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진주(晉州). 본명은 강기주(姜基周). 아버지는 강준복(姜俊福)이다. 강기동(姜基東)[1884~1911]은 서울 명동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군 기병부위(騎兵副尉)로 있다가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군을 규합하여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그 뒤 일본 헌병대를 찾아가 위장 귀순하여 경기도 장단(長湍) 고랑포(古浪浦)에서 헌병...
-
1894년 경기도 양주를 비롯한 36개 읍의 세금 징수 대상을 기록한 자료. 「경기 각읍 신정 사례(京畿各邑新定事例)」는 1894년 10월 승총(陞總)[세금 징수 대상에서 빠진 토지 내역을 조사해 장부에 등록하는 일]에 따라 새롭게 정해진 경기도 각 읍(邑)·진(鎭)의 세금 징수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규15234]. 필사본. 2책. 크기는...
-
1871년 간행된 경기도 양주시 지역의 옛 읍지인 『양주목읍지』를 포함해 경기도의 35개 군의 읍지를 묶은 통지(統誌). 경기도 35개 군의 읍지를 합편한 6책의 필사본인 『경기읍지(京畿邑誌)』 제4책에 포천 및 영평과 함께 『양주목읍지』가 들어 있다. 일부 읍지 서명에 동치10년(同治十年)으로 밝혀져 있는 경우가 있어서 1871년(고종 8)에 제책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각 군...
-
1905년 양주군에 있던 내수사(內需司)의 장토 현황을 기록한 토지 대장. 「경기도 양주군 소재 내수사 장토 사검 개타 양안(京畿道楊州郡所在內需司庄土査檢改打量案)」은 1905년(고종 42) 2월 경기도 양주군에서 백석면·광석면 등에 있는 내수사의 장토(庄土)를 측량해 중앙에 보고한 토지 대장이다. 보고자는 양주군수인 홍태윤(洪泰潤)이고, 검사자는 현상국(玄相國)이었다. 현재 규장각...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구낙서(具洛書)[1882~?]는 경기도 양주군 상동면 묵동[현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으로 추정]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제 측 기록에 의하면 1908년(순종 2) 당시 27세였으므로, 이로 미루어 1882년(고종 19)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구낙서는 박순근(朴順根)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김덕현 등과 함께 경성...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자는 성근(成根), 별명은 권각(權恪)이다. 권득수(權得洙)[1873~1907]는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1907년 8월 1일에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권득수는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일으켜 보고자 약관의 젊은 나이로 경기도 지평(砥平), 이천 등지에서 의병 60여 명을 규합...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권승묵(權承默)은 강기동(姜基東) 의병 부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경기 북부 지방에서 활약한 강기동 의병 부대는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경기도 양주·양평·포천·연천과 강원도 가평 등지의 산간 지대를 무대로 유격전을 전개하여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권승묵은 1909년 12월 강기동 의병 부대에서 강원호(姜元鎬) 등과 같이 물미장[물미는 깃대나...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개항기의 목조 가옥. 김상복 가옥은 상량문의 글귀로 볼 때 1900년(고종 37)에 건립되었다. 규모가 작고 집터도 넓지 않으며, 안채만 있을 뿐이다. 안채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기단을 하고 자연석 초석을 사용하였다. 상부 가구는 3량 구조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홑처마에 시멘트 기와 우진각 지붕이다. 김상복 가옥은 구한말 경기 지방 농가로서, 조선 시대...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호는 박사. 호가 박사이므로 사람들로부터 김박사라고 불렸다. 김연성(金演性)[1870~1909]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으며, 일찍부터 학문에 재능이 있어 성균관(成均館)에서 수학하였다. 1907년 9월 의병을 일으켜 동년 12월까지 부하 30~40명을 이끌고 경기도 양주·적성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가 결...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김인범(金仁凡)은 경기도 양주군 남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김인범은 김봉기(金奉基) 의병 부대에 참여하여 경기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907년 우리 민족의 군사무력(軍事武力)을 약화시키기 위해 7월 20일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7월 24일에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였으며, 그해 8월 1일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시...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김진묵(金溱默)은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태어났다. 김진묵은 일제가 1907년 우리 민족의 군사무력(軍事武力)을 약화시키기 위해 7월 20일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7월 24일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고 이때 교환된 비밀 각서에 의하여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고자 결심...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박내병(朴來秉)[?