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진주(晉州). 본명은 강기주(姜基周). 아버지는 강준복(姜俊福)이다. 강기동(姜基東)[1884~1911]은 서울 명동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군 기병부위(騎兵副尉)로 있다가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군을 규합하여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그 뒤 일본 헌병대를 찾아가 위장 귀순하여 경기도 장단(長湍) 고랑포(古浪浦)에서 헌병...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구낙서(具洛書)[1882~?]는 경기도 양주군 상동면 묵동[현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으로 추정]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제 측 기록에 의하면 1908년(순종 2) 당시 27세였으므로, 이로 미루어 1882년(고종 19)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구낙서는 박순근(朴順根)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김덕현 등과 함께 경성...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자는 성근(成根), 별명은 권각(權恪)이다. 권득수(權得洙)[1873~1907]는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1907년 8월 1일에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권득수는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일으켜 보고자 약관의 젊은 나이로 경기도 지평(砥平), 이천 등지에서 의병 60여 명을 규합...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권승묵(權承默)은 강기동(姜基東) 의병 부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경기 북부 지방에서 활약한 강기동 의병 부대는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경기도 양주·양평·포천·연천과 강원도 가평 등지의 산간 지대를 무대로 유격전을 전개하여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권승묵은 1909년 12월 강기동 의병 부대에서 강원호(姜元鎬) 등과 같이 물미장[물미는 깃대나...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호는 노은(蘆隱). 서도(瑞道)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김영선(金永先)이다. 김규식(金奎植)[1882~1931]은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1907년 당시에는 경성부 동서 돈암현[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 살았다. 대한제국 시위대부교(侍衛隊副校)·육군연성학교(陸軍硏成學校)의 조교로 있었다. 1907년 6월 김규식...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대현(金大鉉)[1872~?]은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같은 마을에 사는 안종태(安鍾台)·안종규(安鍾奎)·이사범(李士範)·조필선(趙弼善) 등과 함께 백석면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19...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연성(金演性)이 아들이다. 김병기(金秉氣)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의병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투쟁을 전개해 한말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려고 애썼다. 1910년(순종 4)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투쟁을 멈추지 않고 1913년 9월 의병장 임병찬(林炳瓚)·이인순(李寅淳)·전용규(田瑢圭)...
-
조선 후기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추정되는 방랑 시인. 김병연(金炳淵)은 본관은 안동.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 할아버지는 선천 부사 김익순(金益淳)이고,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이다. 어머니는 함평 이씨다. 형은 김병하(金炳河)이다. 아들은 김학균(金學均)과 김익균(金翼均)이다. 맏아들 김학균은 동생 집에 양자로 보냈다. 김병연의 출생지에 대한 학설은...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순갑(金順甲)[1885~?]은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8일 저녁 8시경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마을 주점 앞에서 이회명(李會明)의 주도로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독립 만세를 부르며 야간 시위를 하였다. 3월 29일 이른 아침부터 다시 마을 사람들이 모이자, 김순갑은 이회명...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호는 박사. 호가 박사이므로 사람들로부터 김박사라고 불렸다. 김연성(金演性)[1870~1909]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으며, 일찍부터 학문에 재능이 있어 성균관(成均館)에서 수학하였다. 1907년 9월 의병을 일으켜 동년 12월까지 부하 30~40명을 이끌고 경기도 양주·적성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가 결...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완순(金完順)은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현 양주시 장흥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8일 저녁 8시경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에 사는 이회명(李會明)의 주도로 울대리 마을 주점 앞에서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참여한 3·1 운동이 전개되자, 김완순도 독립 만세를 부르며 야간 시위를 하였다. 시위는 이튿날인 3월 29일에도 계속되었는데...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김인범(金仁凡)은 경기도 양주군 남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김인범은 김봉기(金奉基) 의병 부대에 참여하여 경기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907년 우리 민족의 군사무력(軍事武力)을 약화시키기 위해 7월 20일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7월 24일에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였으며, 그해 8월 1일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시...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김진묵(金溱默)은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태어났다. 김진묵은 일제가 1907년 우리 민족의 군사무력(軍事武力)을 약화시키기 위해 7월 20일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7월 24일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고 이때 교환된 비밀 각서에 의하여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고자 결심...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진성(金辰成)[1868~1919]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김진성은 백남식(白南式)·이용화(李龍和) 등과 함께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자 광적면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거사에 합류할 것을 권유하면서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리고 시위 계획을 알리기 위해 마을을 순방하였다. 그리고 일장기를...
