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558 |
---|---|
한자 | 秋水鏡將軍墓域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Admiral Chu Su-gyeong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 814[추동안길 14-7]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유철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30년 - 추수경 출생 |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00년 - 추수경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1월 9일 - 추수경장군묘역 전라북도 기념물 제94호로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11월 - 추수경장군묘역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추수경장군묘역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 |
소재지 | 추수경장군묘역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 814[추동안길 14-7] |
성격 | 묘 |
관리자 | 추계추 외(外)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 명나라 무인 추수경 장군의 묘.
[개설]
추수경(秋水鏡) 장군은 명나라 신종 때의 사람으로 자는 청하(淸河), 호는 세심당(洗心堂)이다. 명나라 귀주성 성덕산하 오현군 칠성동에서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재예(才藝)가 뛰어나고 문무(文武)를 겸비해 16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1591년(선조 24)에는 중국 명나라의 무강자사(武康刺使)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의 신종에게 청원해서 이여송의 원군을 출병케 했고, 자신도 부장으로 두 아들인 추노(秋蘆)·추적(秋荻)과 더불어 참전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는 남원전투에 참전했고, 전주 방어에 사력을 다하던 중 안덕원전투에서 중상을 입었으나 전주사고(全州史庫)를 끝까지 지켰다.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1600년(선조 33) 9월에 71세의 일기로 사망했는데, 조정에서는 추수경의 공로를 인정해 죽은 뒤에 ‘호성공신·완산부원군’으로 봉했다.
[위치]
전주-대전 간 17번 도로에서 봉동교를 지나 금마 방면 799번 지방도의 우측으로 추동마을의 이정표가 나온다. 추동마을로 진입하다 보면 약 800m에서 좌측도로로 가다 보면 추수경장군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형태]
추수경장군묘역 봉분은 잔디가 깔린 원형으로 화강암을 이용한 면석이 둘러져 있고 묘역의 남쪽으로는 화사석(火舍石), 무인석(武人石), 망주석(望柱石), 양석(羊石), 신도비(神道碑) 등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추수경장군묘역의 서쪽으로는 봉양사(鳳陽祠)라는 제각이 있으며 소나무가 심겨 있다.
[현황]
추수경장군묘역은 동학농민혁명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파괴되었다가 2004년 11월에 후손들의 노력으로 현재의 묘역을 복원했으며, 1998년 1월 9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9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