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김씨 관련 수정요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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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김씨 [연원] ○ 현행 : 울산은 경상남도 동해안에 위치한 지명이다. 울산 김씨의 시조 김덕지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둘째 아들이다. 935년(경순왕 9) 10월 경순왕이 고려 태조(太祖)에게 신라의 천 년 사직을 양위하려 하자 형인 마의 태자 김일(金鎰)[김분(金奮)이라는 설도 있음]과 함께 이를 극력 만류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의 태자를 따라 개골산(皆骨山)[금강산의 겨울 이름]으로 들어갔다고도 하며,~ ● 변경 : 울산은 경상남도 동해안에 위치한 지명이다. 울산 김씨의 시조 김덕지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둘째 아들이다. 935년(경순왕 9) 10월 경순왕이 고려 태조(太祖)에게 신라의 천 년 사직을 양위하려 하자 형인 마의 태자와 함께 이를 극력 만류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형 마의 태자를 따라 개골산(皆骨山)[금강산의 겨울 이름]으로 들어갔다고도 하며,~ ◆ 마의태자의 이름에 대해 1.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 등 역사 문헌에 경순왕의 태자 이름은 실명(失名)이라 하였으며, 후대에 왕자 또는 마의 태자 등으로 불렀다. 2. 1784년 발견되었다는 김은열(金殷說) 묘지석을 바탕으로 김노규 및 김사목이 근기(謹記) 《김은열 묘지명(金殷說 墓誌銘)》에 제1자의 이름이 김일(金鎰)이라 하였다. ☞ 묘지명 자체에 대해 위보 논란이 있음 3. 1814년 김계락(金啓洛)이 찬하고, 경주 김씨 일문들이 세운 「신라경순왕전비」에 전비 박씨 소생의 3자(子)들을 태자(太子), 차자(次子), 영분공(永芬公)이라 하고, 후비 왕씨 소생의 5자(子)들을 은열(殷說), 석(錫), 건(鍵), 선(鐥), 추(錘)라 하였다. ☞ 여기서는 《김은열 묘지명》에 기록된 제1자 일(鎰), 2자 황(湟), 3자 명종(鳴鍾)을 배척하고 있다. 4. 1887년 숭혜전(崇惠殿) 건립 때 대제학 김창희(金昌熙)가 경주 김씨 분파(分派) 시말을 편찬한 《김씨 분관록》에 경순왕 왕자로 김덕지(金德摯)라 하며, 경순왕 아들로 김석(金錫), 김선(金鐥), 김추(金錘)가 있다고 하였다. ☞ 여기서도 김창희(金昌熙)가 그의 증조부 좌의정 김사목(金思穆) 및 아버지 개성유수 김정집(金鼎集)이 근기한 《김은열 묘지명》을 모두 배척하고 있다. ☞ 경순왕 8자(子)들을 배척하고 기록하지 않았다. 5. 이후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붕괴되고 1909년 새로운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누구나 성씨와 본관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으로 인해 족보 위조(僞造)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자신들의 조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근거 없이 무슨 시호와 군호를 붙여 미화하고 상계를 경순왕대 까지 끌어 올려 표기한 경우가 만연했으며, 또 상계 선조를 중국 사람으로 붙이거나 가짜 지석(誌石)을 발굴하거나 명문 족보의 선대(先代) 무후(無後) 손(系)과 연결하거나, 형제수를 늘려 끼우거나, 한 대수를 삽입해서 연접하는 등의 협잡을 자행하는 등 가공 인물을 만들어 자신의 조상으로 만드는 족보 위조가 성행하였다. ☞ 일부 경주 김씨 일문들도 제1자를 김일(金鎰)로, 제2자를 김황(金湟)으로, 제3자를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이라 하며, 자신들의 족보에 시조로 등재하였다. 6. 그러나 1908년 칙명(勅命)으로 간행된 《증보문헌비고》에 신라 경순왕 왕자들에 대해 태자(太子), 별자(別子) 김덕지(金德摯), 개골산 입산한 왕자 계자(季子)의 승명이 범공(梵空)이라 한다고 기록하였다. ☞ 《김은열 묘지명》을 원용하여 경순왕 8자(子) 일(鎰), 황(湟), 명종(鳴鍾), 은열(殷說), 석(錫), 건(鍵), 선(鐥), 추(錘)를 별도 인물로 소개하고 추기(追記)하였다. 7. 또 1924년 윤창현이 간행한 《조선씨족통보》에도 신라 경순왕 왕자들에 대해 태자(太子), 별자(別子) 김덕지(金德摯), 계자(季子) 승명 범공(梵空)이라 기록하였다. ☞ 여기서는 《김은열 묘지명》을 원용하여 경순왕 8자(子)들 중 제3자 김영분(金永芬), 제4자 김은열(金殷說), 제5자 김석(金錫), 제7자 김선(金鐥)만 추기(追記)하였다. ☞ 경순왕 제1자 김일(金鎰), 제2자 김황(金湟), 제3자 김명종(金鳴鍾), 제6자 김건(金鍵), 제8자 김추(金錘) 등은 모두 배척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