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1249 |
---|---|
한자 | 明堂-鉢山蘇氏 |
영어공식명칭 | Beol Propitious Site for a Grave and Balsan So Clan |
이칭/별칭 | 「소삼봉 별명당 전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문리 |
집필자 | 김세라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6년 - 「벌 명당과 발산 소씨」『완주군지』에 「벌 명당과 발산 소씨」로 수록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1년 8월 - 「벌 명당과 발산 소씨」 황인덕이 이성근·박복규에게 채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1년 - 「벌 명당과 발산 소씨」『완주의 구전설화』에 「소삼봉 별명당 전설」로 수록 |
채록지 | 「벌 명당과 발산소씨」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문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도승|지관|부부|발산소씨 |
모티프 유형 | 풍수|명당|금기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문리에 전하는 소씨들 묏자리때문에 지관이 벌에 쏘였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벌 명당과 발산 소씨」는 1996년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간행한 『완주군지』에 「벌 명당(明堂)과 발산 소씨(鉢山蘇氏)」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 황인덕이 2001년 8월 2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문리 모고지마을의 이성근·박복규[남, 58세]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55쪽에 「소삼봉 별명당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내용]
발산소씨와 벌 명당의 유래담은 두 가지가 있다.
1) 소씨들의 선산을 벌 명당이라 불렀는데 그 자리를 파자 큰 왕벌이 나와 지관을 쏘아 죽였다. 소씨들이 사는 구역에 묘를 쓰면 자손이 벌처럼 나와 번성한다고 했다. 벌 명당 덕에 소씨 세력이 커질까 두려워 했던 사람들이 명당자리를 평평하게 만들어버렸다.
2)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문리 산정마을에 명당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명당리에 살던 마음씨 착한 부부는 자녀가 없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그들은 명당자리를 찾게 해 달라고 정성을 다해 빈다. 어느 날 지나가던 도승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한다. 부부는 어려운 살림에도 정성으로 도승을 대접했고, 며칠이 지나도 떠나지 않고 산세를 살피던 도승은 그들에게 부모의 묘를 쓸 명당자리를 알려준다. 그 자리는 벌 명당이라는 혈(穴)로, 묘를 쓴 뒤에는 벌이 나올 수 있도록 뒤에 솟은 봉우리를 허물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북쪽으로 삼십 리 떨어진 곳에 살라고 당부한 도승은, 다만 자신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명덕봉을 헐라고 한다. 부부는 기쁘고 다급한 마음에 서둘러 부모의 묘를 쓰고 명덕봉의 봉우리를 헐어버린다. 그러자 수많은 벌떼가 도승을 쫓아가 죽이고 만다. 부부는 부모의 묘와 나란히 도승의 묘를 만들고 도승의 당부대로 북쪽 삼십 리 떨어진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 자리를 잡는다. 부부는 자녀를 얻고 명문거족을 이루는데, 지금의 발산소씨이다.
[모티프 분석]
「벌 명당과 발산 소씨」 이야기는 명당을 얻음으로써 발복(發福)을 기원하는 풍수담으로 ‘벌 명당’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벌 명당에 묏자리를 쓰면 벌떼처럼 후손이 번창하고, 벌떼가 꿀을 모으듯 재물과 명예가 뒤따르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벌 명당에 묏자리를 잡아준 지관은 기이하게도 모두 벌에게 쏘여 죽음을 맞는다. 이는 ‘금기 모티프’와 관련되는데 지관이 가족들에게 자신이 떠난 후 봉우리를 무너뜨리라고 했지만, 지관이 떠나기 전에 가족들이 묏자리를 건드리는 바람에 벌들이 떼로 몰려들어 지관이 죽게 된다. 「장자못 전설」에서 뒤를 보지 말라는 당부를 어겨서 며느리가 돌로 변해 버리는 것도 금기 모티프이다. 그리고 「벌 명당과 발산 소씨」 이야기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도 등장하는데 이곳에서 말하는 발산소씨 집안은 조선시대 대제학까지 지냈던 전라북도 출신 소세양(蘇世讓)[1486~1562]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