및 보건 서비스를 받는 환자의 권리 보호 및 의료 소비자의 권리를 찾는 운동. 보건 의료 운동은 환자의 권리 보호와 의료 서비스의 개선을 위한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시흥 지역에서는 신천연합병원을 중심으로 활발히 추진되었다. 보건 의료 운동의 시작은 1970년대 도시 지역 빈민 운동의 출발 또는 사회 민주화 운동에서 찾기도...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를 중심으로 진행된 철거 이주민의 지역 복지 주민 운동. 복음자리 빈민 운동은 도시 철거민의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차 없었던 1970~198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 집단 이주를 성사시킨 자생적 주민 운동이다. 제정구(諸廷坵)와 정일우(鄭日祐)[John Vincent Daly] 신부가 주민들과 함께 경제적 자립,...
-
197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진행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는 1971년 무렵부터 새마을 가꾸기 사업이 시작되었다. 농가의 지붕 개량에서 시작하여 소득 증대 사업, 농로와 마을길 정비 사업 등으로 확산해 나가면서 정신 혁명운동이라는 의미까지 부여되었다. 1970년대 중반 농촌 주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사업 성과를 올렸으나, 1970년대 후반 들어...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무단 철거 직전의 소래염전 소금창고를 박물관, 미술관, 체험 학습관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벌인 운동. 소래염전 부지의 소유주였던 (주)성담이 2006년 6월 4일 현장에 남아 있던 소금창고 40동 가운데 38동을 방화 등으로 무단 철거하였다. 이에 시흥 지역 시민 단체와 문화 연대 등이 ‘구염전 소금창고 무단철거 항의 시민행동’을 조직하고...
-
경기도 시흥 지역의 소래공립보통학교에서 윤복동 교사가 일본 메이지 천황의 교육칙어를 감춘 사건. 1932년 4월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 소래공립보통학교에서 일제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의 상징처럼 귀중하게 보관되던 교육칙어(敎育勅語) 등본이 사라졌는데 그 사실을 며칠 후 알게 되었다. 경찰이 나서서 고강도 수사를 벌인 끝에 31세의 윤복동(尹福同) 교사가 자백하였다. 윤복동...
-
경기도 시흥 시민이 소래산 절개 도로 공사를 저지시킨 운동. 한국도로공사가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래산 산마루 일부를 절개하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을 강행하자 소래산을 지키려는 시흥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공사 저지 운동을 펼쳤다. 시흥 시민들은 1995년 가을부터 1996년 봄까지 약 179일 간의 현장 농성, 시민 서명 운동, 시민 공청회, 시민...
-
경기도 시흥시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수암면에서 1919년 3월에 일어난 독립 만세운동. 수암면 3.1운동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里)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통치를 반대하며 수암면사무소와 수암주재소로 몰려가 만세운동을 펼친 항일 독립운동으로, 민족 독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수암면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와 경기도...
-
경기도 시흥 지역을 통과하는 수원~인천 간 수인선 협궤열차 부설을 위해 1936년 6월부터 1937년 7월까지 1년여 동안 진행된 공사. 수인선(水仁線)은 1937년부터 1995년까지 58년간 수원~인천 간을 운행하던 협궤철도이다. 수인선은 1935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허가를 받아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朝鮮京東鐵道株式會社)가 부설하였다. 수인선 시흥 구간...
-
경기도 시흥시에서 시화방조제 완공 이후 시화호의 수질오염 해결과 시화호 간석지 개발에 따른 환경 악화를 막기 위해 진행된 시민운동. 환경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시화호가 만들어지고 담수화가 시작되자 수질이 급격하게 오염되었다. 이 악화된 수질오염을 해결하기 위한 운동이 1990년대~2000년대 내내 진행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시화호 주변에 시화멀티...
-
1947년 미국 군정청이 식량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추진한 경기도 시흥 지역의 바다를 막아 육지를 만들었던 일. 미국 군정청(軍政廳)은 식량 정책 실패로 민심이 동요하자 쌀 생산 확보를 내세워 전국의 간척 대상지를 물색하였다. 그 일환으로 1947년 10월부터 시흥군 군자면 수인선 주변 간석지 62㏊[62만㎡]를 논으로 바꾸기 위해 간척 사업을 진행하였다. 간척 대상지는...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83번지에서 1993년 발생한 대형 화재. 시흥시 신천동 83번지는 무허가 판자촌이 밀집한 지역으로, 1995년 큰불이 난 후 영구 임대 아파트 주택 건설을 요구하는 주민들과 시행사 간의 공방이 계속되다가 2003년에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2006년 6월 16일 당시 무허가 주택은 모두 강제 철거를 당하였다. 2005년 시공사가 이주...