~1908]은 경기도 가평 출신으로 박내봉(朴來鳳)으로도 불렸다. 고향에서는 덕망 있는 유생이었으며, 의병장으로서 지도력이 뛰어나고 자상하여 부하들뿐만 아니라 다른 의병 부대에까지 신망이 높았다고 한다. 박내병은 1905년 11월 일제에 의해 강요된 을사늑약과 1907년 7월 정미7조약에 따른 군대 해산 등에 분노하여 고...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백영년(白永年)[1883~?]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율암리 사람으로 목수 일에 종사하였다[백영현(白永賢)이라고도 함.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발행한 『양주군지』에는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갈곡 출신 백영년(白永年)으로 되어 있음]. 1909년 당시 27세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백영년은 1883년생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영년은 지속적인 반일 의...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송창근(宋昌根)[1888~?]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덕도리[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서 태어났으며, 묵은면 삼패상리[현 동두천시]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본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송창근이 23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88년으로 추측된다. 송창근은 양주군 묵은면 내묵은리의 한승교에게서 군자금 20원을...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는 빗접바위 뒷면에 새겨진 개항기의 금석문. 수원 백씨 각처 선농기(水原白氏各處先壟記)는 1870년(고종 7) 정당문학(政堂文學) 백천철(白天鐵) 이래 수원 백씨 주요 인물에 대한 사적과 선영(先塋)의 위치를 정리하기 위하여 바위에 새긴 금석문이다. 건립 연도만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뿐, 금석문을 새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경기도 양주...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신상학(愼相學)[1885~?]은 충청남도 면천군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현내면 곡촌에 이주하여 살았다. 일본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11년 당시 27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8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상학은 1910년 음력 2월 의병장 홍원유(洪元裕) 휘하에 들어가 총기로 무장하고 양주군·포천군·적성군 등지에서 활동...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안배언(安拜言)은 1907년 10월 25일부터 박내병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면서 박내병의 지휘 아래 대일 무력 항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경기도 양주와 가평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벌인 두 차례 교전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08년 11월 12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을 선고 받고 고초를 겪었...
-
개항기 경기도 양주군에 있었던 공립 소학교. 1896년(고종 33) 9월 20일 고종의 칙령 제145호와 소학교령 제17조 ‘각 부·군은 관내의 학령 아동을 취학시킬 공립 소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규정에 의거하여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설립된 50개의 관립 소학교 중 경기도 내에 설립된 학교는 9개교로 확인된다. 그중 양주 지역에는 1899년(고종 36...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개항기 천주교도들이 순교한 천주교 사적지. 양주 관아 치명성 터는 1866년(고종 3) 병인박해 때 홍성원 아오스딩, 김윤호 요한, 권말다, 김마리아, 박서방 등 5명이 순교한 곳이다. 김윤호 요한, 권말다, 김마리아는 용인에서, 홍성원 아오스딩은 포천에서 각각 양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양주 관아(楊洲官衙)에서 죽음을 당하였고, 양주에서 거주한 것으로 추...
-
경기도 양주시 남면 매곡리에 있는 개항기 전통 가옥. 양주 매곡리 고택(楊州梅谷里古宅)은 양주시 남면 휴암로[매곡리 282-3번지]에 위치한다. 전해져 오는 말에 의하면, 양주 매곡리 고택은 조선 말 정국이 혼란해지자 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가 은신처로 삼기 위해 서울의 고옥(古屋)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명성황후의 경호원 김종원은 명성황후로부터 동대문 밖에 은...
-
1898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 소재 총융청(摠戎廳) 소속 둔전의 도전(賭錢)을 파악해 정리한 책. 「양주 소재 총둔 도전 수봉책(楊州所在摠屯賭錢收捧冊)」은 1898년(고종 35) 11월 양주목에서 동목에 있는 총둔(摠屯), 즉 총융청 소유 둔전(屯田)에서 거두어들인 도전의 수입을 파악해 경리원(經理院)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도전이란 도지(賭地)라고도 하는데 남...
-
1898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동군(同郡)에 있는 충훈부(忠勳府) 소속 둔전의 추수 결과를 기록한 책. 「양주 소재 훈둔 추수책(楊州所在勳屯秋收冊)」은 1898년(고종 35) 11월 양주목에서 훈둔(勳屯), 즉 충훈부 소속 둔전(屯田)의 가을걷이 결과를 조사해 경리원(經理院)에 보고할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다. 경리원은 대한 제국 때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관청이다. 작성 책임자는 둔...
