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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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龍寺-金翅鳥 |
영어공식명칭 | Goryongsa Temple and Geumsijo(Folktale) |
영어음역 | Goryongsa Temple and Geumsijo(Folktale) |
영어공식명칭 | Goryongsa Temple and Geumsijo(Folktale) |
이칭/별칭 | 고룡사 연기설화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정훈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3년 - 「고룡사와 금시조」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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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8년 - 「고룡사와 금시조」 『순천 사람들의 삶에 담긴 이야기 설화』-문헌자료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계족산 고룡골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
관련 지명 | 고룡사 3층 석탑 - 전라남도 순천시 우석로 191[인제동 80] |
성격 | 지명유래담|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도선국사|원오국사 |
모티프 유형 | 풍수|비보|사찰연기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서 전해 오는 고룡사 창건과 폐사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고룡사와 금시조」는 2013년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 2018년 한국산업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순천 사람들의 삶에 담긴 이야기 설화』-문헌자료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순천시 서면 계족산 고룡골에는 과거에 고룡사가 있었다. 고룡골은 여성의 몸과 같다 하여 ‘여신산(女身山)’이라 했다. 신라 말기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광양에서 순천으로 넘어오다 고룡골을 발견하고 그곳에 절을 창건했다. 도선국사는 고룡골에 일주문을 세우고, 수리봉 정상에 커다란 돌을 올려놓았다. 국사봉 정상에는 종을 놓았다.
도선국사는 제자에게 수리봉은 금시조(金翅鳥)[불경에 나오는 신화적인 상상의 새]로, 용을 상징하는 용봉을 잡아먹는 형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리봉의 커다란 돌과 국사봉의 종이 금시조를 누르면서, 용을 안전하게 보호한다고 했다.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룡사는 초기에는 매우 번창하다가 차츰 쇠락했다.
고려시대 원오국사(圓梧國師) 천영(天英)[1215~1286]이 근처를 지나가다 고룡사 폐사지를 발견했다. 원오국사 천영은 마을 사람들에게 고룡사 폐사 이유를 듣고, 다시 절을 지었다. 고룡골은 여신(女身)의 형상을 띠고 있어서 음기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고룡사를 비구니 사찰로 바꾸었다. 그러나 음기가 너무 센 나머지 비구니들이 마을 남자들과 바람이 나는 일이 잦았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이 절에 불을 놓아 태워버려서 고룡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룡사에 있던 3층 석탑은 우석 김종익(金鍾翊)이 보관하다가 현재 순천고등학교 교정에 있다.
[모티프 분석]
「고룡사와 금시조」의 주요 모티프는 ‘풍수’, ‘비보’, ‘사찰연기’이다. 도선국사는 신라 말기 풍수를 처음으로 전한 승려이다. 도선국사가 풍수를 바탕으로 절을 창건했다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많이 전하고 있다.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연기설화는 지역의 풍수와 관련이 깊다. 「고룡사와 금시조」도 도선국사와 풍수를 연결시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고룡골 주변의 지명 유래담 성격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