-
경기도 양주 출신의 조선 시대 효자. 남궁지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모시는 데 지극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3년을 하루같이 슬퍼하였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문(旌門)을 받았으며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상갑(南相甲)[1924~미상]은 경기도 양주(楊洲)에서 태어났다. 남상갑은 1939년부터 이현상(李賢相)과 동지가 되어 조국 광복을 위하여 친일파 및 일본인 고관을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1941년 이현상이 경복중학교 출신 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일 학생 결사 단체인 흑백당(黑白黨)을 조직하고 중앙중학교, 경성사범학교 학생 등을 대상으로...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남일성(南一成)은 경기도 양주군 어등산면 사리[2003년 10월 19일 이전, 회천읍]에서 태어났다. 1908년 남일성은 정용대(鄭用大)의 휘하에 들어가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정용대는 스스로 창의좌군장(倡義左軍將)이라 칭하고, 경기도 적성·양주·풍덕·교하·통진 등지에서 수백여 명의 의병 부대를 통솔하여 일본군과 수차례에 걸쳐 전투를 이끌었던 의병장...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들은 목장균이다. 목장균은 2011년 현재 광복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연욱(睦然旭)[1916~1949]은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태어났다. 목연욱이 의병으로 활동한 곳은 광복군 제3지대로 알려져 있다. 1963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금녀(朴金女)[1926~1992]는 독립운동가인 박철규의 외동딸로 의정부(議政府)[당시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박금녀는 부친이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일제의 술책으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이 벌인 유혈 사태]으로 일본군에 피살된 후에 광복군 제3지대 1구대 본부 구호대(救護隊)에 입대하였다. 박금녀는 광복군의 일원으로 독립운...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자첨(子瞻), 호는 귀전(歸田). 할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박계인(朴繼仁)이고, 아버지는 삭주부사(朔州府使)를 역임한 박희성(朴希聖)이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청계군(淸溪君) 이채(李彩)의 딸이다. 박준(朴峻)[1559~1625]은 임진왜란 때 학질을 앓는 계모 민씨를 업고 피난하느라 처자를 돌보지 못하...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남식(白南式)[1866~1919]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백남식은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리고 마을을 순방하며 시위 계획을 알리고 거사에 합류할 것을 권유하는데, 이는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면서부터였다. 백남식은 김진성(金辰成)·이용화(李龍和) 등과 함께 광적면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으며...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백영년(白永年)[1883~?]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율암리 사람으로 목수 일에 종사하였다[백영현(白永賢)이라고도 함.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발행한 『양주군지』에는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갈곡 출신 백영년(白永年)으로 되어 있음]. 1909년 당시 27세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백영년은 1883년생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영년은 지속적인 반일 의...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변성오(邊聖五)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대야비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제의 기록으로 살펴보면, 변성오는 1910년 당시 20세였으므로 1891년생으로 추정된다. 변성오는 1909년 7~8월에 의병장 전성서(全聖西)의 휘하로 들어가서 동료 20여 명과 함께 총기와 군도(軍刀)로 무장하고 의병 활동에 적극적으...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본관은 이천. 호는 월파(月坡). 아버지는 서화일(徐和日)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慶州李氏)이다. 서민호(徐珉濠)[1903~1974]는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다. 1919년 반도목탁지(半島木鐸誌) 사건으로 6개월간 투옥되었으며, 보성중학교 3학년 때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일본에서 1923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서예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명중(明仲), 호는 이암(頤庵). 할아버지는 영의정 송질(宋軼)이고 아버지는 송지한(宋之翰)이다. 송인(宋寅)[1516~1584]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서 자라 10세 때 중종의 3녀인 정순옹주(貞順翁主)와 혼인하여 여성위(礪城尉)에 봉해졌다. 의빈부, 충훈부, 사옹원, 상의원, 도총관...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송창근(宋昌根)[1888~?]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덕도리[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서 태어났으며, 묵은면 삼패상리[현 동두천시]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본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송창근이 23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88년으로 추측된다. 송창근은 양주군 묵은면 내묵은리의 한승교에게서 군자금 20원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신상학(愼相學)[1885~?]은 충청남도 면천군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현내면 곡촌에 이주하여 살았다. 일본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11년 당시 27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8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상학은 1910년 음력 2월 의병장 홍원유(洪元裕) 휘하에 들어가 총기로 무장하고 양주군·포천군·적성군 등지에서 활동...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석천(石泉). 일명 안관오(安冠五). 안중근(安重根)의 사촌 동생이다. 안경근(安敬根)[1896~1978]은 황해도 신천(信川) 출신으로 해삼위(海蔘威)[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박은식(朴殷植)·안정근(安定根)·신채호(申采浩)·이범윤(李範允) 등 애국지사들과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해삼위는...