-
1898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동군 소재 초촌(草村)의 화전(火田)에서 거둔 조세를 기록한 책. 화전은 원래 세금을 면제받아야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매년 가을 경작 현황을 조사해 경작지에 한해 세금을 거두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화전이 세금 면제와 부역 회피의 대상으로 전락해 정부가 한 때 화전 경작을 금지하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발생하는 수입은 관청의 경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
1895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능(陵)·원(園)·묘(墓)의 수리비 및 특별히 감면된 둔토(屯土)의 세금을 기록한 책. 「양주군 각 능원묘 수리비 급 특감미 대전 소수 실수 구별 성책(楊州郡各陵園墓修理費及特減米代錢所受實數區別成冊)」은 1895년(고종 32) 양주군에 있는 능·원·묘의 수리비 및 특별히 감면된 둔토의 세금을 정리해 정부의 재정 담당 부서인 탁지부(度支部)에 올린 책이...
-
1900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역둔토의 도조 현황과 도조의 납부·미납부 실태를 기록한 책. 「양주군 각 역 도조 실수 급 각 둔 기경 양년 조납 미납 구별 병시직 성책(楊州郡各驛賭租實數及各屯己庚兩年條納未納區別幷時直成冊)」은 1900년(고종 37) 12월 경기도에서 양주군에 있는 역둔토의 도조(賭租)[고정된 소작료] 현황과 1899~1900년 그 실태를 조사해 기록한 책이다. 역(...
-
1899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궁내부 소유의 둔토 현황을 기록한 문서. 「양주군 궁내부 소관 각 둔토 사검안(楊州君宮內府所管各屯土査檢案)」은 1899년 10월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궁내부(宮內府) 소유의 둔토(屯土)를 정확히 파악해 보고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이다. 궁내부 사검위원(査檢委員) 강봉헌(姜鳳憲)의 서명과 도장이 찍혀 있어, 궁내부에 보고되기 위해 작성된 문건임을 알 수...
-
1899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둔토(屯土)의 현황을 기록한 책. 「양주군 소재 각 둔토 두락 급 결복 구별 성책(楊州君所在各屯土斗落及結卜區別成冊)」은 1899년(고종 36) 5월 양주군에 있는 둔토의 두락(斗落)과 결부(結負)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1899~1906년에 경기도와 인천부에 있는 역둔토(驛屯土)의 현황을 기록한 『경리원역둔토성책(經理院驛屯土成冊)』[필사본, 2...
-
1897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둔토(屯土)의 실태를 기록한 책. 「양주군 소재 전 경리청 갑사 둔전답 두락 경수 결복 사검 성책(楊州君所在前經理廳甲士屯田沓斗落耕數結卜査檢成冊)」은 1897년(고종 34) 10월 경기도 양주군에서 전 경리청(經理廳)의 갑사(甲士)에게 제공되던 양주군 소재 둔전답(屯田畓)의 실태를 파악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경리청은 북한산성의 관리를 담당한 기관으로...
-
1896년 경기도 양주에 있는 충훈부(忠勳府) 소유의 둔토를 기록한 책. 「양주군 소재 충훈부 둔토 성책(楊州君所在忠勳府屯土成冊)」은 1896년 한성부 사판위원(査辦委員)이 양주에 있는 충훈부 소유의 둔토(屯土)를 조사해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충훈부는 각종 공신(功臣)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양주군 소재 충훈부 둔토 성책」은 내수사(內需司)에서 만든 『각군역토성책(...
-
1895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근무하는 순검에게 지급된 노자를 기록한 책. 「양주군 유임 순검 반전 상하 성책(楊州君留任巡檢盤纏上下成冊)」은 경기도 양주군에서 1895년 4월부터 윤5월까지 본군에 근무한 순검(巡檢)에게 지급한 노자(路資)를 조사, 정리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순검은 개항기에 내부(內部) 경무청(警務廳)에 소속된 경리(警吏)로, 각 관아마다 30명을 두었다. 순포(巡捕...
-
개항기 때 간행된 경기도 양주 지역에 대한 지리지. 『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는 조선 후기 양주목(楊州牧)을 대상으로 한 지리지로 오늘날 남양주시, 구리시, 의정부시, 동두천시, 일부 연천군 지역을 포괄하고 있는 읍지이다. 19세기 중반 양주의 지역 사정과 정보를 전반적으로 잘 알려주는 문헌이다. 『양주군읍지』의 저본은 확실치 않으나 19세기 중반 또는 광무 연간[1897~1907...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농악놀이. 양주농악 두레농악대는 장단에 맞춰 농사일을 즐겁게 하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단합을 통한 작업 능률을 올리는데 목적이 있다. 선조들은 마을에서 새벽에 징과 북을 울려 ‘두레패’를 모아 ‘두레’를 조직하여 우장과 호미 등을 갖추고 모심기 및 밭 붙임 김을 맬 때, 또는 이 논에서 저 논으로 옮길 때, 집으로 돌아올 때, 두레패를 중심으로 농...
