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의성 현령 유심춘에 대한 이야기. 의성 현령을 지냈던 강고 유심춘의 청백한 인품과 선정에 대한 내용을 담은 인물 전설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강고 선생의 청백」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강고(江皐) 유심춘(柳尋春) 선생은 비록...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있는 검바위와 화랑재의 유래에 대해 전해 오는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있는 검바위는 조선 시대 퇴계 이황이 ‘검(儉)’ 자를 쓴 것에서 유래한 것이고, 화랑재는 신라의 화랑들이 무예를 수련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인데, 그 이름의 기원을 알려주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1979년 의성군 교육청에서 발행한 『문소의 얼』에 「검바위와 화랑재」라는 제목...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에서 견우·직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애정요. 「견우직녀가」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소재로 한 애정요이다. 견우와 직녀는 1년에 하루 음력 7월 초이렛날 밤인 칠석(七夕)에만 만난다고 전해지는데, 이 노래의 가사도 견우·직녀 설화를 바탕으로 하여 서사화 되어있다. 「견우직녀가」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 1,350쪽에 수록...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와 신평면 검곡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와 신평면 검곡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고사리」는 고사리 나물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선달네 맏딸 애기’를 두고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에게 급살이나 맞어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사리」는 오작은순[여, 1901년생, 창길 출생]이 부른 것으로, 2000년 의성 문화원에서 발...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구천 나루와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과 안계면 사이의 위천을 건네주던 사공 조익수에 대한 인물 전설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던 조익수가 있었기에 구천면 주민은 마음 편히 위천을 건널 수 있었다. 지금은 구천교가 설치되었고 조익수가 타계한 지도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구천면 주민들은 믿음직했던 조익수를 추억하고 있다. 19...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서 기와밟기를 할 때 불렀던 유희요. 「기와밟기」는 강강술래에 삽입된 노래이자 놀이다. 경상도 지역뿐 아니라 전라도 지역에서도 행해지는데,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는 「기와밟기」,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는 「놋다리밟기」, 울산을 비롯한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재 밟기」라고 불린다. 「기와밟기」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와 초등학...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신평리에 있는 노송과 마을 제사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신평리에 있는 노송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물 전설이다. 악한 후처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된 착한 본처와 그 남편의 혼을 달래기 위해 정월 대보름이 되면 소나무 앞에서 마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유래도 함께 전하고 있다. 1979년 의성군 교육청에서 발행한 『문소의 얼』에...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서 전해지는 월령체 민요. 「달거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서 전해지는 월령체 민요이자 남녀 사이의 애정 생활을 바탕으로 한 애정요이다. 월령체 민요의 일반적 특징으로는 1년 12달이 모두 제시되나 단북면의 「달거리」는 1월에서 5월까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달거리」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 1,350~1,351쪽에...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의 화전놀이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대곡사의 화전놀이」는 비봉산 대곡사 인근에서 벌어졌던 화전놀이의 실상과 함께, 화전놀이가 일제 강점기 때 의성군민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는지도 전해주는 전설이다. 1979년 의성군 교육청에서 발행한 『문소의 얼』에 「대곡사의 화전놀이[민속놀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자료 제공자는 ‘신산 초등...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위양 1리 대암산의 화전놀이에 대한 이야기. 대암산의 이름이 유래된 내력과 그곳에서 벌어졌던 화전놀이가 어떤 사회적 의미를 지녔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전설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대암산의 화전놀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소개되어 있다. 대암산은 경상북도 의성군...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무덤을 만들 때 흙을 다지면서 부르는 장례 의식요. 무덤 쓸 자리에 상여가 당도하면 하관(下棺) 등의 여러 의식(儀式)을 거쳐 봉분을 쌓기 위하여 흙을 다진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덜구 노래」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장지(葬地)에서 하관을 마치고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관 주변의 흙을 단단히 해야...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무덤을 만들 때 흙을 다지면서 부르는 장례 의식요. 상여가 무덤에 당도하면 하관(下棺) 등의 여러 의식(儀式)을 거친다. 그리고 봉분을 쌓기 위하여 흙을 다지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가 「덜구지」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묘를 쓸 때는, 하관을 마치고 물이 무덤에 스며들어가지 못하도록 관 주변의 흙을 단...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율리 마을 동고사 기름 종지의 영험함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율리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동고사를 지내는데 이때 사용된 기름 종지를 자기 집으로 가져가 밝히고 축원 기도를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이다. 율리 마을의 동고사 때는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들이 많이 참여하여 기름 종지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1998년 의성...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두모동에서 마을을 수호하는 두모 장군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두모 장군 이야기」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두모라는 장사에 대한 인물 전설로, 지금도 마을 높은 곳에 부엌의 흔적 등이 남아 있어 전설의 내용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두모 장군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두모동...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있는 들돌베이라는 지명의 유래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삼분리에는 보기와는 달리 들어 올리기가 쉽지 않은 들돌이 있는데, 그 돌로 인해 마을 이름이 정해지게 된 유래를 담고 있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들돌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1968년 10월에 삼분 초등학교 유태영이 제보한 이야기라고 한...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 3리에 있는 용문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자신을 구렁이라고 말한 아낙네 때문에 결국 등천하지 못한 용이 나왔다고 하는 용문에 대해 알려주는 사물 전설이다. 비록 등천하지는 못했지만 아낙네와 딸에게 응징을 가함으로써 용의 신성성을 확인하게 한다. 1979년 의성군 교육청에서 발행한 『문소의 얼』에 「용문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자료는...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군수를 지낸 지혜로운 명관 이인성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남의 소에게 해를 끼친 범인을 찾아낸 명관 이인성의 지혜와 그의 선정을 기리는 인물 전설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명관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의성문화관광’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의성 군수를 지낸 이인성(李寅聲...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모내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모내기가」는 경상도 지역뿐만 아니라 경기도, 전라도 등의 논농사 지역에서 가창되는 가장 대표적 민요 중 하나로 교환창 방식으로 불려진다. 교환창 양식을 통해 일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사설의 내용은 노동 당시 상황에 따라...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모심기 노래」는 경상도 지역뿐만 아니라 경기도, 전라도 등의 논농사 지역에서 가창되는 가장 대표적인 민요 중 하나인데, 교환창 방식으로 불려진다. 교환창 양식을 통해 노동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또한 남녀 간의 연정을 통해 삶의 애환을 노래하...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전해오는 선산 김씨(善山金氏), 순천 장씨(順天張氏), 우봉 이씨(牛峰李氏)가 하나의 묘역을 이룬 사연에 대한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는 선산 김씨, 순천 장씨, 우봉 이씨가 하나의 묘역을 이루고 있는데 그 내력을 설명해주는 지역 전설이다. 사회가 급변하고 가족 간의 인정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그런 정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와 신평면 검곡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미물에 관한 노래.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와 신평면 검곡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미물 노래」는 쪼막괭이를 둘러매고 뒷동산에 올라가서 미물을 갈았더니 삼일만에 벌써 싹이 나서 너무나 기뻐 앞집, 뒷집의 동세들에게 미물구경을 가자고 권하며, 까만 열매를 꼬꾸랑 낫으로 베어다가 도리깨 타작을 한 다음, 방앗간에 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 분명 마을에 나란히 세워진 비석에 대한 이야기.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딸과 함께 순절한 열녀 박씨의 정절을 기리는 인물 전설이다. 더불어 그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의견(義犬)도 함께 칭송되고 있다. 1982년 의성군에서 발행한 『의성의 전설』에 「박씨 열녀비와 의견」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전해오는 비안 현감을 지낸 채응일(蔡膺一)과 아들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의 어린 시절 일화에 대한 이야기. 명재상으로 이름난 번암 채제공[1720~1799]의 어린 시절 일화를 통해 그의 인품과 기개를 보여주는 인물 전설이다. 붕당이 격심했던 시기에 화해와 상생의 정치를 폈던 채제공의 행보를 미리 짐작해 볼 수 있게 하는 이야기이다. 1998년 의성...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서 부녀자들이 베틀을 짜면서 부른 노동요. 「베틀가」는 지역을 막론하고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이다. 이를 베 짜는 노래, 베틀 노래, 베틀가라고도 한다. 남성들이 공동으로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노동요’라면 여성들이 맷돌을 돌리거나, 방아를 찧고, 망건을 짜거나, 베틀에서 작업을 할 때 부르는 노래 등이 이에 속한다. 길쌈이란 일의 특...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있는 벼락못[벼루못]의 유래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있는 벼락못의 지명 유래에 대한 전설이다. 널리 알려져 민담에 가까우나 실제의 증시물이 있는 광포 전설(廣布傳說)로 아기 장수 설화 유형의 하나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벼루못」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서 열떼재 중턱의 주막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열떼재라는 고개에서 생명의 은인을 만났던 부부가 훗날 은혜를 갚기 위해 주막을 차려 그 은인을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보은 전설이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보은의 주막」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1967년 10월에 의성 초등학교 이경용이 제보한 이야기라고 기록되...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있는 분명리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정월 대보름 달맞이 행사로 농사의 흉풍을 점친 데서 분명리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하게 된 내력을 전하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분명리의 달맞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1968년 8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명리 김정현이 제보한 이야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 있는 신주못의 명칭 유래 이야기. 고목나무를 신주로 모시고 100일 기도를 드린 끝에 얻은 아들을 잃고, 그 목을 던진 못이 바로 신주못이다. 못의 이름이 유래하게 된 사연을 담고 있는 지명 유래 전설이면서, 광포 전설인 아기장수 설화의 한 변이형이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신주못」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영남의 전설』에는...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에 있는 빙계 계곡과 용소가 생긴 기원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용과 장수가 개울을 만들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다가 용소와 계곡 주변의 바위들이 생겼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자연물 생성 기원 전설이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빙계 계곡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1966년 10월,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동 오영수가...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장례식 때 상여꾼들이 부르는 의식요. 「상여 노래」는 상여를 메고 가는 상여꾼들이 부르는 장례 의식요이다. 장례와 관련된 만큼 가창 권역도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북망산천 돌아갈 제 어찌 할꼬 험한 길을/ 애닯고도 슬픈 지고 절통하고 통분하다/ 인간의 이...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장례식 때 상여꾼들이 부르는 의식요. 「상여 소리」는 상여를 메고 가는 상여꾼들이 부르는 장례 의식요이다. 상여를 메고 가는 상여꾼을 향도꾼 혹은 상두꾼이라고도 불렀다. 장례와 관련된 만큼 가창 권역도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상여가 나가기 전날 밤에 초경(初更)·중경(中更)·종경...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성주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부르는 의식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의성군에 전해지는 「성주풀이」는 세시 의식요이다. 성주 고사나 지신밟기를 할 때는 ‘성주풀이’를 가장 으뜸으로 한다. 의성군에서 불리는 「성주풀이」의 사설은 ‘제비원 본풀이 → 재목 구하기와 집짓기 → 축원과 치례’의 형태이다. 민요로 전이...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서 전해지는 떠난 임을 원망하는 여인의 마음을 읊은 이별 상사요. 「수심가」는 사랑하는 임을 잃은 여인의 잠 못 드는 밤을 읊은 이별 상사요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임을 독수공방하는 여인의 안타까움이 잘 묻어나 있다. 「수심가」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 1,350쪽에 수록되어 있다. 4음보 4행의 단행으로 타령조이다. 동...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전해져 내려오는 시집살이의 애환을 담은 노래.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전해져 오는 「시집살이」는 일명 「진주낭군」으로도 불린다. 과거를 보러간 남편이 첩을 데리고 돌아와 생기는 갈등을 노래로 불렀으며, 본처가 자살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비극적 서사민요이다. 「시집살이」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 1,350쪽에 수록되어 있...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만리 2리에 전해오는 아기 장군에 대한 이야기. 의성군 안사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기 장수 전설의 한 유형이다. 어리석은 부모가 비범한 아들을 죽임으로써 민중적 역량을 스스로 포기한 비극을 담고 있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아기 장군의 비명」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있는 용바위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기 장수 전설의 한 유형이다. 어리석은 부모가 비범한 아들인 아기 장수를 죽인 비극을 담고 있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용암」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있던 오메기 듬벙의 명칭 유래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있던 오메기 듬벙의 명칭이 유래하게 된 내력을 알려주는 자연물 명칭 전설이다. 듬벙에서 머리가 다섯 달린 메기가 나왔다고 해서 오메기 듬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오메기 듬벙」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비봉산에 있는 아들 바위와 딸 바위의 신앙적 성격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의성군 금성면 비봉산에 있는 아들 바위와 딸 바위의 지리적 위치와 형상, 그리고 그 바위의 신앙적 성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신앙 기원 전설이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아들 바위와 딸 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1964년 8월, 의성군...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기도리에서 행해지던 별신 놀이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기도리에서 무당들이 모여 행하던 별신 놀이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전설이다. 1979년 의성군 교육청에서 발행한 『문소의 얼』에 「안평의 별신 놀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82년 의성군에서 발행한 『의성의 전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
-
경상북도 의성에서 현령을 지낸 여헌 장현광의 선정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의성 현령을 지낸 여헌 장현광의 학덕과 선정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인물 전설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여헌 선생의 예언」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학자이자 관리였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선생은 학문과 도덕이 매우 뛰어나 영남학파의 후계들...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있는 연경묘 봉표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있는 「연경묘 봉표」의 내력을 설명하는 것으로, 취란이나 연경 또는 세종에 대한 인물 전설이기도 하고, 「연경묘 봉표」의 유래를 설명하는 사물 유래 전설이기도 하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연경묘 향탄암 봉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1968년 10월...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대사리 오장군 묘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오장군(吳將軍)의 검은돌」은 오장군 묘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는 인물 전설이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오장군(吳將軍)과 검은 돌」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는 「오장군(吳將軍)의 검은 돌」이라는 제목으로 재수록 했다. ‘...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 선암 마을에 있는 베틀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왕비가 된 효녀와 베틀 바위」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 선암 마을에 있는 베틀 바위와 관련된 암석 전설로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권선(勸善)의 내용이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베틀 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있는 용문곡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용문곡 이야기[용가매골]」는 금성산 용문곡과 관련해 전해지는 지명 전설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용문곡 이야기[용가매골]」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경북 나드리’, ‘지역 정보 포털’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있는 울고개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용절의 황룡이 울며 넘어간 울고개」는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선창리와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조성리 사이에 있는 ‘울고개’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구전으로 전해지는 전설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울고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지역 정보 포털’ 홈...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정씨 문중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의성읍 정씨 문중(丁氏門中)의 성쇠(盛衰)」는 의성읍의 정씨 가문과 관련해 전해오는 전설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의성읍 정씨 문중(丁氏門中)의 성쇠(盛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의성 문화 관광’, ‘경북 나드리’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옛날...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 월평 마을에 있는 주월사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주월사의 유래」는 주월사(住月寺) 창건과 관련해 전하는 창사 전설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주월사(住月寺)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주월사는 부처님이 나셨다고 해서 불출산(佛出山)...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일대에서 지신밟기 할 때 부르는 의식요. 음력 정월 초순 또는 가옥 신축 때 부르던 「지신밟기 노래」는 벽사진경(辟邪進慶)[요사스런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끌어들임]을 목적으로 하는 마을의 신앙 행사 때 부르는 의식요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정월 대보름 아침에 마을의 청년과 장년들이 모여 선...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일대에서 ‘지신밟기’를 할 때 부르는 의식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지신풀이」는 세시 의식요로 굿을 할 때 땅을 다스리는 신령의 근원을 풀어 밝히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농악대는 지신(地神)을 하나씩 차례로 찾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지신에 따라서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보아 유사한 격식으로...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에서 명절놀이를 할 때 부르는 유희요. 「쾌지나 칭칭나네」는 추석이나 음력 정월 대보름 때 줄다리기 등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추석이나 음력 정월 대보름 줄다리기에서 자기편의 기세와 흥을 돋우거나 승리를 경축할 경우에 부른다. 또한 봄철 화전놀이 때 부녀자들이 솔밭 잔디 위에 자리...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서제리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팔형제 팔천석의 영광」은 단밀면 서제리에 살던 부호 김태안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전설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팔형제 팔천석의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의성 문화 관광’, ‘지역 정보 포털’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서제리(...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에서 전해지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권면하는 민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학도야 학도야 우리 학도야/ 벽상에 괴종을 들어보시오/ 한 소리 두 소리 가고 못가니/ 인생 백 년 가기 주마 같도다/ 청산 속에 묻힌 옥도 갈아야만 광채 나고/ 낙락장송 큰 나무도 깎아야만 동량되네 「학도가」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할...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에 있는 누룩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항상 술이 나오는 누룩 바위」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누룩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암석 전설이다.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누룩 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영남의 전설』에 수록된 내용을 재수록...
-
1899년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편찬된 읍지. 『의성군지』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읍지로, 1899년에 편찬되었다. 읍지의 표제가 ‘경상북도의성군읍지(慶尙北道義城郡邑誌)’로 되어 있는데, 경상도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분리되고, 의성현(義城縣)이 의성군으로 개편된 것은 1896년이다. 새로운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변경된 군명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현 의성군과는 달리 비안...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매년 추석 때 다리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편을 짜서 가마를 지고 겨루는 민속놀이. 매년 음력 8월 15일 추석에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아사천(衙舍川)을 중심으로 유다리를 사이에 두고 행해졌던 기마 싸움은 서당 학동들이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어 가마를 지고, 상대편의 가마를 먼저 부수거나 기(旗)를 많이 빼앗은 편이 승리하게 되는 민속놀이이다. 의성읍 내...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질그릇이나 사기 그릇, 기와 따위를 굽는 가마가 있던 옛터. 가마터는 인간이 토기를 발명하여 사용한 신석기 시대 이래로 남겨지기 시작한 유적이다. 선사 시대의 가마터 유적은 주로 토기를 굽던 토기 가마와 숯을 만들기 위한 사용한 숯가마가 있으며,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서 토기 가마뿐만 아니라 자기 가마, 옹기 가마, 기와 가마를 비롯하여 쌈을 찌는 삼가마,...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가상동·가중동·가하동과 계산동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가산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인 고바우는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이 곳 바위 밑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며, 그 후 산 아래 냇가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계산(溪山)이라 불렸다. 들감 마을은 들을 낀 아름다운 산...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다인면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가원 1리와 가원 2리로 나누어져 있으며 비봉산(飛鳳山)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다. 동쪽으로 외정리, 서쪽으로 서릉리, 남쪽으로 신락리, 북쪽으로 송호리와 면하고 있다. 동북쪽으로는 구릉성산지, 남서쪽으로는 저평한 들판이 펼쳐져 있어 논농사와 과수 재배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1914년 행...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가음면의 북쪽에는 날아가는 봉황의 형상을 한 비봉산(飛鳳山)이 있는데, 어느 날 산 아래로 봉황이 날아와 아름다운 소리로 울어 아름다울 가(佳), 소리 음(音) 자를 써서 가음이라 하였다 한다. 일설로는 면의 남동쪽에 있는 선암산(船岩山)을 주봉으로 하여 삼천리 산이 동서로 가로 지른 것이 여자가 가야금을 튕기면서 춤추는 형국이라 하여 그 아름다...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가음면은 북쪽의 비봉산을 비롯하여 동남부에 북두산·선암산 등이 솟아 산지가 많다. 면의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쌍계천 유역에 평야가 발달했고 촌락도 주로 이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장리(長里)·이리(梨里)·양지리(陽地里)·가산리(佳山里)·귀천리(龜川里)·순호리(蓴湖里)·현리리(縣里里) 등 7개 법정리와 18개 행정리...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장리에 있는 가음면 관할 행정 기관. 경상북도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가음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가음면사무소는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음면으로 개칭한 이후 1928년 24개 동으로 분동하였으며, 1931년...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와 안동시 남선면에 걸쳐 있는 산. 예로부터 이 산의 능선에는 칡이 많이 자생한다 하여 갈라산(葛蘿山)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옛날에 풍수에 의하여 칡꽃이 많이 피었다고 하여 이와 같은 명칭이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세간에 전해 오기를 “신라의 명필(名筆) 김생(金生)이 이곳에서 글씨를 공부했다.”고 하여 문필봉(文筆峯)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갈라산은 높...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한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로(大老). 조선 초기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 都巡問使)를 역임한 강회백(姜淮伯)[1357~1402]의 현손(玄孫)으로, 아버지는 강지해(姜之海), 할아버지는 강의정(姜儀貞), 증조할아버지는 강미(姜美)이며, 5형제 중 막내로 위로 강효손(姜孝孫)·강계손(姜繼孫)·강충손(姜忠孫)·강신손(姜信孫) 등이 있다. 모계는 확인...
-
개항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덕수(德綬). 호는 국농(菊農). 강준형(姜峻馨)[1861~1935]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19세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어버이를 봉양하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다. 이에 맏형을 어버이 같이 받들며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항상 물어서 행하고 마음대로 하는 일이 없었다. 맏형 또한 우애가 깊어 그에게 “...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의 한 분파. 의성의 개신교 전래는 한 미국인 선교사의 전도 여행으로부터 시작된다. 1891년 한국에 첫발을 디딘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배어드는 부산을 거점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다가, 1893년 4월 17일부터 약 한 달 동안 경상북도 전역을 순회하는 긴 선교 여행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배어드가 경상북도 청도의 한 장터에서 노방 전도를 하...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일리(開日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개일(開日)에서 나온 명칭이다. 원래 골이 넓다고 개곡(開谷)이라 부르다가, 그 후 개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약 400년 전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산 너머 산운리와는 달리 항상 구름이 걷혀 있어, 개일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의성군 산운면 개일동에...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개천 저수지는 봉양리에 있는 1종 저수지이다. 1530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는 비안 현감 이변(李忭)이 시축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순조 때에 현인복(玄仁福)과 홍병도(洪秉道), 고종 때에 남정린(南廷麟) 등 역대의 비안 현감과 1913년에는 강기덕(姜基德) 등이 오랜 세월에 황폐된 개천 저수지를 크게 중수하였다는...
-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건마산(乾馬山) 일대에서 벌어진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 건마산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 위치한 산으로, 걸마산·부마산·성재 등으로도 불린다. 높이는 395m이며 단촌면 병방리와 점곡면 송내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2002년 출판된 『의성 지명 유래』에 따르면, 건마산에는 병방산성이 있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의 발발과...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상리리에 있는 경상북도 농업 기술원 산하 전문 연구소. 경상북도 농업 기술원 유기 농업 연구소는 경상북도 농업 기술원 산하 9개 지역 특화 전문 연구소 중 한 곳이다. 경상북도 농업 기술원은 1908년 4월 권업 모범장 대구 출장소로 설치되어 1910년 9월 권업 모범장 대구 지장, 1914년 1월 경상북도 종묘장, 1932년 10월 경상북도 농사 시험장,...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에 있는 의성군 관할 교육 행정 기관. 1952년 7월17일 「교육법」제167조에 따라 교육 자치제가 시행됨으로써 의성 군수를 교육감 직무 대리로 하는 의성 교육구 교육청을 개청하였다. 1964년 1월 1일 의성군 교육청으로 개칭되었다. 1966년 12월 23일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서리에 있던 청사를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로 이전하였다. 1991년...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의성군에 분포하고 있는 고개는 산지와 산지 사이의 낮은 안부이다. 고개는 높은 산지로 가로막혀 있을 경우, 이를 통과하는 최단 거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을 오갈 때 길목으로 활용된다. 의성군의 고개는 주로 의성읍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오가는 데 이용되었던 고개와 의성군의 동쪽 경계에 있는 고개, 남...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후삼국 시대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은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이때 의성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왕건과 견훤 모두가 중시하는 곳이었다. 양자가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의성의 호족 홍술(洪術)이 고려에 귀부하자 왕건은 이를 우대하기 위해 이 지역에 의성부(義城府)를 설치하였...
-
경상북도 의성 지역과 관련하여 1945년 이전에 작성된 옛 문서. 경상북도 의성 지역과 관련된 고문서 작성 지역은 조선 시대의 경상도의 의성현(義城縣)과 비안현(比安縣), 상주목(尙州牧)의 속현(屬縣)이었던 단밀현(丹密縣), 예천군(醴泉郡)의 속현이었던 다인현(多仁縣), 그리고 용궁현(龍宮縣) 일부이다. 고문서는 1945년 이전 관부가 개인에게 발급하거나, 관부와 관부 사이에 작성...
-
경상북도 의성 지역과 관련한 1945년 이전 편찬 기록 자료와 서적.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고문헌과 관련된 곳은 조선 시대 경상도의 의성현(義城縣)과 비안현(比安縣), 상주목(尙州牧)의 속현(屬縣)인 단밀현(丹密縣), 예천군(醴泉郡)의 속현인 다인현(多仁縣), 그리고 용궁현(龍宮縣)의 일부가 해당된다. 고려 시대 이래 이들 지역의 토성(土姓) 세력 중에서도 특...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孤雲寺)는 중앙 고속 도로 의성 IC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경상북도 안동 방면으로 가면 단촌면 소재지가 나오는데, 여기서 고운사로 가는 길은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한 가지는 단촌면 소재지를 관통하여 좁은 길로 가면 거리는 단축되나 시간적으로는 다른 길과 별 차이가 없다. 또 다른 길은 국도 5호선을...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양곡리와 안사면 만리리에 걸쳐 있는 산. 과거 이 산에 물이 샘솟는 구멍이 있어 큰 습지가 형성되었는데, 이 습지가 말라 건지(乾池)가 되었다고 해서 곤지봉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전한다. 곤지봉은 곤지산으로도 불리지만 일반적으로 곤지봉으로 불리고 있다. 곤지봉은 높이가 327.8m로 매우 낮은 구릉이다. 산지의 남쪽 사면은 안계면 양곡리에 속하는 동시에 위천...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국가의 감독 아래 공적 이익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 「공공 기관의 개인 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공공 기관은 국가 행정 기관, 지방 자치 단체, 기타 공공 단체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으로서 「초·중등교육법」 및 「고등 교육법」이나 기타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각 급 학교, 「정부 투자 기본 관리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정부 투자 기관, 「특...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연구되고 있는 자연 과학, 응용 과학 및 생산 기술의 총칭. 과학 기술이라는 용어는 과학과 기술의 총칭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은 자연 세계에서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을 말하며 기술이란, 물적 재화를 생산하는 기술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욕구나 욕망에 적합하도록 주어진 대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인간적 행위를 말한다. 의성군에서는...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위치한 풍경, 풍습, 문물 등을 둘러보는 유람 활동. 의성군은 삼한 시대에 조문국이 있던 곳으로,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선비 정신을 면면히 이어 많은 충의열사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산세가 수려하여 문화 관광 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마늘을 비롯하여 한우, 고추, 사과 등의 특산물을 가지고 있어, 생산지와 연계한...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관덕(觀德)[관덕쟁이]은 마을 앞산의 경관이 좋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옛날 이곳에는 관덕정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목촌(木村)이라는 지명은 박웅천(朴雄川)이란 현령이 1450년경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그 당시 큰 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은행(銀杏)[은행쟁이]은 마을 입구에 큰 은행나무가 많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터. 관덕리 마산 봉수터 유적과 관련하여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의 의성현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마산 봉화는 [남쪽의 영니산 봉화를 받아] 북쪽으로 15리 거리에 있는 안동에 속한 일직현의 감곡산 봉화에 보낸다[馬山烽火 北望 安東任內 一直縣地 甘谷山烽火 相去十五里].” 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16교구 고운사의 포교당. 1912년 10월 24일 의성 지역에서의 불교 포교를 목적으로 대한 불교 조계종 16교구 본사인 고운사와 60여 말사의 시주금으로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서 1리에 불교 포교당 관음사를 창건하였다. 관음사라는 명칭은 자비의 보살인 관세음보살[관음보살]에서 유래되었다. 1914년 음력 4월 초파일에...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광물을 채굴·제련하는 산업과 원료를 가공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산업을 통칭하는 용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자재와 원료를 얻기 위해 지하자원을 캐내는 광업과 이를 원료로 하여 가공하는 공업을 통틀어 광공업이라 한다. 인류의 생활은 석기 시대를 출발하여 청동기 시대 및 철기 시대로 이어져 왔으며 기술 혁명과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첨단 과학 문명을 꽃피우고 있다...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광암 교회는 동산 교회의 이만기에게 전도를 받은 강희석, 권사연, 김택인, 배세난, 이순이, 최경원 등이 동산 교회를 다니다 1910년 걸촌동에서 가정 예배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본디 석탑 교회였으나 넓은 바위[廣岩]가 있는 동네라 하여 그 이름을 따서 광암 교회로 개칭하였다. 1910년 3월 15일 걸촌...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은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군의 관학(官學) 교육 기관은 1394년(태조 3)에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에 건립된 의성 향교[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50호]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10년(광해군 2)에 경상북도 의성군...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비안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향교 마을, 즉 교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원래의 향교가 비안읍에 있었을 때에는 이 마을도 안정동에 속하여 있었고 1597년 조선 선조 때 비안 향교가 이곳으로 옮겨짐에 따라 향교 마을이라 칭하였다 한다. 자연 마을로는 새마을[건넛 마을], 선돌, 관어대가 있다. 새마을은 1940년 새로 조성된 마을이라 붙여진...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 교촌리 선돌은 안계면사무소에서 남동쪽 안계길을 따라 1㎞ 정도 가면 토매 삼거리가 나온다. 토매 삼거리에서 국도 28호선[서부로]을 따라 비안면 방향으로 3㎞ 정도 가면 교촌리가 있다. 교촌리 선돌은 교촌리의 선돌 마을 도로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교촌리 선돌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전체 형태는 직사각 기둥이나 정면에서 볼 때...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교통수단은 일반적으로 육상 교통, 수상 교통, 항공 교통으로 나누어지고, 육상 교통은 다시 도로, 자동차 교통, 철도 교통 등으로 나누어진다. 교통의 발달은 정치 중심지를 핵으로 하여 사방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형과 지세의 복잡성은 교통로 발달을 저해하였고, 교통로의 미발달은 지역간 문화적 차이는 물론...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개신교인들의 의례 및 집회 장소.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비봉리에 살던 김수영은 1893년 봄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 장터에서 선교사 배어드의 노방 전도를 듣고 감화를 받아 의성 지역 최초의 개신교 신도가 되었다. 1900년 고향으로 돌아온 김수영의 전도로 하나 둘 교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개신교 전래 초기에는 교인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교인들 가...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계(龜溪)’라는 지명은 동네 앞으로 흐르는 냇가의 바닥이 거북등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곗니라고도 한다. 머리기[외천]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으로 구계동의 머리 쪽에 위치하여 이름 붙여졌다. 사가리[살가리]는 땅을 네 등분으로 분할하여 관리해서 붙여졌다 한다. 지동골[枝同谷]은 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으로 마을을 이루어 살...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 모양이 거북[龜]처럼 생겼고, 마을 앞에 연못[蓮池]이 있어서 동 이름을 구련(龜蓮)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또는 마을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라고도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구상과 연화동의 한 글자씩을 따서 구련동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자연 마을 윗구지미는 위쪽에 있는 마을이며, 아랫구지미는 아래쪽의 마을이라는...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대사리와 사곡면 공정리 그리고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에 걸쳐 있는 산. 구무산의 산기슭에는 큰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현에서 동쪽으로 25리 떨어진 사곡리(舍谷里)에 혈동(穴洞)이 있다. 바위 구멍이 아주 깊어서, 음수(陰獸)가 숨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과 함께 옛날에 이 바위의 구멍...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미리는 자연 마을 구미(龜尾)에서 나온 명칭으로, 마을 앞의 산 모양이 거북처럼 생겼으며, 거북의 꼬리 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 못안[지내촌(池內村)]은 마을 가운데 큰 못이 있어 유래된 지명이다. 자연 마을 중 구미의 동쪽에 있는 마을을 동부 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을 서부 마을이라 하였다. 신당 마을(神堂...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구미리 고인돌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427-1답에 있다. 유적의 경위도는 N36°18´33.590˝ E128°36´12.6316˝이다. 봉양면사무소에서 국도 28호선[도리원 3길]을 따라 예천·안계 방향으로 300m 정도 이동하면 봉양 교차로가 나오고 다시 오른쪽 안동·의성 방향으로 국도 5호선[경북 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있는 선돌 떼. 구미리 선돌 떼는 봉양면사무소에서 국도 28호선[도리원 3길]을 따라 예천, 안계 방향으로 300m 정도 이동하면 봉양 교차로가 나오고 다시 오른쪽 안동, 의성 방향으로 국도 5호선[경북 대로]을 따라 북동 방향으로 2㎞ 정도 가면 왼쪽에 구미리가 있다. 구미리 입구에 구미 정미소가 위치하는데 길을 사이에 두고 공장과 창고가 위치하고...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와 원당리에 걸쳐 있는 산. 단촌면의 등운산(騰雲山)과 옥산면의 황학산(黃鶴山), 춘산면의 빙산(氷山), 금성면의 금성산(金城山)과 비봉산(飛鳳山), 그리고 사곡면의 오토산(五土山)을 연결하는 아홉 봉우리의 산이라는 의미에서 구봉산(九峰山)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원래는 구성산(九聖山)으로 불리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구봉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구봉산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산리(龜山里)는 자연 마을 구산(龜山)에서 나온 명칭으로, 마을 뒤쪽에 있는 산이 거북이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이렇게 불렀다. 구산은 가옥이 길게 붙어 있는 형태여서 마을이 긴 곳[방언으로 진 곳]이라는 뜻의 마질기라고도 부른다. 사구는 마을 앞 하천의 모래가 깨끗하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사부랭이 또는 사부랑으로도 부른...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조선 후기 신일화(辛日和)[1760~1823]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신일화의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화숙(和叔), 호는 구암(龜巖)으로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경진리 검암 마을에 있는 옥동사(玉洞祠)에 향사된 신달정(辛達廷)의 후손이다. 천품이 영매하고 기상이 뛰어났으며 행동은 항상 조용하였다고 한다. 구암정(龜巖亭)은...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字)는 수옹(壽翁), 호(號)는 송계(松溪)이다. 고려 말기의 충신으로 좌정승 벼슬을 지낸 송은(松隱) 구홍(具鴻)의 손자이고, 능성 구씨 좌정승파의 파조(派祖)이다. 구익령(具益齡)[?~?]은 능성 구씨 9세손으로 조선 태종 때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의성 군사(義城郡事)가 되었는데, 이때 의성으로 내려와 세거하게 되었...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구천면은 남쪽에 비교적 높은 청화산이 솟아 있을 뿐 대체로 100~300m의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북부를 곡류하는 위천 연안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일찍부터 전통 촌락이 발달하였다. 유산리(酉山里)·위성리(渭城里)·모흥리(慕興里)·장국리(長局里)·소호리(小湖里)·용사리(龍蛇里)·내산리(內山里)·미천리(美泉里...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유산리에 있는 구천면 관할 행정 기관. 경상북도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구천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구천면사무소는 의성군 구천면 주민들에게 필요한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구천면은 원래 비안군에 속하였으나 1907년 6월 1일 의성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지중(智中), 호는 도해와(蹈海窩). 문절공(文節公) 구홍(具鴻)의 후예이며, 진사 구사종(具嗣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구연(具淵)이며, 아버지는 사재감(司宰監) 첨정(僉正) 구광정(具光廷)이고, 어버니는 참봉 정찬(丁瓚)의 딸인 의성 정씨(義城 丁氏)이다. 부인은 참봉 이언각(李彦覺)의 딸이다. 구혜(具譓)[160...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에 있는 국립 농산물 관리원 산하 기관. 국립 농산물 품질 관리원은 농산물의 품질과 유통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농림 수산 식품부 소속 기관이며 산하에 시험 연구소와 9개 지원과 109개 출장소를 두고 있다. 경북 지원 산하에는 14개 출장소가 있다. 1932년 7월 곡물 검사소 부산 지소 의성 출장소로 개소했으며 1940년 2월 농산물 검사소 대구 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는 국민 건강 보험 공단 산하 의성, 군위 지역 지사. 국민 건강 보험 공단은 6개 지역 본부, 178개 지사가 있으며, 의성 군위 지사는 대구 지역 본부에 소속이 되어있다. 대구 지역 본부는 대구 지역에 7개 지사, 경상북도 지역 14개 지사, 10개 출장소가 있으며, 의성 군위 지사는 의성군과 군위군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국민의 질병·부상에...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와 안사면 안사리, 중하리에 걸쳐 있는 산. 국사(國師)란 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고승대덕(高僧大德)에게 부여하던 존호(尊號) 또는 법계(法階)를 말한다. 의성에 있는 국사봉은 옛날 임금의 스승으로서 덕이 높은 도승이 이 산의 자락에 절을 지었다 하여 유래되었다. 국사봉의 동쪽 사면은 광산천의 분수계에 해당되며, 서쪽 사면은 신평천의 분수계에 해당된다....
