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시기 전라북도 완주군의 역사와 문화. 전라북도 완주 지역은 마한 일부였으며 가까이에 한의 중심지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 시대 완주의 모습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삼한에는 마한 54국, 진한, 변한에는 각각 12국 등 모두 78개 소국이 있었다고 한다. 근래에 원지국(爰池國)이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 있었다고 비정하였는데, 이 역시 원(爰)과 완(完)의 음이...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신풍마을에 있는 개화기 남방희와 남수희 쌍효각. 금평리 남방희, 남수희 정려는 남수희와 남방희 형제의 쌍효각이다. 남수희는 신혼을 모르고 살았으며, 부모님 병 치료에 백약을 찾다 보니 재산이 줄고 집안이 기울어졌다. 3년간 고기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아주 검소하게 살았다. 날마다 부모 묘를 찾아 살폈고 울음소리와 눈물이 그친...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송규환 처 안씨 정려. 안씨의 본은 탐진(耽津)으로 이조판서 고은 안지(安止)의 후손이다. 안씨는 예의범절이 분명하고 미모 역시 빼어났다. 격이 맞는 송규환(宋規煥)과 혼인해서 시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극진하게 모시어 군자의 도와 일치하는 섬김이라 칭해졌다.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이름모를 병으로 눕게 되자 약이 된...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청명에 있는 임락풍·임락관·임락성의 효자 정려. 임락풍·임락관·임락성 정려[孝子 學生 林樂豊 林樂觀 林樂晟之閭]의 효자 정문은 외삼문으로 되어 있다. 조양임씨 삼형제는 나란히 효자이다. 임락풍은 1797년(정조 21) 출생해서 1866년(고종 3)에 세상을 떠났는데, 부인 우주황씨는 석노의 딸로 1794년(정조 18)생이며 186...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에 있는 윤언형 처 전주이씨 정려. 전주이씨는 고산현 이규홍의 딸로 1797년생인 유언형과 1819년 3월 3일 혼인을 했다. 그해 6월 25일 처가에 가던 중 고산천에서 남편이 목욕하다 익사하자 전주이씨는 21세의 나이로 애통해 하며 식음을 전폐하다가 동년 8월 3일 치마에 돌을 감싸고 스스로 익사했다. 모든 사람이 전주이씨를 열...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신기마을에 있는 개항기 박기헌의 정려각. 박기헌의 자는 원화(元化)이고 호는 사이당(四而堂)이다. 아버지는 증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贈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계택(桂澤)이고 어머니는 숙부인 진주강씨이다. 어머니 진주강씨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고 병이 깊음을 알았으며 하늘에 대신 죽기를 축원했다. 박기헌은 부모의 상을 당하자 지나...
-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 완주 지역은 조선시대의 전주 일부와 고산 지역이 합쳐져서 형성된 지역이다. 그리고 고산현은 고산현과 고려시대의 운제현이 합쳐진 곳이고, 전주는 고려시대의 전주, 우주현(紆州縣), 이성현(利城縣), 이성현(伊城縣), 옥야현(沃野縣) 등과 양량소, 두모촌소, 경명향 등이 합쳐진 곳이다. 이중 이성현(伊城縣), 우주현, 전...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원신교마을에 있는 유도양 처 연안이씨의 정려. 유도양의 처 연안이씨는 시어머니가 병환에 걸려 위독해지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간호하며 자기 몸을 돌볼 틈 없이 약을 달여 간병을 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고 위독해지자 단지주혈[부모의 입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드리는 것]을 했다. 이같은 기사가 1892년(고종 29)...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원신교마을에 있는 유태양과 부인 반남박씨의 정려. 유태양[1804~1860]은 본관이 전주이고, 시조 장령공의 17세손이며, 아버지는 유규보이다. 아내 효부 반남박씨는 1804년(철종 11, 갑자)생이고, 1859년 1월 5일 사망했다. 유태양은 평생 효경(孝經)을 읽었고 떳떳한 일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괴질에 걸려...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용복마을에 있는 개항기 박효진의 정려. 박효진은 밀양박씨로 자는 문중(文中)이다. 아버지는 달해(達海)이고 자는 사즙(士楫)이다.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자 박효진이 항상 탕약과 원하는 음식을 손수 마련했는데 하루는 꿩고기를 원해서 하늘에 비니 꿩이 집으로 날아와 구할 수 있었고, 또 신인으로...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에 있는 정우홍의 정려. 정우홍은 하동정씨로 1713년(숙종 39) 정진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모를 공양하는데 효성이 지극했다. 정우홍이 11살 때에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대변의 맛을 보면서 병간호를 했으며, 19세 때에는 아버지가 값자기 꿩고기가 드시고 싶다고 하자 막연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타까워하자 꿩 한 마리가...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 오산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구석린 효자각. 구석린은 1676년(숙종 2)에 고산면 오산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리 뛰어나 부모님을 편안히 모셨다. 부친상을 당해서는 예로써 안장한 다음 묘 옆에서 여막을 짓고 3년을 모셨다. 돌아와서 바로 모친상을 당함에 다시 아버지 묘 옆에 안장하고 3년을 시묘했다. 그동안 구석린의...