-
1886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의 환곡 현황을 기록한 책. 「양주목 환곡 성책(楊州牧還穀成冊)」은 1886년(고종 23) 5월 양주목에서 창고에 있던 환곡(還穀)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환곡이란 정부와 지방 관청에서 춘궁기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걷이 뒤에 돌려받는 것을 말한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奎16110]. 필사본 1책[2...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어봉선(魚鳳善)[1891~?]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덕도리[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본 측의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0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91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봉선은 1909년부터 의병장 윤인순(尹仁淳)·강기동(姜基東)·전성서(全聖西) 등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
개항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명은 왕영종(王榮鍾)이며, 경기도 연천 출신이다. 왕회종(王會鍾)은 1905년 일제의 책동에 의하여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통분함을 금치 못하며 1906년 연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김진묵(金溱默)을 부장으로 50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적군과 유격전을 전개해 북으로 진격하여 혜산진(惠山鎭)까지 올라갔다. 1907년 정...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유재만(柳在萬)[1882~1964]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907년 9월 김연성(金演性) 의병 부대에 들어가 총검으로 무장한 40여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양주·연천 등지에서 적에 대항하여 싸우던 중 일본 헌병에 체포되었다. 1908년 10월 2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유형 3년형을 선고 받고 유배 생활을 하였다. 1964년 2월 2...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고흥. 자는 덕용(德容), 호는 강재(剛齋)이다. 유해용(柳海容)[1884~1938]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유해용은 1906년 4월[윤달] 8일 최익현(崔益鉉)이 일제의 침략을 응징하기 위하여 각지에 격문을 보내고 궐기를 촉진하여 일으킨 의병 부대에 들어가서 활동하였다. 일본군이 아닌 대한제국의 군대와 싸울 수 없었던 최익현은 190...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장. 윤인순(尹仁淳)[1880~1909]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인순은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일제의 책동으로 군대 해산이 강행되자 독자적으로 의병 부대를 일으켜 의병장으로서 양주 석치에서 적과 접전하였고, 그 후 파주·적성·포천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말 경기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점차 13도 연합 의병 부대로 확대되어 이인영(...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윤희섭(尹喜燮)[188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희섭은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어서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이 체결되는 등 충격적인 사건...
-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경기도 양주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일으킨 국권 회복 운동. 의병 운동은 1894년 발발한 갑오 농민 운동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봉기한 이후 20여 년간 전개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과 투쟁의 강도가 강화되었다. 군대 해산 이전에는 이인영(李麟榮)·최익현(崔益鉉) 등 지방의 명망 있는 유생 의병장이 의병 운동을 주도하면서 반일 항전을 촉...
-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는 개항기의 목조 가옥. 이갑석 가옥은 양주시 고읍동 상동마을의 가장 안쪽에 깊숙이 위치한다. 산을 등지고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청 종도리 장혀에 적힌 묵서(墨書)로 볼 때 1898년(고종 35)에 건립되었다. ‘ㅁ’ 자형의 배치를 이룬다. 안마당의 형태를 구성하는 기단석이 장대하고, 안채의 기둥도 18.18㎝[6치]가량의 견실한 방주(方柱)임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이긍래(李兢來)[1883~?]는 양주군 이담면 광암리에서 태어났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제 측의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8세이었으므로 1883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긍래는 1908년 음력 10월부터 의병장 정용대(鄭用大)의 휘하에 들어가 양주군·포천군·적성군·영평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이긍래는 다른 의병들과 달리 포천군 서면...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의 국권을 침탈하면서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요하여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한 이덕현(李德鉉)은 국권 회복 운동을 하고자 결심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7...
