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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17
한자 趙元吉神道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 산86-14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서홍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390년 8월 - 조원길 사망
건립 시기/일시 1908년 5월연표보기 - 조원길 신도비 건립
현 소재지 조원길 신도비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 산86-14 지도보기
성격
관련 인물 조원길(趙元吉)[?~1390]
재질 화강암[대석]|오석[비신·옥개석]
크기(높이,너비,두께) 비신 220㎝[높이]|85㎝[너비]|36㎝[두께]
소유자 옥천 조씨 대종회
관리자 옥천 조씨 대종회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에 있는 개항기에 조원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개설]

조원길(趙元吉)[?~1390]은 1369년(공양왕 18) 문과에 급제한 뒤 국정에 두루 참여하여 1389년 정몽주(鄭夢周)[1337~1392], 설장수(偰長壽)[1341~1399], 성석린(成石璘)[1338~1423] 등과 함께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하였다. 그 공로로 일등 공훈인 대광보국 광록대부 추충분의 익대필성 극복공신 옥천 부원군(大匡輔國光祿大夫推忠奮義翼戴弼成克復功臣玉川府院君)의 작호를 받았다. 그러나 조선을 건국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순창에 은거하여 세속을 멀리하고 농은(農隱)이라는 작은 움집에서 소요(逍遙)하며 지냈다. 사람들은 조원길을 일러 목은(牧隱), 포은(圃隱), 도은(陶隱), 야은(冶隱)과 함께 오은(五隱)이라 칭송하였다.

[건립 경위]

조원길 신도비(趙元吉神道碑)는 1908년 5월 조원길의 묘소 아래쪽 옥천 조씨(玉川趙氏)의 재실 옆에 세웠다.

[위치]

순창군 순창읍에서 지방도 730호선을 따라 유등면 소재지를 향하면 중간 지점에 건곡 마을이 있다. 건곡 마을 어귀에 있는 최산두 기충각비(崔山斗紀忠閣碑)를 끼고 마을 중앙 길로 들어가면 광주 대구 고속 도로 건너편 옥천 조씨 재실 옆에 조원길 신도비가 있다. 주소지는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 산86-14번지이다.

[형태]

비의 크기는 비신(碑身) 높이 220㎝, 너비 85㎝, 두께 36㎝이다. 대석(臺石)과 옥개석(屋蓋石)까지 합하면 3m가 넘는다. 방형 대석의 화강암 위에 오석(烏石)의 비신을 세우고 옥개석을 덮었다. 사면에 콘크리트 담장을 둘러 기와를 올렸으며 앞에는 문을 달았다.

[금석문]

비신 윗부분에 2줄로 두전(頭篆)을 둘렀다. 두전은 ‘고려 문하시중 옥천 부원군 충헌공 농은 조 선생 원길 신도비(高麗門下侍中玉川府院君忠獻公農隱趙先生元吉神道碑)’라고 송병순이 전서로 썼고, 비문은 최익현(崔益鉉)이 지었으며, 음기(陰記)는 이재윤이 구양순체의 해서로 썼다.

[현황]

조원길 신도비는 건립한 지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아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또 대석과 옥개석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오석으로 된 비신에는 글자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야외에 노출되어 있어도 자획이 전혀 마멸되지 않았다. 다만 콘크리트 담장과 전면에 있는 문의 기와가 낡아 누수와 붕괴가 염려된다. 옥천 조씨 대종회에서 소유하여 관리한다.

[의의와 평가]

최익현목은, 포은, 도은, 야은과 함께 오은(五隱)이라 칭송된 조원길의 행적이 더러는 전하는 바가 누락되어 후손들이 염려하였는데 집에 전해 오는 기록과 보고 들은 바를 신도비에 기록하였다고 밝혔다. 조원길 신도비는 이와 같이 조원길의 고려 시대의 행적을 자세히 전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또한 두전은 일반적인 소전의 서체에서 벗어나 사각의 틀 안에 여러 번 굴곡을 만들며 공간 처리에 특히 신경을 써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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