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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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周鉉 |
영어공식명칭 | Kim Ju-hyeon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대길 |
출생 시기/일시 | 1903년(고종 40) - 김주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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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50년 - 김주현 사망 |
출생지 | 김주현 출생지 - 함경남도 북청 |
학교|수학지 | 김주현 학교 - 용정중학교 |
학교|수학지 | 김주현 학교 - 평양신학교 |
활동지 | 김주현 활동지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
성격 | 종교인 |
성별 | 남자 |
대표 경력 | 목사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서 활동한 종교인.
[개설]
김주현(金周鉉)[1903~1950]은 일제강점기 개신교 목사로 목회 활동을 하면서 일제의 종교 탄압과 신사참배에 저항했으며, 광복 후 월남하여 완주군 삼례읍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공산당에 붙잡혀 전주 내무서에서 순교하였다.
[활동 사항]
김주현은 함경남도 북청(北靑) 출신으로 용정중학교를 거쳐 평양신학교(平壤神學校)를 졸업하고, 장로교 함남노회(咸南老會)에서 목사(牧師) 안수를 받았다. 원산(元山) 석우동교회와 함흥(咸興) 복주동교회 등 함남 일대에서 목회 활동을 했고, 흥남시에서 목회할 때에는 조선총독부의 종교 탄압과 신사참배 강요로 많은 곤욕을 당했다. 함남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중 1945년 8·15광복을 맞았다. 그러나 소련군의 진주와 함께 공산당이 주도하는 공산 정권이 수립되면서 더 이상 목회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월남(越南)하여 완주군 가실리교회와 삼례 후정교회(後亭敎會)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을 당해 전주 내무서(全州內務署)로 붙잡혀 간 후 총살을 당하였다. 다른 기록에는 1950년 9월 27일 전주 내무서 뒤뜰에서 몽둥이에 맞아 죽임을 당했다고 하며, 「피살자명부」에는 7월 27일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묘소]
김주현의 묘소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