-
조선 전기 의성에 거주한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여(子輿), 호는 행정(杏亭). 고려(高麗) 삼한 벽상 삼중 공신 태사(三韓 壁上 三重 功臣 太師) 권행(權幸)의 19대손이다. 권유륜(權有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내시 직장(內侍 直長) 권아(權雅)이고, 아버지는 청산 현감(靑山 縣監) 권상의(權尙宜)이며, 어머니는 창신 교위 중랑장(彰信校尉 中郞將) 권후(權厚)의 딸...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화(景華), 호는 운암(雲庵). 고조할아버지는 행정(杏亭) 권식(權軾)으로 경상도 의성군 사촌의 안동 권씨 입향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숭조(權崇祖)이고, 할아버지는 상의원 직장(尙衣院 直長)을 지낸 권사형(權士衡)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권무성(權武成)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순천 장씨(順天 張氏)이다....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귀천리는 뒷산이 거북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인 상귀천(上龜川) 마을은 예전에 욋골이라 불리었는데, 조선 현종 때인 1670년경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참외를 많이 심어 붙여진 이름이며, 새로 생긴 마을이라 신리(新里)라고도 하였다. 귀천 마을는 조선 중종 때 마을을 개척한 의성 김씨들이 금(金)과 물[水]이 상생(相生)...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음력 5월 단오에 젊은 여인들이 그네를 뛰면서 즐기는 놀이. 그네뛰기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음력 5월 단오에 젊은 여인들이 나뭇가지에 줄을 길게 매어 줄 아래에 앉을깨[발판]를 대고 그곳에 올라서서 그네를 뛰며 즐기는 놀이이다. 그네뛰기는 밀어 끌다 또는 밀어 옮겨간다는 뜻으로 ‘추천희’·‘반선희’·‘유선희’라고도 한다. 그네뛰기가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것...
-
개항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의성 지역의 역사. 근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행정 구역은 갑오개혁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개편되었다. 1895년 음력 윤 5월 1일에 과거의 현령을 군수로 고치고 경상북도 의성군과 비안군으로 개편하였으며, 안동 관찰부 관할이 되었다. 1896년 8월 4일에는 이를 고쳐 의성군과 비안군으로 개편하였다. 1906년 경상북도 상주군의 단밀면·단동면·단북면...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운영된 근대식 교육. 한국의 근대 교육은 일반적으로 개항이 시작된 1876년대부터 1945년 해방까지 각종 근대식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육을 말한다. 강화도 조약 이후 정부는 수신사(修信使)·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영선사(領選使) 파견, 서양인 교사 초빙, 1883년 동문학(同文學) 설치,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한 학부아문(學...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금봉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금봉 저수지는 옥산면 소재지에서 12㎞ 이동하여, 지방도 930호선 동쪽에 바로 연접해 있는 달곡천 하류에 형성되어 있는 농업용 1종 저수지이다. 주변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길안면 금곡리와 옥산면에 걸쳐서 황학산이 있다. 상류에서 0.7㎞ 지점에 금봉 자연 휴양림이 있다. 금봉 저수지는 옥산면, 점곡면, 단촌면...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전해지는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 금석문(金石文)은 금속이나 돌 등에 새긴 글씨나 그림을 통칭하여 이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에 글자를 새겨 놓은 예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주로 사적비·탑비·묘비·묘지 등에 새겨진 글씨가 대부분이다. 금석문은 당대의 사실을 반영하고 있어 1차 사료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현재 의성 지역에서 확인된...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도경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금성 교회는 1962년 대구 애락원에서 퇴원한 교인 50여 명이 의성군 금성면 도경리에 정착하면서 김종은 목사의 인도로 창립 예배를 가진 것을 계기로 하여 설립된 교회이다. 1962년 12월 8일, 김종은 목사와 교인들이 도경리에 정착하면서 천막 교회를 짓고 창립 예배를 보았다. 1964년 4월 16일,...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에 있는 전통 시장. 시장은 일반적으로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분류된다. 상설 시장은 일정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항상 상품의 매매와 교환을 하고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내에서 닷새마다, 또는 열흘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의성 지역의 시장은 상설 시장 1곳, 정기 시장 9곳이며 상설 시장은 의성읍에 자리 잡고...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1934년 2월 1일 산운면(山雲面)과 조문면(召文面)을 병합하여 하나의 면이 될 때, 면 전체가 금성산 아래 있다 하여 이름 붙였다. 옛 조문국의 도읍지로서 조문면·억곡면(億谷面)·산운면·상천면(上川面) 등으로 분리되어 있다가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억곡면은 조문면에, 상천면은 산운면에 각각 병합되었다. 1934년 2월...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금성면은 옛 조문국의 중심지라고 하며, 고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금성산과 비봉산, 오토산의 지맥을 따라 남서부에 구릉성 산지와 평지가 넓게 전개되고, 곳곳에 문화 유적과 역사가 오래된 전통 촌락이 분포하고 있다. 현재 15개의 법정리와 39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면 내에는 의성 김씨, 김해 김씨, 의성 정씨...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있는 금성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금성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금성면사무소는 의성군 금성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금성면은 옛 조문국의 도읍지로서 조문면, 억곡면, 산운면, 상천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에...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산운리, 탑리리에 걸쳐 있는 산.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와 『대동여지도』[1432년] 그리고 「1872년 지방지도」에는 금성산을 영니산(盈尼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32년] 의성현 산천조에는 금학산[현재 금성산]과 금성산[현재 비봉산]은 모두 현 남쪽 25리에 있으며, 비봉산은 현 서남쪽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오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금오 교회는 불로동 교회를 다니던 신자들이 분립하여 1973년 기도처를 마련하면서 시작되었는데, 1976년 예배당을 건립하였다. 2012년 7월 현재 김은한 목사가 근무하고 있으며, 예배는 일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본다. 평일 새벽 기도회는 매일 오전 5시에 열린다....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금탑사(金塔寺)는 1957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현 위치에 건립되었으며, 대웅전과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매월 음력 초하루에 정기 법회를 개최하며,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성도절, 우란분재 등의 불교 명절과 지장재일, 관음재일 등에 법회를 개최하고, 청소년 법회도 개최하고 있다. 금탑사는 승려 1명과 신...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금학리에 있는 산성 유적. 금학리 산성터 유적의 변천 과정은 조선 시대의 문헌 기록에 나타나는 자료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0여 년 전인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의성현 성곽조에는 기록이 없지만 고적조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황산성은 현의 동쪽 40리에 있는데 서쪽 석축의 길이가 45척이었으나...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금학리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터. 금학리 삼층 석탑 터는 달곡천 상류 학소(鶴沼) 건너편 논 가운데에 있는데, 현재 탑은 없고, 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탑들 마을 주민의 말에 의하면 이 일대가 절터였다고 하지만 딱히 신빙성은 없다. 하천가에 위치한 것을 비롯해 주변 환경이 절터로 보기 힘들고, 기와 파편도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탑의 본래 위...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금학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금학리 절터는 금학리의 탑들 마을 동쪽 성골[城谷]에 위치한다. 황학산의 남쪽 능선들이 사방을 둘러싼 자연 지형을 이용해 축조한 금학리 산성터가 있으며, 절터는 산성터 안에 위치하고 있다. 절터에는 현재 유적이나 유물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탑들 마을 주민이 절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기단석의 일부를 소장하고 있을 뿐이다....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 저녁 남과 북으로 편을 짜서 서로 상대편의 기와를 먼저 부수어 승부를 가르는 부녀자들의 놀이. 기와밟기는 매년 정월 대보름 저녁에 하는 놀이이다.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는 유다리를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눈 양쪽 진영의 부녀자들이 사람다리를 만들고 공주를 정하여 다리 위를 지나가 유다리에서 접근한 뒤, 서로 상대편의 기마를 먼저 부수는 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길부동(吉阜洞), 천동(泉洞), 호상동(湖上洞)에서 길부동과 천동의 이름을 한자씩 따서 길천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길부[길부치]는 좋은[길(吉)] 마을·언덕[부(阜)]이 되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샘골[천동(泉洞)]은 마을 남쪽에 장군수(將軍水)라는 샘이 있어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1914년 행정...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국헌(國憲), 호는 귀재(歸齋). 아버지는 사재감 정(司宰監 正) 김천강(金天降), 할아버지는 문하평리 판전공시사(門下評理 判典工寺事) 김중기(金重器), 증조할아버지는 문하평리 판례의시사(門下評理 判禮義寺事) 김구(金龜)이다. 처는 생원(生員) 조석린(趙錫麟)의 딸 숙부인 풍양 조씨(豊壤 趙氏)로 알려져 있다. 김고는 함창...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舊]安東).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처사(松隱處士)·사휴자(四休子). 김자첨(金子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효온(金孝溫)이고, 아버지는 지례 현감 김극해(金克諧)이며, 어머니는 연안 강씨(延安 姜氏) 사용(司勇) 강재(姜載)의 딸이고, 부인은 영양 남씨(英陽 南氏) 남치(南畤)의 딸이다. 김광수(金光粹)[1468~1563]는 어...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선안동]. 자는 화숙(和叔), 초명은 서형(瑞亨)이다. 7대조 할아버지는 김방경(金方慶)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구정(金九鼎)[1340~1389]으로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 분파조(分派祖)이다. 할아버지인 김자첨(金子瞻)[1369~1454]은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의 안동 김씨 입향조(入鄕祖)이다. 아버지 김효온(金孝溫)[1412~...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유용(幼用), 호는 기서(沂墅). 초명은 기운(驥雲). 김종택(金宗宅)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양식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곤수(金坤壽)의 딸 이고, 부인은 진성 이씨(眞城 李氏) 참봉 이휘양(李彙陽)의 딸이다. 김기선(金驥善)[1806~1883]은 어려서 종조부인 김기진(金沂進)에게 배우고 이...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자유(子唯), 호는 기계(奇溪). 김종택(金宗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해진(金海進)이고, 아버지는 김양식(金養植)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곤수(金坤壽)의 딸이다. 부인은 의성 김씨 참봉 김재진(金在振)의 딸 이다. 백부(伯父) 김양정(金養楨)에게 출계(出系)하였다. 김노선(金魯善)[1811...
-
근대 의성의 열녀. 본관은 영양(英陽). 아버지는 선산에 사는 남성한(南成漢)이다. 의성 김씨 집안의 김덕휘(金德輝)와 혼인하였다. 영양 남씨[?~1939]는 19세 때 김덕휘와 혼인하였으나 시댁에 이르기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청상의 비운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바느질과 길쌈으로 기울어져 가는 가세의 버팀목이 되었다. 세태의 변화로 개가의 권유도 적지 않았으나 굳...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이각(伊覺), 초명은 경민(景民), 호는 설강(雪崗). 김유신 장군의 후예이며 김일손(金馹孫)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창녕 현감(昌寧 縣監)을 지낸 김대장(金大狀)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將士郞)을 지낸 김순(金錞)이고, 아버지는 김치방(金致邦)이고, 어머니는 안동 김씨이다. 부인은 김언형(金彦亨)의 딸 경주 김씨(慶州...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형원(馨遠), 호는 만각재(晩覺齋). 아버지는 희옹(希翁) 김태원(金泰元)[1692~1767]이고, 어머니는 아주 신씨(鵝洲 申氏)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 朴氏) 박후석(朴垕錫)의 딸 이고, 두 번째 부인은 진성 이씨(眞城 李氏) 이춘만(李春萬)의 딸이다. 고조부인 죽장(竹庄) 김정(金䂻)[16...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복초(復初), 호는 구암(龜庵). 아버지는 석간(石澗) 김학(金嶨)[1671~1748]이며, 어머니는 김은좌(金殷佐)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김복원의 5대조 할아버지는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1555~1641]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지냈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진중에서 죽었다. 고조할...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인(景仁), 호는 만취당(晩翠堂). 연산군 때 이름난 선비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세우(金世佑)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김만겸(金萬謙)의 딸이다. 서애 유성룡의 외종질(外從姪)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 가운데 뛰어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김사원(金士元)[1539~1601]은 절충...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숙(正叔), 호는 후송재(後松齋).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세우(金世佑)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김만겸(金萬謙)의 딸이다. 만취당 김사원(金士元)의 아우이다. 김사정(金士貞)[1552~1620]은 젊어서 재예와 총명이 과인하였으며, 가훈에 따라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퇴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겸(士兼), 호는 독수헌(獨秀軒). 의성 사촌의 입향조인 김자첨(金子瞻)의 6대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지례 현감을 지낸 김극해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이고, 할아버지는 김당(金溏)이다. 아버지는 김세우(金世佑)이고, 어머니는 김만겸(金萬謙)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다. 부인은 부장 안수...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백옥(白玉), 호는 남애(南厓). 할아버지 김사원(金士元)이고, 아버지는 예빈시 직장(直長) 김준(金濬)이고, 어머니는 부장(部將) 권돈(權暾)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부인은 진사 이형남(李亨男)의 딸 진성 이씨(眞城李氏)이고, 후처는 첨지중추부사 안벌(安橃)의 딸 죽산 안씨(竹山 安氏)이고, 슬하에...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맹집(孟輯), 호는 응암(鷹岩). 아버지는 김정신(金鼎臣)이고, 어머니는 진사 신중표(申重表)의 딸 평산 신씨(平山 申氏)이고, 부인은 이후삼(李垕森)의 딸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김서(金瑞)[1769~1824]는 김종덕(金宗德)의 문인으로서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1819년 가주서(假主書), 권지 승문...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주경(周卿), 호는 남하당(覽下堂)·소당(小棠). 아버지는 김제연(金濟淵)이고, 어머니는 유도인(柳道麟)의 딸 풍산 유씨이고, 부인은 이심재(李深在)의 딸 영천 이씨(永川 李氏)이다. 김석상(金奭相)[1857~1899]은 1883년(고종 20) 문과에 급제한 후 사간원 정언을 지냈고 갑오개혁 이후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 머물렀...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의은(義隱). 의성 김씨 시조인 김석(金錫)의 10세손이며 의성 김씨 찬성공파(贊成公派) 중시조이다. 김성단(金成丹)은 생몰년 미상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다. 고려 말 왕조의 멸망을 예견하고 의성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스스로 고려에 충성을 맹세하고 의성에 은거한다고 하여 의은(義隱)이라...
-
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 생원 김양징(金養澂)의 손자로 아버지는 인암(忍庵) 김헌유(金憲裕)이고, 어머니는 이병은(李秉殷)의 딸 한산 이씨(韓山李氏)이다. 김수담(金壽聃)[1852~1896]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사촌 출신으로, 의성에서 을미의병 당시 봉기한 김상종 의진에 참여하여 선봉장을 맡았다. 김수담은 김상종의 족숙이었다. 김상종 의진은 거병한지 8...
-
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 만취당 김사원의 손자인 김상원의 9세손이다. 김수협(金壽莢)[1853~1896]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사촌 출신으로, 의성에서 을미의병 때 봉기한 김상종 의진에 참여하였다. 김상종의 동생 김회종이 당시의 사정을 기록한 『병신창의실록(丙申倡義實錄)』에는 김수협이 관향장(管餉將)의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수협은...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할아버지는 목은 이색(李穡)의 외숙부인 함녕군(咸寧君) 김요(金饒)이다. 안렴사 신우(申祐)와 사돈간이다. 함창 김씨(咸昌 金氏) 의성군 단밀면 입향조이다. 김안도(金安道)는 생몰년 미상이며, 조선 태종 때 봉훈대부(奉訓大夫) 종성 부사(鍾城 府使), 재령 군수(載寧 郡守), 진주 목사(晉州 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고려 멸망 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제언(濟彦), 호는 정암(定菴). 김치응(金致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종택(金宗宅)이고, 아버지는 김해진(金海進)이며, 어머니는 예안 김씨(禮安 金氏)로 김훈(金訓)의 딸이며, 부인은 장수 황씨(長水 黃氏)로 생원 황반로(黃磻老)의 딸이다. 김양정(金養楨)[1785~1847]은 어릴 때 가학에 정진하였고,...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치홍(穉弘)·경집(敬集), 호는 율원(栗園). 김기응(金箕應)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낙진(金樂進)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 李氏)로 이종수(李宗洙)의 딸이며, 부인은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순(金淳)의 딸이다. 김양휴(金養休)[1777~1854]는 20대 이전까지는 친족 할아버지인 김종덕(金宗德)과 김종섭(金宗燮)에게 수학...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명보(明甫), 호는 송암(松菴). 김진고(金振古)의 아들로, 함께 무과에 급제한 동생으로 백운 김욱(金煜)과 죽암 김찬(金燦)이 있다. 김엽(金燁)[1586~1637]은 어릴 때부터 진(陣) 놀이를 할 때 진두지휘하는 솜씨가 놀라웠다고 전해진다. 1620년(광해군 12) 두 아우 김욱, 김찬과 함께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상락 김씨(上洛 金氏)]. 자는 송서(宋瑞), 호는 구은(龜隱). 빙계 서원(氷溪 書院) 원장 옥계(玉溪) 김상유(金尙瑜)[1605~1678]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소북(韶北) 김은좌(金殷佐)이고, 아버지는 김이성(金履成)이며, 어머니는 이숙(李淑)의 딸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부인은 김세주(金世柱)의 딸 선성 김씨(宣城 金...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 의성 김씨 시조인 김석(金錫)의 9세손으로 의성 김씨의 중시조이다. 아버지는 김공우(金公瑀)이며, 부인은 영동정(令同正) 강후주(姜后柱)의 딸이다. 김용비는 생몰년 미상이며,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홍건적이 쳐들어와 경상북도 안동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몽진했을 무렵 의성 일원의 도적 무리를 다스려 소란한 민심을 수습했다. 그 난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자익(子益). 호는 위애(渭厓). 고성 현령을 지낸 귀재(歸齋) 김고(金觚)의 5대 손이다. 아버지는 김덕린(金德隣)이고, 어머니는 의흥 박씨(義興 朴氏)이다. 부인은 박충인(朴忠仁)의 딸인 비안 박씨(比安 朴氏)로 기업(基業), 희업(熙業), 휘업(徽業), 진업(振業)을 낳았다. 김유인(金有仁)[1591~1654]은 어려서...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욱(文郁). 증조할아버지는 현신 교위 부사직(顯信 校尉 副司直)을 지낸 김한동(金漢仝)으로 의성 김씨 부사직공파의 파조이자, 중사촌 마을의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내금위 돈용교위 부사맹(內禁衛 敦勇校尉 副司猛)을 지낸 김만정(金萬禎)이고,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김처선(金處善)이고, 어머니는 김광수(金光粹)의 딸 안동 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 증조할아버지는 현신교위 부사직(顯信校尉 副司直)을 지낸 김한동(金漢仝)으로 의성 김씨 부사직공파의 파조이자, 중사촌 마을의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내금위 돈용교위 부사맹(內禁衛 敦勇校尉 副司猛)을 지낸 김만정(金萬禎)이고,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김처선(金處善)이고, 어머니는 김광수(金光粹)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자방(子方), 호는 정락재(靜樂齋). 고조할아버지는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예빈시 직장(直長)을 지낸 김준(金濬)이고, 할아버지는 통훈대부 사복시 정(司僕寺 正)에 추증된 양진당(養眞堂) 김상린(金尙璘)이고, 아버지는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된 사주(沙洲) 김양좌(金良佐)이고,...
-
조선 후기 의성군 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덕부(德夫), 호는 지암(持菴). 아버지는 김치명(金致明)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김만중(金萬重)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 김씨(安東 金氏)로 김필균(金弼均)의 딸 이다. 초명은 김태린(金台鱗)이다. 김재경(金在敬)[1841~1926]은 13세에 사자서(四子書)를 읽고, 19세에 주자(朱子)의 『역학 계몽...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이 안동(安東). 자는 우여(禹如). 호는 봉와(鳳窩). 아버지는 김병덕(金炳德)이고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 金氏)이다. 김제균(金濟均)[1796~1849]은 15살 때 아버지 김병덕(金炳德)이 세상을 떠났다. 슬퍼하는 마음이 지나쳐 몸이 상할 정도였다. 장삿날에는 아버지를 묻고 나서 그 곁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온갖 방법으로 달랬으나 말을 듣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직보(直甫), 호는 구재(苟齋). 김현좌(金賢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모(金履模)이고, 아버지 김남응(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 김씨(順天 金氏) 주억(冑嶷)의 딸 이다. 부인은 경주 최씨(慶州 崔氏) 구석의 딸이다.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의 동생이다. 김종경(金宗敬)[1732~1785]은 어려서 용모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도언(道彦), 호는 천사(川沙). 김현좌(金賢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모(金履模)이고, 아버지는 김남응(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 김씨(順天 金氏) 김주의(金冑疑)의 딸이다. 부인은 한산 이씨(韓山 李氏) 이시화(李時和)의 딸이다. 김종덕(金宗德)[1724~1797]은 평생 향리(鄕里)에서 학행(學行)을 행한 인물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경온(景蘊), 호는 용연(容淵). 김현좌(金賢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모(金履模)이고, 아버지 김남응(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 김씨(順天 金氏) 주억(冑嶷)의 딸 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여주 이씨(驪州 李氏)로서 이헌주(李憲周)의 딸이다.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의 동생이다. 김종발(金宗發)[1740~...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홍보(弘輔), 호는 제암(濟庵). 김현좌(金賢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모(金履模)이고, 아버지 김남응(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 김씨(順天 金氏) 김주억(金冑嶷)의 딸 이다. 부인은 풍산 유씨(豊山 柳氏) 유형(柳瀅)의 딸이다. 김종덕의 동생이다. 김종섭(金宗燮)[1743~1791]은 천성이 조용하고 침착하며,...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이 김해(金海). 자는 경도(敬道). 호는 수성재(守省齋). 김종숭(金鍾崇)[1856~1923]은 어려서부터 온화한 성품으로 그 언어와 행실이 항상 공손하였다. 또한 남을 돕는 데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항상 사람들의 앞장을 섰다. 부모를 섬기는데 있어서도 남달랐다. 밖에서 별식이 생기면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 드리고, 기이한 일을 보거나 듣게...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열녀. 본관은 성주(星州). 아버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이웃하는 사곡면 음지리의 이재필(李載馝)이고, 김종행과 혼인하였다. 성주 이씨[?~1791]는 19세에 혼인하여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그런데 이듬해 남편이 그만 병에 걸려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죽었다. 그 후 동서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죽는 날에 죽으면 저승에서...
-
개항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성구(聖九). 김주건(金疇鍵)[1840~1900]은 1840년(헌종 6)에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수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눈이 어두웠다. 하지만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는데 극진하여 항상 입에 맞는 음식을 드리고 거처에 불편함이 없도록 애썼다. 고향을 떠나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덕봉리로 이사를 한 후 어머니가 중풍에...
-
조선 후기 의성의 열녀. 참봉(參奉)을 지낸 홍간(洪諫)의 딸로 태어나 선산인(善山人) 김철(金喆)과 혼인하였다. 김철은 고려 말의 충신 백암(白巖) 김제(金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예복(金禮復)이다. 김철은 4형제 중 셋째로 맏형인 김희(金喜)는 의병장으로 단밀 전투에서 순직하였으며, 동생인 김계(金啓)는 「용사일기(龍蛇日記)」와 「용담록(龍潭錄)」을 남긴 학자였다. 김철(金喆...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정이(靜而), 호는 응봉(鷹峯).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외증손이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이종질(姨從姪)이자 문인이다. 부인은 임진왜란시 그를 따라 순절한 평산 신씨이다. 김치중(金致中)[?~1592]은 천품(天稟)이 순후하고 면학(勉學) 독행(篤行)하였으며, 멸사봉공 정신이 투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옥(敬玉). 김해 김씨 대제학공파의 파조인 김득하(金得河)의 후예로, 아버지는 선필(善筆)로 이름난 김임현(金任鉉)이다. 김형두(金亨斗)[1852~1924]는 1906년(광무 10)까지 연풍 군수로 여러 해 재임하면서 청렴결백했고, 사재(私財)로 농우(農牛)를 구입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줘 영농하게 하는 등 선정(善政)...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성간(聖侃). 연산(連山) 현감을 지낸 김세갑(金世甲)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상혁이고, 어머니는 단양 우씨(丹陽 禹氏)이다. 김형석(金衡錫)[1655~?]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홀로 된 어머니를 섬기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한겨울 어머니가 갑자기 물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에 강가를 헤매고 있...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려(成麗), 호는 춘계(春溪). 5대조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며, 고조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대장(金大壯)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순(金錞)으로 화(禍)를 피하여 경상도 청도(淸道)에서 경상도 의성군 팔지리(八智里)로 이거하였다. 할아버지는 김치방(金致邦)이고, 아버지는 설강(雪崗) 김득민(金得民)이고, 부인은 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거원(巨源)·여수(汝收), 호는 경암(敬庵). 처음 이름은 설(渫)이다. 할아버지는 인의(引儀) 김세우(金世佑)이고, 아버지는 김사정(金士貞)이며, 어머니는 조희로(趙希老)의 딸 양천 조씨(陽川 趙氏)이고, 부인은 배한림(裵翰林)의 딸 흥해 배씨(興海 裵氏)이다. 김회(金淮)[1578~1641]는 어릴 때 아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백계(栢溪). 고려 말 충신 백암 김제(金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예복(金禮復)이고, 어머니는 단양 우씨이다. 부인은 안강 노씨이다. 김희(金喜)[1563~1592]는 1563년 의성군 비안면 서부 2리에서 태어났다. 품성이 맑고 곧았으며, 지조도 굽힘이 없었다. 일상생활에 있어 항상 부모님께 효도하고...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배를 이용하여 강이나 내를 건너다닐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 원래 나루는 수운, 곧 물을 이용하는 교통의 요지이므로 시대에 따라서 물을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변화나 연결되는 육로의 개설, 교량의 건설 등의 요인에 의해 그 중요성이 변화하고 혹은 영영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또 강에 모래가 쌓여서 이전보다 얕아지고 좁아진 결과 배가 그 곳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하면서 경상북도 비안군 단남면의 낙동동과 양정동의 이름을 따서 낙정동이라 하였다. 낙정 1리는 안학이 마을을 처음으로 개척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맑고 깨끗한 우물이 풍부하게 솟아 나오기 때문에 양정이라 하였고, 여기에서 약 2㎞ 떨어진 윗마을은 산 중턱의 벽촌이나 수정 같이 맑은 물이 흔하여 수정이라 하였다....
