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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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相璣 |
이칭/별칭 | 치옥(穉玉),성암(省庵)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숙정 |
출생 시기/일시 | 1855년 1월 7일 - 김상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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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26년 5월 26일 - 김상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상기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김상기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하리 99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본관 | 울산(蔚山) |
대표 경력 | 참서관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치옥(穉玉), 호는 성암(省庵).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경재(警齋) 김정수(金正洙)이다.
[활동 사항]
김상기(金相璣)는 1855년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하리(下里)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최익현(崔益鉉) 부대도 이 중 하나였다. 1906년 가을 최익현이 순창으로 내려와 의병을 일으키려 할 때 임병찬(林炳瓚)이 김상기에게 안내하였다. 담양 용추사(龍湫寺)에서 기우만(奇宇萬), 이낙범(李洛凡), 유의삼(劉義三), 고광순(高光洵), 박문달(朴文達), 백낙구(白樂九) 등과 함께 거사를 의논하였다. 그 후 자신의 자택에서 이항선(李恒善), 유병우(柳秉寓), 노원집(盧源執), 양공거(梁公擧), 채상순(蔡相淳) 등과 의병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논의를 하여 백낙구를 대장으로 하였다. 하동(河東) 화개동(花開洞)으로 들어가서 1개월간 대열을 정비하여 1906년 10월 최익현 휘하의 채영찬(蔡永贊)이 거느린 대대와 합세하였다. 11월 초 순천을 잠시 장악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07년 고광순, 이항선과 함께 장성으로 옮겨 다시 재기를 모의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913년 2월 고종의 밀지를 받은 임병찬, 전용규(田鎔圭) 등이 비밀 결사인 독립 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였을 때 특승 정삼품(特陞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 토영 참서관(討營參書官)에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참곡관(參哭官)에 들어가 고종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1926년 5월 26일 세상을 떠났는데,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김노수(金魯洙) 등 여러 후손들과 함께 김인후를 추모하기 위하여 낙덕정(樂德亭)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성암 유고(省庵遺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상기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