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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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鶴仙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대균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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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6.92㎢ |
가구수 | 59가구 |
인구[남/여] | 95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학선리(鶴仙里)의 가마실 마을은 부정(釜井)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을 둘러싼 옥녀봉과 부엌골, 함박골을 포함하는 산세가 가마솥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룡 마을은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에서 유래한다. 다섯 마리 용이 마을 옆 동산을 여의주로 여기고 다투는 형국이라고 한다. 국동리(菊洞里)는 국씨가 터를 잡은 마을이며, 굴치리는 국동에서 칠보면 수청리로 가는 고개로 굴처럼 생겼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율리(栗里)는 밤이 많은 마을이고, 입신리(立新里)는 승어실과 외양실 두 개 마을이 있어 승어실을 큰댁, 외양실을 작은댁이라 하다가 1971년 합하여 입신(立新) 마을로 부른다.
[형성 및 변천]
학선리는 하치등면의 가마실[부정리], 오룡, 밤실[율리], 승어실, 반룡촌, 외양실 마을로 이루어졌다. 쌍치 십이실 중 무려 4개 마을을 포함한다. 여기에 태인의 남촌, 굴치 마을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학선리에 편입되었고, 1971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오룡이 되었다.
[자연 환경]
학선리는 북쪽으로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동쪽으로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 남쪽으로 쌍치면 종암리, 서쪽으로 정읍시 쌍암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굴재는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굴재 마을과 쌍치면 학선리의 오룡 마을을 연결하는 고개다. 모양이 굴같이 생긴 굴재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태인 조에 “굴령(屈嶺)은 현의 동남쪽 30리에 있는데 동으로 운주산에 접하고 남으로는 정읍의 내장산에 연결되어 있다. 길이 깊고 바위가 험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여지고(輿地考)』에는 “굴치(屈峙)는 [중략] 굴령(屈嶺)이라고 하였다.”고 수록되어 있다. 『지승』에 굴치가 순창과의 경계부, 칠보산 북쪽에 험액(險阨)으로 묘사되었으며, 『광여도(廣輿圖)』[태인]과 『해동 지도(海東地圖)』[태인] 등에도 표기되어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학선리의 면적은 6.92㎢이며, 인구는 59가구, 95명이다. 가마실 마을, 오룡 마을, 밤실 마을, 승어실 마을, 반룡촌 마을, 외양실 마을로 이루어졌다. 논농사와 밭농사를 겸한 복합 영농 체제로 농경지를 경작하고 있다. 특히 고추가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복분자와 블루베리, 완두콩 재배가 이루어지며, 축산 농가와 시설 하우스를 재배하는 농가도 있다.
학선리에서 정읍으로 넘나드는 굴치 계곡 바위에 박인걸(朴仁傑)의 적선을 송덕하는 초상화와 치도비가 암각되어 있다. 이곳 학선리 굴치에서 동쪽으로 정읍시 산내면과 쌍치면의 경계를 이루는 칼등처럼 솟아 오른 국사봉 능선에서 5월 초부터 야생 철쭉 군락이 만발하여 매년 국사봉 철쭉제가 열리고 있다. 또 오룡 마을 옆 동산 앞에 시멘트 봉분의 천주교 신자 묘소가 있고 마을 위에는 낡은 오룡 공소가 있으며 지금도 천주교 신자가 많이 산다. 오룡 마을 뒤 굴재 바로 밑이 반룡촌으로 1866년(고종 3)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이 천주교를 탄압할 때 천주교 신자들이 피난을 와서 살았다. 예부터 당쟁과 사화로 인한 피난지인 쌍치 십이실의 전통이 우연한 일이 아닌 듯싶다. 밤실 마을에는 일제 강점기 독립군이 일본 경찰을 피해 숨어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