-
조선 후기 의성 지역의 학자.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명원(明遠), 호는 소계(小溪). 아버지는 남영환(南永煥)이며, 어머니는 풍산 유씨(豊山 柳氏)로 유겸조(柳謙祚)의 딸 이다. 부인은 한양 조씨(漢陽 趙氏)로 조지복(趙志復)의 딸이다. 외가인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하회리의 충효당(忠孝堂)[서애 종택]에서 태어났다. 남만회(南萬會)[1826~1886]는 어려서 총명하고 재주...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이자 무관.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사앙(士仰). 판서 남휘주(南輝珠)의 9세손이며, 의의정(依依亭) 남우량(南佑良)의 후예(後裔)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충순위 남중청(南中淸)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남거(南琚)이고, 할아버지는 판결사 남세우(南世祐)이다. 아버지는 부사직 남호(南灝)이고, 어머니는 권사형(權士衡)의 딸 안동 권씨이고, 생부는 남응진(南應震...
-
조선 후기 의성에 이주해 온 학자.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효재(孝哉), 호는 신촌(新村). 판결사(判決事) 남세우(南世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용양위 부사 남호(南灝)이고, 아버지는 참봉 남추(南樞)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 權氏) 권희언(權希偃)의 딸 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 權氏) 직장 권지(權誌)의 딸이며, 신충(藎忠)에게 입양되었다. 남해준(南海準)[1...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 병합된 지역 내동(內洞)과 비산동(飛山洞)·유산동(酉山洞)에서 한 글자씩 따서 내산(內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외서면의 유산동, 내동, 비산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구천면 내산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내산리가 되었다....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매곡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노매 교회는 1938년 2월 25일 설립되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가 폐쇄되었다가 1947년 2월 16일 신도 신윤식의 집에서 집회를 가지면서 교회가 재개되었다. 1951년 4월 예배당 4칸을 신축하였고, 1953년 3월 22일 건평 66㎡의 예배당을 새로 지었다. 1967년 3월 28일 당회가 조직되어...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노연리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인 노새 마을와 용연(龍淵) 마을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노새 마을은 노연(魯淵) 마을이라고도 하는데, 노새를 많이 길러 붙은 이름이라 한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노새에 베·소금·솜 등을 싣고 장사를 다녔다고 하며, 마을 이름을 한자로 노세(魯世)라 적었다고도 전한다. 용연...
-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1980년 3.8%에서 1990년 5.1%, 2000년 7.2%, 2010년 11%로 30년 사이 3배 이상 늘었다. 경상북도 의성군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 증가 추세는 더욱 가파르다. 2011년 6월 현재 14세 미만 인구 대비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가장...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데 사용하는 도구. 의성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데 사용하고 있는 전통적인 농기구로는 호미·지게·풍구·낫·작두·도리깨 등이 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성 지역 청장년층의 이농 현상이 가속화됨에 따라 농업 인구가 감소하고 새마을 운동과 같은 농업 기계화 사업으로 인해 전통적인 농기구의 사용이 줄어들고 기계화된 현대식 농기계의 사용이 급...
-
경상북도 의성 지역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을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 농업 협동조합은 농업인이 모여 협동을 통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가기 위하여 만든 농업 생산자 단체로 약칭하여 농협이라고도 한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으로 최대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농업 및 생활 자재 구입, 생산 농산물 판매, 필요 자금...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에 있는 영농 단체. 농촌 지도자 의성군 연합회는 우애, 봉사, 창조의 정신을 토대로 하여 과학 영농과 농촌 문화 창달의 선도적 역할을 하며 농촌 후계 세대 육성과 농가 소득 증대 및 복지 증진을 도모함으로써 국가 발전과 농촌 근대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농촌 지도자 의성군 연합회는 1970년에 농촌 자원 지도자회로 설립되었고, 1976년에...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사방을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은 건물.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부 문헌에서 누(樓), 정(亭)을 비롯하여 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에 누정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누정은 사방의 벽을 틔우고 언덕이나 대위...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 느티나무는 의성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마을 어귀에 정자 식물로 많이 심어 놓고 있다. 느티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규목(槻木)이라고도 부른다. 산기슭이나 골짜기, 마을 부근 등 해가 잘 드는 곳이나 토양에 수분 함량이 다소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가뭄이나...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 있는 산. 지형이 말 머리에 굴레를 메어 놓은 형국이라 ‘늑두(勒頭)’라 하였다 한다. 늑두산은 높이가 567.9m로, 구무산과 능선이 이어져 있다. 늑두산의 서쪽에는 금성면의 금성산, 비봉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 산지와는 사미천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다. 늑두산의 남쪽 사면은 쌍계천의 발원지이며, 북쪽 사면은 사미천의 발원지이다. 사미천은 쌍계...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서릉리에 있는 전통 시장. 시장은 일반적으로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분류된다. 상설 시장은 일정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항상 상품의 매매와 교환을 하고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내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의성 지역의 시장은 상설 시장 1곳, 정기 시장 9곳이며 상설 시장은 의성읍에 자리 잡고 있다. 정기 시장은 의성읍, 단촌...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현동(縣東), 현남(縣南), 현내(縣內) 등 3개 면을 합해 예전에 있었던 행정 구역 명칭인 다인현(多仁縣)에서 이름을 따 왔다. 다인면은 본래 다기현, 달이현으로 불리다가 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다인현이 되어 상주에 예속되었다가, 고려 시대인 1274년(원종 15) 보주[예천군]의 속현이 되었다...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다인면은 조선 시대 다인현 지역이다. 서릉리(西陵里)·산내리(山內里)·가원리(佳院里)·송호리(松湖里)·도암리(陶岩里)·평림리(平林里)·덕지리(德池里)·양서리(陽西里)·용곡리(龍谷里)·봉정리(鳳井里)·달제리(達堤里)·삼분리(三汾里)·외정리(外井里)·용무리(龍武里)·신락리(申樂里) 등 16개 법정리와 38개 행정리, 1...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서릉리에 있는 다인면 관할 행정 기관. 경상북도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다인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다인면사무소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현내면, 현동면, 현남면을 합하여 다인면으로 개칭하고 법정 14, 행정...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지역의 옛 지명. 신라 시대에 원래 달이현(達已縣)[또는 다이현(多已縣)]이었으나, 757년(경덕왕 16) 12월에 이루어진 군현 개편 때 다인면 지역은 달이현(達已縣)에서 다인현(多仁縣)으로 개칭되어 상주에 소속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1 상주조에 “다인현은 본래 달이현(達已縣)이었는데[혹은 다이(多已)라고도 한다] , 경덕왕 때 지금의...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속암리와 단북면 이연리를 연결하는 다리. 단밀교는 의성군 단밀면 속암리 지역에 동서 방향으로 건설된 교량으로, 안계면과 단밀면을 횡단하는 지방도 912호선이 북쪽으로 흐르고 있는 위천을 수평으로 교차하고 있다. 단밀교의 명칭은 교량이 가설된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단밀교에서 교량 길이의 합인 연장은 360.0m, 교량의 총 폭은 8.0...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단밀면이 위치한 곳은 삼한 시대에는 진한(辰韓)에 속한 지역으로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의 도읍지였다. 통일 신라 때 현(縣)으로 개편되어 무동미지현(武冬彌知縣) 또는 무동미지현(武冬米知縣)이라 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년) 12월에 행정 구역 개편 때, 단밀현(單密縣)이라 개칭하여 문소군(聞韶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에 와서도...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단밀면은 낙동강을 경계로 옛 선산군과 인접한 지역이다. 낙동강의 본류와 그 지류인 위천(渭川)이 면의 동·서·북쪽 경계를 이루며 흐른다. 그 주변의 평야 지대와 그 바깥에 발달한 구릉성 산지에 옛날부터 취락이 발달하였다. 속암리(涑巖里)·용곡리(龍谷里)·위중리(渭中里)·주선리(注仙里)·서제리(書堤里)·팔등리(八嶝里)...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속암리에 있는 단밀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단밀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단밀면사무소는 의성군 단밀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단밀현에 속해 있는 단서면(丹西面), 단남면(丹南面)과 단동면(丹東面) 일부를 병합 의성군...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본래 소속되어 있던 단밀현(丹密縣)의 현청 소재지에서 북쪽에 위치하므로 단북(丹北)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경상북도 상주 소속의 단밀현 지역이었다. 1906년 경상북도 비안군으로 이관되어 비안군 단북면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비안군 단북면 조암리·칠성리·하련리·중련리·묵계리·용천리·용연리·우제리·상련리·신기리·물흥리·...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단북면은 산지가 별로 없고 남서로 흐르는 위천 유역과 구릉 지대가 비옥한 편이어서 예로부터 주거지가 발달하였다. 2012년 현재 7개 법정리와 19개의 행정리로 형성되어 있으며, 단양 우씨, 용궁 전씨, 경주 이씨, 김해 김씨, 영산 신씨, 고성 이씨, 동복 오씨, 청주 이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단양 우씨는...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이연리에 있는 단북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단북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단북면사무소는 의성군 단북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단북면은 신라·고려·조선 시대에는 단밀현(丹密縣) 지역인데 조선 말엽까지 상주 직할령으로 내려 왔다. 단밀현 소재지에서 북쪽에...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에 있는 전통 시장. 시장은 일반적으로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분류된다. 상설 시장은 일정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항상 상품의 매매와 교환을 하고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내에서 닷새마다 한 번, 또는 열흘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의성 지역의 시장은 상설 시장 1곳, 정기 시장 9곳이며 상설 시장은 의성읍에 자...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에 있는 다리. 단촌교는 의성군청이 소재한 의성읍 후죽리에서 단촌면사무소가 있는 단촌면 하화리 지역을 종단하는 국도 5호선의 단촌 휴게소 북쪽 지점에 남북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는 교량이다. 단촌교의 명칭은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1996년에 성능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보수 공사를 통해 새롭게 준공된 단촌교의 제...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붉은 돌이 많은 곳이라 하여 단촌면(丹村面)으로 불렀다고 한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의 일부,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의 일부,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이라 하고 장림동·세촌동·하화동·상화동·관덕동·병방동·후평동·구계동·방하동 등 9개 동으로 개편하였다. 198...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서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은 200~300m의 산이 대부분이며, 이들 산지에서 발원하는 수많은 소하천들이 산곡을 따라 흐른다. 단촌면 중앙의 미천(眉川) 유역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고추·마늘·양파와 사과 생산이 많다. 단촌면에는 하화리(下禾里)·세촌리(細村里)·상화리(上禾里)·관덕리...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에 있는 단촌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단촌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단촌면사무소는 의성군 단촌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단촌면은 고려 925년(태조 7) 경상북도 안동 지방의 옛 이름 고창군의 영속이던 고순현[단촌 지방]이 의성부에 편입되면서 의...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달동, 모창동, 금제동을 병합하였다. 이때 달동과 금제의 이름을 따서 달제동[달제리]이라 하였다. 달동(達洞)은 조선 시대 과거 보러 가는 사람이 이 마을에서 쉬어가면 통달(通達)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제(金堤)는 달제(達堤) 1리에 있는 양지산을 바라보니 금(金)이 날 것 같았고, 그 산 모양이...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 대곡사(大谷寺)는 고려 시대인 1368년(공민왕 17)에 인도 승려 지공(指空)과 왕사인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에는 태행산(太行山) 대국사(大國寺)라 하였고, 적조암을 비롯하여 9개의 암자가 있었다. 정유재란 때 대곡사와 암자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적조암만 남...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에 있는 대구 지방 검찰청의 지청. 대구 지방 검찰청 의성 지청은 경상북도 의성군·군위군·청송군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반 형사 사건 등의 수사 및 처리, 공판 업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9년 7월 6일 대구 지구 재판소 의성 지청으로 개청했다. 1932년 폐청하여 안동 지청에 편입되었다가 8·15 해방 이후인 1947년 10월 22일 대구 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는 대구 지방 법원의 산하 지원. 대구 지방 법원 의성 지원은 경상북도 의성군·청송군·군위군 지역의 사법 정의를 실현하고 민사 및 형사 사건을 심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2년 4월 1일 「조선 총독부령」 제4호에 의해 대구 지방 법원 의성 지청이 개설되었다. 1932년 2월 15일 의성 지청이 폐청되어 의성 등기소로 존속하다가 미 군정기인 1...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리리(大里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죽리(竹里)의 이칭인 대리에서 나온 명칭으로, 약 400년 전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대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을의 대나무숲에서 봉황이 쉬어 가곤 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본래 경상북도 의성군 조문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리동과 검동을 병합하여 의성군 조문면...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대사 교회는 1909년 4월 쌍계 교회에 다니던 이이경, 이봉수 등이 대사리의 교인이 증가하자 쌍계 교회에 분립을 청하여 기도실 4칸을 건립하면서 시작되었다. 1910년 3월 10일 의성군 안평면 대사동 587번지에 예배당을 완공하여 기념 집회를 열었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을 때...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와 봉양면 안평리를 연결하는 다리. 대사 1교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지역에 남북 방향으로 건설된 교량으로, 의성군을 종단하는 중앙 고속 도로[고속 국도 55호선]에 위치한 다리이다. 대사 1교의 명칭은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대사 1교의 춘천 방향 상행선 구간과 부산 방향 하행선 구간의 교량...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대한 불교 법화종 소속 사찰. 1952년 3월 9일 손대헌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빙산 정사(氷山精寺)’였으나 1992년에 ‘대흥사(大興寺)’로 개칭하였다. 매월 초하루 정기 법회를 열며, 부처님 오신 날, 출가일, 성도일, 열반일, 우란분재(盂蘭盆齋) 등 불교 5대 명절과 지장재일, 관음재일 등에 법회를 개최한다. 대흥사에는 스님...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미력동(彌力洞), 음곤동(陰昆洞), 상광덕동(上光德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광덕과 미력의 이름을 따서 덕미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들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광덕(光德)은 비봉산을 배경으로 금이 많이 생산되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상광덕은 광덕의 위에 있다하여 칭한 것이다. 미륵(彌勒)은 마을...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덕봉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덕봉 교회는 멀리 쌍계 교회에 다니던 교인들이 점차 그 수가 늘어나자 분립하면서 시작되었다. 1904년 2월 15일 쌍계 교회에서 분립하여 1919년 김낙구, 박명은, 김근이 세 사람이 예배당을 설립하였다. 1919년 3월 25일 의성군 신평면 덕봉리 앞산에서 주민들과 독립 만세 시위를 일으켰고, 이로 인...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마을 덕봉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17세기 중엽 황씨가 정착하면서 주변 산봉우리가 알같이 생겨 알봉이라 일컫다가 그 후 덕봉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또한 마을 뒷산이 덕스러워 보이기 때문에 덕봉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랑당(西郞堂)은 약 200년 전에 이곳에는 배나무 숲이 있었는데, 이 고개를 지나는 사람들은 이 숲에 돌을 던지고...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덕촌동, 말지동, 하광덕동, 상광덕동 일부를 병합하여 덕촌과 말지의 이름을 따서 덕지동이라하였다. 자연 마을인 여우리는 동협(東莢)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산세가 험하여 사람 10명이 동행해야 지나갈 수 있다 하여 "열명"에서 여우리로 변하였다. 살구제는 이 마을 뒷산 고개에 많은 살구나무가 있었다하여...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경리(道境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도경(道境)에서 나온 명칭으로, 마을의 길을 사이에 두고 의성군과 경상북도 군위군의 경계를 이루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경은 뒤깅이·뒤김이 또는 원도경(元道境) 마을로도 불린다. 조선 말 경상북도 의성군 억곡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경동, 둔태동, 신안동, 석흥동 등...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주(星州). 도금동(都今同)[?~?]은 어느 해 날씨가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재워두고 아내와 함께 김을 매러 논으로 갔다. 그런데 집에 있던 병들고 늙은 아버지가 더운 날씨 탓인지 정신이 혼미하여 아기를 닭으로 잘못 알고 솥에 넣고 삶아버렸다. 먼저 집으로 돌아온 그의 아내는 아이를 찾다 솥에 넣어졌다는 사...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고도동 일부와 덕동을 병합하였는데 두 마을이름 "도"자와 "덕"자를 취하여 "도덕동"이라 하였다. 자연부락으로 고도전(高道田) 혹은 고두밭은 북쪽으로는 높은 고도산이 있으며 마을의 앞에는 화두산(花頭山)이 있는 산협이라 밭농사를 주업으로 하여 왔던 이유로 고도밭[高道田] 혹은 고두전(高頭田)으로 불렸다 한다....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의성군 남부면의 지역으로 의성의 중앙 큰길 동편에 있으므로 도동(道東)이라 칭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북동, 원흥동, 호미동을 병합하여 도동동이라 하였다. 도동 1리는 예로부터 향교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라 하여 교동(校洞)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때 큰길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도동리로 되었다. 도동 2리...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도리원 교회는 1906년 쌍계 교회에 다니던 교인들이 따로 분립하여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 초가에서 처음 예배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쌍계 교회로부터 분립하여 1914년 4월 서경선과 박경노가 설립하였으며, 그 당시에는 양재엽 전도사가 시무하였다. 1935년 5월 14일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 136번지에 건평...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의성군 남부면의 지역으로서 의성읍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안동과 영천 가도(街道) 아래편에 있는 동네라 ‘길 아래 동’이라 부르다 한자 뜻으로 바꿔 도하동(道下洞)이라고도 일컬었다. 일제 강점기 때 중앙 통로 서쪽에 있다고 하여 지금의 이름 도서리(道西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 마을로는 도서와 유다리가 있다. 도서는 중앙 도로의...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도암리에 있는 봉수터.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유적에 대한 기사는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의 비안현조에 “간점현 봉화는 비안현의 남쪽 15리에 있는데, 남쪽으로 25리 300보 거리에 있는 군위 땅의 마정산 봉화를 바라고, 북쪽으로 30리 270보 거리에 있는 안정현 땅의 대암산 봉화를 바라본다[肝岾峴烽火 在縣南十五里許 南望軍威地 馬井...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도암리에 있는 성혈을 새겨놓은 바위. 도암리 성혈암은 바위 면에 새겨진 바위그림 또는 고인돌의 덮개돌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다산, 풍요를 기원하는 등의 당시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유적으로, 그 생성 연대는 바위그림, 고인돌의 축조 시기와 같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인면사무소에서 서릉길을 따라 왼쪽으로 250m 정도 가면 지방도 923호선[자미로]과 만나...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산동(陶山洞)과 백암동(白岩洞)에서 한 글자씩 따서 도암동(陶岩洞)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동마람은 마을 동쪽의 산등에 말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동마암(東馬岩)이라 부른 것이, 그 뒤 변음되어 동마람이라 하였다 한다. 마산두 마을(馬山頭 마을)은 뒷산의 형태가 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마...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가도동(加道洞)과 장암동(壯岩洞)의 이름을 따서 도암동(道岩洞)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신동면의 가도동, 장암동, 모로동을 병합하여 의성군 비안면 도암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여 도암리가 되었다. 자연마을 장암은 1500년경 마을 개척 당시 마...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원리(桃源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도원(桃源)에서 나온 명칭으로, 조선 시대 철파역(鐵坡驛)에 딸린 도리원(都里院)이 있었으므로 도리원 또는 도원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또는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가 많이 있어 한자로 도리(桃李)라는 지명이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도원 마을(桃源 마을)은 과거 봉양면 면소재지로서, 시장도...
-
한말·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 운동. 외세의 조선 침탈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비롯된 반제 자주화 투쟁은 일제의 한국 침략에 대한 항일 독립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항일 독립 운동은 강제 병합 이전의 의병 항쟁과 계몽 운동 등 양대 흐름으로 전개되었고, 병합 이후에는 새로운 독립 운동의 이념 수용에 따른 민족 대 사회주의의 양대 흐름으로 진행되었다....
-
한말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 경상북도 의성 출신 또는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의성 지역 한말 의병 활동은 을미사변을 계기로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서 가장 먼저 전개되었다. 의병 부대는 의병장 김상종(金象鍾), 초모장 김수욱(金壽旭), 중군 권대직(權大稷), 선봉장 김수빙(金壽聘), 관향장 김수협(金壽莢)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유교 사상을...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와 안사면 월소리에 있는 산. 독점산의 높이는 311.4m로, 동쪽 사면은 신평천의 분수계이며, 서쪽 사면은 봉정천의 분수계에 해당된다. 독점산이 이어지는 산지 능선의 서쪽 사면이 봉정천의 유역 분지에 해당되며, 동쪽 사면은 신평천의 유역 분지에 해당된다. 봉정천은 독점산이 이어지는 산지의 남쪽 비로재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 북쪽으로 흘러 독점산의 서쪽...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오상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서당은 향촌 사회에 생활근거를 둔 사족(士族)과 백성이 주체가 되어 면·동·리를 기본 단위로 하여 설립한 사학(私學) 기관을 말한다. 동강 서당(棟岡書堂)은 진성 이씨의 오상리 입향조인 이희정(李希程)[1532~1612]이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는 서당이다. 이희정의 자는 이보(伊甫), 호는 동강(桐岡)이다. 이황(李滉...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의 종류. 경상북도 의성군에 서식하는 동물은 우리나라 국토 전역에 분포하는 동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성군의 동물상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은데, 『의성 지역의 자연 생태 조사 보고서』[환경부, 1999]의 일환으로 곤지봉[건지봉], 비봉산[다인면], 봉암산, 응봉산, 천등산, 갈라산, 천제봉, 황학산에 분포하는 포유류, 조류, 육상 곤충,...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 점곡 저수지 안골에 있는 장흥 마을의 동쪽으로 약 300m 되는 산 기슭에 있는 절터로, 고려 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이곳에는 깨진 탑의 기단석 일부가 남아 있을 뿐 다른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탑을 옮기기 전까지는 절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마을 쪽으로 30m 지...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군내면 창하동 일대를 병합하여 읍내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동부동(東部洞)이라고 이름지었다. 자연 마을 창하동은 관창(官倉)의 아래쪽 마을이라 창하(倉下)라고 불렀고, 상처 고개는 일명 황천 고개라고도 하는데, 예전 사람들이 현청[관가]에 잡혀 갔다가는 돌아오지 못하거나, 돌아와도 심한 상처를...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와 상리리에 걸쳐 있는 산. 산 모양이 가운데가 솟아서 불룩하게 언덕이 진 ‘둔덕’과 같아 둔덕산이라 이름붙여진 듯하다. 둔덕산은 둔덕구분댕이, 허구재라고도 한다. 둔덕산은 높이가 249.9m로 구릉성 산지이다. 둔덕산의 동쪽은 의성읍 상리리이며, 나머지는 의성읍 중리리에 속해 있다. 둔덕산의 북쪽 사면은 남대천의 지류 하천의 발원지이며, 남쪽 사면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장흥(長興). 호는 성헌(誠軒). 마근(馬謹)[1627~1700]은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착실하여 부모를 섬기는 데 극진하였다. 어머니의 병에 기러기가 특효라는 소리를 듣고 잡으려 했다. 하지만 활솜씨 서툰 그로서는 잡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병은 점점 깊어 가는데 기러기는 좀처럼 잡히지 않자 안타까운 마음에 땅을 두드리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와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동산리에 걸쳐 있는 산. 만경산은 사방의 일만 가지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산 정상에 오르면 전망과 경치가 좋고 낙동강을 비롯한 주변의 경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1617년 간행된 『상산지(商山誌)』에서는 만경산을 만악산(萬嶽山)이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넓은 반석과 높은 봉우...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만장사(卍長寺)는 화장산(華臧山) 중턱에 있는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직할 사찰이다. 원래 이곳에는 통일 신라 시대 때 사찰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의 만장사 대웅전에는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석조 여래 좌상(石造如來坐像)이 안치되어 있고, 대웅전 앞마당에도 통일 신라 시대에...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천리(晩川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만천에서 나온 명칭으로, 그 유래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일설에는 금성면 운곡리에서 살던 선비가 이곳으로 이주해서 마을을 개척했는데, 늦게 왔다하여 만래(晩來)로 불렀으며, 만래가 만내로 변하여 한자로는 ‘만천[晩川]’으로 표기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의성에서 노년을 보낸 함양 박씨 의성...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매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매강 서원(梅岡書院)은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매곡 1길 7-35[매곡리 1537]에 위치하고 있다. 매곡 보건 진료소에서 매곡 1리 노매 경로당 방향으로 30m가량 이동하면 매곡 1리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의 안내에 따라 좌회전 한 뒤[매곡1리길] 직진하여 약 400m 올라가면 매강 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매강...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된 지역 노매동, 우평동, 누곡동 중에서 노매와 누곡의 한 글자씩을 따서 매곡동이라 이름을 붙었다. 자연 마을 노매(老梅)는 1510년 신한이 다래 넝쿨로 뒤덮인 이곳을 개척하였을 당시 산기슭에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붙였다고 한다. 우평(牛坪)은 16세기 중엽 이득수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설 교육 기관. 명곡 서원(明谷書院)은 박성양(朴成陽)을 제향하는 조선 후기 서원이다. 박성양의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금은(琴隱),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의성현 봉양면 봉두산(鳳頭山) 아래에 은거하여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지냈다. 스스로를 “금은(琴隱)”이라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명곡 서원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덕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지역 중 명호동과 덕곡동의 이름을 따서 명곡이라 하였다. 명호는 마을 옆에 호수가 있었고 그 곁에 있는 봉대(鳳臺)에서 봉황이 늘 울어서 명호(鳴湖)라 불렀는데 그 후 한자가 변하여 오늘날 명호(明湖)가 되었다 한다. 덕곡(德谷)은 마을 앞의 고개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며, 옛날 나무꾼...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된 지역 중 모고동(慕古洞)과 흥암동(興岩洞)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모흥동(慕興洞)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내서면의 흥암동, 모고동, 조개동과 비안군 외서면 하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구천면 모흥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모...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육체로 음악에 맞추어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출하는 행위 예술 분야. 의성 지역도 전국 어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통 무용인 무무(巫舞)가 남아 있다. 무당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무무는 무속 신앙의 의식인 굿에서 추어진 춤을 일컫는 것인데, 여러 의식 무용 중 가장 연륜이 깊은 것이며, 가장 광범위하게 행해진 것이다. 의성 지역...
-
조선 후기 의성 의 열녀. 본관은 남양(南陽). 문경공(文景公) 홍길문(洪吉文)의 8세손이다. 문경제 처 남양 홍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갑작스레 닥친 왜구에게 남편과 아들이 모두 피살되었다. 왜구의 마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힘없는 아녀자들을 겁탈하려 하였다. 살기 위해 욕됨을 감수할지, 아니면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을 해야 할지 양단의 길밖에 없었다. 하지만 홍씨는...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상리리와 사곡면 신감리를 연결하는 고개. 문고개는 의성읍 상리리의 하이골, 윗골 마을에서 사곡면 신감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는 북동쪽의 230m 고지와 남서쪽의 240m 고지 사이에 있는 낮은 안부이며, 높이는 185m이다. 주변의 높은 산지를 피해 주변 주민들이 의성읍으로 오가는 길목으로 이용하고 있다. 문고개의 북서쪽 곡부는 남대천의 지류인 아사...
-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통일 신라 시대 지명. 의성 지역에는 초기 국가 성립 시기에 조문국(召文國)이라는 소국이 존재하였다. 185년(벌휴왕 2)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여 조문군(召文郡)을 설치했고, 행정 구역을 개편한 757년(경덕왕 16)에는 조문군을 문소군(聞韶郡)이라 개칭하였다. 경덕왕 때 문소군은 진보현(眞寶縣)·비옥현(比屋縣)·안현현(安賢縣)·단밀현(丹密縣)을 속현으로 관할...
-
조선 후기 의성의 열녀. 병조 판서를 지낸 여자신(呂自新)의 증손녀이자, 절도사를 지낸 여윤철(呂允哲)의 손녀이다. 문응주 처 함양 여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갑작스레 닥친 왜구에게 남편과 시아버지를 한꺼번에 잃었다. 의지할 데 없는 아녀자들만 남게 되자 왜구들은 집안의 여인들을 욕보이려 덤벼들었다. 이에 시어머니인 남양 홍씨는 남편과 자식의 원수인 왜구에게 욕을 당하느니...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문학,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무용, 사진 등의 분야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활동 또는 그 작품. 경상북도 의성군의 문화·예술 활동은 대체로 의성군이나 유관 및 산하 기관, 그리고 교육·종교 기관 및 사회 단체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전문 예술인이 부족하고 소공연장, 전시 시설 등 기반이 취약하며 문화·예술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상업과 연관된 활발한...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문흥리(文興里)는 자연 마을 문흥(文興)에서 나온 명칭으로, 글을 숭상한다 하여 문흥 또는 글흥이라 하였다 한다. 뒷산 기슭 약간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은 상문(上文) 또는 골문흥이라 한다. 상문의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은 하문(下文)으로, 길거리 쪽에 위치한다 하여 거리문흥이라 하기도 한다. 자연 마을로 문흥[글흥골·상문], 하문, 호상...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며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 행위. 의성군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전통 미술 작품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의성군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전통 미술 작품으로는 종교적인 염원에서 창작된 것, 즉 불교 미술 작품이 다수를 차지한다. 주요 불교 미술 작품으로는 불화(佛畵)와 조형물이 있다. 전통 시대에 창작된 의성군의 대표적인 불화...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지역 중 팔미동(八美洞), 천동(泉洞)에서 한 글자씩 따서 미천동(美泉洞)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외서면의 팔미동, 천동, 가리, 율지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구천면 미천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미천리가 되었다. 북동쪽...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중들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의성 지역의 민속놀이는 명절이나 농한기를 통하여 간편한 놀이에서 수백 명의 많은 인원이 어울리는 집단 놀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민속놀이가 전해져오고 있다. 1. 가마싸움 의성 지역의 민속놀이중 지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놀이는 가마싸움이다. 가마싸움은 의성 지역에서 시작된 놀이로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민중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노래. 민요는 노래로 된 구비 전승이다. 민요는 노래이기에 음악이면서 문학이고, 그 가사는 율문으로 되어 있다. 노래가 아닌 것은 민요가 아니며, 구비 전승이 아닌 것도 민요가 아니다. 민요는 공동작이면서도 개인작이지만, 개인작만으로는 성립되거나 존재할 수 없다. 민요는 비전문적인 민중의 노래이기에 전문적인 특수 집단의...