-
개항기 양주목사를 지낸 문신. 이유인(李裕寅)은 1889년(고종 26) 12월부터 1891년(고종 28) 11월까지 양주목사를 지냈다. 1890년(고종 27) 익종[순조의 아들]의 비였던 신정왕후(神貞王后)가 승하하여 수릉(綏陵)[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소재]에 합장할 때 공사를 잘 마무리한 공으로 품계가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올라갔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따르면...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이은찬(李殷贊)·이언찬(李諺瓚)·이헌찬(李憲瓚)이라고도 한다. 종실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석하이고 동생은 이은호이다. 이은찬(李殷瓚)[1878~1909]은 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현 원주시 판부면]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을 공부하던 유생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경상북도 문경에서 의병...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전주. 자는 성집(聖執), 호는 미석(渼石). 고종의 종척(宗戚)이다. 이재윤(李載允)[1849~1911]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877년(고종 14)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우승지(右承旨)에 이르렀으나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매국 역적들을 참하자는 소...
-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는 개항기의 목조 가옥. 전병우 가옥은 상량문의 글귀로 볼 때 1906년(고종 43)에 건립되었다. 남향의 튼 ‘ㅁ’ 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계단을 몇 개 올라가면 높여 놓은 기단에 올라설 수 있고, 대문에 들어서면 안채의 대청이 보인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 왼쪽에는 쪽마루를 전면에 설치한 안방과 그 아래로 작은 규모의 부엌과 방이...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범(重凡), 호는 의암(毅庵). 양촌공파(陽村公派) 21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의병 정인태(鄭寅泰)이며, 아버지는 정두환(鄭斗煥)이다. 어머니는 풍천 임씨(豊川任氏)이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정용대(鄭用大)[1882~1910]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정제환(鄭濟煥)[1878~1956]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908년(순종 2) 일제의 침략이 더욱 심해지자 정제환은 연기우(延基羽) 의병 부대에 들어가 경기도 연천과 삭녕[현 경기도 연천군 북부 지역] 일대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음력 9월 삭녕군 서면에서 동료 의병 수십 명과 함께 포목상으로부터 포목 수십 점을 확보하였으며,...
-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는 개항기의 목조 가옥. 정지형 가옥은 대청마루의 종도리 장혀에 적힌 묵서(墨書)에 의하면 1905년(고종 42)에 건립되었다. 전형적인 ‘ㅁ’ 자형의 평면 구조로서, 산을 등지고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와 바깥채는 하나로 묶여 있으나 그 기능은 나뉘어 있다. 가옥의 평면 치수에서 전체의 간살은 8척, 즉 2.42m를 1칸으로 하고, 1척은 약 30...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신(敬信), 호는 송은(松隱). 아버지는 성균관교관 정인식(鄭寅植)이다. 정충환(鄭忠煥)[1888~196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의병 활동 당시의 주소지는 서울 동부 연화방 39통 6호[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였다. 1907년(순종 1) 영춘[현 충청북도 단양]에서 의거를 일으켰으며, 1908년 음력 5월...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조인환(曺仁煥)은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충청도에서 농민을 규합하여 의병 부대를 편성한 뒤 경기도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지역에는 권준(權俊)·왕회종(王會鍾)·연기우(延基羽) 등 많은 의병 부...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추삼만(秋三萬)[1880~1910]은 경기도 양주군 회암면[현 양주시 회암동] 출신으로, 이담면 하봉암리[현 동두천시 하봉암동]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요하여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분노한 추삼만은 같은 해 8월 황재호(黃在浩) 의병 부대에 들어가...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형(季馨), 호는 왕산(旺山).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4형제 중 막내로, 형은 허훈(許薰)[1990년 애국장 추서]·허신(許藎)·허겸(許兼)[1991년 애국장 추서]이다. 자녀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허학·허영·허준·허국이다. 허위(許蔿)의...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애국지사. 1907년 당시 홍태순(洪太順)은 기독교를 전도하는 목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1907년 7월 20일 일제가 헤이그 밀사 사건을 구실로 사실상 고종 황제를 강제 폐위시키자, 이에 분함을 금치 못한 홍태순은 7월 22일 오후 4시 서울 덕수궁의 대한문(大漢門) 앞에서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로 국민들의 여론이 분분하고...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순일(黃順一)[1865~?]은 포군 부장(砲軍部長)을 지냈다. 1904~1905년경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로 이사하였으며, 1907년 9월 황재호(黃在浩)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양주를 비롯하여 적성, 포천, 가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에는 양주 출신의 의병 홍희영(洪喜永)을 포함하여 40여 명의 의병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재호(黃在浩)[1872~?]는 1907년 8월 대한제국 육군 참위로 복무하던 중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낙향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적성군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권득수(權得洙)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얼마 후 권득수 부대를 흡수 통합하여 양주·파주·가평·영평 일대에서 양주 출신인 추삼만(秋三萬)·전순만(全順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