-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소양면, 구이면, 용진읍, 봉동읍 일부가 포함되어 있던 지방통치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의하면,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영토로 완산(完山), 두이현(豆伊縣), 우소저현(于召渚縣), 고산현(高山縣), 지벌지현(只伐只縣)이 있었다. 이들 지역의 위치를 살펴보면, 전라북도 전주시 노송동을 중...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하학마을에 있는 개항기 이근섭의 효자 정려. 이근섭은 연안이씨이고, 좌의정 이귀령의 자손이다. 이근섭은 유복자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남보다 더욱 청순하며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했다. 집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도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날로 더해 갔다. 어머니의 가냘픈 삶은 오직 아들에 기대를 걸 뿐이었다. 어머니가 죽자 이...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상리에 있는 유석진의 효자각. 유석진은 기계유씨로 고산현에 처음 들어 온 입향조 성보의 손자다. 원래 운제현 사람으로 고산현의 관리였다. 부친인 천을(天乙)이 괴질에 걸려 병세가 악화되어 기절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니, 유석진이 기도로서 하늘에 도움을 구하고 널리 약을 구하며 간병하고 있을 때, 한 의원이 말하기를, 살아 있는 사람...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황새골마을에 있는 송정 처 반남박씨의 정려. 무진년 9월에 이성리 송정처 반남박씨 정려각을 세웠다. 무진년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자세히 알 수 없다.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황새골마을은 전주-김제 간 716번 지방도로에서 갈산리-금구 방향 713번 지방도를 타고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황새골마을이 나온다. 이성리 송정처 반남박씨 정려는...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원이성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언술의 정려. 정언술은 동래정씨로 태어난 지 겨우 50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나, 새어머니에 대해서도 효성을 다했다. 새어머니는 강보에 싸인 전 부인의 아들 정언술을 길렀다. 정언술은 새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공부를 해서 지방 수령이 되었다. 정언술은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슬픔이 본성을...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 구하마을에 있는 정려비. 강기환[1821~?]은 진양강씨로 호는 흥서(興瑞)이다. 부모를 변변하게 공양은 못했지만 유쾌한 성격으로 극진히 섬겼다. 부모가 죽은 후 강기환은 3년간 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어 땅이 패이고 눈물 젖은 풀이 말라 죽었다.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글을 올리자 예식원 이용직(李容稙)이 주청해서 증직과 함께...
-
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소양면, 구이면, 용진읍, 봉동읍 일부가 포함되어 있던 지방통치구역. 전주는 통일신라시대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756년(경덕왕 15)에 완산을 바꾼 이름이다. 전주는 신라 9주의 하나로, 지금 전라북도 전주시·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상관면·소양면·용진읍·삼례읍 남부·봉동읍 동부 지역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권제9 신라본...