-
근대 의성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규언(圭彦), 호는 죽오(竹塢). 아버지는 박필운(朴必運), 어머니는 장욱근(張郁瑾)의 딸 옥산 장씨(玉山 張氏)와 박숭근(朴崇根)의 딸 월성 박씨(月城 朴氏), 할아버지는 박문룡(朴文龍), 증조할아버지는 박이길(朴彛吉), 부인은 진사(進士) 이건영(李健榮)의 딸 숙부인(淑夫人) 경주 이씨(慶州 李氏), 후처는 노영호(盧永昊)의...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증조할아버지는 문경공(文敬公) 박의중(朴宜中)이다. 박길상(朴吉祥)[?~?]은 성종 연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밀직사(密直使)를 지냈다. 밀양 박씨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이두리 입향조로서 내두 마을과 외두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진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아들 성균 진사 박울(朴蔚)이 비안면으로 유배될 당시 함께 왔다고...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이자 무관.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효숙(孝叔), 호는 옥간(玉澗).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박경신(朴景信)이고.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박등(朴登)이고, 아버지는 우천(愚泉) 박장춘(朴長春)이고, 어머니는 정암(靖菴) 유습(柳隰)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다. 박무선(朴茂先)[1547~1629]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인 박장춘의 명을 받...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겸(孝兼), 호는 두곡(杜谷)이다. 박사숙(朴嗣叔)[1556~?]은 1556년 의성군 비안면 이두리에서 태어났다. 젊을 때부터 강개한 점이 남달랐다 전해진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거느리고 경주 의진에 참여하여 분투하였다. 용감한 전투를 치루고 적지 않은 공을 거두었으나 세력이 미약하여 성이 함락되자 적삼을 벗어 손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양. 자는 경서(景瑞). 호는 송파(松坡). 박대륜(朴大倫)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조인 박장춘(朴長春)을 비롯해 많은 효자들이 배출되었다. 박상천(朴祥天)[1768~1823]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효성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9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지나친 슬픔으로 몸을 상하게 할 지경이었다. 그 후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는데 정...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찬지(纘之), 호는 학천(鶴川). 강계 판관(江界 判官) 박충무(朴冲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직(司直) 박유부(朴有阜)이고, 아버지는 참봉 박경신(朴景信)이며 어머니는 동래 정씨(東萊 鄭氏) 감찰 정기(鄭琦)의 딸이다. 부인은 영천 이씨(永川 李氏)로 이세헌(李世憲)의 딸이다. 박승(朴承)[1520~1577]은 1526년...
-
근현대 의성 출신의 정치인. 박영교(朴永敎)[1906~1966]는 1946년 11월 14일부터 1948년 4월 8일까지 의성군 안계면 제3대 면장으로 재임했다. 1949년 7월 4일 법률 제32호로 제정되어 같은 해 12월 15일에 개정된 지방 자치법에 따라 1952년에 실시된 지방 자치 선거에서 안계면 면장으로 선출되어 1952년 5월 5일부터 1954년 2월 9일까지 안계면 제...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유배되어 정착한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참의(參議) 박경문(朴景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밀직사(密直事) 박주(朴柱)이고, 아버지는 박길상(朴吉祥)이다. 박울(朴蔚)[?~1519]은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합격하여, 이후 성균관에 들어 수학하였다. 그러던 중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가 발발하자, 사화에 관련된 유생으로 지목되어 경상도 비안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대경(大卿). 아버지는 강계 판관(江界 判官)을 역임한 박충무(朴沖武), 어머니는 권간(權侃)의 딸 숙부인(淑夫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와 숙부인 흥양 이씨(興陽 李氏), 할아버지는 정헌공(定憲公) 박성양(朴成陽), 증조할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한 박윤후(朴允厚), 부인은 이격(李格)의 딸 예안 이씨(禮安 李氏),...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일경. 호는 효학(孝鶴). 박세장(朴世章)의 세 아들 가운데 막내이다. 박윤(朴閏)[1684~1753]은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후덕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수려하였다. 그러한 바탕 위에 안으로 엄한 가정 교육을 받고, 밖으로는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바른 몸가짐으로 사물을 접하는데 있어 그 도리를 다했다. 어떤 사...
-
조선 전기 의성 사촌 지역으로 이주한 박남 박씨의 입향조.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사순(士純), 호는 송고(松皐). 박병덕(朴秉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충좌위 부사맹(忠佐衛 副司猛) 박자(朴礠)이고 아버지는 돈용교위 사용(敦勇校尉 司勇) 박서(朴瑞)이고, 어머니는 이현손(李賢孫)의 딸 전의 이씨(全義 李氏)이고, 부인은 훈도(訓導) 김만경(金萬敬)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장옥(章玉), 호는 화암(華庵). 할아버지는 박기영(朴基榮)이고, 아버지는 박기현(朴基賢)으로 박치준(朴致準)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황재단(黃載慱)의 딸 창원 황씨(昌原 黃氏)이다. 박장문(朴璋文)[1812~1880]은 1855년(철종 6)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후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고 평생 은거하였는데 강학과 학문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원백(元伯), 호는 우천(愚泉). 사직(司直) 박유부(朴有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박경신(朴景信)이고, 아버지는 박등(朴登)이며, 어머니는 김원호(金員琥)의 딸 월성 김씨(月城 金氏)이고, 부인은 유습(柳隰)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다. 박장춘(朴長春)[1523~1595]은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남달라 1559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필(聖弼), 호는 금파(錦坡). 박상삼(朴象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성현(朴成玹)이고, 아버지는 박경원(朴敬源)이고, 어머니는 신진환(申震煥)의 딸 아주 신씨(鵝州 申氏)이고, 부인은 김혁운(金赫運)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다. 박종량(朴宗良)[1804~1876]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의심스러운 부분의 뜻을...
-
고려 후기 함양 박씨의 의성 입향조이자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박지량(朴之亮)[?~1292]은 1271년(원종 12) 수로방호사(水路防護使)가 되고, 1274년(충렬왕 즉위)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지병마사(知兵馬事)로 참전하였다. 쓰시마[對馬島], 이키시마(壹岐島)를 거쳐 키타큐슈(北九州)를 쳤으나 태풍을 만나 고려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1280년(충렬왕 6) 1...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중옥(仲玉), 호는 도오(陶塢), 초명은 시찬(時瓚). 생원(生員) 박윤화(朴允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기함(朴基咸)이고, 아버지는 박치도(朴致道)이고, 어머니는 이암(李馣)의 딸 전의 이씨(全義 李氏)이고, 부인은 이준(李晙)의 딸 선성 이씨(宣城 李氏)이다. 박충원(朴忠源)[1735~1787]은 1742년에 아버지에...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여원(汝元), 호는 병애(屛崖). 율정 박서생(朴瑞生)의 7대손이다. 박충인(朴忠仁)[1565~1612]은 어려서 정랑(正郞) 김희(金喜)에게서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늙은 아버지를 업고 비안 북쪽 화장굴(花藏窟)에서 피난을 하고 있었다. 이때 병사(兵使) 이각(李珏)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 출전하였다. 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순(子淳), 호는 죽포(竹圃). 참봉 박경복(朴景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춘수(朴椿樹)이고, 아버지는 박조원(朴調元)이고, 어머니는 부사직(副司直) 김원정(金元汀)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고, 부인은 전주 최씨(全州 崔氏)이다. 박태고(朴太古)[1557~1643]는 일찍이 효우(孝友)로서 이름이 높았다. 부모가...
-
조선 후기 의성 지역에 거주한 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응회(應會), 호는 소은(韶隱). 박서(朴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윤함(朴允諴)이고, 아버지는 박항(朴恒)이고, 어머니는 주부(主簿) 김광희(金光禧)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고, 부인은 박색(朴穡)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박태형(朴泰亨)[1566~1618]은 일찍이 김언기(金彦璣)의 문하에서 수업...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여경(汝敬). 호는 모암(慕巖). 박진구(朴震龜)와 평산 신씨(平山 申氏)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조인 박장춘(朴長春)을 비롯해 많은 효자들을 배출하였다. 박하륜(朴河倫)[1748~1788]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극진하였다. 21세에 진성 이씨(眞城 李氏)와 혼인을 하였는데 부인 또한 성품이 어질고 효성이 깊었다. 그는 아...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예로부터 사용해온 토박이 언어. 방언은 그 지역의 자연 언어뿐만 아니라 생활 문화의 모습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의성 지역 방언을 지역별·세대별로 살펴보면 그 방언을 사용하는 의성 지역 사람들의 특성도 함께 나타난다. 의성 지역 방언에 나타나는 음운, 문법, 어휘는 언어 연구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의성 지역 방언은 1...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방하(方下)는 산세가 방아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방아실, 방하실이라고도 부른다. 도적골은 사람들이 도씨 부부의 효성에 감동하여 마을 앞에 효자비를 세웠는데 세월이 흘러 후세인들이 도씨의 효심을 기리기 위하여 성 ‘도’자와 자취 ‘적’자를 따서 도적골[都蹟谷]이라 하였다 한다. 본래 의성군 단촌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와 안평면 신안리를 연결하는 고개. 고개에 배나무가 있어서 배나무 고개라 불린다. 배나무 고개는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와 안평면 신안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동쪽의 200m 고지와 남서쪽의 250m 고지 사이에 있는 높이 160m의 낮은 안부이다. 배나무 고개의 남동쪽 계곡은 남대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최상류부에 해당되며, 북서쪽 계곡은 안평천으...
-
개항기 의성의 열녀. 배치용 처 순흥 안씨[?~?]는 태어난 집안이나 출가한 집안 모두 보잘 것이 없었다. 하지만 타고난 성품과 자질이 남달랐다. 시집을 와서 시부모와 지아비를 섬기는 데 있어 조금도 소홀함도 없었다. 하는 일 하나 하나가 모두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올발아 일가친척이며 이웃들이 한결 같이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이 위독하여 사경을 헤매자 남편 대신 자신의 목숨을...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이두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박수교(朴壽喬), 박도전(朴道傳), 김규석(金圭錫) 등이 중심이 되어 건립한 조선 시대 서당이다. 세 명의 인물과 관련 자료들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아 생몰 연대와 행적을 파악할 수 없다. 백학 서당(白鶴 書堂)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이두 2길 48[이두리 187]에 자리하고 있다. 국도 28호선 옆으로 나 있는...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쌍떡잎식물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교목. 의성군에 분포하는 버드나무는 일반적으로 하천변이나 습지 주변에서 자생하거나 마을 어귀에 정자나무로 심겨져 있다. 특히 마을 어귀에 정자나무로 심겨진 버드나무는 수령이 200년이 넘은 오래된 것들이 많으며, 이들 가운데 특별히 보호해야 할 만한 버드나무[12개소]에 대하여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 및...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아버지는 변리(卞璃)이다. 초계 변씨 집안에는 대대로 효자가 많이 나왔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국천 효자라고 불리는 변용(卞勇)으로 변세린은 그의 6세손이다. 변세린(卞世麟)[1562~1612]은 성품이 효성스러워 부모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깊은 병에 들어 11년이나 누워서 지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한결같은 마음...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민부(敏夫). 호는 화암(華岩). 변구상(卞九祥)의 손자이고, 예안 감무를 지낸 변옹(卞雍)의 고손자이다. 의성의 초계 변씨 집안에서는 변세린(卞世麟), 변기동(卞箕動) 등 효자와 저명 인물들이 대를 이어 나왔다. 변용(卞勇)[1443~1488]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몸소 흙을 져다 날라 봉분...
-
조선 후기 의성군 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대이(大而), 호는 농눌(聾訥). 첨정(僉正) 변득인(卞得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변영(卞瑩)이고, 아버지는 변삼오(卞三迕)이고, 어머니는 호군(護軍) 오준신(吳俊臣)의 딸 울산 오씨(蔚山 吳氏)이고. 부인은 윤역(尹墿)의 딸 해평 윤씨(海平 尹氏)이다. 변태화(卞泰和)[1682~1761]는 가학으로 글 읽기를 시...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병방리는 1914년 구산면 병방동, 안정동, 상은동, 은행동 일부를 통폐합하면서 병방동의 이름을 따서 붙어진 이름이다. 병방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많은 병사들이 성을 쌓고 방어를 한 곳이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병방은 갈방실(葛方室)이라고도 하는데 갈방은 1380년 파평 윤씨가 마을을 처음으로 개척할 당시 뒷산에 칡의 잎[갈엽...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 있는 산성 유적. 병방리 산성터 유적은 해발 365.8m의 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완만한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성의 북쪽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어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돌로 성벽을 쌓았다. 병방리 산성터 유적의 변천과 관련된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 기록은 1832년경에 발간된 『경상도읍지(...
-
1636년(인조 14)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의병이 일어난 전쟁. 조선과 여진과의 관계는 16세기 말까지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1623년(인조1) 반정 이후 집권한 인조와 서인 정권이 이전의 광해군과 달리 향명배금(向明排金) 정책을 내세우게 되면서 후금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이에 결국 조선은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지방 자치 단체나 의료 기관 등이 행하는 활동. 경상북도 의성군의 보건 의료는 중앙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중심이 되어 보건소를 중심으로 보건 사업을 행하는 공적 영역과, 사설 의료 기관이 주가 되어 병원과 의원을 비롯한 의료 기관들 중심으로 보건 의료 행위를 하는 민간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의성군은 보건지소 신축,...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보존 또는 증식 가치가 있어 보호하고 있는 나무. 보호수는 생물의 유전자와 종 또는 자원 생태계 등의 보전, 관리를 목적으로 산림 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 47조에 의하여 시·도지사 또는 지방 산림 청장이 지정하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노목·거목·희귀목에 한하여 보호수로 지정하고 있다. 의성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되고 있는 나무는 느티나무, 버드나무,...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천리와 가음면 현리리에 걸쳐 있는 산. 복두산은 높이 507.6m로, 서쪽에 북두산이 있다. 쌍계천의 분수계 내에 있는 산이며, 쌍계천에는 경북 8경의 하나인 빙계 계곡이 있다. 복두산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유천 화산암층군 산성화산암으로 유문암 및 유문 석영 안산암이다. 또한 복두산과 북두산을 둘러싸며 동서남북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는 단층선으로 인하여...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당. 봉강사(鳳岡祠)는 이극송(李克松)[1202~1274]과 7세손 이세남(李世南)[1464~1525]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이다. 이극송의 본관은 벽진(碧珍), 호는 빙옥재(氷玉齋), 시호는 문정(文靖)으로 이규보(李奎報)의 문인이다. 「봉강재기(鳳岡齋記)」를 보면, 이극송은 청렴결백하고 강직하여 일찍이 왕으로 부터 ‘차가운...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덕지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봉남 서당(鳳南 書堂)은 김진엽(金振曄)이 건립하였다. 김진엽의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봉남(鳳南)이다. 덕양 서원(德陽 書院)에 배향된 김문기(金文起)[1399~1456]의 5세손이다. 봉남 서당(鳳南 書堂)은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덕지 3길 41-28[다인면 덕지리 191]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경로당에...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분포한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의성군의 봉수와 관련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의성군 관내 봉수 유적들은 『경상도지리지』의 의성현(義城縣)을 비롯하여 비안현(比安縣), 안정현(安貞縣), 다인현(多仁縣) 조에 나타나 있다. 의성현조에는 “영니산 봉화는 현의 남쪽 20리 정도에 있...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에 있는 전통 시장. 시장은 일반적으로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분류된다. 상설 시장은 일정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항상 상품의 매매와 교환을 하고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내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의성 지역의 시장은 상설 시장 1곳, 정기 시장 9곳이며 상설 시장은 의성읍에 자리 잡고 있다. 정기 시장은 의성읍, 단촌...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와 구미리를 연결하는 다리. 봉양교의 명칭은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봉양교에서 춘천 방향 상행선 구간과 부산 방향 하행선 구간의 교량 제원은 동일하다. 교량 길이의 합인 연장은 400.0m, 교량의 총 폭은 12.1m, 교량에서 차도만의 유효 폭은 11.4m, 지표면 또는 수면에서 교량의 바닥판까지의 수직 높...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석정동·주양동·장성동·고도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봉양동이라 하였다. 또한 봉화재가 위치해 있다고 해서 봉양동이라고도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석정·묵동·장선·술못안 등이 있다. 석정(石井)은 1480년(성종 11) 정경우(鄭景佑)가 다인에서 이 마을로 옮겨와 정착하여 살다가 식수가 없어 헤매던 중 어느 산 밑...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유적.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산77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봉양리 산성터 유적에 포함된 높이 221.8m의 산봉우리에 해당한다. 지역 주민들은 이곳을 봉성산 혹은 봉화산이라고도 부르며, 봉양리 산성터를 동서로 관통하는 고갯길을 봉우재 또는 봉화재라 부른다. 『경상도지리지』를 비롯한 조선 시대 여...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성혈을 새겨 놓은 바위. 성혈암은 바위에 구멍을 낸 것으로, 바위에 그림을 새긴 것과 마찬가지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유적이다. 생성 연대 역시 바위그림이나 고인돌 축조 시기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양리 성혈암 1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산77에 있다. 안계면사무소에서 남동쪽 안계길을 따라 1㎞ 정도 가면 토...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성혈을 새겨놓은 바위. 봉양리 성혈암 2은 안계면사무소에서 안계길을 따라 토매 삼거리 방향으로 700m 정도 가면 안계 석물 공장이 나온다. 안계 석물 공장 옆으로 난 봉양길을 따라 1㎞ 정도 가면 위양 1리에 위치한 자오사가 있다. 봉양리 성혈암 2는 자오사의 요사(寮舍) 배수로 암반 위에 자리하고 있다. 봉양리 성혈암 2은 5개의 성혈(性穴...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동쪽에 있는 오동산(梧桐山)이 있고 오동나무에는 봉황(鳳凰)이 깃든다 하여 ‘봉(鳳)’자를 따왔으며, 양지바른 곳이라 ‘양(陽)’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 봉자를 붙인 것은 지세가 봉황의 모양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봉천(鳳川)의 형상이 양지(陽地) 바른 곳에 봉이 앉은 모양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었다고도 한다. 조문국(召文國) 건국...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봉양면은 13개의 법정리와 26개의 행정리로 형성되어 있다. 북부의 구릉성 저산지와 북동쪽에서 흘러오는 남대천(南大川) 및 남동쪽에서 흘러오는 쌍계천(雙溪川), 그리고 이 두 하천이 합류한 봉천(鳳川) 유역에 집성 촌락이 분포하고 있다. 봉양면에는 아주 신씨, 나주 신씨, 순천 박씨, 풍천 임씨, 의성 김씨, 김해...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에 있는 봉양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봉양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봉양면사무소는 의성군 봉양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봉양면은 본래 신라 조문국에 속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의성부 하천면, 조선 시대에는 의성현이라고 불렸다. 1910년 한일합방이...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정동, 봉평동, 산막동을 병합하여 봉평과 동정의 이름을 따서 봉정동이라 하였다. 비봉산에 날아드는 봉을 못 날아가게 하기 위하여 죽림마을을 만들고 봉이 먹을 우물을 만들기 위해 봉정[봉의 샘]을 만들었다고 하여 봉정이라 칭하였다는 설도 있다. 자연 마을인 삼학은 마을의 느티나무에 학 3마리가 날아와 앉아...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중율리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기산리에 걸쳐 있는 산. 옛날에 이 산에 봉화가 있었다 하여 봉화산(烽火山)이라 불린다고 한다. 봉화산은 높이가 400.6m이다. 북쪽 사면은 낙동강의 소지류 하천의 발원지에 해당되며, 남쪽 사면은 광산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신천의 지류 하천의 분수계를 이룬다. 봉화산의 남쪽 사면에는 돌방못, 청운지 등의 소규모 저수지가 축조...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부곡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의 "이른바 향·부곡 등의 잡소(雜所)는 모두 갖추어 기록하지 않는다"라고 내용으로, 삼국 시대부터 부곡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특수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였던 부곡은 고려 중기 이후 그 성격이 변질되기 시작하여 조선 시대에 이르면서 거의...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와 가음면 현리리에 걸쳐 있는 산. 북두산은 높이가 598m로, 복두산에서 약 2.4㎞ 정도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쌍계천의 분수계 내에 있는 산지이다. 북두산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유천 화산암층군 산성 화산암으로 유문암 및 유문 석영 안산암이다. 또한 복두산과 북두산을 둘러싸며 동서남북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는 단층선으로 인하여 단층선곡이 발달하고...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분토리(粉吐里)는 자연 마을 분토에서 나온 명칭으로, 비옥한 흙을 토해내는 동네란 뜻에서 분토(粉吐)라 하였다 한다. 분토 마을은 산간 골짜기에 위치하여 분토골로도 불린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의성군 금뢰면(金磊面)의 분토동, 엄현동과 길부동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봉양면 분토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사적(史蹟)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놓은 것. 비(碑)는 기록한 재질에 따라 목비(木碑)·석비(石碑)·철비(鐵碑)로 구분되나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것은 대부분 돌에 새긴 석비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비는 대부분 기념비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조상과 같은 특정 인물의 사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상비동, 하비동, 봉정동을 병합하여 비동과 봉정의 이름을 따서 비봉동[비봉리]이라 하였다. 봉정(鳳井)은 이 마을 근처 산에 봉황(鳳凰)이 많이 서식하였는데, 양지편 마을 우물가에 봉황새가 날아와 앉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음지편 마을 우물은 비정(飛井)이라 불렀다 한다. 웃비정, 즉 상비(上飛)는 현재 비...
-
박우(朴瑀)를 시조로 하고 박서생(朴瑞生)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세거 성씨. 비안 박씨(比安 朴氏)의 시조는 박우이다. 고려 시대 문하 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병산군(屛山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월성 박씨(月城 朴氏)에서 분적(分籍)하여 관향(貫鄕)을 비안(比安)으로 삼았다. 비안현은 병산현(屛山縣)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어 비안 박씨는 병산...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와 용천리를 연결하는 다리. 비안교는 비안면 서부리 지역에 북서~남동 방향으로 설치된 교량으로, 의성군을 가로지르는 국도 28호선 상에 위치한다. 비안교의 명칭은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비안교에서 교량 길이의 합인 연장은 450.0m, 교량의 총 폭은 20.9m, 교량에서 차도만의 유효 폭은 20.0m, 지표...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비안면은 현재 14개의 법정리와 23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시대 비안현의 현청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역사 유적과 전통 있는 촌락이 많다. 비안면에는 밀양 박씨, 선산 김씨, 경주 손씨, 경주 이씨, 함창 김씨, 초계 변씨, 병산 박씨, 순천 장씨, 절강 장씨, 진주 소씨, 경주 김씨, 안동 김씨, 청주...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이두리에 있는 비안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비안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비안면사무소는 의성군 비안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옛 고을 비안군은 의성군에 통합되어 의성군 비안면으로 개칭하여 14개 리 54개 자연 부락...
-
757년부터 1421년까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비옥현은 원래 신라의 아화옥현(阿火屋縣)으로, 혹은 병옥(幷屋)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경덕왕 때 아화옥현을 비옥현으로 고치고, 문소군의 관할 아래에 두었다고 한다. 경덕왕은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한화(漢化) 정책을 펼치며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757년 9주(州)·...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 3리 쌍계천 상류에 있는 계곡.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 3리 서원 마을 앞 계곡에는 높이 10m, 둘레 20m 정도의 큰 바위에 ‘빙계동(氷溪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자는 임진왜란 때 이곳을 지나가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필적이라고 전해진다. 이 바위가 있는 빙계 계곡(氷溪 溪谷)은 1933년 10월 4일...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빙산사 터(氷山寺 터)에는 현재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5층 석탑만이 서 있다. 절터 좌측에는 빙혈(氷穴)이, 우측에는 풍혈(風穴)이 있으며, 빙산(氷山)에 있는 절이라 하여 빙산사(氷山寺)라 하였는데 춘산면의 옛 이름도 빙산면이었다고 한다. 빙산사의 창건 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사곡면은 10개의 법정리와 20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과 접해 있고, 서쪽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남쪽은 춘산면과 금성면, 북쪽은 옥산면과 접하고 있다. 오토산·금성산·구무산·불출산 등으로 둘러싸인 산간지로 농토가 비옥하여 마늘·고추·작약·산수유 등 특용 작물을 많이 재배하고...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에 있는 사곡면 관할 행정 기관. 경상북도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사곡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사곡면사무소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사곡면은 당초 내사면과 외사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곡면으로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오리와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를 연결하는 고개. ‘사금(沙金)’이란 금의 광맥이나 광산이 풍화와 침식으로 인하여 금이 포함된 모래나 암석 알갱이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채취하여 금을 추출하기도 한다. 사금령은 이와 같은 사금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인근 산지 광맥에서 금, 은, 동 등 광물이 채굴되어 이와 같은 명칭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부리(沙阜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사부(沙阜)에서 나온 명칭으로, 냇가의 모래 언덕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 노매실은 원래 마을에 매화나무가 많아 매실 마을이라 하였다 한다. 그 후 광주 노씨가 이곳에 정착해 오면서 자기 성씨를 따서 노매실이라 부르던 것이 한자 늙을 노(老) 자를 써서 현재의 노매...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사부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선돌. 사부리 선돌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사부리 509-2답에 있다. 봉양면사무소에서 국도 5호선[경북 대로]을 따라 오른쪽 안동·의성 방면으로 900m 정도 가면 온천 삼거리가 나온다. 온천 삼거리에서 왼쪽 안평·신평 방면으로 80m 이동하여 다시 오른쪽으로 1.7㎞ 정도 가면 왼쪽으로 고물상이 나오고 오른쪽으로는 사부 2리...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시안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사제 저수지는 시안리에 있는 2종 저수지이다. 인근에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교촌 농촌 녹색 체험 마을이 있어 다양한 체험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사제 저수지는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축조한 농업용 저수지로 1953년 1월 6일에 인·허가를 받았으며, 1954년 1월 1일에 착공하여 1955년 12월 30일에 준공하...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사찰은 가람(伽藍)이라고 하는데, 가람은 산스크리트어 saṃgha-ārāma의 음역인 승가람(僧伽藍)의 줄인 말이다. 사찰은 원래 석존(釋尊)의 설법을 위한 장소로서 건설되었지만, 승단이 형성됨에 따라 안거(安居)를 위한 공동의 방사(房舍) 성격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사찰은 출가 수행자들의 수행 공간이고, 갖가지 의례를...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 가로숲은 일명 서림(西林)이라고 한다. 사촌 마을 서편 들판을 가로질러 조성된 약 1,000m 길이의 방풍림인 사촌 가로숲은 김자첨이 14세기 말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 비보 사상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숲은 1999년 천연기념물 405호로 지정되었다. 사촌 가로숲은 사촌 마을 서쪽에 조성한 숲이다. 사촌 마을은 안동 김...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촌리는 옛날 사기점이 있어서 점곡(點谷), 점실 또는 사진, 수촌이라 하였다. 또 일설에 따르면 신라 시대 때 나(羅)씨, 손(孫)씨에 이어 1392년 김(金)씨가 들어와 서방(西方)을 막기 위하여 서림을 조성하고 동네 이름을 중국 사진촌(沙眞村)을 모방하여 붙였다고도 한다. 자연 마을 비대(比大)는 18세기 초 이참봉(李參奉)이 마을에...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 변화를 일으키거나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집단적으로 전개되는 운동. 지역 사회 운동의 뿌리는 일제의 국권 침탈에 대항하여 민족과 사회 문제에 대한 농민·노동자·청년의 각성이 일어나는 시기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초기의 사회 운동은 국권 회복을 위한 무장투쟁의 일환으로 발생하였고, 1919년 3·1 운동 이후에는 민족 자강과...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주민의 생활 향상과 사회 보장을 위한 광범위한 사회 정책. 한국 사회에서 사회 복지를 위한 법률의 체계적 정비는 1961년 12월 30일 공적 부조의 가장 핵심이 되는 법률로 「생활 보호법」이 제정·공포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이후 1963년 「의료 보험법」이 제정되었으며 1978년에는 「의료 보호법」이 제정·실시되었다. 1997년 IMF 외...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주변의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의성군의 산지는 태백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태백 산맥과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소백 산맥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태백 산맥은 남쪽 방향[의성군의 동쪽 경계부]으로 춘산면의 산두봉, 옥산면의 황학산, 단촌면의 갈라산을 형성하고, 서쪽[의성군의 북쪽 경계부]으로는 신평면의 봉암산, 다인면의 독점산과 비봉산을 지난...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동과 신촌동 일부를 병합하여 산내동이라 하였다. 내동(內洞)은 조선시대 1609년 황의중(黃義中)이라는 선비가 개척하였는데, 양지바르고 아늑한 산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동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음달(陰達)은 불당 남동쪽에 있는 산밑 음지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햇빛이 오후가 되어야만 들므로 음달이라 부...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신흥리와 청송군 현서면 도리에 걸쳐 있는 산. 산두봉은 높이가 719m로, 쌍계천의 분수계를 이루는 산지 가운데 하나이며, 북서쪽 사면이 이에 해당된다. 산두봉의 남동 사면은 길안천의 분수계인데, 화목재~산두봉~문봉산~어봉산~사금령으로 이어지는 의성군의 행정 경계는 쌍계천과 길안천의 분수계와 일치한다. 산두봉을 구성하고 있는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불국사 관...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한 전통 시대 방어 시설. 의성 지역의 산성과 관련한 내용이 실린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 사료는 1454년에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이다. 의성현(義城縣)조에 금산석성(金山石城)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금산석성은 의성현의 남쪽 15리에 있는데 둘레 1,516보로 높고 험준하며 성내의 네 곳에 샘이 있다. 그리고 군창이 있는데 군위...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운리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산운에서 나온 명칭으로, 신라 시대 불교가 성할 때 수정 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마을 이름을 산운이라 불렀다 한다. 또한 예로부터 산운 및 이웃 수정(水淨) 마을 등 두 마을을 다상(茶上), 다중(茶中), 다하(茶下) 등으로 구분하여 불러왔으나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본래 의성군 산...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산두동, 제내리, 제하리에서 이름을 따서 산제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모산[지내(池內)]는 큰 못[산제지(山堤池)]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못안, 한자로는 지내로 부르게 되었으며, 모산으로도 불리게 된다. 못둑 즉, 제방 안쪽이라 제내(堤內)라고도 부른다. 웃모산은 모산의 윗마을로 산제리에서 가장...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에 있는 산성 유적. 화장산성은 『경상도읍지』와 『영남읍지』의 내용에 보이는 바와 같이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왜장(倭將)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가 비안현을 점령했지만, 천연의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이 화장산성은 끝내 점령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비안현의 각종 문서들을 안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화장(花藏)’이라는 이름의 붙여졌...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개척 당시 주위 세 곳에서 물이 많이 솟아오르므로 삼분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유명한 고분이 세 군데가 있어서 삼분이라 하기도 한다. 뒷날 세 곳의 물줄기를 잡아서 도관 저수지, 삼풍 저수지, 용천 저수지를 만들었다. 비릿재는 삼분에서 달제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길손들이 산적들의 습격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합할 때 고산동(高山洞), 오산동(梧山洞), 송산동(松山洞) ‘산(山)’자가 들어간 세 마을을 합쳤기 때문에 삼산동(三山洞)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연 마을 고산(高山)은 마을 뒷산이 높아 붙여진 이름이다. 오산(梧山)은 마을 주변 산에 오동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오산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실제 마을 뒤로 오동산...
