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1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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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伏崖先生實紀 |
영어공식명칭 | Bokaeseonsaengsilgi (Collection of Guk U's work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순철 |
간행 시기/일시 | 1987년 - 『복애선생실기』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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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전남대학교 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77 |
성격 | 문집 |
저자 | 국유(鞠襦) |
편자 | 국동렬 |
간행자 | 국동렬 |
권책 | 1책 |
행자 | 10행 자수부정 |
규격 | 22.2×14.3㎝ |
어미 | 상하향2엽 화문어미 |
권수제 | 복애실기(伏崖實紀) |
판심제 | 복애실기(伏崖實紀)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반곡서원(泮谷書院)에 배향된 고려 후기 무신 국유의 실기(實紀).
[개설]
『복애선생실기(伏崖先生實紀)』는 고려 후기 무신인 국유의 실기(實紀)로, 1987년 후손 국동렬(鞠東烈)이 1책으로 간행하였다.
[저자]
국유(鞠襦)[1324~1392]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경덕(敬德), 호는 복애(伏崖)이다.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전록생(田祿生)·정몽주(鄭夢周) 등과 종유(從遊)하였다. 1370년 부통사(副統使)로 도통사(都統使) 최영(崔瑩)과 더불어 탐라(耽羅)를 정벌하여 그 공으로 호부상서겸 판의금부사(戶部尙書兼判義禁府事)가 되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하자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골짜기에 있는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순절(殉節)하였다. 전라북도 완주 반곡서원(泮谷書院), 황해북도 개성 표절사(表節祠), 전라남도 담양 증암사(甑岩祠) 등에 배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복애선생실기(伏崖先生實紀)』는 후손 국동렬(鞠東烈)이 1987년에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서문은 1937년에 송병관(宋炳瓘)과 후손 국영환(鞠瑛煥)이 썼고, 발문은 1987년에 구연건(具然建)이 썼다. 서문에는 후손이 두문동 제현의 기록과 유생들의 소(疏) 등에서 기록을 뽑아 썼다는 내용이 있다.
[형태/서지]
『복애선생실기』는 1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판본이다. 크기는 27.2×19.6㎝이며, 반곽(半郭)은 22.2×14.3㎝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지면의 둘레를 두 개의 검은 선으로 두름]이며, 10행 자수부정(字數不定)이다. 어미(魚尾)[책을 펼쳤을 때 중앙에 물고기 꼬리 문양의 접지표]는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복애선생실기』는 1책이며, 내용은 시(詩), 서(書), 부록(附錄) 등으로 구성되었다. 시(詩)와 서(書)는 각 1편만 수록되었다. 시(詩) 「무송도시(撫松圖詩)」는 절개를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표출한 내용이고, 서(書)는 이백유(李伯由)에게 보낸 편지이다. 부록 상(上)은 「복애선생사실(伏崖先生事實)」과 「두문동 72인 사적」에 관한 내용이고, 부록 하(下)는 축문과 제향 때의 진설도(陳設圖)[제사상에 제수를 배열하는 것을 나타낸 그림], 제수 및 의식 절차에 관한 내용이다.
[의의와 평가]
국유는 두문동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의 한 사람이다. 『복애선생실기』에 실려 있는 「무송도시(撫松圖詩)」는 태조(太祖)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예조판서(禮組判書)로 불렀을 때 불복(不服)의 뜻을 담아 지은 작품인데, 이를 통해 국유의 절개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