-
전주(全州)를 본관으로 하고 전라북도 완주군에 거주하는 세거 성씨. 전주최씨(全州崔氏)는 전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를 달리하는 4계파가 있다.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와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로 나뉜다. 『...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조옥승(曺玉承)[1828~1892]의 호는 월은(月隱)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조명계(曺命啓)이고, 아버지는 진사 조석리(曺錫履)이다. 조옥승은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隱世稿)』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신암 조헌승과 우재 조호승이 친족관계인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조옥승은 한말의...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조헌승(曺憲承)[1813~1860]의 호는 신암(信菴)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조헌승은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隱世稿)』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우재 조호승과 월은 조옥승이 친족관계인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조헌승의 문집(文集)으로 『신암집(信菴集)』 필사본(筆寫本) 1책을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학자. 조형승(曺亨承)[1854~1916]의 자는 하경(夏卿), 호는 만오(晩塢)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조선 후기와 근대에 활동한 한학자이다. 아버지는 조석희(曺錫羲)이다. 조형승은 충익공 조문택(曺文澤)의 후손으로 문학에 조예가 깊고 성품이 인자했다. 참봉(參奉)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886년(고종 2...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조호승(曺暠承)[1819~1954]의 호는 우재(愚齋)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완주군 비봉면 월곡리(完州郡 飛鳳面 月谷里) 출신이다. 조호승은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隱世稿)』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신암 조헌승과 월은 조옥승이 친족관계인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조호승의 문집으로 『우재집(愚齋集)』 필...
-
고려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문인. 최군옥(崔群玉)은 고려 선종[재위 1083-1094] 때 활동한 인물로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르고 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최군옥은 전주최씨 문충공파의 시조로 다른 전주최씨인 최아계나 최순작계와는 혈통이 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는 경윤(景潤)이고 한익군(韓翼君)의 사위이다. 큰아들은 중의대부 밀직사사(中議大夫密直司...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가구(可久), 호는 연촌(烟村)·존양(存養)의다. 고조할아버지는 최아(崔阿), 증조할아버지는 최용봉(崔龍鳳), 할아버지는 최을인(崔乙仁)이고, 아버지는 참의 최담(崔霮)이다. 어머니는 박인부(朴仁夫)의 딸이고, 외할아버지는 경덕재(經德齋) 박종수(朴從壽)이다. 첫째...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최득지(崔得之)[1379~1455]의 고조할아버지는 최아(崔阿), 증조할아버지는 최용봉(崔龍鳳), 할아버지는 최을인(崔乙仁)이고, 아버지는 참의 최담(崔霮)이다. 어머니는 박인부(朴仁夫)의 딸이고, 외할아버지는 경덕재(經德齋) 박종수(朴從壽)이다. 첫째 형은 최광지, 둘째 형은 최직지로 둘 다 문과에 급제해서 집현전직제학을 지냈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문인화가. 최명룡(崔命龍)[1567~1621]은 조선 중기의 한학자로 어려서부터 비범해서 12세에 아버지 상을 당했는데 집례를 어른처럼 의젓하게 하므로 모두 탄복했다고 한다. 이정기의 문하에 있을 때 이정기가 말하기를 “최씨의 자제가 나를 가르치러 왔다”고 하며 탄복했다고 한다. 그 후 신중경의 문하에서 수업한 뒤 변산의 절...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무인. 최분손(崔芬孫)[1542~1626]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할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오위장(五衛將)[종2품관] 최건신(崔建臣)이며, 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종4품] 최영서(崔令瑞)이다. 최분손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정3품관],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등의 벼슬을 역임했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문인. 최상성(崔尙聖)[1584~?]의 자는 이화(而化)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완주백(完州伯) 문열공(文烈公) 최순작(崔純爵)의 후손으로 진사(進士)를 지낸 최봉(崔奉)의 아들이다. 부인은 통천김씨(通川金氏)로 생원(生員) 김황(金況)의 딸이고, 할아버지는 참봉 최익한(崔翼漢)이고 외할아버지는 진주소씨(晋州蘇氏) 소순신(蘇舜...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문인. 최수민(崔秀民)은 완주백(完州伯) 문열공(文烈公) 최순작(崔純爵)의 15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지낸 문정공(文定公) 최재(崔宰)이고, 할아버지는 개국원종공신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이며, 아버지는 통훈대부감무공(監務公) 최사흥(崔士興)이다. 아들은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최희보(崔希輔)이고, 사위는...