-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3월 12일~4월 초순까지 의성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3·1 운동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린 가운데 민족의 독립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세계사적으로...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삼거리, 춘생동과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평팔동 일부를 병합하여 개설된 마을로, 삼거리와 춘생동의 이름을 따서 삼춘동이라 하였다. 삼거리는 의성군 신평면과 안동군으로 통하는 세 갈래의 길이 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며, 춘생동(春生洞)은 1170년 정중부의 난을 피해 문신들이 피란 와서 여기서 봄을 지냈다...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상리(上里)라는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전되어 내려오는 유래로는 조문성(召文城)이 생긴 뒤 성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자연 마을인 미지골[美之谷]은 마을 북편 뒷산의 울창한 삼림과 남쪽에 있는 수백 년 묵은 온갖 형상을 한 고목에 산새가 깃들어 지저귀고 맑은 시내가 흘러 그 주위 경관...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화(上禾)란 마을 앞 들이 넓고 기름져 특히 벼농사가 잘되는 곳이고 큰 소(沼)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수일(水逸)은 장마로 대수가 저도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다른 이름인 화동(禾洞)은 들이 넓고 기름져 특히 벼농사가 잘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적(新笛)은 경주 최씨가 정착하면서 숲을 개간하고 나서 기뻐서...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에 있는 봉수터 유적. 상화리 계란산 봉수터 유적은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의 봉우산에 자리하고 있다. 계란산 봉수는 조선 시대의 문헌 기록을 통해 직봉(直烽)의 노선에 포함됨을 알 수 있으며, 남쪽의 의성읍 고성산의 봉화를 받아 북쪽의 단촌면 관덕리 마산 봉수로 전달하였다. 현재 지름 25m 정도에 둘레가 100m가량 되는 외부 담장 석축이 확인되며, 봉...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유적. 상화리 산성터 유적은 축성 방법과 주변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삼국 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1832년경 간행된 『경상도읍지(慶尙道 邑誌)』의 의성현지(義城縣誌)에 계란산 봉수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계란산 봉수는 현의 북쪽 15리에 있는데 북쪽의 마산...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새마을 금고법」에 의해 설립·운영되는 금융 협동조합. 새마을 금고는 협동을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 고유의 상부상조 정신 계발과 국민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지역 사회의 발전을 통한 건전한 국민 정신 함양과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1963년 재건 국민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새마을 금고는 1963년 재건 국민운동의 일환...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1970년부터 시작된 범국민적 지역 사회 개발 운동. 새마을 운동은 1970년 4월 22일 한해 대책을 숙의하기 위하여 소집된 전국 지방 장관 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창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정부가 주도하는 농촌 근대화 운동으로서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이후 도시, 직장, 공...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합하면서 경상북도 비안군 단남면의 생물동과 송중동의 이름을 따서 생송동이라 하였다. 생물이란 임진왜란 때 마을이 전부 불타 없어지고 현재의 위치에서 재건되어 정착하면서 별신굿이 성행하여 움직이는 부락이라고 생물(生物)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송상(松上)[장승배기]이란 약 400년 전에 오씨가 마을 처음으로 개척하...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리동·원동·도구동·금릉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서리와 금릉의 이름을 따서 서릉동이라 하였다. 또한 서쪽에 언덕이 있다는 뜻에서 서릉리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깊으내는 짚으내, 심천(深川)이라고도 하는데, 약 450년 전에 이 마을을 개척하였을 때 마을이 비교적 지대가 낮고 마을 아래쪽에 우거진 갈대숲이 있...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군내면 창상동, 구교동, 서강동, 박연동, 신흥동을 병합하여 읍내의 서쪽에 위치하므로 서부동(西部洞)이라고 이름지었다. 자연 마을 서산밑은 서부동의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서쪽 산 아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박소는 마을 뒷산을 천박산(天朴山)이라 하고, 마을 모양이 박과 같이 생...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신지(申之), 호는 귀정재(歸靜齋). 할아버지는 서벽(徐璧)이고, 아버지는 서극제(徐克悌)이고, 어머니는 봉사(奉事) 박몽형(朴夢珩)의 딸 함양 박씨(咸陽朴氏)이고, 부인은 참판(參判) 손방(孫昉)의 딸 월성 손씨(月城 孫氏)이다. 서영희(徐永禧)[1584~1655]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외가가 있는 의성군 가음으로 이거...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사족의 교육·교화 기구인 동시에 대표적인 향촌 자치 기구의 하나이다. 특히 17세기 이후 경재소(京在所)가 혁파되고 그 중반 이후에는 유향소·향교의 질적 변화가 수반되면서 서원은 향촌 사림의 중심 기구로 부상하여 조선 사회에서 정치·사회·교육·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기능을 행사하였다. 현재...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하면서 경상북도 비안군 단서면의 구서동과 부제동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자연 마을 감산은 문화 유씨가 개척하면서 마을 뒤쪽에 두 개의 골짜기[간무골과 보석골] 형세가 가마솥과 같다 하여 가마산이라 했다가 감산[釜山]이란 말로 변음된 것이다. 구서는 오랜 옛날에 이씨·김씨·유씨가 처음으로 마을을 개척하여 유...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자락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 석불사(石佛寺)는 1971년에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자락리에서 창건되었다. 해망산[굴암산] 중턱의 병풍처럼 둘러싸인 암벽에 있는 3개의 자연 동굴을 이용한 석굴 사찰이다. 동쪽에 있는 가장 큰 동굴을 법당굴[석굴 법당(石窟法堂)]이라 부르고, 나머지 동굴은 각각 승당굴, 나한굴이라 한다. 약 4...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거석 기념물. 선돌[立石]은 고인돌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거석 문화이다. 선돌은 대개 단독으로 세워진 것이 많지만 유럽의 경우, 열을 지어 있거나, 원형으로 배치한 것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연석을 수직으로 땅에 세워 놓은 형태가 많다. 선돌은 크게 세 가지의 기능으로 구분된다. 첫째, 무덤의 표시, 즉...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에 있는 무소속 사찰. 선암사(仙岩寺)는 옛 선암사 절터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선암산 베틀 바위 아래에 있던 옛 선암사는 현재 남아 있는 석탑의 조성 연대로 보았을 때 신라 시대에 세워진 사찰로 추정된다. 현재의 선암사는 1963년에 백은봉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극락전, 산령각, 요사채, 용왕전, 3층 석탑이 있다. 최근에 미륵불과 약사여래불, 기도를...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전설·민담. 경상북도 의성군에는 신화·전설·민담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설화들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 중에는 의성 지역과 직접 관련된 설화도 있고, 특별한 관련성이 없는 설화도 있다. 의성군의 설화는 『의성 군지』, 『비안현의 문화와 오늘의 삶』, 『한국 구전 설화』, 『영남의 전설』, 『한국 구비 문학 대계』 등에 수록되어 있다...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에 있는 성균관 유도회 산하 의성 지역 지부. 조선 시대 최고의 교육 기관이었던 성균관은 한일 합병 이후 일제에 의해 경학원(經學院)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1945년 광복과 함께 옛 이름을 되찾고, 10월 성균관 명륜당에 유림 2,500여 명이 모여 공자의 유교를 근간으로 국민의 윤리 도의 정신을 함양한다는 목적으로 유도회를 설립하였다. 의성 지역에서...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칠성동(七星洞)과 조암동(槽岩洞)에서 한 글자씩 따서 성암(星岩)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칠성(七星)은 마을 앞 들판에 바위 7개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놓여 있어, 이를 길조로 보고 마을 이름을 칠성이라 하였다 한다. 주암 마을(珠岩 마을)은 마을 개척 때 마을 앞에 바위 3개가 있었는데, 구슬같이...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양곡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세레 저수지는 물이 세 곳에서 유입된다는 뜻에서 세레못으로 불리는 2종 저수지이다. 곤지봉(坤池峰)[327.8m]에서 발원한 소하천에 제방을 축조한 저수지이며, 국도 28호선을 따라 저수지로 들어오다 보면 전국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교촌 녹색 농촌 체험 마을이 있어 다양한 체험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세레 저수지는 농업용수...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세촌(細村)은 마을의 형태가 가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한 어떤 부부가 정착지를 찾던 중 많은 참새 떼가 있는 것을 보고 먹을 것이 풍부한 곳이라고 여겨 이곳에 살게 되었는데, 새가 많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하여 새목골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본래 의성군 단촌면의 지역으로서, 새목골 또는 세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
고려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소(所)는 수공업·광업·수산업 부문의 공물(貢物)을 생산하는 특수 행정 구역이었다. 소의 주민은 전문적인 물품 생산에 종사하는 공장(工匠)으로 신분적으로는 천민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한편으로는 일반 촌락 가운데 자연적·사회적 입지 조건에 따라 특정 물품의 생산에 유리한 촌락을 국가에서 지정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겉씨식물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 의성군에 분포하고 있는 소나무는 산지에서 자생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마을 어귀나 뒤편 등에 정자나무나 방풍림으로 심기도 한다. 의성군의 경우 보호수로 지정되는 나무는 대부분 느티나무, 회화나무 등 낙엽 활엽수여서 소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된 것은 안평면 금곡리, 안계면 도덕리, 안사면 월소리...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지역 중 소리동(小梨洞)에서 소(小)자를 따고, 이 지역에 못이 있기 때문에 소호(小湖)라 이름을 붙였다 한다. 자연 마을 흥전[흥경]은 본래 모고(慕古) 마을[현 모흥리 소재] 앞에 있었는데 이곳은 지네 형상의 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이어서 화재가 자주 발생하였다. 어느 학자가 그 산이 안 보이는...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속상동, 도암동, 속하동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속상동·속하동의 ‘속’자와 도암동의 ‘암’자를 따서 속암동이 되었다. 자연 마을 승당(勝堂)이라는 지명은 신라 시대에 마을에 절이 있었고 스님이 많았기 때문에 승당(僧堂)이라 하였으나, 이씨·정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면서 마을 이름이 자손이 번창하지...
-
조선 후기 의성군 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비안. 부사직(副司直) 손승렬(孫承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손절이고, 아버지는 손경지(孫景智)이다. 손윤업(孫胤業)[1568~?]은 어린 시절 가학을 전수받고, 고응경(高應擎)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1612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22년(광해군 14) 상주 지역 유림들과 도의를 나누며 사귀었다. 1633년 정경세(鄭經世)가 별...
-
개항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문호(文虎), 호는 추하(秋河). 부인은 능주 구씨(綾州 具氏)이다. 손정표(孫廷彪)[1849~?]는 지금의 의성군 춘산면 신흥리 일대에 거주하였는데, 어려서 천성이 총명하였고 성장함에 문장이 훌륭했다고 한다. 고종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을 역임하였다. 스스로 호를 추하(秋河)라 정하였으며, 고향 신흥리에서 친우들과 학문...
-
조선 후기 경상도 비안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복(福). 손경원(孫敬源)의 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회령 판관(會寧 判官)을 지낸 손근(孫瑾)이고, 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손의형(孫義亨)이고,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 손전(孫荃)이고, 어머니는 우성윤(禹成允)의 딸 숙부인(淑夫人) 단양 우씨(丹陽 禹氏)이고, 처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화동(松花洞)과 사호동(沙湖洞)의 이름을 따서 송호동(松湖洞)이라 하였다. 송화는 소나무가 울창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내송화는 송화의 안쪽 마을이기 때문에, 외송화는 내송화에 비해 바깥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외송화는 내송화 보다 후에 생겼다 하여 샛터라고도 불린다. 사호는 1525년...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산운 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영천 이씨(永川 李氏) 가옥. 수락당이 위치한 산운 마을은 이광준이 이주한 이래 현재까지 영천 이씨 후손들이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다. 안동 김씨(安東 金氏)가 세거하고 있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의 사촌(沙村) 마을과 더불어 의성 지역의 대표적인 양반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수락당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정리(水淨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수정(水淨)에서 나온 명칭으로, 마을 뒤 골짜기의 물이 맑아 수정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마을 개척 당시 수정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정동, 소산동, 가평동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산운면 수정동이 되었다. 1934년 2월 1일 금성면에 편입되...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 수정사(水淨寺)는 신라 신문왕 때 의상 대사(義湘 大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의상 대사는 깊은 골짜기 울창한 송림 사이에서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고 하여 ‘수정사’라 했다고 한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금학산(金鶴山) 수량암(修量菴)...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순호리(蓴湖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순호(蓴湖)에서 나온 명칭으로, 이곳 못에서 식용 물풀인 말이 많이 나와, 수초(水草)의 뜻을 가지고 있는 한자 순(蓴)과 호수 호(湖)를 합하여 순호라 불렀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의 순호동, 호상동, 상동, 순중동, 순하동을 병합하여 의성군 가음면 순호동...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시동, 안계동, 태양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시동과 안계동의 이름을 따서 시안동[시안리]이라 하였다. 안계는 1660년 가락왕 6세손 김사일이 통훈대부(通訓大夫) 중구원참의(中柩院參義)로 있을 때 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당시 들이 넓고 산수가 수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감곡, 시곡, 감나무골,...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시장이란 상품이 교환되는 구체적인 장소를 일컫는 말로 ‘장시(場市)’ 또는 ‘장(場)’ 이라고도 부른다. 시장의 형식은 5일, 또는 10일의 간격을 두고 정기적으로 열리는가, 매일 열리는가에 따라 정기 시장과 상설 시장으로 구분된다. 전통 사회에서의 시장은 대개 5일마다 한 번씩 서는 정기 시장인 오일장(五日場)이었다. 시장은 대개...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생육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 경상북도 의성군 일대의 산지에는 대부분 소나무가 우점하고 있다. 그 외 갈참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아카시아나무, 느티나무, 산수유나무 등이 분포한다. 도로를 따라서 아카시아나무, 은행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다. 하천변을 따라 굴참나무와 칡, 돼지풀, 갈퀴덩굴, 다래, 느릅나무, 산수국, 개암나무 등이 생...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지언(知彦), 호는 원재(元齋). 아버지는 신준(申埈), 어머니는 손지효(孫至孝)의 딸 경주 손씨(慶州 孫氏)이고, 할아버지는 신흠도(申欽道), 증조할아버지는 상호군(上護軍) 신한(申僩)이다. 처는 장원준(蔣元浚)의 딸 아산 장씨(牙山 蔣氏)이다. 신내석(申乃錫)[1691~1742]은 1691년(숙종 17) 경...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형보(亨甫), 호는 만오(晩悟). 신준정(申俊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신수(申壽)이고, 아버지는 신흘(申仡)이며, 어머니는 박윤(朴倫)의 딸 순천 박씨(順天 朴氏)이고, 부인은 이난수(李鸞壽)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신달도[1576~?]는 어려서 족형(族兄) 신홍도(申弘道)에게 학문을 배우고, 16세...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신당 저수지는 용기리에 있는 2종 저수지이다. 유서 깊은 곤지봉(坤池峰)[327.8m] 아래 경관이 아름답고 못 인근에 있는 전국적인 인지도가 있는 교촌 녹색 농촌 체험 마을이 있어 다양한 체험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신당 저수지는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축조한 농업용 저수지로 1938년 1월 5일에 인·허가를 받았으며,...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사동과 고락동, 신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산(申山)과 고락(高樂)의 이름을 따서 신락(申樂)이라 하였다. 신산은 산세가 원숭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락은 인근 지방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옹기점이 있었다고 하여 ‘점마을(店 마을)’이라 하던 것을 일제 시대부터 고락이라고 바꾸어...
-
개항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선장(善章), 호는 남헌(楠軒). 신정모(申貞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지현(申之炫)이고 아버지는 신석교(申奭敎)이며, 어머니는 남양 홍씨(南陽 洪氏) 홍윤국(洪綸國)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 유씨(全州 柳氏) 유성문(柳星文)의 딸이다. 신면형(申冕瀅)[1832~1908]은 어렸을 때 총명하고 덕이 있었으며, 성장함에 따라 고...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치명(穉鳴), 호는 우은(愚隱)이다. 아버지는 신필교(申必敎), 어머니는 류경원(柳景源)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 할아버지는 신광헌(申光憲), 증조할아버지는 신정표(申正標), 부인은 권정모(權正模)의 딸 숙인(淑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 후처는 조석교(曺錫敎)의 딸 숙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로 알려져 있다. 신면횡...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이 고령(高靈). 교리(校理)를 지낸 신호(申濩)의 손자이다. 신복성(申福成)[1568~1628]은 서울에 거주하다 도호(道湖) 마을, 현재 의성군 단밀면 용곡 1리로 옮겨와 살았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어질었으며, 자라서는 그 마음이 청렴하고 검소하였다. 그리고 형제들과의 우애 또한 두터웠다. 161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단북(丹北)의 월봉산...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극첨(極瞻), 호는 수은(洙隱). 신덕주(申德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극모(申極模)이고, 아버지는 신광병(申光炳)이며, 어머니는 성주 도씨(星州 都氏)로 도이윤(都以潤)의 딸이고, 부인은 의흥 박씨(義興 朴氏)로 박신조(朴信祖)의 딸이다. 신상교(申尙敎)[1812~1872]는 1836년(헌종 2) 별시(別試) 무과...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언유(彦由).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신수(申壽)이고, 할아버지는 증 호조 참의(贈 戶曹 參議) 신원록(申元祿)이고,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을 지낸 신심(申伈)이고, 어머니는 사맹(司猛)을 지낸 장륜(蔣崙)의 딸 의인(宜人) 아산 장씨(牙山 蔣氏)이고, 부인은 이시경(李時慶)의 딸 성산 이씨(星山 李氏...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압수골[鴨水], 소주골, 신방(新坊) 등 3개의 자연 마을을 병합하여, 신방의 신(新)자와 압수의 수(水)자를 합하여 신수라 하였다. 압수란 조선 시대 박세상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이 바위가 많고 물이 맑다 하여 암수라고 불러오다가 압수라 하였다 한다. 신방은 오랜 옛날 처음으로 마을이 형성될 때 하나의 동...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희지(喜之), 호는 흥계(興溪). 증조할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신준정(申俊禎)이고,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신수(申壽)이고, 아버지는 증 호조 참의(贈 戶曹 參議) 신원록(申元祿)이고, 어머니는 이병절(李秉節)의 딸 증 숙부인(贈 淑夫人) 벽진 이씨(碧珍 李氏)이고, 부인은 사맹(司猛)을 지낸 장륜(蔣崙...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안사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사설 교육 기관. 조선 후기 청도 김씨 문중에서 설립한 서당이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안사리는 1600년을 전후하여 청도 김씨가 마을을 개척한 이래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신안 서당(新安 書堂)의 위치를 알려주는 조선 시대 자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신안 서당의 전통을 계승한 체화정(棣華亭)은 경상북도 의성...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진보(晉甫), 호는 나재(懶齋). 신준정(申俊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수(申壽)이며 아버지는 신흘(申仡)이고, 어버니는 순천 박씨(順天 朴氏)로 박윤(朴倫)의 딸이며, 부인은 문소 김씨(聞韶 金氏)로 김굉(金浤)의 딸이다. 신열도(申悅道)[1589~1659]는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6년(선조...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이며 효자. 본관은 아주(鵝洲). 호는 퇴재(退齋). 아버지는 신윤유(申允濡)로 아주 신씨(鵝洲 申氏) 의성 입향조이다. 부인은 약목 유씨(若木 柳氏)이다. 신우(申祐)는 생몰년 미상이며, 고려 충혜왕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봉상(奉常)·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을 거쳐 호군(護軍)에 이르렀다. 일설에는 전라도 안렴사(全羅道 安廉使)에 이르렀다고도 한...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계수(季綏)·순보(順甫). 호는 회당(悔堂). 퇴재(退齋) 신우(申祐)의 6세손이다. 참봉(參奉)을 지낸 신수(申壽)의 다섯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형은 신석록(申錫祿)과 신택록(申宅祿)이며, 동생은 신도수(申道洙)와 신헌록(申憲祿)이다. 신원록(申元祿)[1516~1576]은 효성과 학문이 모두 뛰어났다. 11세가 되던...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첫 이름은 신원유(申元濡)이다. 부인은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아주 신씨(鵝洲 申氏) 의성 입향조이다. 신윤유(申允濡)는 생몰년 미상이며,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냈는데, 고려가 멸망하자 현재의 의성군 단밀면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그의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의에 대해 당대 사람들은 당개(唐介)에 버금간다 하...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영산(靈山), 초명은 희필(希弼), 호는 돈암(遯巖). 신춘(辛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 참의(工曹 參議) 신세조(辛世祖)이며, 아버지는 원종공신(原從功臣) 신한수(辛漢壽)이고, 어머니는 연일 정씨(延日 鄭氏)로 정홍준(鄭洪峻)의 딸이며, 부인은 광산 김씨(光山 金氏)로 김인태(金仁泰)의 딸이다. 신재호(辛在浩)[1514~?]는 15...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경해(景楷), 호는 이치재(二恥齋). 신채(申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대석(申大錫)이고, 아버지는 신덕일(申德溢)이며, 어머니는 이성구(李星耈)의 딸 예안 이씨(禮安 李氏)이고, 부인은 안이순(安履順)의 딸 순흥 안씨(順興 安氏)이다. 숙부인 신덕순(申德洵)에게 출계하였다. 신정모(申正模)[1691~1742]는 어려서는...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경백(景伯), 호는 도와(陶窩). 신성구(申聖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도발(申道潑)이고, 아버지는 신종인(申種仁)이며, 어머니는 선산 김씨(善山 金氏) 김기대의 딸이고,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 金氏) 김원묵(金元黙)의 딸이다. 신정주(申鼎周)[1764~1827]는 3~4세에 글을 해독하기 시작해 7~8세에 『통감(通鑑)...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의성에는 기성 종교가 일찍부터 폭넓게 자리를 잡고 있어 신종교가 활동하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신종교로서 의성에 처음으로 진입한 것은 이웃하는 대구에서 창시된 성덕도로 1954년에 포교를 시작했다. 이후 통일교, SGI(국제 창가 학회), 원불교, 여호와의 증인 등이 차례로 의성 지역에 들어왔다. 1. 성덕도 1952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관료.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순부(順夫), 호는 오봉(梧峰). 고려 충신 효자 신우의 후예이고, 구미파조(龜尾派祖) 신광귀(申光貴)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신몽득(申夢得)이고, 부인은 함안 조씨(咸安 趙氏)이다. 아들은 신홍망(申弘望)이고, 형제로는 신지효(申之孝), 신지신(申之信), 신지의(申之義), 신지행(申之行), 신지경(申之敬), 신지훈(申之訓)...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에 있는 전통 시장. 시장은 일반적으로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분류된다. 상설 시장은 일정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항상 상품의 매매와 교환을 하고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내에서 닷새마다 한 번, 또는 열흘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의성 지역의 시장은 상설 시장 1곳, 정기 시장 9곳이며, 상설 시장은 의성읍에...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신동, 마전동, 평기동에서 신동과 평기동의 이름을 따서 신평(新坪)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신동(新洞)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며, 새골로도 불린다. 마전(麻田)은 삼밭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평기(坪基)는 평야 지대에 기반을 세웠기 때문에 평기라 했으며, 갓 모양으로 생긴 마을 뒷산 줄기 안...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신평면은 의성군의 서북부로 산악 지대가 많은 지역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검곡리·교안리·덕봉리·용봉리·중율리·청운리 등 6개 법정리와 11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경주 김씨, 김녕 김씨, 달성 서씨, 평해 황씨, 안동 김씨, 전주 김씨, 남원 양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경주 김씨는...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에 있는 신평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신평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신평면사무소는 의성군 신평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신평면은 조선 시대 의성군 우곡면(牛谷面)이라 불리었다가 1909년 의성군 비안면에 편입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신하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병합된 지역 중 신기동과 하제동에서 이름을 따 만들어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인 밤갖 마을은 밤가 마을, 율지(栗枝) 마을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개척할 때 밤나무가 무성하기 때문에 이름 붙였다 한다. 새터 마을은 신기(新基) 마을이라고도 하는데, 밤갖 마을이 커짐에 따라 마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대중(大中), 호는 정봉(鼎峰). 신수(申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원복(申元福)이고, 아버지는 신엄(申儼)이며, 어머니는 충순위(忠順衛) 선산 김씨(善山 金氏) 김윤덕(金潤德)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 김씨(安東 金氏) 김응용(金應鏞)의 딸이다. 신홍도(申弘道)[1558~1612]는 6세에 『대학』, 9세에 『논어』를 읽...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망구(望久), 호는 고송(孤松). 신응규(申應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몽득(申夢得)이며, 아버지는 승지 신지제(申之悌)이고, 어머니는 함안 조씨(咸安 趙氏)로, 조지(趙址)의 딸이며, 부인은 영천 이씨(永川 李氏) 이민환(李民寏)의 딸이다. 신홍망(申弘望)[1600~1673]은 1627년(인조 5) 진사시에 급제한...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쌍계 교회는 김인옥, 이성준이 군위의 봉황 교회에 다니다가 1903년 의성군 비안면 신묘동에 초가를 매입하여 예배당을 마련하면서 시작되었다. 1903년 3월 15일에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박영화가 초대 목사를 지냈다. 1906년 신묘동에서 의성군 비안면 쌍계동 572번지로 교회를 이전하였다. 1919년 3월...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초에 처음 사람들이 정착했는데 멀리 팔공산(八公山)에서 흐르는 물[위천]을 따라 내려와 보니 의성 금성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쌍계천]과 합수가 되는 곳이므로 쌍계라 이름을 붙였다 한다. 본래 경상북도 비안군 신동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의성군 비안면 쌍계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오리 사금령 일대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비안면 쌍계리 부근에서 위천으로 흘러들어 가는 하천. 쌍계천은 춘산면 금오리의 사금령, 문봉산, 화목재 일대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 문봉산의 서쪽 사면에서 서쪽 방향으로 흘러 비안면 쌍계리 부근에서 위천과 합류한다. 쌍계천은 길이가 36.75㎞, 최대 하폭은 130m, 그리고 유역 분지의 면적이 501.49㎢로 규...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단오나 체육 대회 때 두 사람이 서로 샅바를 맞잡고 힘과 기술을 부리어 상대를 먼저 땅에 넘어뜨려 승부를 결정하는 놀이. 씨름은 의성 지역에서 단오를 비롯한 여러 명절날과 의성 체육 대회 때 두 사람이 서로 샅바를 맞잡고 힘과 기술을 부리어 상대를 먼저 땅에 넘어뜨려 승부를 결정하는 놀이이다. 씨름이라는 말의 어원은 영남 지방에서 서로 버티고 힘을 겨룬다는...
-
신익휴를 시조로 하고 신윤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 아주 신씨(鵝洲 申氏)는 평산 신씨(平山 申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평산 신씨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 공신인 신숭겸(申崇謙)으로 그 12세손인 신익휴(申益休)는 고려 말에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金紫光祿大夫 門下侍郞)을 지내고 아주군(鵝洲君)에 봉해졌다. 한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조선 씨족 통...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에 있는 가톨릭 안동 교구 소속의 성당. 1959년 4월 1일 예천 본당 안계 공소로 인가되면서 예배소로서의 출발을 시작하였다. 1961년에는 다인 본당으로 소속이 이전되었다가, 1972년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안덕화[베드로]가 초대 신부로 부임해 왔다. 1980년 성전을 완성하였으며, 1992년에 기공한 사제관과 교육관이 1997년에 완공되고 이때 어린...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에 있는 전통 시장. 시장은 일반적으로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분류된다. 상설 시장은 일정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항상 상품의 매매와 교환을 하고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내에서 닷새마다 한 번, 또는 열흘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의성 지역의 시장은 상설 시장 1곳, 정기 시장 9곳이며, 상설 시장은 의성읍에...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안계면은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곡창 지대로 널려 알려진 지역이다. 들이 넓어 고대부터 촌락이 발달하였다. 면소재지에는 시장이 발달되었고, 서남쪽으로 위천을 끼고 광활한 안계 평야가 곡창을 이루며, 의성군 서부 6개 면의 생활 및 교통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교촌리·도덕리·봉양리·시안리·안정리·양곡리·용기리·...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에 있는 안계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안계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안계면사무소는 의성군 안계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안계면은 의성군의 서부 중심 지역에 위치하는데 신라, 고려, 조선 초기까지는 안정현(安定縣) 지역이었는데, 세종 때부터 비안(...
-
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자첨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 안동 김씨는 신라 경순왕 김부(金傅)의 손자인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구(舊) 안동 김씨와 고려 태사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신(新) 안동 김씨로 나뉜다. 구 안동 김씨의 중시조는 고려 원종 때 시중(侍中) 삼중대광 첨의중찬(三重大匡 僉議中贊)을 지낸 김방경(金方慶)이다. 이후 김방경의 아들과...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는 세무 행정 기관. 안동 세무서 의성 지서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발생하는 내·외국세 징수 및 상담을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32년 5월 1일 의성 세무서로 발족하였으며 청사는 구 문소 객관이 있던 자리로 정하였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청사가 소실되고 1954년 3월에 현 청사를 신축하였다. 1962년 1월 안동 세무서에 흡수되...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안심·탑동·목사동을 병합하면서 안심의 안(安)자와 목사의 사(寺)자를 따서 안사라 하였다. 안심은 외부로부터 침해를 받지 않고 편안히 살 수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목사는 무성한 수풀 속에 사찰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자연 마을 탑동은 과거에 탑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석현은...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안사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영남읍지(嶺南邑誌)』를 보면 “고두암(高頭菴)이 비안현 북쪽 35리 만경산(萬頃山)의 산봉(山峯)에 있다”고 하였는데, ‘고도사(高道寺)’라 표시한 지도의 위치로 보면 만경산은 지금의 고도산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도사가 있었던 곳은 현재 의성 안사동 석조 여래 좌상이 있는 곳 일대로 추정된다. 절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안사면은 평지가 별로 없는 산간 지역으로, 면적은 넓으나 마을은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안사리(安寺里)·중하리(中河里)·만리리(萬里里)·신수리(新水里)·월소리(月沼里)·쌍호리(雙湖里) 등 6개 법정리와 13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평해 황씨, 밀양 박씨, 경주 김씨, 청도 김씨가 많이 살고 있다. 평해 황씨는 만...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안사리에 있는 안사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안사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안사면사무소는 의성군 안사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의성현, 다인현, 용궁현에 속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비안군과 용궁군에 각각 속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에 봉성동, 대지동, 고현동을 병합하여 안정동[안정동]이라 하였다. 안정(安定)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1479년(성종 10)에 판돈녕부사 안중선(安仲善)이 관직을 버리고 정착하였다고 하여 안정이라 칭하였다고 하는 설과, 다른 한 가지는 신라 문무왕 때 나구열(羅龜烈)이라는 농부가 마...
