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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64
한자 全州李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집성지 전주 이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장덕리 지도보기|풍산면 유정리지도보기|팔덕면 창덕리지도보기|복흥면 동산리지도보기|유등면 무수리지도보기
성씨시조 이한(李翰)
입향시조 이경광(李絅光)|이선(李㷽)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경광, 이선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개설]

전주 이씨(全州李氏) 시조는 이한(李翰)이며, 중시조는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이다. 전주를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조선 왕조를 이끌어 온 성씨로서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고 후손 또한 번성하여 계파가 116여 개에 이른다. 순창 지역에서는 일곱 개 마을에서 집성촌을 형성하여 세거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마을이 풍산면 유정리로 대부분 경녕군파(敬寧君派) 후손들이다.

[연원]

이한은 신라 문성왕(文聖王) 때 사공(司空)을 역임하였다. 18세손 이안사(李安社)는 전주에서 누대의 호족이었으나, 당시 새로 부임해 온 지주(知州)와 사이가 좋지 않아 그를 피해 강원도 삼척으로 피하였다가 다시 함경도를 거쳐 원나라 간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루가치 벼슬을 지냈고, 증손자 이자춘(李子春)이 고려에 공이 있어 벼슬이 사복경에 이르렀다. 이자춘의 아들이자 시조의 22세손인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창건하였다.

전주 이씨의 100여 계파 중 으뜸가는 명가는 밀성군파(密城君派)로 정승 6명과 대제학 3명을 배출하였고, 덕천군파(德泉君派)가 영의정 1명과 대제학 3명을 배출하여 밀성군파에 버금간다. 덕천군파 다음으로 정승 3명을 배출한 광평대군파(廣平大君派), 정승 2명을 배출한 선성군파(宣城君派), 정승 1명과 수많은 문무관을 배출한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등이 빼어나다.

[입향 경위]

풍산면 유정리전주 이씨태종(太宗)의 아들인 경녕군의 후손 도암(陶庵) 이경광(李絅光)의 후손들인데, 입향 경위와 시기는 문헌에서 찾을 수 없고 또한 구전되는 것도 없어 상고하기 어렵다. 팔덕면 평지 마을 전주 이씨양도공(襄度公) 이천우(李天佑)의 후예인 이선(李㷽)이 전라남도 영광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그 자손이 세거하고 있다.

복흥면 동산리에 있는 전주 이씨는 전라북도 담양에서 입향한 희령군(熙寧君) 이타(李𥙇 )를 1세로 7세 이진화(李震華)의 후손이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유등면 무수리에는 이경광의 후손인 이완휘(李完輝)가 전라북도 장수에서 들어와 그 자손이 세거하고 있다. 화탄 마을에도 전주 이씨가 살고 있는데, 중종(中宗)의 아들이며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의 5세손 이승한(李承漢)과 아들 이홍태(李弘泰)[성균 진사]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서울에서 덕진방(德進方) 옥정리(玉井里)에 낙향한 뒤 이곳 화탄 마을로 이거하여 세거하고 있다. 1969년 서울에서 이장한 장림 도정(長臨都正)[정3품] 이덕령(李德齡) 묘에 신도비를 세우고, 사당 영모재(永慕齋)를 건립하였다. 이후 첨모재(瞻慕齋), 경모재(景慕齋), 호당정(湖堂亭)에서 매년 향사하고 있다.

[현황]

순창 지역 전주 이씨는 2000년 11월 1일 현재 879가구, 2,259명이 살고 있는데, 가구 및 인구수에서 김해 김씨(金海金氏) 다음가는 대성이다. 풍산면 유정리 유정 마을에 36가구가 살며, 팔덕면 창덕리 평지 마을에 21가구, 복흥면 동산리 동산 마을에 15가구, 유등면 무수리 무수 마을에 24가구, 화탄 마을에 18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풍산면 유정리 유정 마을이경광의 부조묘(不祧廟)가 있다. 동계면 내령리에는 이혼의 묘가 있는데, 이곳은 ‘비천 오공혈(飛天蜈蚣血)’이라는 길지로 천문 지리에 관심 있는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쌍치면 둔전리 산6번지에는 영광정(迎狂亭)이 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당시 이 지역에 살던 금옹(錦翁) 김원중(金源中)이 뜻있는 동지 여덟 명과 함께 고의적으로 광인 행세를 하며 은밀하게 이곳을 근거지로 잦은 모임을 갖고 의병을 모집하고 물자를 준비하여 항일 투쟁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1921년 6월 27일 항일 운동의 집회 장소였던 이곳에 애국 동지 여덟 명의 뜻을 높이 추앙하고자 정자를 세우고 건물의 처마 끝에 태극 팔괘를 도각하여 망국의 설움을 게시하고 건물의 이름을 영광정이라 하였다. 여덟 명의 애국 동지, 즉 8광 제원(八狂諸員)은, 울산 김씨(蔚山金氏) 김원중, 전주 이씨(全州李氏) 이항노(李恒老), 울산 김씨 김정중(金正中), 옥천 설씨 설문호(薛文皓), 전주 이씨 이봉운(李鳳雲), 죽산 안씨(竹山安氏) 안종수(安宗洙), 신평 송씨(新平宋氏) 송국빈(宋國賓), 울산 김씨 김요명(金堯冥) 등이다.

구림면 안심길 103-134의 회문산 중턱에 순창 고추장과 이성계의 설화가 깃든 만일사(萬日寺)가 있다. 만일사는 백제 무왕(武王) 때 처음 세워진 사찰로 조선 전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 무학 대사(無學大師)가 중건하였다. 만일사라는 명칭은 무학 대사이성계를 왕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1만 일 동안 이곳에서 기도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만일사6·25 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이자 인민군과 빨치산의 전라북도 사령부와 전라남도 사령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구림면 운북리 단풍 마을에는 전주 이씨의 제각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2.22 한자 수정 이타(李示+它) -> 이타(李𥙇)
2017.01.24 한자 수정 [수정 전] 희령군 이타(李柁) [수정 후] 희령군 이타(李示+它)
이용자 의견
정** 희령군의 휘자 示+它를 𥙇로 수정하여 주십시오 네이버지식백과 에도 함께수정하여 주십시오.
  • 답변
  • 디지털순창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령군의 한자를 수정하였습니다.
2017.02.21
정** [입향경위] 네번째줄의

[입향한 희령군(熙寧君) 이타(李柁)를]에서 희령군늬 휘자 柁를 示+它로 수정하여 주십시오 휘자는 木변이 아니고 示변입니다.
  • 답변
  • 디지털순창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示변의 한자가 지원되지 않아 조합된 글자로 수정하였습니다.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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