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5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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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贇吉 |
영어공식명칭 | Kim Yun-gil |
영어음역 | Kim Yun-gil |
영어공식명칭 | Kim Yun-gil |
이칭/별칭 | 죽강(竹岡),양혜(襄惠)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욱 |
활동 시기/일시 | 1394년 - 김윤길 전라수군첨절제사 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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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97년 - 김윤길 전라도수군도절제사 승진 |
몰년 시기/일시 | 1405년 - 김윤길 사망 |
출생지 | 김윤길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옥산리 |
사당|배향지 | 충민사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교촌리 |
성격 | 무관 |
성별 | 남 |
본관 | 고성 |
대표 관직 | 전라수군첨절제사|전라도수군도절제사 |
[정의]
조선 전기 순천 출신의 무관.
[가계]
김윤길(金贇吉)[?~1405]의 본관은 고성(固城), 호는 죽강(竹岡), 시호는 양혜(襄惠)이다. 김윤길의 할아버지는 김수(金隨)이며, 고려 때 원임대신(原任大臣)이었고, 낙천군(洛川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아버지는 김미(金彌)이며, 고려 때 정헌대부직제학(正憲大夫直提學)이었다. 어머니는 나주정씨 개성소윤(開城少尹) 정길지(丁佶之)의 딸이며, 설재(雪齋) 문정공(文靖公) 정가신(丁可臣)의 손녀다. 김윤길은 낙안군 낙생동(洛生洞)[현 순천시 낙안면 옥산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김윤길은 고려 말 왜구의 침략을 당하여 수군으로 공을 세워 출세하였고, 1394년(태조 3) 전라수군첨절제사(全羅水軍僉節制使)로, 1397년(태조 6)에는 전라도수군도절제사(全羅道水軍都節制使)로 승진하였다. 이때 김윤길은 도내(道內)의 요해처(要害處)에 만호(萬戶)를 두고, 병선(兵船)을 나누어 정박시켰다. 또한, 여러 섬에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군비를 중앙 정부에 바라는 폐단을 없애 버렸다. 더불어 이 당시 낙안읍성의 현 위치에 토성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397년(태조 6) 투항해 온 왜인이 도망간 일로 인하여 최운해(崔雲海), 이구철(李龜鐵), 김영렬(金英烈) 등과 함께 국문(鞫問)을 당하였다. 이때 우정승 김사형(金士衡)과 의성군(宜城君) 남은(南誾)이 왕에게 김윤길의 죄를 감해 주기를 청하여 얼마 후 유배되었고, 그 후 다시 수군(水軍)에 편입되었다.
[상훈과 추모]
김윤길은 1406년(태종 6)에 ‘양혜공(襄惠公)’이란 시호를 받았다. 1697년(숙종 23)에는 낙안향교 옆에 김윤길과 병자호란 당시 낙안군수를 역임한 임경업을 제향하기 위해 충민사(忠愍祠)[사우]를 건립하였다. 그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74년에 새로이 복설하면서 이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