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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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鉢山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발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재순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발산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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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발산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37㎢ |
가구수 | 46가구 |
인구[남/여] | 73명[남 38명/여 35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발산리(鉢山里)는 뒷산 내룡이 노승예불형(老僧禮佛形)이며, 마을이 자리한 형국이 노승의 발형(鉢形)에 속한다 하여 발산(鉢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순창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금과면은 1314년(충숙왕 1) 금동방(金洞坊)과 목과방(木果坊)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760년(영조 36) 금동방 11개 리와 목과방 8개 리로 개편되었으며 1897년(고종 34) 방을 면으로 고치면서 금동면과 목과면이 되었다. 이때 금동면에 발산리가 편제되고, 다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두 면이 통합되면서 금과면 발산리가 되었다.
발산리는 임진왜란 때 화순 최씨(和順崔氏)의 중시조인 최충길(崔忠吉)이 들어와 형성한 마을이다. 당시 왜구가 침입하여 부모를 피신시킬 수 없게 되자 최충길은 마을 뒷산에서 부모를 보호하다가 왜군에게 잡혀 순절하였다. 발산리는 자연 마을로 산수동을 끼고 있다.
[자연 환경]
금과면의 동쪽에 위치한 발산리는 북쪽은 풍산면 죽곡리, 서쪽은 내동리, 남쪽은 동전리와 수양리가 인접하여 있다. 발산리는 아미산(峨嵋山)[515m] 상봉에서 남쪽으로 100m 내려와 460m 봉우리를 만들고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다섯 봉우리를 만드는데, 마지막 봉우리 밑에 형성된 마을이 발산리이다. 첫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결인하여 다시 솟아오르면서 한 지맥이 서쪽으로 내려와 발산리 앞에서 머무르니 발산리의 안산이 된다. 발산리는 낮은 구릉과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발가래들은 발산리 서쪽에 있는 들 이름으로 동전리, 내장리, 내동리 등과 인접하여 오고 가는 들이란 말로 가래들[街來들]이라 하였다고 한다. 도룡굴은 발산리와 산수동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도마뱀과 같은 형상의 산을 말하고, 가마구등은 산수동 남쪽에 있는 산능선으로 까마귀가 시체를 쪼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치갈은 발산리 남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거꾸러진 꿩이 일어나 기어가는 형상을 말하고, 매방등은 산수동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매가 놓아진 형상의 산을 뜻한다고 한다.
비실재는 발산리에서 수양리로 넘나드는 고개로 닭의 벼슬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산수재는 산수동 옆에 있는 소류지이다. 산징재는 발산리에서 내동으로 넘나드는 고개를 말하고, 턱구절은 발산리 앞들 남쪽에 있는 산을 말한다. 한두개재는 발산리에서 풍산면 죽곡리로 넘나드는 고개를 말하고, 함정골 고개는 산수동에서 솔매들로 가는 고개를 말한다.
[현황]
발산리는 금과면 소재지에서 2.5㎞ 떨어져 있다. 2021년 12월 31일 현재 발산리의 면적은 1.37㎢로, 이 중 논 33만 1,693㎡, 밭 11만 4,700㎡, 임야 70만 605㎡이다. 인구는 46가구, 73명으로 남자가 38명, 여자가 35명이다. 260여 년 된 발산리 왕버들이 마을 앞 들판[금과면 발산리 302번지]에 자리하여 마을 주민들의 시원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1999년 10월 8일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