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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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 순천의 행정구역은 변화를 거듭하였다. 후삼국의 분열을 극복하고 진정한 통일국가를 건설한 고려는 지방세력까지 통치체제로 포섭할 여력이 없었다. 태조부터 경종 대까지[936-981] 일부 군사적인 거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지방세력의 자치상태에 있었다. 조세 수취를 맡은 금유, 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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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 교육의 역사 순천 지역은 구석기시대 이후 한반도 남부의 중심 고을이었다. 낙안 지역을 포함한 순천 지역에는 마한·가야 유물, 백제계 산성 등 역사 유적, 후백제 김총·박영규의 근거지였던 역사적 사실들이 이를 증명한다. 삼국시대 이후 왕권 강화의 방편으로 유교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시도가 있었겠지만,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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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고려 초에 활동한 순천 출신의 호족이자 순천 지역의 수호신. 전라남도 순천 지역은 한반도 남해 연안의 해상교통 요지였다. 물산이 풍부한 섬진강 수계의 주요 거점으로서 내륙 수운을 통하여 전라남도의 보성군·곡성군·구례군까지 직접 연결되고, 남쪽이 바다와 바로 연결되어 해상활동을 전개하는 데 매우 적합한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에 고려 초 해룡산에는 ‘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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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정혜결사를 개설한 순천 송광사에서 국사를 지낸 승려. 지눌(知訥)[1158~1210]은 송광사 16국사 중 제1대 국사이다. 황해도 서흥군(瑞興郡)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지방 향리층 정광우(鄭光遇)이고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호는 목우자(牧牛子)이고 시호는 불일보조(佛日普照)이다. 지눌은 태어나면서부터 병이 많았는데 부모가 부처님께 출가시키겠다고 맹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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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보·법보·승보의 삼보 사찰 가운데 승보에 해당하는 사찰. 순천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이다. 삼보사찰이란 불보·법보·승보의 사찰을 말하는데 불보사찰은 통도사, 법보사찰은 해인사, 승보사찰은 순천 송광사이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순천 송광사는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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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보·법보·승보의 삼보 사찰 가운데 승보에 해당하는 사찰. 순천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이다. 삼보사찰이란 불보·법보·승보의 사찰을 말하는데 불보사찰은 통도사, 법보사찰은 해인사, 승보사찰은 순천 송광사이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순천 송광사는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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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순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단위와 명칭의 변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순천 지역의 명칭이 다양하게 바뀌었다. 삽평군을 시작으로 승주목, 승주연해절도사, 승평군, 순천부, 순천도호부, 순천군이 그것이다. 이러한 명칭 변화가 나타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명칭 변화는 단순히 이름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순천이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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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고려 초의 정치적·사회적 변동을 주도한 순천지방세력. 호족은 신라 하대의 혼란기에 각 지방에서 경제적인 부 또는 군사적인 실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일정 영역을 지배한 지방세력이다. 신라 말기에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하였고, 그 세력기반은 중앙이 아닌 지방사회에 있었다. 또한, 일정한 영역에 대해 독자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고대적 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