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1233
한자 前生屍身-葬事-李書九
영어공식명칭 Lee Seo-gu who entombed the body of Previous lif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1년 9월 1일 -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 황인덕이 안상렬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1년 -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완주의 구전설화』에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8년 -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 한국구비문학대계 누리집에 「진묵대사의 후신인 이서구」로 수록
채록지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이서구|노승|스님들
모티프 유형 환생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서 이서구의 전생과 환생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는 황인덕이 2001년 9월 1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신기마을 주민 안상렬[남, 72세]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372~373쪽에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내용]

옛날에 수행의 경지가 높은 노승이 있었다. 노승은 자신의 침실에 머물렀고 제승들[여러 명의 승려]이 노승을 받들었다. 어느 대갓집에서 아들을 낳지 못해 그 절에 시주를 많이 하고 후손을 낳게 해 달라고 빌었다. 제승들이 스님 중에 곧 세상을 뜰, 뒷방에 있는 노승에게 인도해 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노승에게 가서 대갓집에 후손이 없는 사정과 그 집안에서 이 절에 시주를 많이 해서 노승이 쓰고 먹고 있는 것은 그 집 재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을 했다. 노승은 자신은 죽어서 극락으로 가려고 했는데 환생을 하면 고생을 하게 될 것이나 남의 재산을 사용했으면 갚는 게 도리라고 했다. 그리고 죽으면서 문밖에 ‘폐문(閉門)이 개문(開門)’이라고 써 붙였다. 그 이후로 누구도 그 문을 열 수 없었다. 노승은 부호의 집에 이서구로 환생했다. 이서구로 태어난 노승은 공부를 해서 출세하고 대관의 직을 지냈다. 노승이 ‘폐문(閉門)이 개문(開門)’이라고 써 붙여 놓은 방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고 있었다. 이서구가 노승이 살았던 절에 가서 ‘폐문(閉門)이 개문(開門)’이라고 쓰여 있는 문을 여니 문이 활짝 열렸다. 문이 열려 방안으로 세상의 바람이 들어가자 방 안에 있던 등신은 살이 모두 없어지고 뼈만 남아 있게 되었다. 이서구는 자신의 전생이었던 그 등신을 거두어 자신의 손으로 장사지냈다.

[모티프 분석]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의 주요 모티프는 ‘환생’이다. 이서구(李書九)[1754~1825]는 조선 후기에 홍대용과 박지원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함께 사가시인(四家詩人), 실학사대가로 불렸다. 전라북도 완주군, 진안군, 고창군 지역에는 이서구의 비범한 면모를 드러내는 이야기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도 그 중 하나이다. 비범한 인물인 이서구의 현생을 수행의 경지가 높은 고승이었던 전생과 연결함으로써 이서구의 비범한 인물로서 면모를 강화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진안군 지역에서도 전해지고 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지원하는 한국구비문학대계 누리집에 「진묵대사의 후신인 이서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완주군의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 설화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노승으로 등장하는데 진안군 지역의 설화에서는 노승이 진묵대사로 특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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