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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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天府邑誌 |
영어공식명칭 | Suncheonbu eupji |
영어음역 | Suncheonbu eupji |
영어공식명칭 | Suncheonbu eupji |
이칭/별칭 | 『중간승평지(重刊昇平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정규 |
[정의]
1786년 이후 편찬된 전라도 순천부의 읍지.
[편찬/간행 경위]
『순천부읍지』는 정확한 간행 연도를 알 수 없지만, 내용 분석을 통하여 1876년(고종 13) 이후에 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1618년(광해군 10) 이수광이 간행한 『승평지(昇平志)』에 이어 1729년(영조 5) 홍중징이 간행한 『신증승평지(新增昇平志)』의 내용이 당시의 순천부의 상황을 제대로 번영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지적 상황]
『순천부읍지』 1책의 필사본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다.
[형태]
『순천부읍지(順天府邑誌)』는 18세기 편찬된 읍지를 이후 시기에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 중인 『순천부읍지』[奎 17434]의 크기는 세로 30.2㎝, 가로 21.4㎝이다. 판본은 필사본, 장정은 오침선장(五針線裝), 수량은 1책 39장이다. 표지는 능화문황지(菱花紋黃紙), 본문은 저지(楮紙)이다.
[구성/내용]
『순천부읍지』는 건치연혁(建置沿革)·읍호(邑號)·관직(官職)·방리(坊里)·도로(道路)·성지(城池)·산천(山川)·성씨(姓氏)·풍속(風俗)·학교(學校)·서원(書院)·단묘(壇廟)·공해(公廨)·관애(關阨)·진보(鎭堡)·봉수(烽燧)·제언(堤堰)·장시(場市)·교량(橋梁)·역원(驛院)·목장(牧場)·사찰(寺刹)·누정(樓亭)·형승(形勝)·도서(島嶼)·물산(物産)·진공(進貢)·상납(上納)·호구(戶口)·전총(田摠)·전세(田稅)·대동(大同)·균세(均稅)·봉름(俸廩)·잡역(雜役)·창고(倉庫)·조적(糶糴)·군기(軍器)·군액(軍額)·인물(人物)·과환(科宦)·고적(古蹟)·책판(冊板) 등으로 되어 있다. 권말에 전영진(前營鎭)·좌수영진(左水營鎭)·방답진(防踏鎭)·고돌산진(古突山鎭)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치연혁에서는 순천부의 역사를, 담당한 읍으로는 낙안(樂安) 등 8개 읍을, 역대 지명, 관직을 다루고 있다. 방리에는 소안면(蘇安面) 등 총 18개 면과 그 위치, 도로에는 주변 군현 및 서울, 감영, 병영, 수영 등과 거리를, 서울에서 순천까지는 총 780리[306.3㎞]로 당시 10일 하고도 반이 소요된다는 내용이 실렸다. 성지에는 부성(府城)의 규모, 산천에서는 주변의 산과 하천, 포구 등을 기록했다. 진보(鎭堡)에 네 개 진(鎭) 등을, 봉수에 많은 봉수를 기록한 것 등이 방어기지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물산은 해산물에서 농산물, 축산물 등 다양한 종류가 소개되어 있다. 호구 또한 1만 3777호, 4만 7648명으로 매우 많은 편이며, 전총 항목에 의하면 세금을 부과하는 밭이 2,518결 39부 2속, 논이 5,493결 94부 1속으로 파악되었다. 풍속은 “부유하고 화려한 것을 숭상하며 무사(巫祀)를 좋아하고 선비들의 풍습은 순후하나 잘못됨을 바로잡는 일은 없다.”라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순천부읍지』는 1729년(영조 5) 홍중징에 의해 간행된 『신증승평지』의 내용이 1618년(광해군 10) 이수광이 간행한 『승평지』 이후의 변화된 모습을 잘 반영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여 다양한 항목을 설정하여 18세기 후반의 순천부 사정을 기록하고 있다. 목판본이 아닌 필사본으로 간행되었으나 이후 순천 지방에 대한 읍지류들을 연결해 주는 자료로 큰 역할을 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다른 읍지들과 비교를 통해 동시기 순천 지방의 사회경제적 변화 및 중앙의 지방 파악 방식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