-
고려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이자 전주최씨·완산최씨의 시조. 최순작(崔純爵)[?~1108]은 전주최씨 문열공파와 완산최씨의 시조로 고려 초의 평장사(平章事) 완산백(完州伯) 최언위(崔彦僞)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문정공(文貞公) 최재(崔宰)의 6대조이자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7대조이다. 최순작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고려 정종(靖宗)...
-
고려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최아(崔阿)는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이다. 전주최씨는 크게 4계파가 있다. 『전주최씨 상고사』에 의하면 최아의 상계에 대한 논란이 많으나, 여러 고증 자료에 의해 최입평의 아들로 확인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론은 있다. 최아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형지(衡之)이다.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최용생으로 문과...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최여관(崔汝寬)은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손자로 전주최씨 문충공 자손 현감공파(縣監公派)의 파시조이다. 최여관의 증조할아버지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최지(崔贄), 할아버지는 대제학(大提學) 만육(晩六) 최양(崔瀁)이며, 아버지는 이조정랑(吏曹正郞) 최진명(崔進明)이고, 형은 최여정(崔汝貞)이다. 최여관은 두 아들을...
-
고려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관인. 최용각(崔龍角)은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 최아의 둘째 아들로 대호군공파 중시조이다. 최용각의 아버지는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인 최아이다. 최아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최용각은 둘째이다. 최용각의 아들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최철(崔哲)이고 부인 정경부인 허씨(許氏)는 중호군(中護軍) 허선(許瑄)의 딸이자 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최일관(崔日觀)[1625~1670]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태지(泰之)이다. 완산백(完山伯) 문열공(文烈公) 최순작(崔純爵)의 후손이다.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낸 최잠(崔岑)의 손자이고, 최상제(崔尙悌)의 계자(繼子)로 생부(生父)는 최상성(崔尙聖)이다. 부인은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아버지는 이돈중(李惇中)이고 할아버지는...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유학자. 최전상(崔銓相)[1865~1952]의 자는 순화(舜和)이며, 호는 봉은(鳳隱)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문성공(文成公) 최아(崔阿)의 후손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관동(完州郡 高山面 寬洞)에 거주했다. 최전상은 1895년(고종 32) 장사랑(將仕郞)과 영희전참봉(永禧展參奉) 등에 제수(除授)되었으나 혼탁...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무지마을에 있는 개항기 하정용과 부인 김해김씨 효열각. 하정용은 진양하씨로 어머니 유씨가 전염성인 이질에 걸려서 6개월을 고생하고 약을 써도 쉽게 낫지 않자 깨끗하게 목욕재계하고 하느님께 빌기도 했다. 하정용과 하정용 부인은 약효를 시험하기 위해 대변의 맛을 보았는데, 결국에는 어머니 유씨가 회복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몸이...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해전리 해전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경주김씨와 신범균 처 파평윤씨의 정려. 경주김씨는 남편인 신태로(申泰魯)가 나이 겨우 20대에 의원도 모르는 병에 걸리자 온갖 노력으로 치료에 힘썼으며, 약이란 약은 두루 구해 써 보고 대변의 맛을 보기까지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손가락을 잘라 입에 피를 떨어뜨렸다. 간병은 허사가 되고 낭군은 눈을 감...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유상마을에 있는 오재효와 오인한의 정려비. 오재효[1858~?]의 본관은 동복이고 자는 양여이며, 호는 송암이다. 임진왜란 공신 오세우의 13세손으로 아버지는 오연원이다. 부인은 전주최씨, 아들 오윤탁, 손자 오인한, 증손자는 오병근이다. 사망한 날은 7월 24일인데 정확한 해는 모른다. 오재효의 묘는 소양면 유상의 아래 자좌[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