-
고려 초에서 1421년까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안정현은 원래 신라의 아시혜현(阿尸兮縣)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경덕왕 때 아시혜현을 안현현(安賢縣)으로 고치고, 문소군의 영현으로 삼았다고 한다. 『고려사』 지리지 안정현(安定縣)조에 따르면 고려 초에 안현현을 안정현으로 변경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에서의 ‘고려 초’는 대체로 940...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박곡리에 있는 전통 시장. 시장은 일반적으로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분류된다. 상설 시장은 일정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항상 상품의 매매와 교환을 하고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내에서 닷새마다 한 번, 또는 열흘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의성 지역의 시장은 상설 시장 1곳, 정기 시장 9곳이며, 상설 시장은 의성읍에...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구평리와 안곡동[안실]의 이름을 따서 안평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안실(安實, 安室, 鴈室)은 하천의 물이 풍부하고 농경지가 넓어 안전하고 알차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상안(上安), 중안(中安), 구평(九坪) 등을 통칭하여 안실이라 불러 왔으나, 상안만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안실(安室...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안평면은 산지 능선에 마을이 분포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대부분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소하천의 유역에 형성된 퇴적층을 경작한다. 의령 옥씨, 해주 오씨, 여산 송씨, 청도 김씨, 해주 최씨, 양근 김씨, 연일 정씨 등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의령 옥씨는 안평면 기도 1리 치실 마을에 세거하고 있다. 1470년에 의...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박곡리에 있는 안평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안평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안평면사무소는 의성군 안평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의성현 석전면, 안평면, 비안현의 외북면을 합하여 의성군 안평면이라 개칭하였다. 2014년...
-
757년부터 고려 초까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안현현(安賢縣)은 원래 신라의 아시혜현(阿尸兮縣)이었다. 아시혜현은 아을혜(阿乙兮)라고도 불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경덕왕 때 아시혜현을 안현현으로 고치고, 문소군의 영현으로 삼았다고 한다. 안현현의 명칭 변경은 757년에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고유 지명과 관직명을 모두 중국식으로 고치는 과정...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주변의 송곡동과 태양동, 시동의 일부와 현동면의 운곡동, 용강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태양동의 ‘양’자와 송곡의 ‘곡’자를 따서 양곡이라 하였다. 태양(太陽)은 1359년 고려의 유신인 강릉 김씨 김사민(金俟民)이 남하하여 마을을 이루면서 붙인 명칭이며, 송곡(松谷)은 솔숲이 우거진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곤동(陽昆洞)의 ‘양’자와 이웃 서동동(西東洞)의 ‘서’자를 따서 양서라고 오늘날까지 부르게 되었다. 비봉산의 ‘봉(鳳)’은 대나무 열매[竹實]를 먹고 산다하여 마을 이름을 곤대[昆竹]라 하였으며 양지쪽에 있는 마을을 양지 곤대, 음지쪽에 있는 마을을 음지 곤대라 하였고, 이를 줄여서 양곤(陽昆), 음곤...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지(陽地)는 조선 세조 때 박성양(朴成陽)의 손자인 박유부(朴有阜)가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따라 양지 바른 곳에 터를 정하면 후손이 번창한다는 말을 듣고 이웃 마을인 들감[上佳山]에서 이곳으로 정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 마을 반대편 동쪽에는 음지 마을이 있는데, 여흥 민씨(驪興閔氏)가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음지 마을은 후에...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지는 본래 경상북도 의성군 내사면의 지역으로, 양지골, 양지마라고 불려졌다. 양지바른 곳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 중평(中坪)은 귀평과 월평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귀평 1598년 이자남이 개척한 마을로 뒷산에 거북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 한다. 구눌(求訥)은 조선 후기 정호공이 마을을 개...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업리라는 이름은 업동(業洞)에서 유래되었다. 업동은 마을 뒷산에 있는 용(龍)의 형상을 한 바위에 가서 정성껏 치성을 드리면 업(業)을 얻어 득남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이 골짜기를 업골[業谷]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인 우두동은 업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쇠머리처럼 생겼다. 이외에도 살구나무에 둘러싸인 행촌, 무당이 많이 거...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여성의 권익 증진을 위해 전개하는 활동. 여성 운동은 여성의 권리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사회 운동이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확보하고, 여성 스스로 직업과 생활양식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을 말한다. 우리나라 여성 운동은 개화기 및 일제 강점기 치하의 사회적 여건과 민족적 요청...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상리리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교회. 여호와의 증인은 1872년 미국에서 러셀이 창립한 기독교 계열의 신종교이다. 1916년 러셀 사후 러더퍼드가 승계하면서, 교리의 가르침에 성실한 회원을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912년 선교사 홀리스트가 전도 활동을 펴면서 전래되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일반적인 기독교와 달리 목사나 전도사 등...
-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의성 지역은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하여 청동기 시대에 삼한의 소국이 이곳에 성립되었다. 삼한의 소국 가운데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단밀면]·여담국(如湛國)[금성면 탑리리], 조문국[금성면] 등이 의성 지역에 존재하였다고 비정되고 있다. 185년(신라 벌휴이사금 2)에 조문국을 정벌한 신라는 조문군(召文郡)을 설치했다. 신라가 삼...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바람을 이용하여 연을 하늘에 띄우는 놀이. 연날리기는 종이에 댓가지를 가로세로로 붙여 만든 연을 바람을 이용해 하늘에 띄우는 것이다. 의성 지역에서는 주로 정월 대보름날이나 ‘의성 국제 연날리기 대회’ 때 의성군 안계면에 있는 위천(渭川) 둔치에서 행해지고 있는 민속놀이이다. 현재의 연날리기는 1980년에 ‘의성 민속연 보존회’를 창...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시안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연저수지는 대구에서 국도 5호선, 중앙 고속 도로를 이용하여 의성 IC에서 내려 안계 방면 국도 28호선을 따라 가다 안계면 소재지를 막 벗어나면서 우측으로 행복 웨딩이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면 시안리에 있는 2종 저수지이다. 옛날 옛적에 연저수지 자리에는 민가가 있었으며, 그 집에서는 옥동자를 분만하였는데 태어난 아이는 그...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된 지역 중 상연동[상련동]과 우제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연제동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자연 마을인 상연 마을(上連 마을) 일대는 3개 마을이 연결되어 있는 곳으로, 위치에 따라 상연(上連)·중연(中連)·하연(下連)이라 불렀는데, 상연 마을은 그 중에 가장 위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이곳에서 아홉 마리의...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전통 사회에서 여자는 주체적인 존재라기보다 남자에 종속된 존재였다. 따라서 결혼한 여인은 남편을 보필하고 집안을 건사하는 것을 가장 큰 책임으로 여겼고, 이를 위해 여인들은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받았다. 남편이 위급한 때는 단지수혈(斷指輸血)하는 것은 물론이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정조를 지키기 위해 남편을 따...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영귀정(詠歸亭)은 조선 전기의 학자 김광수(金光粹)[1468~1563]가 세운 정자이다. 김광수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松隱)이며, 유성룡(柳成龍)의 외조부이다. 1501년(연산군 7) 32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다가 혼란한 정국을 뒤로하고 낙향하여 영귀모암(詠歸茅菴)을...
-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하고, 이광준(李光俊)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 영천 이씨(永川李氏)의 시조는 고려 때 평장사를 지낸 이문한(李文漢)이며, 그의 후손인 신호위 대장군(神虎衛 大將軍)을 지내고 영양군(永陽君)에 봉해진 이대영(李大榮), 봉승랑(奉承郞) 겸 관농 방어사(觀農 防禦使) 이중영(李仲榮), 문하시중 평장사 이수춘(李守椿)을 각각 중시조로 하는...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금산(錦山). 고려 말의 충신으로 해주 오씨 의성 입향조이다. 오국화(吳國華)는 생몰년 미상이며,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예의 전서(禮義 典書) 등을 거쳤다. 1392년(공양왕 4) 경상도 안렴사(慶尙道 安廉使)가 되어 의성 지역을 순시하였는데, 그때 마침 정몽주가 이성계(李成桂) 일파를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선죽교(善竹橋...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오로리는 북쪽으로는 남대천이 굽이쳐 흐르는 연안에 비교적 넓은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나머지 삼면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의 서쪽으로 중앙선 철도와 국도 28호선이 관통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정자동, 먹골, 큰골, 수음골, 온옥골, 새동네가 있다. 오로리(五老里)로 불리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오토산(五土山)...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있는 아주 신씨 오봉공파의 종택 건물. 오봉 종택(梧峰宗宅)은 조선 시대의 문신인 신지제(申之梯)[1562~1624]를 파조로 삼고 있는 아주 신씨(鵝洲 申氏) 오봉공파(梧峰公派)의 종택이다. 살림집인 오봉 종택, 서당인 낙선당(樂善堂), 사당인 오봉 사당(梧峰祠堂) 등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1987년 5월 13...
-
개항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원지(元趾). 증조할아버지는 오계조(吳啓兆)이고, 할아버지는 오시익(吳始益)이다. 생부는 오점근(吳點根)이고, 생모는 권희준(權希俊)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 양부는 오덕근(吳德根)이고, 양모는 김인술(金仁述)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부인은 이한성(李漢星)의 딸 숙부인(淑夫人)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고, 후처는...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오일순(吳一淳)이고, 할아버지는 오득심(吳得心)으로 임진왜란 중 군기 장리(軍器 掌吏)로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하여, 삭령진(朔寧陣)에서 전사하였다. 동생으로 오찰립(吳札立)이 있다. 오자립(吳自立)[?~1637]은 경상도 의성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오일순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1636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고려징사(高麗徵士) 오국화(吳國華)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오충지(吳忠智)이고, 어머니는 진산 강씨(晉山 姜氏)이고, 부인은 이상지(李祥之)의 딸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다. 오천송(吳千松)[?~1639]은 경상도 의성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인 오충지가 사망하자 묘소를 구봉산 넘어 어의곡(於...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숙(子淑). 아버지는 오필달(吳必達)이다. 해주 오씨는 오철조의 6대조인 오국화(吳國華) 때부터 의성에 거주하였다. 오철조(吳哲祖)[1645~1717]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픔을 이기지 못해 몸이 상할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그가 첫돌 때 세상을 떠나 철모르고 상복을 입은 것을 죽는 날까지 마음의 응...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삼춘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옥련사(玉蓮寺)는 신라 흥덕왕[826~836] 때 덕운(德雲)이 창건했다. 의상 대사가 주월사, 운람사와 함께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옥련사라는 명칭은 절 아래에 있는 연못에 연꽃이 구슬같이 아름답게 핀다는 데서 유래한다. 고려 공민왕 때 편조(遍照)가 중창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입암리에 있는 전통 시장. 시장은 일반적으로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분류된다. 상설 시장은 일정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항상 상품의 매매와 교환을 하고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내에서 닷새마다, 또는 열흘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의성 지역의 시장은 상설 시장 1곳, 정기 시장 9곳이며, 상설 시장은 의성읍에 자리 잡...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의성군 옥산면은 104.1㎢의 면적으로 의성군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이 연접된 곳이다. 옥산면은 처음에는 35개동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10개의 법정동과 17개의 행정리·행정동으로 개편되었다. 옥산면에는 안동 권씨와 성주 도씨, 아주 신씨, 경주 최씨,...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구성리에 있는 옥산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옥산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옥산면사무소는 의성군 옥산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옥산면은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과 청송군 현서면이 연접된 곳으로 처음 35개 동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1...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 경상북도 비안군 군내면의 옥포동과 구연동의 이름을 따서 옥연동(玉淵洞)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옥포는 마을 뒷산에 옥바위가 있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마을 앞산은 소쿠리 모양으로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지형이므로, 옥을 감싼다는 뜻으로 옥포라 하였다고 한다. 갓동네는 옥포 뒤에 있는 마을로, 가장 가...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리에 있던 조선 후기 사당. 옥천사(玉川祠)는 박장춘(朴長春)[1523~1595]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박장춘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원백(元伯), 호는 우천(愚泉)으로 명곡 서원(明谷 書院)[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금성현서로 553-9]에 제향 된 박성양(朴成陽)의 5대조다. 옥천사의 위치는 박장춘 유허비(朴長春 遺墟碑)를 통해 짐작...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중율리, 단촌면 구계리, 의성읍 팔성리 일대에 있는 왜가리 집단 서식지.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중율리, 단촌면 구계리, 의성읍 팔성리 일대에는 왜가리가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다. 매년 신평 왜가리 축제가 개최되고 있으며, 왜가리 전통 생태 마을을 조성하는 사업 또한 벌이고 있다. 왜가리는 의성군을 상징하는 군조이기도 하다. 왜가리는 몸길이 76㎝, 날개 길이...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 자연 마을인 일곡, 성곡, 자포곡을 합하여 바깥쪽 골짜기라는 의미로 외곡(外谷)이라 이름 붙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내북면의 자포동, 일곡동, 성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비안면 외곡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외곡리가 되었다. 자연 마을 일곡...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산정동, 외산정동, 고락동 일부를 병합하여 외산정동의 이름을 따서 외정동이라 하였다. 외정은 본래 산 안에 맑은 물이 흘러넘치는 우물이 있어 산우물[山井]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에 행정상 안 산우물은 외정 1리, 바깥 산우물은 외정 2리로 개편되어 외정으로 불리고 있다. 구지동은 못이 아홉개가 있다 하여...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합하면서 경상북도 비안군 현내면의 반용동과 우곡동의 이름을 따서 용곡동이라 하였다. 동동(東洞)은 고려 말 밀성 고을이 현재 양서 2리에 위치였는데 밀성 마을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반용(蟠龍)은 조선 후기 광해군 때 정변으로 좌승지 김진수가 도피처를 찾아 낙동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풍양면 경계 섬바산...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단서면의 돌이비, 수월, 뉘실, 신천을 병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용곡동(龍谷洞)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돌이비는 조선 시대에 개척되었으며 마을 뒤편에 나정승(羅政承)의 하마석(下馬石)이라는 비석이 있기 때문에 이를 돌아서 다녔다녔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돌이비라 불렀다 한다. 그 후 신...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병합하면서 용동과 내남동, 외남동의 이름을 따서 용남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용동은 마을 개척 당시 닥나무가 많아 닥나무골이라 하였으나, 마을 옆에 용천(龍泉)이라는 우물이 있어 용동이라고 개칭하였다 한다. 진등은 마을 산의 능선이 길어서, 긴등이 되었는데 긴을 방언 진으로 발음하여 진등이라 한다. 안남산...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단북면에서 다인면으로 편입되면서 용산의 용자와 무릉의 무자를 합하여 용무리가 되었다. 용산(龍山)은 마을 뒷산이 용같이 새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정시라는 선비가 개척하였다고 한다. 무리 혹은 무릉(武陵)은 임진왜란 전후에 금도평(琴道平), 최경(崔璟) 두 사람이 산수가 아름다운 이곳을 정착하여 개척했는데, 특히 봄철에 복숭아꽃이 산야...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용무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용무리 고인돌은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용무리 산11에 있다. 다인면사무소에서 왼쪽으로 서릉길을 따라 250m 이동하여 지방도 923호선[자미로]을 따라 남서쪽 다인면 방향으로 3㎞ 정도 이동하면 용무리가 나오고 650m 정도 더 가면 오른쪽으로 소로가 있다. 소로를 따라 다시 600m 정도 더 가면 의성군 상하수도 사업...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 병합된 지역 중 용신동, 상사동·하사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용사(龍蛇)라 이름을 붙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단동면의 간제동, 상사동, 하사동, 용신동, 신천동 일부와 비안군 외서면의 비산동 일부를 병합하여 구천면 용사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용사리...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에 북부면의 시동과 상신동, 하신동을 병합하면서 시동의 ‘시’자와 상신, 하신의 ‘신’자를 따서 시신동이라 하였다. 또한 1870년경 아주 신씨 신봉석(申奉錫)이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하여 새로운 마을로 개척한 동네라고 하여 시신동(是新 洞)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시신(屍身)과 동음어로서 어감 좋지 않...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병합된 후천동에서 ‘천(川)’자를 따고, 마을 앞 위천(渭川)에 용소(龍沼)가 있으므로 ‘용(龍)’자를 따서 용천동(龍川洞)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로는 용천 1리에 뒤천[후천(後川)], 용천 2리에 선마[서원 마을] 등이 있다. 뒤천은 위천을 경계로 옛 비안군의 소재지[현재 비안면 동부리·서부리]에서 뒤쪽에...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문경(文景). 우종(禹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숭(禹崇)이고, 아버지는 우성금(禹成金)이고, 어머니는 김귀난(金貴難)의 딸 김해 김씨(金海 金氏)이고, 부인은 서승봉(徐承鳳)의 딸 달성 서씨(達城 徐氏)이다. 우선희(禹善希)[1660~1744]는 지금의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에서 태어나서 중년에 의성군 단북면 이연리로 이...
-
조선 전기 의성에 입향한 관료.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즉(聖則), 호는 만수재(晩修齋). 고려 말 유학자 역동(易東) 우탁(禹倬)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우즙(禹楫)이고, 할머니는 예천 임씨(醴泉 林氏)이고, 아버지는 전연사(典涓司) 참봉 우수평(禹水平)이고, 어머니는 진사 홍계원(洪啓元)의 딸 부림 홍씨(缶林 洪氏)이고, 부인은 참봉 정정상(丁政祥)의 딸 의성 정씨(...
-
조선 전기 의성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화당(和堂), 호는 국헌(菊軒). 고려 말 유학자 역동(易東) 우탁(禹倬)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우즙(禹楫)이고, 할머니는 예천 임씨(醴泉 林氏)이고, 아버지는 전연사(典涓司) 참봉 우수평(禹水平)이고, 어머니는 진사 홍계원(洪啓元)의 딸 부림 홍씨(缶林 洪氏)이고, 동생 우홍서(禹弘緖)와 함께 의성 지역에 입향하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곡리는 약 500년 전 마을을 개척할 때 지대가 높아서 늘 구름이 끼므로 운곡(雲谷)이라 하였다 한다. 운곡의 동쪽에 있는 마을을 섬듬, 중앙에 있는 양지바른 마을을 양지듬, 북쪽 응달에 있는 마을을 음지듬이라 한다. 본래 의성군 상천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운곡동, 신기동, 구로동을 병합하여 의성군 산운면 운...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신안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운람사(雲嵐寺)는 천등산(天登山) 산정 아래에 있는 사찰로 신라 제31대 신문왕 때에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다. ‘운람(雲嵐)’이라는 사찰의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천등산 첩첩 산중 깊은 계곡에 위치하여 아지랑이가 마치 구름같이 피어오른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구름[雲]과 바람[嵐]으로...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역촌(驛村)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고을 원님이 이 마을을 지나다가 산수가 좋아 자주 쉬어 갔는데, 고을 원님이 머무는 집이 있었다는 뜻에서 원당(元堂)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다릿골은 마을 앞 도로에 다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약 600년 전 의성 김씨가 개척하여 음지에 있는 마을은 음지 혹은 음원(陰元)으로 불리었고...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는 1916년 박중빈이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창립한 신종교이다. 박중빈은 장차 미래 세계가 물질 문명의 발달로 인해 정신 문명이 약화될 것을 예견하고, 인류의 정신 문명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종교로서 원불교를 개창하였다. 원불교의 궁극적 진리는 법신불 일원상(法身佛 一圓相)으로, 진리에 합일하고 인격을 완성하기 위한 수행을 강...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남리와 구천면 위성리를 연결하는 다리. 위성교는 비안면을 남동-북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국도 28호선과 구천면을 남-북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지방도 923호선을 이어주는 동-서 방향의 군도 14호선에 준공되어 있다. 비안면 용남리와 구천면 위성리 지역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있는 위천에 의해 단절되어 있어 이를 건너가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1976...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위성리(渭城里)는 위천(渭川)의 교량이 개통되기 전에는 진입이 불편했던 곳으로, 위성이란 이름은 글자 그대로 위천이 성(城)처럼 가로막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되나, 그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내서면의 구천동, 산구동, 용점동, 용천동을 병합하여 의성군 구천면 위성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위천이 마을의 남쪽에 있다는 뜻으로 위양동이라 칭하였다. 자연 마을 당평은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앞 개울에 당나라 장수가 심은 당수라는 나무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마을 앞 개울가에 지당(池塘)이 있고 넓은 평야가 있어서 지당과 평원에서 한글자씩을 취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강촌은 조선...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병합된 경상북도 비안군 단서면 위성동, 주중동, 용암동, 주하동, 도호동에서 위성과 주중의 이름을 따서 위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연 마을 저곡(渚谷)은 흥양 이씨가 정착하면서 마을 앞에 위천이 깊게 흐른다고 불렀는데 지곡으로 변절되어 불려 왔다. 주미(住尾)는 구씨·나씨·정씨·이씨 등이 마을을 개척하여...
-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학암리에서 발원하여 의성군 비안면, 구천면, 안계면, 단밀면, 단북면, 다인면을 거쳐 흐르다가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의성 관내로 들어온 위천은 비안면 옥연리에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쌍계리에서 쌍계천과 만나 7차수 하천을 이루고, 서쪽으로 계속 흘러 구천면·안계면·단북면·단밀면을 지나 다인면 용무리에서 상주시 방면으로 빠져 나간다...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공자의 사상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는 자기 수양을 통한 경세 치민의 도리를 밝힌 공자의 가르침이다. 흔히 유교가 내성외왕(內聖外王), 즉 안으로는 자기를 닦아 성인의 경지에 이르고 밖으로는 그 덕을 실천하여 문물과 제도를 만들어 만민을 교화할 수 있는 지위인 임금에 오르는 것을 궁극의 경지로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원(聖源)·중부(仲溥), 호는 민산(閩山).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났다. 병촌(屛村) 유태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태계(迨溪) 유숭조(柳崧祚)이며, 아버지는 유진구이고, 어머니는 선성 김씨(宣城 金氏) 김낙생(金樂生)의 딸이다. 부인은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남운(金南運)의 딸이다. 유도수(...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유산리(酉山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유산(酉山)에서 나온 명칭으로, 마을의 방향이 유좌 묘향(酉坐卯向) 즉, 유방(酉方)[서쪽]을 등지고, 묘방(卯方)[동쪽]을 향한 방향이라 유산이라 하였다 한다. 마을 뒷산 형국이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臥牛形)이라 한때 우산(牛山)이라 하기도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
조선 후기 의성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인백(仁伯), 호는 병촌(屛村). 유후갑(柳後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성징이고, 아버지 유행(柳涬)이며, 어머니는 권명일(權命一)의 딸 안동 권씨이고, 부인은 김남응(金南應)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유태춘(柳泰春)[1729~1814]은 1764년(영조 40)에 안동부(安東府) 월전리(月田里)[경상...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재화 및 서비스가 생산자에서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유통업은 농·임·축·수산물 및 공산품의 도매·소매·보관·포장 및 이와 관련된 정보·용역의 제공 등을 목적으로 하여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각종 상품을 도·소매하는 것을 주로 하는 산업이다. 대체로 통계청에서 고시한 한국 표준 산업 분류 중 도매 및 소매업과 그 범위가 유사하...
-
조선 전기 비안현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포(子包), 호는 가촌(嘉村). 현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모흥리 일대에서 세거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 비안현에 속했던 곳으로, 유포의 후손들이 비안 지역을 모두 떠난 상태라 정확한 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유포(柳砲)의 생몰 연대는 미상이며, 이력은 명확하지 않으나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
-
1950년~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선제 공격에 의해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동안 전개된 전쟁이다.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셀 수 없을 정도의 물적 기반이 파괴된 민족 간 전쟁으로, 유엔 연합군과 중국군이 참전했다는 점에서 국제전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수부(粹夫), 호는 달촌(達村). 초명(初名)은 윤선각(尹先覺)이나 윤국형(尹國馨)으로 개명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돈녕부(敦寧府) 도정(都正) 윤지숭(尹之崇)이고, 할아버지는 이성 현감(利城縣監)을 지내고 이조 참판에 추증된 윤정림(尹廷霖)이고, 아버지는 경산 현령(慶山縣令)을 지내고 이조 참판에 추증된 윤희렴(尹希廉)이다....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겉씨식물 은행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침엽수. 의성군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은행나무는 도로변에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으며, 마을의 정자목으로 심기도 한다. 의성군에 분포하는 일반적인 은행나무는 둥근 기둥처럼 생긴 줄기에 가지가 많이 뻗지 않는 것이 특징이며, 수고는 30m, 줄기의 지름은 2.5m까지 자란다. 껍질은 회색빛이 돌고 깊게 패여...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소리를 소재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분야. 오래전부터 의성 지역에 전해져오고 있는 음악으로는 민요가 대표적이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의성 지역의 민요도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와 같은 기능요가 다수를 차지한다. 기능요 가운데 노동요는 「베틀 노래」, 「길쌈 노래」 등의 길쌈 노동요가 많다. 반면에 밭갈기, 모내기, 밭매기, 논매기, 타작 등의 농업...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음지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음지리는 마을의 앞과 뒤가 산으로 가려 일출이 늦고 일몰이 빨라 일조 시간이 적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 지호동은 마을 입구 좌측에 자라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있고 그 앞에 깊은 소(沼)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연풍(延豊)은 임진왜란 때 평해 황씨, 임씨 일가가 피난 와서 정착하였는데, 골이 깊...
-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이 스스로 조직했던 자위군. 의병(義兵)이란 유사 시 자발적으로 일어나 조직된 민병을 말한다. 나라의 소집이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직한 것이므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기본적인 무기나 군량 등을 스스로 충당해야 했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의병은 한국사의 전 시기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에 있는 전통 시장. 공설 시장은 지방 자치 단체나 법인체가 필요한 시설을 설치한 후 구획된 지역에 다수의 소매상용 점포를 지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소매상인에게 대여하여 일용품을 중심으로 한 상품을 판매하게 하는 장소이다. 공설 시장은 일반적으로 매 닷새 마다 한 번, 또는 열흘에 한 번 씩 개설되는 정기 시장과 매일 열리는 상설 시장으로 분류된다. 상...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삼층 석탑. 의성 관덕리 삼층 석탑은 신라 하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하층 기단에는 비천상을, 상층 기단에는 보살상과 사천왕상, 초층 옥신에도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원래 상층 기단 갑석의 네 모퉁이에는 암수 1쌍씩 네 마리의 돌사자가 배치되었는데, 한 쌍은 1940년경에 잃어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한 쌍은 현재...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원당리에 있는 의성 지역의 기상을 관측하는 기관. 의성 기상 관측소는 정확하고 신속한 기상 정보를 지원하여 의성 지역의 기상 재해 예방과 지역 산업 지원 및 지역 주민의 생활 향상을 위해 설립되었다. 의성 기상 관측소는 1970년 8월 17일 대구 측후소 산하 의성 분실로 설립되었다. 1984년 12월 19일 의성군 의성읍 원당리 6-4번지에 관측소 청사를...
-
김석(金錫)을 시조로 하고 김용비(金龍庇)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세거 성씨. 김석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한 후 고려 태조 왕건의 장녀인 낙랑 공주와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석이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의성 김씨는 김석의 8세손 김공우(金公瑀)의 대에서 크게 번창하였는데, 첫째 아들인...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신라 말 고려 초 오층 석탑. 의성 빙산사지 오층 석탑은 의성 지역에 위치한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의 형식을 모방한 모전 석탑으로 단층 기단 위에 올린 오층의 석탑 형식을 하고 있다. 1973년 석탑을 완전 해체하여 수리하였는데 사리구 일체가 출토되었다. 사면에 양식화된 봉황을 투조한 사각 금동제 사리합과 그 안에 녹유리 사리병이 안치되어 있었...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있는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숲. 의성 사촌리 가로숲은 고려 말에 안동 김씨인 김자첨이 사촌으로 이주해 오면서 마을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하며 생겼다. 이후 마을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 주고 농사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약 6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 역할 외에도 아름다운 풍광을 통해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는 가톨릭 안동 교구 소속의 성당. 의성군 동부 지역에 천주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1934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의성군 의성읍 후죽동의 김경조 가족과 의성군 의성읍 도서동의 이복우 가족이 의성 공소의 신자였다고 한다. 이듬해인 1935년 대구 명치정에서 정영수와 홍성술이 각각 도서동과 의성군 봉양면 도리원으로 이사를 오면서 4가구의 20명에 가까운...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있는 소방 행정 기관. 의성 소방서는 경상북도 의성군과 군위군의 화재 예방과 진화, 자연 재해를 비롯한 각종 재난 발생 시 인명 구조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45년 일제의 통치가 종식되고, 미군정하에서는 전국에 소방서를 증설하여 50개가 되었는데, 의성군에도 소방서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설치되었던 경방단이 해체되...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는 버스 터미널. 의성 시외 버스 터미널은 의성 군민과 의성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교통 시설을 제공하고자 건립되었다. 의성 버스 정류장은 일제 강점기 의성군 의성읍 후죽 1리 676-3번지에서 운영하다가 해방 후 같은 장소에서 통일 여객, 경인 여객, 제일 여객, 경북 여객, 국신 여객 등이 공동 영업하였다. 그 후 승차 인원이 차차 많아지자...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의성 운곡당(義城 雲谷堂)은 이희발(李羲發)[1768~1859]이 건립한 것으로 전하는 영천 이씨(永川 李氏) 문중의 고택이다. 의성 운곡당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61[산운리 158]에 있다. 산운 생태 공원 주차장 입구 앞에 있는 도로를 따라가면 산운 노인 회관이 나온다. 노인 회관 옆에 난 조그마한 길을...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와 원당리를 연결하는 다리.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의 이름을 따서 의성 2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1993년 성능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보수 공사를 통해 새롭게 준공된 의성 2교의 상행선과 하행선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 상행선에서 교량 길이의 합인 연장은 156.0m, 교량의 총 폭은 10.0m, 교량에서 차도만의 유효 폭은 9.0m...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오층 석탑.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은 통일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석탑이지만 전체적인 형태에서 벽돌 모양으로 쌓아 올린 전탑과 목조 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이다. 단층 기단위에 5층의 탑신부를 구성하였다. 이 석탑은 기단 구조와 지붕돌[옥개석] 상하면에서 전탑의 양식을 볼 수 있고, 초층 옥신의 우주...
-
1603년 의성 향교에서 발생한 위판(位版) 도난 및 훼손 사건. 1603년 의성 향교에서 위판의 도난 및 훼손 사건이 발생하였다. 유교 국가에서 지방 교화의 핵심이던 향교의 문묘 훼손은 매우 큰 사건으로, 이 사건은 『선조실록(宣祖實錄)』에도 수록되어 있다. 의성 지역은 향교가 건립되기 이전부터 공자에게 향사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19세기 전후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성현지(...