-
경기도 시흥시가 추진 중이던 오이도 북동쪽 갯벌 매립 사업을 시흥 시민과 환경 단체 등이 반대하여 무산시킨 운동. 2000년 말 시흥시가 개발 토지 확보를 명분으로 오이도 갯벌 51만 5702㎡[15만 6000평] 매립 사업을 본격 추진하려 하자 시흥 시민들은 갯벌 생태계 파괴와 어민 생존권을 위협하는 개발 행위임을 지적하며 2001년 1월 오이도 갯벌 보존을 위한 주민...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의 선사 유적을 시흥 시민의 힘으로 지켜낸 운동. 시화지구 이주 단지 조성으로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의 조개더미 유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시흥YMCA 등 시민 단체, 종교 단체와 오이도 주민들이 저지 행동과 서명 운동, 법적 투쟁 등을 2000년부터 2001년까지 펼쳤다. 그 활동으로 발굴 재조사를 실현시키고, 2002년에는 국가...
-
1950년 북한에 점령된 상태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투표를 통해 인민위원을 선출한 행위. 북한은 점령 지역의 일선 정치·행정을 수행할 인민위원회를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선거를 통해 구성하였다. 경기도 시흥군에서는 1950년 7월 26일~7월 27일 면·리 단위의 선거를 실시하여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시흥군인민위원회는 토지 개혁에 착수했으나, 1950년 8월부...
-
1918년부터 1923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진행된 임야 소유권 재정리 사업.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토지 조사 사업에 이어 임야 조사 사업을 진행하였다. 임야의 근대적 소유권을 확정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1908년 삼림법에 따른 임야 조사로 엄청나게 늘어난 국유림(國有林)을 다시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어 국유림 관리 비용을 민간에 떠넘기고 산림을 통제하기...
-
조선 선조 때 경기도 시흥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일본의 침략 전쟁.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은 1차의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의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를 포함하여 말한다...
-
경기도 시흥 지역 주민들이 장곡동에 있는 노루우물을 지키기 위해 벌인 운동. 시흥시 장현지구 보금자리 사업으로 장곡동 노루우물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였다. 2013년 장현지구 사업 설명회 당시 노루우물 보존을 약속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제성 등을 이유로 약속을 번복하자 주민들이 맞섰다. 2014년 7월부터 주민들은 노루우물 보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학술 대회, 어...
-
일제강점기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에서 지역 유지들이 의연금을 모아 설립·운영한 사설 야학. 죽율 야학(竹栗夜學)은 1926년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 유지들이 농한기에 운영하는 야학으로 개설되었다. 유지들은 1927년 의연금을 모금해 13칸 규모의 교실까지 갖추었다. 1928년 전국적인 큰 가뭄으로 야학 운영이 어려워지자 1929년 유지들은 다시 한번 야학 운영 기금...
-
경기도 시흥에서 일제강점기 토지 조사 사업 과정 중 토지 지배 권리를 두고 발생한 다툼. 일제강점기 시흥 지역에 있었던 토지 소유권 분쟁은 1912년 무렵 일제의 조선 토지 조사 사업(朝鮮土地調査事業)과 관련하여 발생하였다. 학술적 연구는 일제의 사업이 불법적으로 사적 소유권을 약탈하였다는 명제에서 출발하였다.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은 제국주의 식민지의 장기적 경영과 수...
-
191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토지 소유권과 지세 액수 확정, 지적도 작성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진행된 사업. 일제는 식민 지배의 물적 기반인 토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통제하기 위해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전부터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는 사업을 강행하였다. 경기도 시흥 지역의 경우 1910년 지주들로부터 토지 신고서를 접수하였고, 1911년 국유지 통지를 거쳐 1914년...
-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포리[지금의 시흥시 포동] 어업의 상징이었던 포리호가 1960년 12월 납북될 뻔했다가 수장되었던 사건. 일제강점기 시절과 달리 남북 정부 수립 이후 삼팔선(三八線)이 생기면서 남한 주민은 이북의 주요 어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자 보다 발전된 장비를 갖추고 선박이 소형에서 중형화되는 추세가 이어졌다. 포리호(浦里號)...
-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연꽃테마파크 인근의 레미콘 공장 건설을 막아낸 시민운동. (주)청보기업이 2014년 6월 하중동 보통천 옆에 레미콘 공장을 추진하자, 주부·학부모·농민 등 시흥의 문화와 생태 오염을 우려하는 시민들이 반대 운동을 벌였다. 시민 서명운동을 통해 2만 7000여 명이 서명하였고, 1인 릴레이 시위 등이 이어지자 시흥시는 2014년 10월 (유...
-
1907년부터 국권 회복을 위해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전개한 항일 무장 투쟁.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계기로 시흥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서부 지역의 의병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의병들은 일제의 탄압 기구인 순사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진회원(一進會員)을 위시한 친일파를 처단하였으며, 부자들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1909년까지 소규모 유격전 형태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