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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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潛 |
영어공식명칭 | Choi Jam |
이칭/별칭 | 사강(士剛)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순순 |
출생 시기/일시 | 1560년(명종 15) - 최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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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4년(선조 27) - 최잠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7년(선조 30) - 최잠 울산 도산성 전투에 참전 |
몰년 시기/일시 | 1597년(선조 30) - 최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06년(숙종 32) - 최잠 '일신충렬만고강상(一身忠烈萬古綱常)'으로 정려(旌閭)를 받음 |
출생지 | 최잠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
묘소|단소 | 최잠 묘소 -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 |
사당|배향지 | 최잠의 정려각 -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새터길 36-13 |
성격 | 무신 |
성별 | 남자 |
본관 | 화순(和順) |
대표 관직 | 사재감주부(司宰監主簿)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무신.
[가계]
최잠(崔潛)[1560~1597]은 본관이 화순(和順), 자는 사강(士剛)으로 완주군 고산현 출신이다. 6대조는 사인(舍人)을 지낸 최준(崔濬), 5대조는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최자빈(崔自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유청(崔惟淸), 할아버지는 우후(虞侯) 최한(崔漢)이며, 아버지는 찰방(察訪) 최효원(崔孝源)이다. 부인은 여흥이씨(驪興李氏) 도승지(都承旨) 이광헌(李光軒)의 딸이다. 슬하에 진사(進士) 최상렴(崔尙濂), 최상하(崔象河), 최상락(崔象洛)을 두었다. 최상렴은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병사를 거느리고 소사(素沙)에서 적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량(兵糧)[군대의 양식]을 관에 납부하였다. 병조참판(兵曹參判) 최일(崔逸)과 최수(崔遂)가 손자이다.
[활동 사항]
최잠은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돈독했으며, 무략(武略)을 겸비하였다.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1597년 정유년에 일본의 재침이 있었고, 조명연합군의 반격으로 적군은 남쪽으로 후퇴하여 울산 주변으로 왜성을 쌓아 진지를 구축하였다. 명나라 경리(經理) 양호(楊鎬)의 지휘하에 마귀(麻貴), 도원수 권율(權慄) 등이 울산으로 진격하여 일본군이 웅거하고 있었던 도산성(塗山城)을 공격하였다. 당시 도산성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지휘하고 있었으며, 이전 전투에서 패배하여 양측 모두 치열하게 싸웠고, 피해도 컸다. 당시 최잠도 사재감주부(司宰監主簿)로 양호를 따라 도산으로 내려와 전투에 참여하였다.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가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다. 시신은 찾지 못하여 의관(衣冠) 없이 장례를 치렀다.
[묘소]
최잠의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최잠은 1706년(숙종 32)에 ‘일신충렬만고강상(一身忠烈萬古綱常)’으로 정려(旌閭)를 받았고,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당시 양성현감이었던 유명건(兪命健)이 「화순최씨참의공전(和順崔氏參議公傳)」을 지어 자세한 사항을 기록하였다. 현재 최잠의 정려각은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새터길 36-13에 있으며, 안성시 향토유적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