-
경상북도 의성군에 분포하는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관목. 의성개나리는 산개나리, 방울개나리라 불리기도 하는데 북한산과 관악산 등 한반도의 일부 지역에서만 관찰되는 멸종 희귀 식물 166호이다. 현재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의 군락이 천연 기념물 제3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성 지역에서는 의성군 의성읍과 사곡면 일대에서 관찰된다. 의성개나리는 높이 약 1m까지 자란다....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에 있는 농업 기술 지원 기관. 경상북도 의성 지역 농업이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농민들에게 과학 영농과 농업 기술을 지원하고, 소비자를 위한 친환경 농업을 보급하여 환경 친화적이며 현장 중심의 농정을 추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7년 8월 의성군 농사 교도소로 시작하여 「농촌 진흥법」에 따라 1962년 4월 농촌 지도소 명칭이 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에 있는 4H 연합회. 의성군 4H 연합회는 농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생활을 영위함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게 하여 보다 건전하고 유능한 젊은이를 양성함으로써 농촌과 농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H는 지성(head)·덕성(heart)·근로(hand)·건강(health)의 뜻을 지닌 영어의 앞 글자를 뜻하는 것으로 이 운동은 1...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는 의성 지역 관할 행정 기관. 중앙 정부와 경상북도 광역 자치단체로부터 위임받은 업무와 의성 지역 고유의 행정 및 민원 업무 수행을 위해 설립하였다. 갑오개혁 다음 해인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따라 안동 대도호부 의성현이 안동 대도호부 의성군으로 개칭되면서 의성군청이 설치되었으며 1896년 8월 4일 경상북도에 속...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있는 수령 약 500년의 보호수. 의성 사촌리 향나무는 의성 지역의 유명한 고택인 만취당 앞 골목에 심겨 있는 향나무이다.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205번지에 있으며, 1995년 6월 30일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되었다. 의성 사촌리 향나무의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수고는 8m, 수관 폭은 25m 정도이다. 나무의 보존 상태가...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개항기 영양 남씨(英陽 南氏) 가옥. 윤암리는 1652년 남해준(南海準)과 그의 아들 남몽뢰(南夢賚)가 의성 점곡면 월촌[동변리]에서 이주한 이후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는 영양 남씨 세거지이다. 마을 곳곳에 영양 남씨 가문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는데 의성 서계당(義城 西溪堂)도 그 중 하나이다. 의성 서계당은 경상북도 의성군...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에 있는 수령 약 200년의 보호수. 의성 월소리 소나무는 1994년 6월 3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97호로 지정된 소나무이다.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 1202-4번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월소리의 비로자나불에서 약 500m 떨어진 신법 마을 입구이다. 의성 월소리 소나무는 수고가 11m 정도이며, 둘레는 직경 1m, 수령은 200년 정도이다. 나무의...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의성읍은 의성군청 소재지로서 여러 행정 기관이 위치한 행정의 중심지이며, 도·농 복합 형태의 소규모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시가지 동남부에 오토산이 솟아 있어 사곡면·금성면과 경계를 이루며, 서쪽에는 구봉산, 북쪽은 점곡면·단촌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읍의 중앙에는 남동쪽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남대천이 길게 흐르...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서리에 있는 수령 약 600년의 보호수. 의성읍 도서동의 회나무는 1919년에 발행된 『노거수 명목지』에서 한반도 전체에서 둘레가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된 나무이다. 1972년의 기록에서도 전국에 지정된 360건의 회나무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보고되었다. 의성읍 도서동의 회나무의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수고는 18m, 둘레는 10m 정도이다. 나...
-
개항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순교(舜敎). 호는 신암(愼庵). 이민환(李民寏)의 후예이다. 아버지는 이노성(李魯誠)이며, 어머니는 아주 신씨(鵝洲 申氏) 이광철(李光哲)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이해발(李海發), 증조할아버지는 이의만(李宜晩), 고조할아버지는 이성천(李性天), 부인은 의성 김씨(義城 金氏) 이헌(李巘)의 딸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는...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호은(湖隱). 이덕방(李德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 이의명(李宜明)이고, 아버지는 형조 판서 이희발(李羲發)이고, 어머니는 이귀락(李龜洛)의 딸 진성 이씨(眞城 李氏)이고, 부인은 밀성 박씨(密城 朴氏)이다. 이노벽(李魯璧)[1789~1835]은 아버지에게 가학을 전수 받았으나, 7세가 되던 1795년(정조 19)에 아버지가...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이두리와 서부리를 연결하는 다리. 비안면 이두리의 이름을 따서 이두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1999년 새롭게 준공된 이두교에서 교량 길이의 합인 연장은 172.5m, 교량의 총 폭은 8.0m, 교량에서 차도만의 유효 폭은 6.0m, 지표면 또는 수면에서 교량의 바닥 판까지의 수직 높이는 5.7m이다. 교각과 이웃하는 교각 사이를 정의하는 경간의 수는 15개,...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외두동과 내두동을 합한 이름을 따서 이두동(二杜洞)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내두(內杜)는 마을 앞에 강이 막혀서 막을 두(杜)자를 써서 두곡(杜谷) 또는 두실(杜室)이라 불렀으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안뒤실[내두(內杜)]로 부른다. 외두[바깥뒤실]는 바깥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두는 서당...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리(梨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배골에서 나온 명칭이다. 배골은 임진왜란 때 중추 부사 오세호와 가족들이 피난해 와서 개척한 마을로서 당시 마을 주변 산에 나무가 적고, 황토가 많아 토현(土峴)이라 불렀으며, 그 후 배나무로 유명하게 되어 배골[梨谷]·이동(梨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자연 마을 홍거리는 1800년경 촌락이 형성되기...
-
근현대 의성 출신의 서예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대(元大), 호는 죽당(竹堂), 해동여인(海東旅人)이다. 이명구(李明求)[1888~1977]는 어려서 필재가 뛰어난 김가산(金可山)에게 사사하였다. 17세에 조선 서예 전람회(朝鮮 書藝 展覽會)에서 차상을 수상하였다. 이명구는 해서(楷書)에 있어서는 구양순(歐陽詢)의 필법과 황자원(黃自元)의 결구법을 접합하여 독특한 서체를...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사홍(士弘). 아버지는 이우성(李宇成). 어머니는 김수항(金壽恒)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 할아버지는 이식춘(李植春), 증조할아버지는 이민화(李敏華). 처는 유담(柳潭)의 딸 숙부인(淑夫人) 풍산 유씨(豊山 柳氏)로 알려져 있다. 이상관의 가문은 당시 경상도 상주목 단밀현[현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주선리]에 세거하고...
-
조선 전기 의성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영오(影午), 호는 화수헌(花樹軒). 문정공(文靖公) 이극송(李克松)의 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인후(李仁厚)이며, 아버지는 신녕현감(新寧縣監) 이고(李考)이고, 어머니는 연안 이씨(延安 李氏)이며, 부인은 함양 박씨(咸陽 朴氏) 경부(慶阜)의 딸이다. 이세남(李世南)[1464~1524]은 경상도 성주에서 태어나 경상도...
-
조선 전기 단밀현[현 의성군 단밀면]의 성산 이씨 입향조이자 무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윤중(允中).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이벽(李璧)이고, 할아버지는 연담(蓮潭) 이세인(李世仁)이고, 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이항(李沆)이고, 어머니는 정경 부인(貞敬 夫人) 진주 강씨(晋州 姜氏)이고, 부인은 부윤(府尹)을 지낸 권수(權秀)의 딸 숙부인(淑夫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화언(華彦), 호는 석포(石圃). 형조 참판 이민환(李民寏)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이중경(李重烱)이다. 이수태(李秀泰)[1673~?]는 문장이 섬세하고 잘 썼다고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학행(學行)으로 이름이 났으며, 1726년(영조 2)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741년(영조 17)에 증조부의 유의(遺意)를 받들어 『자암...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음지리로 이주해 온 이이남의 아버지로서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충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승대(勝大), 호는 의제(義齊). 이집(李諿)의 7세손이 된다. 이승창(李承昌)[1588~1637]은 정온(鄭蘊)의 문인으로, 1617년(광해군 9) 사마시에 급제하고, 1632년(인조 10)에 장릉 참봉(章陵 參奉)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여후(汝垕). 좌찬성(左贊成) 이항(李沆)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수종(李守種), 아버지는 참봉(參奉) 이청(李淸), 어머니는 주석수(朱碩守)의 딸 상산 주씨(商山 朱氏)이다. 이심근(李深根)[1576~1637]의 선대는 한양과 인근에 거주하였는데, 증조할아버지 이항이 정적으로부터 무고를 당하자 할아버지 이수종이 관직에 뜻...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원래 본관은 전주(全州)이나 고려가 멸망한 후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으로 낙향하였는데, 그 후손들이 이연계(李連桂)를 시조로 하여 대흥 이씨(大興 李氏)로 분관하였기 때문에 본관은 대흥(大興)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6촌형이며, 태종에 의해 대흥군(大興君)으로 봉함을 받았다. 대흥 이씨(大興 李氏) 의성 입향조이다. 이연계[?~1407]는 고려 말...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하련동[하연동]과 중련동[중연동]에서 이름을 따서 이연(二連)이라 하였다. 이곳은 예로부터 3개 마을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 있어 위치에 따라 상연(上連), 중연(中連), 하연(下連)이라 불렀으며, 상연은 연제리(連堤里)에 속한다. 하연 마을은 현재 이실(梨實) 및 이계(伊溪)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대래(大來), 호는 근인당(近仁堂). 이이식(李爾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담(李曇)이고, 아버지는 이세달(李世達)이고, 어머니는 남두욱(南斗煜)의 딸 영양 남씨(英陽 南氏)이고, 부인은 신천걸(申天杰)의 딸 아주 신씨(鵝洲 申氏)이다. 생부(生父)는 이기징(李箕徵)이다. 이의태(李宜泰)[1701~1779]은 성리학에 뜻...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이일(理一). 호는 죽파(竹坡). 생부는 이철재(李澈在), 계부는 통덕랑(通德郞) 이연재(李淵在), 모친은 최효술(崔孝述)의 딸 경주 최씨(慶州 崔氏), 조부는 이노구(李魯求), 증조부는 이가발(李家發)로 알려져 있다. 이장섭(李章燮)[1854~1907]은 1854년(철종 5) 출생하였으며, 경상도 의성현 산운 마을[현 경상...
-
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이자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장손은 이문영(李文榮)이다. 이장회(李章繪)[1861~1946]는 권계칠(權季七)의 문인으로 학문을 연마하고, 부모를 매우 극진히 모셨다. 『갑오군공록(甲午軍功錄)』에 1894년 갑오창의(甲午倡義) 당시 의성 유학(幼學)으로 의병을 이끌고 참모로 참전하여 병정(兵丁)을 단속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공을 세우고 1896...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창호(菖湖). 이여해(李汝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 이광준(李光俊)이고, 아버지는 부윤 이민환(李民寏)이다. 이정숙(李廷橚)[?~?]은 스스로 탐구하여 독실히 공부하였다. 학행(學行)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과거를 통해 벼슬에 나가는 뜻을 버리고 향리에서 학업에 열중하였다. 유집(遺集)이 있다....
-
조선 전기 의성 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균(仲勻), 호는 용재(慵齋)·용헌(慵軒)·부휴자(浮休子)·상우당(尙友堂)·태정일씨(太庭逸氏)·장육거사(藏六居士). 이만실(李蔓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 이승직(李繩直)이고, 아버지는 생원 이시민(李時敏)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 權氏)로 권계경(權啓經)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권탁의 딸이...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학자·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수(子秀), 호는 반계(盤溪), 효사재(孝思齋). 경주 이씨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24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건(李建)이고, 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 이연년(李延年)이고, 어머니는 김철손(金哲遜)의 딸 분성 김씨(盆城 金氏)이다. 이탁영(李擢英)[1541~1610]은 1541년(중종 36) 경상도 의...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학(景學), 호는 학헌(學軒). 아버지는 농은(農隱) 이집필(李集弼)이고, 어머니는 강릉 최씨(江陵 崔氏)이다. 이하영(李夏榮)[1777~1846]은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다. 가학을 이으며, 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 우은 신면황(申冕璜)과 더불어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水淨寺)에서 공부하였다. 과거에는 뜻을...
-
개항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송오(宋五). 호는 국은(菊隱). 아버지는 김덕기(金德基)이다. 단종 복위 운동으로 처형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예로 대대로 충청북도 영동군에 살다가 아버지 대에 이르러 의성 기동(箕洞)[현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서제 2리]으로 이주해 왔다. 이형석(李炯石)[1848~?]은 영특한 자질을 타고 나서 11살 때부터 부...
-
개항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서(文瑞). 호는 옥은(玉隱). 아버지는 향리에서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이종유(李鍾裕)로 알려져 있다. 이형우(李亨雨)[1847~1914]는 1847년(헌종 13)에 출생하였으며, 현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정리에 거주하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했으며, 형제들 간에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능문선필(能文善筆)하...
-
경상북도 의성군에 거주하는 주민 또는 집단의 수. 2011년 12월 31일 현재 의성군의 인구는 5만 8222명[한국인 5만 7744명, 외국인 478명]이며, 인구밀도는 약 49.5명/㎢로 나타났다. 의성군은 경상북도 13개 군 가운데 대구광역시에 인접한 칠곡군[12만 1945명]을 제외하고는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의성군은 전국의 다른 농어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1960년...
-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조선 총독부는 총무부·내무부·탁지부·농상공부의 행정 부처와 사법부를 두고, 지방은 도(道)·부(府)·군(郡)·면(面)의 행정 체계를 갖추었고, 총독은 일본 일왕에 직속되어 총리 대신을 거쳐 일왕에 상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사회적·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풍천(豊川). 초명은 경우(景雨), 자는 상지(尙之), 호는 귀은(龜隱). 기자전(箕子殿) 참봉 임희겸(任熙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 임훈(任勳)이고, 아버지는 주부 임내중(任乃重)이며, 어머니는 증 승지 신흘(申仡)의 딸 아주 신씨(鵝洲 申氏)이다. 부인은 참봉(參奉) 박진경(朴晉慶)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임경윤(任...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예천(醴泉). 임성무(林盛茂)[1673~1729]는 현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 2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위고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가난한 살림에 끼니를 잇기도 어려웠으나 어머니만은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하도록 한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밖에 나가 맛있는 음식을 보면 가지고 와서 어머니께 드리고, 시장에...
-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경상북도 의성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 조선·명(明)의 연합군이 벌인 전쟁이다. 1차 침입을 ‘임진왜란’, 2차 침입을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 하는데, 7년 간 두 차례에 걸친 침입을 통칭할 때는 임...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입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 떼. 입암리 선돌 떼는 옥산면사무소 앞에서 오른쪽 의성군, 안동시 길안면 방면으로 지방도 79호선을 따라 1.7㎞ 정도 가면 입암 1리 마을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300m 이동하여 끝에서 다시 오른쪽을 100m 정도 가면 민가가 나오고 민가를 지나면 바로 옆에 위치한 논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마을...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상리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재단 법인 선학원의 의성 지역 분원. 자광사(慈光寺)는 1960년 8월에 한길로 승려가 창건하였다. 원래 목조 건물이었으나 1992년에 모두 헐어 내고 현재의 법당과 요사를 준공하였다. 2002년에 정식으로 대한 불교 조계종 재단 법인 선학원에 귀속되어 의성 분원이 되었다. 자광사에는 승려 1명과 신도 약 200명이 있으며,...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고유한 문화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마을. 의성군에 있는 지역 주민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자연적으로 생성된 마을로서 산성 마을, 역·원 마을, 창고 마을, 시장 마을, 동족 마을 등이 있다. 외침을 피하고 산성 주변에서 생활하면서 항거할 수 있도록 산기슭에 형성된 마을로서 의성군 내에는 의성읍 팔성리[고성산성]와 치선리[의성...
-
경상북도 의성군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형·지질·기후·동식물 등의 자연 환경. 경상북도 의성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 지형으로 영남 내륙 지역에 속하여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인다. 이 지역을 구성하는 기반암은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흑운모 화강암 지대와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화산암류 지대 그리고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류 지대로 구분된다. 이러한...
-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산업 중 누에를 사육하여 고치를 생산하는 업종. 잠업은 고대로부터 의복을 생산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중요한 산업의 하나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 잠업의 역사는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미 이때부터 양잠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삼국 시대에도 고관의 의복이 거의 비단으로 지어졌을 정도로 양잠이 크게 장려되었다....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장곡동(長谷洞)와 상국동(上局洞), 중국동(中局洞), 하국동(下局洞)에서 한 글자씩 따서 장국(長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연 마을 장곡(長谷)은 진실 마을이라고도 한다. 진실은 골짜기가 길다는 뜻으로 긴실이라고 불렀는데 긴을 방언 진으로 발음하여 진실이라 하였다. 상국동은 계곡 위쪽에 있어 붙...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대리(藏待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장대(藏待)에서 나온 명칭으로, 이곳에 장대 서원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장대’라는 명칭은 의성 현령이었던 장현광(張顯光)이 서원에 ‘장기어신(藏器於身) 대시이동(待時而動)[기량을 몸에 감추어 두었다가, 때를 기다려 행동한다]’이라는 현판을 써 걸어서 그 첫 글자를 딴 것이라 한다. 자연 마을 분명...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리(長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장호(長湖)에서 나온 명칭으로, 호수의 골짜기가 길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호는 그 후 조선 말에 와서 장골·장곡(長谷)이라 부르기도 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장동에 덕천동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가음면 장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장...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마을인 장림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이곳에 산림이 깊고 수풀이 무성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장골이라고도 하였다. 금상골[錦桑谷]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인근 산의 지형이 베틀형으로 비단을 짜는 형세라서 그렇게 불렀으며, 광복 이후에는 뽕나무를 많이 심어 농상골[農桑谷]이라 불렀다 한다. 자연 마을 두곡(杜谷)은 조선 중엽에 촌락이 집단으...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산(牙山), 호는 효효재(囂囂齋), 시호는 문익(文翊)이다. 1344년 의성 교동[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교동]에서 출생하여 포은정몽주의 문인으로 학문이 뛰어났고 전공 전서(典工 典書)를 역임하였다 한다.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에 모운재(慕雲齋)가 있다....
-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5일마다 열렸던 사설 시장. 장시(場市)는 조선 시대 지방민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물자를 교환하던 시장으로 장문(場門) 또는 향시(鄕市)라고도 한다. 15세기 중엽부터 이미 개설되었던 조선 시대 장시는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여 18세기에는 전국적으로 크게 성행하였다. 개시일도 초창기에는 한 달에 2회로 보름 간격이던 것이 한 달에 6회, 5일 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여상(汝常). 장괄(張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덕명(張德明)이고, 아버지는 장익(張翊)이며, 어머니는 초계 변씨(草溪 卞氏) 군자감 정 변처정(卞處貞)의 딸이고, 부인은 진성 이씨(眞城 李氏)이다. 아들 장한정(張漢楨)과 장한상(張漢相)이 모두 현달하였다. 장시규(張是奎)[1627~1712]는 어릴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
-
조선 전기 비안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문중(汶中), 호는 신재(愼齋). 진주 판관(晉州 判官) 장일신(張日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숙(張叔)이고, 아버지는 효자로 정려된 찰방(察訪) 장문서(張文瑞)이다. 장운(張運)[1535~1605]은 지금의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효우가 출중하여 여러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고 하며, 법도를 세...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근계(近溪). 소감(少監) 장사검(張思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헌(張憲)이고, 아버지는 참군(參軍) 장윤의(張允義)이다. 장일신(張日新)[?~?]은 어려서부터 완력이 남달랐다고 한다. 1471년(성종 2) 무과 별시에 급제하여, 1486년 동래 현령(東萊 縣令), 진주 판관(晉州 判官)와 경주 판관(慶州 判官), 기장...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실업리와 사곡면 신감리를 연결하는 고개. 장티재는 북쪽의 390m 고지와 남동쪽의 380m 고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낮은 안부이며, 높이는 315m이다. 장티재의 동쪽 계곡은 미천의 발원지이며, 도곡지와 같은 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서쪽 계곡은 남대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소하천의 발원지이며, 대감지와 같은 소규모 저수지들이 골짜기마다 축조되어 있다. 장티재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경지(景之). 호는 계산(桂山). 아버지는 증 통정대부 군자감 정(贈 通政大夫 軍資監 正) 전상량(全尙亮), 어머니는 오정수(吳淨水)의 딸 숙부인(淑夫人) 해주 오씨(海州 吳氏), 할아버지는 훈련원 주부(訓鍊院 主簿)를 역임한 전의복(全義復), 증조할아버지는 전희남(全希男), 부인은 정산흘(鄭山屹)의 딸 숙부인 연일 정씨(延...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점곡면은 북쪽으로 경상북도 안동시와 인접하고 있어 씨족의 결속을 중시하는 안동 유교 문화권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지역의 대부분이 160~500m의 구릉성 산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미천의 지류를 따라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어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촌락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전통 촌락에는 우리나라의 대표...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에 있는 점곡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점곡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점곡면사무소는 의성군 점곡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점곡은 1392년 조선 개국부터 중국 춘추 시대 공자의 고제자 증자(曾子)의 부친 증점(曾點)의 점(點)자를 따라 점곡(點谷)...
-
조선 전기 비안현의 영일 정씨 입향조이자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대유(大有), 호는 후엄(帿嚴). 할아버지는 정안손(鄭安孫)이고, 아버지는 기묘사화(己卯士禍) 때의 명현(名賢)이요 학유(學諭)를 지낸 정휘(鄭輝)이다. 세 형제 중 장남으로, 둘째 정창우(鄭昌祐)는 생원이고, 셋째 정연우(鄭延祐)는 부장(部將)을 지냈다. 정경우(鄭景祐)[?~?]은 경상도 예천군 다인현[현...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장국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장국리 백마산에 있는 정수사(淨水寺)는 신라 흥덕왕 때 심지(心地) 대사가 창건하였다.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있는 파계사 후원의 비석문에 의하면 심지 대사가 속리산 과증 법회를 마치고 팔공산으로 돌아와 파계사와 동시에 정수사를 개산(開山)하였다고 한다. 정수사에 대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선경(善卿). 호는 둔재(遯齋).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 예조 정랑, 병조 정랑을 지낸 복암(幞巖) 정경우(鄭景祐)의 5세손이다. 영일 정씨가 비안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은 바로 정경우부터이다. 정시교(鄭時敎)[1669~1754]는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나이 겨우 7살에 아버지의 병을 간호하는데 혼자 힘으로 이겨...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복여(福汝). 호는 월봉(月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로 아버지는 정전섬(鄭全暹)이다. 정악(鄭岳)[1779~?]은 12살 때 아버지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는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래 살지 못하고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에 아버지는 자신이 못...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마을 오정(五井)과 하안(下安)[구안계(舊安溪)]의 끝 자를 따서 정안동(井安洞)이라 하였다. 하안(下安)은 안계 밑에 있기 때문에 붙여졌고, 다른 이름인 구안계는 옛날 안계의 중심지로 시장이 있어서 붙여졌다 한다. 인접한 안계면 시안 1리와 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며, 시안 1리의 마을도 역시 구안계라 한다. 오정 마을은 마을에 천연...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정안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정안리 절터에 있었던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75호로 지정된 의성 정안동 석조 여래 입상과 부근에서 발견되는 기와가 통일 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점으로 볼 때 통일 신라 시대의 절터로 추정된다. 정안리 절터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정안리 57-2에 있다. 중앙 고속도로 의성 IC에서...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지역 주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후 38선 북쪽 지역에는 8월 24일 소련군이 진주했다. 남한 지역에는 9월 8일 하지 중장이 인솔하는 미국 태평양 지구 사령부 제24군 휘하 부대 3개 사단으로 구성된 미군이 진주하였으며 이어 “북위 38도선 이남에 미군정(美軍政)을 실시한다.”...
-
조선 시대 의성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개 시설(灌漑 施設). 제언(堤堰)은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강이나 계곡에 구조물을 쌓아올려 물을 저장하는 관개 시설로, 언제(堰堤) 또는 제방(堤防)이라고도 한다. 농경 국가였던 조선에서 관개 시설의 확충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관개 시설에 대한 기사가 자주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제언에 관한 것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제오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제두동과 오대동을 병합하여 만들어진 마을로, 제두동과 오대동의 한 글자씩을 따서 제오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제두(堤斗·堤豆)는 못 터에 마을을 개척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못둑골 또는 못동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대(梧垈·梧大)는 마을 개척 당시 마을 앞 둑에 오동나무가 서 있어 오대라고...
-
개항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중(子中), 호는 인암(忍庵). 아버지는 조계승(曺啓承)이다. 조병용(曺秉庸)[1836~1906] 1890년(고종 27) 2월 15일, 경무대(景武臺)에 행차한 왕세자가 관학(館學)의 유생들을 모아 놓고 응제(應製)를 행할 때 응시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혜를 받았다. 이어 별시 문과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890년...
-
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의성 지역은 의성현(義城縣), 비안현(比安縣)을 비롯하여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인 단밀현(丹密縣), 보주(甫州)[예천(醴泉)]의 속현인 다인현(多仁縣), 용궁현(龍宮縣)의 일부분[현재 안사면 지역]에 해당한다. 조선은 건국 후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 주(州)·부(府)·군(郡)·현(縣)을 두고 지방관을 파견...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성리(造成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조성(造成)에서 나온 명칭으로, 홍수 때 주변 산에서 굴러 내려온 돌이 많아 집집마다 돌로 성을 쌓다시피 담장을 하여 마을 이름을 조성(造城)이라 하였으며, 후에 城[성] 자가 成[성]으로 잘못 전해져 조성(造成)이 되었다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내서면의 조개동, 조...
-
조선 후기 의성으로 이주해 온 함안 조씨(咸安 趙氏)의 입향조이자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일보(日輔), 호는 경모당(敬慕堂). 생육신인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대포 만호(大浦 萬戶)를 지냈으며, 병조 참판에 증직된 검암(劒巖) 조우(趙堣)이고, 아버지는 임진왜란 당시 영천(永川) 수복 전투에서 군공을 세워 훈련원 봉사 겸 별시위에 제수되었는데,...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초월적 존재인 신을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일체의 행위. 의성 지역에는 현재 1000년 이상 된 전통 사찰이 9개소나 된다. 이는 신라나 고려 시대에 이미 의성에서 불교가 매우 성행했음을 말해 준다. 이처럼 일찍부터 의성에서 불교가 성행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은 의상 대사이다. 그가 의성에 건립했거나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만 6곳으로 수정...
-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생활. 의성군은 경상북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 둘러싸여 있어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고, 내륙의 분지이기 때문에 대륙성 기후의 영향도 적게 받아 한서(寒暑)의 폭이 매우 심한 곳이다. 이렇게 지리적·환경적 영향으로 의성군의 가옥들은 ‘ㅡ’자형, ‘ㄱ’자형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근대화의 영향으로 전통 가옥의 기능이...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단서면의 지내동, 선상동, 선하동과 주하동, 속상동, 속하동, 도암동, 용암동의 일부와 도호동 일부를 병합하면서 주하와 선상의 이름을 따서 주선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관동[館洞·官洞][관골]은 신라 시대에 단밀현의 현청 소재지로서 관아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고려 말, 조선...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사찰.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에 있는 주월사(住月寺)는 통일 신라 신문왕 때 창건된 고찰이다. 그러나 주월사가 언제 폐사되었고 현재의 사찰이 언제 중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 때 현재의 주월사 위쪽 불출산(佛出山)에 천지(天池)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에서 세 분의 부처가 솟아나서[주...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중율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죽림사(竹林寺)는 고려 공민왕 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의성군 신평면 면장 남원복이 절을 중수하였다 하나 이후 폐사되었다. 현재 절은 없으며, 터에 석불 좌상을 봉안한 작은 전각이 있다. 이곳에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02호 의성 중률리 석불 좌상(義城 中栗里 石佛 坐像)이 안치되어 있는데, 1885년(고...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에 남과 북으로 편을 나누어 줄을 당겨 힘을 겨루는 놀이. 의성군 의성읍 구봉산 아래 냇가에서 정월 대보름날 밤에 진행되는 줄다리기는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 성격을 가진 관습이며 민속놀이이다. 이를 ‘조리희(照里戱)’, ‘줄 당기기’, ‘귀줄 싸움’, ‘줄 땡기기’, ‘갈전(葛戰)’, ‘도삭(綯索)’, ‘동줄다리기’, ‘게줄쌈’, ‘줄...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중리리의 서쪽은 의성읍의 소재지인 후죽리와 접하고 있어 관공서와 학교가 있으며, 동쪽은 구릉성 산지 사이의 계곡에 있는 농촌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중리, 창동, 성조동이 있으며, 중리 1리, 중리 2리, 중리 3리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중리라는 명칭은 자연 마을 중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구전되어 내려오는 바로는 의성의...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순호리와 군위군 의흥면 수북리를 연결하는 고개. 지경재는 동쪽의 240m 고지와 서쪽의 230m 고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낮은 안부에 해당되며, 높이는 180m이다. 이 고개는 의성과 군위의 두 지역을 오가는 교통로로 활용되어 왔다. 지경재 주변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하양층군에 해당되는 사곡층과 점곡층이다. 지경재를 기준으로 동쪽은...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지장사(地藏寺)는 7세기 경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극락전, 응진전, 의향각, 청풍루, 산신각, 칠성각, 일주문과 10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사찰이었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알려지지 않는다. 1637년(인조 15) 세완 대사가 중건하였고, 1652년(효종 3)에는 영인 대...
-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이나 지층의 성질 또는 상태. 의성 지역의 기반암을 구성하고 있는 지질은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흑운모 화강암 지대와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화산암류 지대 그리고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류 지대로 구분된다. 화강암이나 화산암류로 이루어진 지역은 높이가 매우 높은 산지를 이루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퇴적암류로 이루어진 지대는 높이가 2...
-
경상북도 의성 지역 일대에서 나타나는 땅의 기복과 형태. 의성 지역은 높고 낮음에 따라 산지와 구릉지 지역, 평야 및 분지, 하천으로 구분된다. 산지는 의성의 동부 및 남부 지역과 그 외 대부분 구릉지 지역으로 구분된다. 평야는 위천 양안에 충적 평야인 안계 평야가 있으며, 분지는 구릉으로 둘러싸인 의성읍 일대이다. 의성 지역을 흐르는 하천은 모두 낙동강으로 유입되며, 위천, 미천...
