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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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將軍石-龍馬 |
영어공식명칭 | Jangguseok and Yongma(Folktale) |
영어음역 | Jangguseok and Yongma(Folktale) |
영어공식명칭 | Jangguseok and Yongma(Folktale) |
이칭/별칭 | 송광면 대흥리의 전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옥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9년 - 「장군석과 용마」 『순천대박물관지』 창간호에 「송광면 대흥리의 전설」로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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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마당평|망일봉|질마재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 |
채록지 | 「장군석과 용마」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 |
성격 | 인물담|신이담 |
주요 등장 인물 | 선비|아들|용마 |
모티프 유형 | 아기장수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에서 장군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장군석과 용마」는 1999년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한 『순천대박물관지』 창간호에 「송광면 대흥리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백제 성왕이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준비 중일 때 지리산에서 한 선비가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백발노인이 그 선비의 부인 꿈에 나타나, “왕의 고을이라는 곳에 10개의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를 사비성으로 보내면 아홉 살 먹은 아들이 대성할 것이니 서두르라”라고 했다. 왕의 고을은 다름 아닌 현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의 옛 지명인 대황리였다. 선비는 산봉우리에서 망을 보면서 부인이 날라다 주는 바위를 사비성으로 보냈다. 7개의 바위를 보내고 3개만 남았는데, 어디선가 “때가 늦었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부인은 깜짝 놀라 자기 아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아들이 용마를 타려고 골짜기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골짜기에 다다르기 전에 이미 용마가 재를 넘고 있어 따를 수가 없었다. 아들은 우두커니 선 채로 바위가 되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그 바위를 가리켜 소년이 용마를 탔으면 장군이 되었을 것이라 하여 ‘ 장군석’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 소년이 진을 치던 곳을 마당평이라 하고, 선비가 망을 보던 봉우리를 망일봉이라 하였으며, 용마가 넘어간 재를 가리켜 질마재라 부르고 있다.
[모티프 분석]
「장군석과 용마」의 주요 모티프는 ‘아기장수 설화’이다. 아기장수 설화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설이다. 아기장수는 비범한 출생과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 아기가 권력자의 횡포나, 부모의 실수로 인해 영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기장수 설화에서 용마는 아기장수의 분신과 같은 존재이다. 전설에서 용마가 죽거나 사라졌다는 것은 결국 아기장수가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비극을 맞이하게 됨을 의미한다.
순천 송광면에서 전승되는 아기장수 설화는 비범한 출생이나 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권력자가 아기장수의 적으로 그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아기장수 설화와 차이가 있다. 또한, 지리산에서 귀양살이하던 선비가 어떻게 해서 순천 송광면의 바위를 사비성으로 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서사가 불충분하다.
하지만 「장군석과 용마」를 통해 순천 지역에서도 중앙 무대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 태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그럴 경우, 적합한 후원과 지지가 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고 하겠다. 즉 지역의 인물이 중앙 무대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지역민들의 염원이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