-
이석(李碩)을 시조로 하고 이희정(李希程)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 진성 이씨(眞城李氏)[진보 이씨(眞寶李氏)라고도 함]의 시조는 고려의 추봉 밀직사(追封密直使) 이석(李碩)이다.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58명을 배출한 가문으로, 대표적 인물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다. 16세기 말 퇴계 이황의 문인이자 삼종손인 이희정(李希程)이 임진왜란을 피해 의성군...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집성촌은 삼국 시대 또는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부터이다. 특히 조선 후기인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적장자 중심으로 상속 제도가 변화하고,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보급되면서 예학(禮學)이 발달하고, 종법에 입각한 가족 제도가 수용되면서 집...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창길리 절터는 응봉산 기슭 창길리 감상골 마을 뒤쪽에 있다. 이 일대는 목구사(睦求寺)라는 절터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주변에서 기와 조각이 발견되기도 한다. 현재 절터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1979년에 전면과 측면 각각 1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을 지어 석불 좌상을 안치하여 ‘목구사(睦求寺)’라...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에 있는 산. 천등산을 보고 운중반월형(雲中半月形)이라 하여 구름 가운데 반달이 솟은 모양을 하고 있어, 산이 마치 하늘의 등불 같다고 하여 천등산(天燈山)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천등산의 높이는 347.1m로, 북쪽 사면은 괴촌천의 분수계에 해당되며 서쪽과 남쪽, 동쪽 사면은 안평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발원지이다. 천등산의 북쪽을 흐르는 괴촌천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와 단촌면 상화리에 걸쳐 있는 산. 가뭄이 심할 때, 이 산에서 제를 올리면 비가 내렸다 하여 천제봉(天祭峰)이라고 하였다 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 측량 기지로서 정상에 돌로 표시된 표고점이 있어 푯대산, 푯대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제봉의 높이는 358.5m로, 북쪽 사면은 단촌면 상화리에 속하며, 남쪽 사면은 의성읍 중리리에 해당된다. 남대천의 소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 안기도찰방(安奇道察訪)에 딸린 철파역(鐵坡驛)이 있었으므로 역마, 역촌 또는 철파라 하였다고 한다. 철파는 풍수상 마을 뒷산의 혈(血)이 약해 큰 인재가 안 난다고 하여 강하다는 뜻의 쇠 철(鐵)자와 방패를 나타내는 언덕 파(坡)자를 합해 부른 데서 연유한다. 자연 마을인 철파는 임진왜란 당시 주민들이 철방패와 같은 굳은 정신력...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청로리와 산운리를 연결하는 다리.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금성면 청로리의 이름을 따서 청로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1998년 새롭게 준공된 청로교에서 교량 길이의 합인 연장은 181.0m, 교량의 총 폭은 12.0m, 교량에서 차도만의 유효 폭은 12.0m, 지표면 또는 수면에서 교량의 바닥 판까지의 수직 높이는 6.0m이다. 교각과 이웃하는 교각 사이를 정의하...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로리(靑路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청로(靑路)에서 나온 명칭으로, 옛날 이 마을이 개척될 때 부근에 푸른 숲이 우거진 길이 많아 청로라 일컬었다 한다. 또한 이 마을이 예로부터 교통의 중심지로 주요 교통로가 지나갔기 때문에 청로라는 지명이 생긴 것으로도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청로역이 있어, 역마라고도 불렀다. 조선 말 경상북도 의성군...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산리(靑山里)는 청화산(靑華山) 아래 위치하여, 마을 이름을 청산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선산군 도개면의 청운동, 백운동, 신흥동, 갈현동 일부와 경상북도 비안군 내서면의 신촌을 병합하여 선산군 도개면 청산동이 되었다. 1987년 1월 1일 의성군 구천면에 편입되어 의성군 구천면 청산동이 되었다. 1988...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초등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 기관.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 소학교는 갑오개혁 이후 한성 사범 학교 부속 소학교가 그 시작이다. 1895년 8월 1일 ‘소학교령’이 시행되면서 한성에 8개의 관립 소학교를 비롯하여 각 도에 약 100여 개의 공립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의성군에서도 1906년 11월 의성 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문소 학교(聞韶 學校)가 설립되어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와 대리리를 연결하는 다리. 초전교는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 지역에 북서~남동 방향으로 설치된 교량으로, 의성군을 북서류하는 쌍계천을 따라 나란히 달리는 지방도 927호선에 건설되었다. 초전교의 명칭은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1999년에 성능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보수공사를 통해 새롭게 준공된 초전교의...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초전리(草田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이름에서 따온 명칭으로, 약 350년 전 조선 현종(顯宗) 때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일대가 풀이 무성한 풀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설에 따르면 이곳은 조문국(召文國)의 궁터였는데 신라가 조문국을 합병을 한 후 평민의 거주를 금하여 초목이 무성하였다 한다. 또한 마을이 형성되기 전 부근에 역이 있...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해 온 경주 최씨 입향조.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명언(明彦). 관가정(觀稼亭) 최청(崔淸)의 후손이다. 최명후(崔明厚)[?~?]는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선조 연간에 남쪽의 예천 모정리(茅亭里)[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로 이주·개척하여 우거하였다. 후에 정자를 짓고, ‘모운(慕雲)’이라 하였다....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가축을 사육하여 인간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사업. 축산업은 소, 돼지, 닭, 양, 오리 등의 가축을 기르고, 그 생산물을 가공하여 인간의 실생활에 필요한 물질을 공급하는 산업이지만, 조선 말기까지 축산의 발전은 미미하였으며, 식생활에서도 축산물의 비중은 낮았다. 국민 소득 수준의 증대로 식생활 문화가 변화하면서 축산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축산...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정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춘산 교회는 1920년 10월 15일 설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춘산 교회는 예배 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 주일 예배는 일요일 오전 11시, 오후 2시에 열리며, 새벽 기도회는 하절기 오전 4시 30분, 동절기 5시 30분에 열린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연로하기 때문에 농번기에는 교...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춘산면은 8개의 법정리와 20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 전체가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주변에 산두봉·북두산·구무산·늑두산 등이 솟아 있다. 지역 내 곳곳을 흐르는 소하천 연안을 따라 경지가 분포할 뿐 평야는 거의 없다. 춘산면에는 김녕 김씨, 경주 김씨, 일직 손씨, 의성 김씨 등이 세거하고 있다. 대사 1...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정리에 있는 춘산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 춘산면 주민들에게 필요한 행정, 산업 경제, 민원 및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10년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따라 면이 행정 구역 단위가 되었으며, 1917년 10월 1일 면장과 유급 면서기·회계원·구장을 구성원으로 하는 춘산면사무소를 설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민원 재정팀과...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전통 시대와 개항기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忠)을 실천한 신하. 전통 시대에 신하에게 가장 강조하고 요구하였던 덕목은 충(忠)이다. 이 덕목은 자신보다 높은 존재인 임금을 위해 행동하고, 개인보다 국가를 위해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따라서 충신은 왕조의 교체기나 국난의 시기에 많이 나타난다. 왕조의 운세가 다하여 기울어져도 새로운 왕조에 협력하지 않는 것이...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에 있는 다리. 치선 2교는 의성읍 치선리 지역에 설치된 교량으로, 남대천을 따라 나란히 만들어진 군도 1호선에 위치해 있다. 치선 2교의 명칭은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치선 2교에서 교량 길이의 합인 연장은 84.0m, 교량의 총 폭은 8.0m, 교량에서 차도만의 유효 폭은 7.0m, 지표면 또는 수...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에 있는 다리. 치선 1교는 의성읍 치선리 지역에 건설된 교량으로, 남대천을 따라 나란히 달리는 군도 1호선에 건립된 다리이다. 치선 1교의 명칭은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치선 1교에서 교량 길이의 합인 연장은 64.0m, 교량의 총 폭은 6.0m, 교량에서 차도만의 유효 폭은 5.0m, 지표면 또는...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자치동(自致洞)과 선암동(仙岩洞)을 병합하여 치선동(致仙洞)이라 하였다. 자치동은 치선 1리에 해당하는데, 원래는 마을 뒷산 형상이 암꿩같이 생겼다고 하여 암컷 자(雌), 꿩 치(雉) 자를 따서 자치동(雌雉洞)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건너 보이는 앞산[오토산]의 산혈이 매의 모양을 하고 있어 꿩이 매한테 옴...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에 있는 신라 시대 산성 유적. 치선리 산성터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 자치 마을 서편에 있는 높이 230m의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성벽은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쌓았으며 전체 둘레는 700m 정도이지만 대부분 무너져 내렸다. 성내에는 치선리 봉수터가 있으며 성벽을 따라 곳곳에 성문지(城門址)나 망루지(望樓址)로 추정되는 곳도 있다. 정확한...
-
우리 민족은 개항 이래 근대를 달성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강제적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실질적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에 맞서 국내외에서 적극적·...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는 케이티 지사. 케이티는 유무선 전화, 초고속 인터넷 등 유무선 통신 서비스업을 주요 업종으로 하는 통신 회사이다. 1981년 한국 전기 통신 공사로 창립했으며 2001년 12월 케이티로 개칭되었고 2009년 6월 1일에 이동 통신 자회사인 케이티에프와 합병했다. 1973년 12월 의성 전신 전화 분실로 개국했으며 1982년 1월 한국 전기 통신...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서리에 있는 케이티앤지 경북 본부 산하 지사. 케이티 앤지는 원래 담배와 인삼을 전매하던 국가 기관이던 것이 공기업으로, 다시 민영 기업으로 전환된 회사이다. 국가 기관이던 때의 명칭은 전매청이었으며, 1988년 12월 공기업으로 전환되면서 한국 담배 인삼 공사로 개칭되었다. 1996년 7월 홍삼 전매권이 폐지되었고, 1999년 10월 증권 거래소에 주식을...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탑리리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탑리(塔里)에서 나온 명칭으로, 신라 때 세운 5층 석탑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 고련[귀련·고현(古縣)]은 옛날 현청 소재지여서 또는 이곳에 현이라는 조그마한 나라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위마(位馬)[위매(渭梅)] 마을은 마을 뒤에 천마봉(天馬峰)이라는 산이 있고 그 생김새가 말이 누운 것...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있는 중앙선 철도역. 탑리역은 중앙선 철도역으로 1940년 영업을 시작하였고, 현재까지 화물과 여객을 취급하는 보통역이다. 탑리역은 중앙선 철도를 개설할 때에 화물과 승객의 수송을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1940년 4월 1일 무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고, 1940년 6월 15일 보통역으로 승격하였다. 1950년 8월 7일 6.25 전쟁으로 역사...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에 있는 다리. 탑산교는 의성군을 종단하는 중앙 고속 도로[고속 국도 55호선]에서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 지역에 설치된 교량이다. 탑산교라는 이름은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 탑산(塔山)에서 유래되었다. 탑산교의 상행선인 춘천 방향에서는 교량 길이의 합인 연장이 9.8m, 교량의 총 폭은 12.1m, 교량에서 차도만의...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토구동(土邱洞)과 가매동(加梅洞, 佳梅洞) 일부를 병합하여 토매동(土每洞)이라 하였다. 토구(土邱)는 1684년(숙종 10)에 이단하(李端夏)라는 선비가 관직을 사직하고 팔도를 유람하던 중에 이 마을에 들려 구릉이 좋고 흙의 질이 좋다 하여 이름 붙였다는 설과 마을의 흙이 황토 점토질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
-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이 풍화·분해되어 생산된 흙. 의성군에 분포하는 토양은 암석이 풍화되어 광물질화되는 과정에 놓여 있는 물질로서 공기, 물, 생물 등에 의하여 형성된다. 암석이 제자리에서 풍화되어 토양화된 정적토와 풍화물이 운반·퇴적된 충적토로 구분될 수 있는데, 정적토는 산지나 산지 사면에 주로 분포하며 충적토는 하천 양안에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토양의...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수하고 특별한 산물. 지역마다 지형, 기온과 강수량에 차이가 있고 토질이 달라 그 지방의 풍토에 알맞은 특산물이 생산된다. 특히 한국은 예부터 지역성이 강하여 지방 특산물이 많이 생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 자치제가 실시되면서 각 지역마다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지역 특산물을 브랜드화하여 경쟁력 있는 산물을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성군...
-
의성 출신의 권상두가 포함된 유림 세력이 1919년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조선의 독립 승인 청구권을 제출하기 위해 벌인 활동. 1919년 3·1 운동 이후 유림 세력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 중 유림이 빠져 있다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후 질서를 다루는 목적으로 개최된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조선 유림이 대표가 되어 ‘조선 독립 승...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속하는 법정리. 팔등리(八嶝里)는 마을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산을 넘거나 위천의 나루를 건너야 했고 첩첩한 서쪽의 산등성이를 여덟 개나 넘어야 되서 붙여진 이름이다. 팔령(八嶺)·팔은(八隱)·팔동(八洞)으로도 불렀다. 팔은(八隱)이란 동쪽과 북쪽은 위천이, 남쪽과 서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팔동(八洞)이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성동, 상팔동, 하팔동을 병합하면서 팔동과 성동의 이름을 따서 팔성동이라 하였다. 한편 동네 사람들은 인근 여덟이나 되는 산봉우리에 성터가 있었다고 하여 팔성(八城)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상팔(上八)은 팔성 1리의 자연 마을로 팔성동(八城洞)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어 웃바지 또는 상팔(上八)이라...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터. 팔성리 고성산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있는 높이 211.4m의 구봉산 정상에 위치한다. 팔성리 고성산성 터를 이루고 있는 높이 200m 내외의 아홉 개 봉우리로 연결된 능선 가운데, 두번째 봉우리에 봉수터 유적이 있다. 산성 내 시설로 파악되므로 산성의 건립 시기인 삼국 시대에 건립된 봉수로 추정된다....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있는 산성 유적.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 산30번지 일대에 분포하는 포곡식(包谷式) 토축 산성이다. 산성이 위치한 골짜기는 남서쪽으로 열려 있으며, 이를 둘러싸고 있는 높이200m 내외의 아홉 개의 봉우리로 연결된 능선 위에 산성을 축조하였다. 삼국 시대에 처음 축성하여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문헌 기록으로 보아 정유재란(丁酉...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있는 정자. 팔성리 봉의정은 콘크리트조의 팔각정이다. 봉의정이라는 이름은 ‘소소구성 봉황래의(簫簫九成 鳳凰來儀)’라는 옛글에서 취한 것이다 팔성리 봉의정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 산1에 있다. 구봉산(九峰山)의 제1봉 정상에 해당한다. 팔성리 봉의정은 1981년에 의성군청에서 건립하였다. 팔성리 봉의정은 구봉산의 아홉 봉우리 중에 제1봉에 만...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교목. 의성군에서 팽나무는 공원수나 그늘을 만들어 주는 정자목으로 많이 심기고 있다. 그 가운데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는 총 6그루로 단밀면 낙정리, 다인면 달제리·삼분리, 안사면 만리리, 금성면 구련리·개일리에 소재한다. 의성군에 분포하는 대부분의 팽나무는 25m까지 자라며, 껍질은 회색으로 밋밋하나 작은 요철이...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평지동과 죽림동을 병합하여 평림동이라 하였다. 평지(平地) 혹은 평림 마을(平林 마을)은 서당이 있었기에 서당 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서당 앞에 큰 소나무 숲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한다. 조선 전기에 평지 마을에는 관원의 관사와 창고가 있었다 하여 창 마을로 불러오다가, 비봉산의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리리는 자연 마을 풍림(豊林)의 ‘풍’자와 상리·중리 마을의 ‘리’자를 딴 것이다. 자연 마을 풍림은 마을 주변에 수목이 울창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리(上里)는 위쪽에 있는 마을이며, 중리(中里)는 상리와 장대리장대 마을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다. 상리와 중리는 인접하여 있으며, 과거에는 두 마을을 신예곡(新禮谷) 또는 새락골이라고도 불렀...
-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는 취락의 입지 등 인간의 삶에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한 전통 사상으로, 의성군 내 마을 곳곳에 풍수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마을의 풍수 형국에 의해 마을 이름이 정해진 곳이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순호리 탄호(炭湖) 마을은 동쪽의 선암산(船巖山)이 배같이 생겼고 이 마을은 연료 창고 격에...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리(霞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에서 나온 명칭으로, 원래 마을 앞에 연못이 있어 물 하(河) 자를 써서 하동(河洞)이라 하였으나, 노을[경상도 방언으로 나부리] 하(霞) 자가 더 운치가 있어 한자를 바꾸어 하동(霞洞)이라 하였다 한다. 하동은 노을의 방언 나부리에서 유래한 이름인 나붓골 또는 나부로도 불린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에서 발원하여 의성군 신평면 중율리를 거쳐 신평면 청운리에서 광산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하신천은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 어담지 부근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어담 1교 부근에서 서쪽으로 흘러 풍천면 금계리와 의성군 신평면 중율리를 지나 의성군 신평면 청운리에서 광산천으로 합류한다. 길이는 9.1㎞ 정도이고 의성군에 해당되는 구간의 길이는 1.7㎞이다. 의성...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주변보다 낮은 하곡이나 범람원을 따라 일정한 유로를 유지하면서 사면의 경사 방향으로 흐르는 유수. 의성 지역의 하천 시스템에서 하천이 흐르는 일정한 유로를 하도라고 하며, 유역의 분수계 내에 모이는 물에 의해 하천의 유량이 결정된다. 분수계는 지표수를 나누어 흐르게 하는 산 능선의 정상부를 따라 형성된 경계선을 의미한다. 하천망을 분류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인...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해 온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진양(晋陽)]. 자는 굉지(浤之). 현감 하순(河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령(縣令) 하계지(河繼支)이고, 아버지는 하윤(河潤)이고, 어머니는 대사헌을 지낸 김지경(金之慶)의 딸 일선 김씨(一善 金氏)이고, 부인은 현감 홍억령(洪億齡)의 딸 남양 홍씨이다. 하취굉(河就浤)[1469~1524]은 1496년(연산군 2) 아우...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화(下禾)란 마을 앞 들이 넓고 기름져 특히 벼농사가 잘되는 곳인데, 큰 소(沼) 아래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아랫수일[水逸][아랫실]이라 하였는데 수일 아래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 수침(水浸)은 옛날에 마을 위쪽에 깊은 소가 있는데, 제방이 튼튼하지 못하여 홍수가 나면 물이 넘쳐 잠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세촌리에서 미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하화천은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에 있는 천제봉[358.5m]의 북쪽 사면과 서낭재[215m]의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북서쪽으로 흐르며 하화리를 관통하고, 세촌리의 단촌 초등학교 부근에서 미천으로 유입된다. 두 개의 4차수 하천이 합쳐져 5차수 하천을 이루며, 5차수 하천 구...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학림사(鶴林寺)는 1945년 3월에 주지 강상문의 친모 조돌이가 대웅전 1동, 요사채 1동, 산신각 1동을 건립하여 창건하였다. 1986년에 5층 석탑을 세웠으며, 대웅전은 2008년 화재로 소실되어 그해 새로 중창하였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 법회 등의 정기 법회를 열고 있으며, 부처님 오신 날, 성도절 등의 불...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미리(鶴尾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학미에서 나온 명칭으로, 지형이 학의 꼬리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학미는 조문국(召文國) 시대 군량 보관 창고가 있었다 하여 가창(柯倉) 또는 깐창골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경상북도 의성군 상천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학미동, 상고동, 하고동, 산마동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는 한국 국토 정보 공사 산하 지사. 한국 국토 정보 공사 의성군 지사는 지적 측량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지적 측량 기술의 개발 및 지적 제도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38년 1월 조선 지적 협회 대구 지부 의성 출장소로 설립되었다. 1949년 5월 대한 지적 협회 대구 지부 의성 출장소로 개칭되었...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에 있는 한국 농어촌 공사 경북 지역 본부 산하 지사. 한국 농어촌 공사 경북 지역 본부 의성·군위 지사는 경상북도 의성군과 군위군 지역의 농·어촌 정비 사업, 농업 기반 시설 관리 및 농·어촌 지역 개발 사업 등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8년 2월 9일 의성군 비안면 동부리에 비안 수리 조합의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61년 12월 13일 수...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원당리에 있는 한국 전력 공사 대구 경북 지역 본부 산하 의성 지역 지사. 한국 전력 공사 대구 경북 지역 본부 의성 지사는 고품질의 전력을 생산하여 의성 지역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36년 4월 15일 의흥 전기 주식 회사 안동 영업소 의성 출장소로 발족했다. 1961년 7월 1일 한국 전력 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한국 전...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시안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한동 저수지는 대구에서 국도 5호선, 중앙 고속 도로를 이용하여 의성 IC에서 내려 국도 28호선을 따라 안계에서 안사 방면으로 800m 가면 정안교가 있다. 정안교를 건너 우회전하여 아스팔트길로 900m 가면 시안 교회가 나오며, 교회에서 200m 가면 저수지 제방을 지나 좌측 산길로 올라가면 나타나는 2종 저수지이다....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일대에 서식하는 양치식물 고사리목 면마과의 여러해살이풀. 의성군에 분포하는 한들고사리는 엽병이 가늘고 볏짚색이며 밑 부분에 인편이 밀집하고 있으며, 인편은 연한 갈색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한 피침형이다. 엽신의 길이는 7~20㎝, 폭은 2~6㎝로서 긴 타원형 내지 난형으로 잎이 뾰족하다. 홀씨주머니 무리는 잎사귀의 뒷면에 흩어져 있으며 다갈색이다. 포자에...
-
1895년~1911년 사이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의병 운동은 집권층이 부패하고 무능한 상태에서 외세가 침략하여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일어난 구국 운동의 대표적 형태였다. 의병 운동은 일제의 대한 제국 병합을 전후한 시기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무장 투쟁을 주도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기반을 마련하...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리와 군위군 고로면 낙전리를 연결하는 고개. 한티재라는 명칭은 포항에서 안계를 향하던 건어물 장수가 이 고개를 넘어가다 힘이 들어 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는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티재는 남서쪽의 580m 고지와 북동쪽의 590m 고지 사이에 있는 낮은 안부로 높이는 355m이다. 한티재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 분포하는 산지의 높이가 매우 높고...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와 점곡면 황룡리를 연결하는 고개. 한티재는 북쪽의 300m 고지와 남쪽의 280m 고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낮은 안부로 높이는 235m이다. 한티재를 중심으로 동쪽 계곡은 옥곡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발원지이며, 서쪽 계곡은 남대천의 소지류 하천의 발원지이다. 옥곡천은 북류하여 점곡면 면소재지에서 미천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한티재는 미천과 남대천을 구...
-
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지량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 함양 박씨(咸陽朴氏)의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셋째 아들인 박언신(朴彦信)으로 속함 대군(速咸大君)[속함은 경상남도 함양의 옛 명칭]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았다. 고려 시대에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내고 함양군(咸陽君)에 봉해진 박선(朴善)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였다. 박선의 현손 박신유(朴...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와 비안면 자락리 그리고 안사면 중하리에 있는 산. 해망산은 한자를 풀이하면 바다를 갈망하는 산이라는 뜻을 지녔지만 그 유래는 알 수 없으며, 해명산(海明山), 굴암산이라고도 부른다. 해망산은 높이가 400m로, 북서쪽은 화두산[290.7m], 골두봉[315.0m] 등의 산지와 능선이 연결되어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높이 300m 내외의 산지와 이어져 있...
-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하고 오국화(吳國華)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세거 성씨. 해주 오씨의 시조는 중국 송(宋)의 학자인 오인유이다. 고려 성종 때 귀화하여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내고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이 본관을 해주로 삼았다. 후손 중에 오연총(吳延寵)은 고려 예종 때 윤관(尹瓘)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하여 이부 상서(吏部 尙書)...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향(鄕)은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존속하였던 특수한 지방 하급 행정 구역이다. 흔히 향·소(所)·부곡(部曲)으로 연명되면서 일반 군현제 영역과 구분하여 부곡제 영역이라고 부른다. 향의 주민은 소·부곡 주민과 함께 일반적인 양민과 다른 노비·천민과 유사한 특수한 열등 계급의 지위로 보기도 하지만 신...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겉씨식물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 의성군에는 향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편은 아니나 마을 앞에 정자나무나 노거수로 심겨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가운데 점곡면 사촌리와 안사면 안사리에 보호수로 지정된 향나무가 각각 1그루가 있으며, 점곡면 사촌리에 경상북도 기념물인 향나무도 1그루 있다. 의성군에 생육하고 있는 향나무는 수고 20...
-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따위를 조사 연구하여 기록한 책. 향토지는 향토 지리 및 향토사를 중심으로 행정, 산업, 문화, 예술, 인물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여 각 고을의 특성을 기록한 것이다. 의성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향토지가 편찬되어 왔다. 조선 건국 후 국가 통치를 위해 만든 관찬 지리지에서 의성 지방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다. 1530년 간...
-
1945년 해방 이후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경상북도 의성군은 태백산에서 남으로 뻗은 태백산맥과 서남으로 뻗은 소백산맥이 소쿠리 모양을 형성하고 있는 지형에 위치한다. 태백산맥의 영천 보현산에서 온 줄기가 춘산면에서 두 갈래로 갈려져, 한 줄기는 북쪽으로 흘러 춘산면의 산두봉, 옥산면의 황학산, 단촌면의 갈라산을 만들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굽어 신평면의 봉암산, 다인면의 독점...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현리리(縣里里)는 이 지역에 고을 창고[사창(社倉)]가 있었으므로 창리, 창마, 창말로 부르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현리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의 현리동, 중리동, 대동, 용산동, 척화동을 병합하여 의성군 가음면 현리동(縣里洞)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 화장산성(花藏山城)이 있어 성곡(城谷) 또는 성골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현산동(現山洞)이라 칭하였다. 현산의 명칭 유래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자연 마을 대접 일명 대재비는 마을 도로변에 술을 대접으로 팔던 주막이 있어 유래한 이름이다. 아랫동네는 서쪽 계곡으로 가장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도화동은 마을 산...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신흥리와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를 연결하는 고개. 고개가 연결되는 화목리의 이름을 따서 화목재라 하였다. 화목령이라고도 한다. 화목재는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신흥리와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 경계부에 있으며, 북서쪽의 구무산[676.2m]과 남동쪽의 산두봉[719.0m]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낮은 안부로 높이 395m이다. 화목재는 의성군 춘산면과 청송군 현서면...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병합된 화장동, 신기동, 무덕동에서 화장동(花庄洞)과 신기동(新基洞)의 이름을 따서 화신동(花新洞)이라 하였다. 화장골은 뒷산의 질구지골, 섭시골, 맷돌바우골, 물골 등이 서로 맞대어 있는 것이 꽃의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탑동은 옛날 비안현 때 커다란 탑이 마을에 있었다 하여 탑동이라 불렀다 한다....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빗재에서 발원하여 화신리를 지나 쌍계리에서 쌍계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화신천은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에 있는 빗제의 남쪽 사면에 위치한 영풍지 부근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남쪽으로 흘러 화신리를 거쳐 쌍계리 쌍계교에서 쌍계천과 합류한다. 하천 길이는 9.2㎞이며, 유로 연장은 9.5㎞, 유역 면적은 15.82㎢이다. 화신천을 둘러싸고 있는 분수계는 빗재...
-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화장산성(花藏山城)에서 벌어진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 화장산성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화장산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 시대 산성이다. 의성군 비안면, 안평면, 안사면을 경계로 하여 370m 능선을 따라 약 4㎞의 산성이 수축되어 있다. 현재 천연의 암굴(岩窟)을 거점으로 한 유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화장(花藏)’이라는 이름은 임진...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에 있는 다리. 화전 2교는 경상북도 봉양면 화전리에 설치된 교량으로, 의성군을 종단하는 국도 5호선에서 북동-남서 방향으로 건립되었다. 화전 2교의 명칭은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2005년에 성능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보수 공사를 통해 새롭게 준공된 화전 2교의 상행선과 하행선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에 따라 자연 마을인 화전동에서 딴 것이다. 화전(花田)은 약 400년 전에 신지제(申之悌)가 마을을 개척하고 마을 앞 밭에 목련 꽃이 곱다 하여 화전이라 불렀다고 한다. 원지는 한말에 고관들이 지나다가 쉬어 갔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도리원은 과거에 있었던 시장 이름인 도리원을 따서 지은 이름이고, 안실은 약...
-
조선 후기 의성에 부임한 지방관.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영(汝濚). 황영(黃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산 군수(安山 郡守)를 지낸 황도형(黃道亨)이고, 아버지는 양성 현감(陽城 縣監)을 지낸 황석(黃錫)이고,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주우(金柱宇)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고, 부인은 부사(府使) 이송로(李宋老)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황응일(黃應一)[165...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금학리와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금곡리에 걸쳐 있는 산. 명확하지는 않으나 풍수지리상 지형이 학 형국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황사봉, 약칭으로 황산이라고도 한다. 황학산은 높이가 782.2m로, 북쪽의 갈라산에서 이어지는 지맥에 해당되며, 주변의 임봉산, 금학산, 두리봉과 함께 의성군의 동쪽 경계를 이룬다. 황학산의 동쪽 사면은 길안천의 발원지이며, 서쪽...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 저녁 횃불을 사용하여 이웃 마을과 싸움을 하던 놀이.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횃불을 무기로 하여 이웃 마을과 싸움을 하던 민속놀이인 횃불싸움을 즐겼다. 횃불싸움은 ‘홰싸움’, ‘거화전’이라고도 불린다. 횃불싸움이 언제부터 행해져 오던 놀이인지는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하지만, 『동국세시기』에 “호서[현 충청도]...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노박덩쿨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 의성군에 분포하는 회나무는 정원수로 많이 심겨져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회나무는 총 14그루로 가음면 가산 1리·가산 2리, 금성면 개일리·만천리, 다인면 달제리, 안평면 괴산 2리, 의성읍 업리, 점곡면 구암리에 소재하고 있다. 이외에 의성읍 도서리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된...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교목. 의성군에서 회화나무는 마을 어귀에 주로 심겨져 있다. 목재 및 약용 외에 정자목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으며, 점곡면 구암리에 있는 두 그루의 회화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의성군에서 생육하고 있는 회화나무는 일반적으로 수고가 25m 정도까지 자라며, 작은 가지를 자르면 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회화나무의...
-
경상북도 의성 지역 출신이거나 의성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우리나라에서 효(孝)의 관념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널리 알려져 있는 화랑의 세속오계에서도 효를 강조하고 있고,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효녀 지은 설화에서도 고대에 효를 중시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에 의한 적극적인 교도(敎導)로 서민에게까지 이른 것은...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효자리와 대제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효제라 하였다. 자연 마을 효자리(孝子里)에는 못 둑이 활 모양 같아 활못이라 불리는 큰 못이 있었고, 북쪽 산기슭에는 활모산이란 마을이 있었다 한다. 그 후 못이 없어지면서 못 자리가 넓은 들판이 되니 마을이 넓은 들판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후 이 마을에 가난...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속하는 법정리. 구 읍지에 의하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현 의성 초등학교, 안동 세무서 의성 지서, 경상북도 의성 교육 지원청 자리를 잇는 곳에 4,727척이나 되는 길이의 토성이 있었다 한다. 의성 초등학교 부근은 군영이고 현재의 후죽리의 거의 전역은 활터로 알려져 있다. 사포(射布)로 된 과녁에 대나무로 만들어진 화살을 쏜 곳이라 하여 과녁 후(帿...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후평 저수지는 단촌면 후평리에 있는 2종 저수지이다. 경상북도 의성에서 안동 방면 국도 5호선을 따라 약 10㎞ 가면 단촌면 소재지에 이르며, 단촌면 소재지에서 점곡면 방면 지방 도로를 이용해 3㎞ 가면 후평교에 이르고 다리를 건너 500m 가량 가다 후평 초등학교를 끼고 좌회전하면 저수지가 나타난다. 인근에는 681년(신...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후평리는 고려 말 전주 이씨가 개척한 마을로서 면사무소가 위치한 들판 뒤쪽에 위치하므로 뒷들 또는 후평이라고 하였다 한다. 본래 의성군 구산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산면 명성동과 점곡면의 토일동을 병합하여 단촌면 후평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1225호에 의해 후평동을 후평리로 개칭하였다. 마을...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만천리와 사곡면 토현리를 연결하는 고개. 흙이 많이 쌓여 있어 이름 붙여졌다 한다. 흙고개, 흑고개, 토현(土峴)이라고도 한다. 흘고개는 북쪽의 340m 고지와 남쪽의 320m 고지 사이의 낮은 안부로 높이가 185m이다. 흘고개는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오토산[475m]에서 이어지는 능선과 남쪽의 금성산[531m], 비봉산[671.8m]에서 뻗어 나온 산자락...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청산리와 군위군 소보면 보현리, 사리리를 연결하는 고개. 흰치 고개는 서쪽 청화산[700.7m]의 한 자락으로 고개의 서쪽 지역이 대체로 높이가 높은 특성을 보인다. 흰치 고개는 서쪽의 610m 고지와 동쪽의 330m 고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낮은 안부이며, 높이는 205m이다. 고개와 주변 지역의 기반암은 대부분 퇴적암이다. 흰치 고개 일대는 중생대 백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