-
경기도 양주시에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서예가.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덕수(德壽). 할아버지는 평양부윤 안숙로(安淑老)이고, 아버지는 함흥부윤을 지낸 안망지(安望之)이다. 어머니는 봉상시 주부 허지신(虛之信)의 딸이다. 부인은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이다. 안맹담(安孟聃)[1415~1462]은 1428년(세종 10)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혼인하여 죽성군(竹...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안배언(安拜言)은 1907년 10월 25일부터 박내병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면서 박내병의 지휘 아래 대일 무력 항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경기도 양주와 가평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벌인 두 차례 교전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08년 11월 12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을 선고 받고 고초를 겪었...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들이 조선 독립을 선언하자,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구장(區長)이었던 안종규(安鍾奎)는 양주군 백석면에서도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안종규는 다수의 지역 주민들을 규합하여 3월 27일 형인 안종태(安鍾泰)와 함께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종태(安鍾台)[1883~1920]는 서울 출신으로, 1919년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살면서 동생인 이장 안종규(安鍾奎)와 함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7일 밤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기 위해 연곡리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일제로부터 독립해야만 살 수 있다”고 연설하였다....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어봉선(魚鳳善)[1891~?]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덕도리[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본 측의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0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91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봉선은 1909년부터 의병장 윤인순(尹仁淳)·강기동(姜基東)·전성서(全聖西) 등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
경기도 양주시에 정려문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여영원(呂榮元)[1595~1627]은 인조[재위 1623~1649]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이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후금(後金)이 쳐들어오자 벽동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압록강 변의 요충지인 벽동(碧潼)의 수비를 맡았다. 후금의 병사들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 변변한 군사도 없이 수백 명의 관졸...
-
개항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명은 왕영종(王榮鍾)이며, 경기도 연천 출신이다. 왕회종(王會鍾)은 1905년 일제의 책동에 의하여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통분함을 금치 못하며 1906년 연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김진묵(金溱默)을 부장으로 50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적군과 유격전을 전개해 북으로 진격하여 혜산진(惠山鎭)까지 올라갔다. 1907년 정...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병창(禹炳昌)[1866~?]은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 걸산리[현 동두천시 보산동]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제 측 기록을 살펴보면 1911년 당시 46세로 기록되어 있어 1866년생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의병장 홍원유(洪元裕)의 휘하에서 활동한 우병창은 1911년 군자금 모집을 위해 양주군 현내면 선업리 및 이담면 연동리 등지에서...
-
경기도 양주에 살았던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장우(將于)이다. 유관(柳祼)[1641~1693]은 총명하여 문장을 잘 지었으나 과거 시험에 번번이 떨어져 마침내 출세를 포기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늘 공경하고, 가까이서 보살폈다. 부모를 즐겁게 해 주려고 나이 오십 세에 어린아이 옷을 입고 재롱을 떨기도 하였다. 조상의 묘소도 정성껏 관리하였다....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유재만(柳在萬)[1882~1964]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907년 9월 김연성(金演性) 의병 부대에 들어가 총검으로 무장한 40여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양주·연천 등지에서 적에 대항하여 싸우던 중 일본 헌병에 체포되었다. 1908년 10월 2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유형 3년형을 선고 받고 유배 생활을 하였다. 1964년 2월 2...
-
경기도 양주시에 가묘와 송공비가 있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유종현(劉鍾鉉)[1897~1948]은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유종현은 1919년 3월 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편강렬(片康烈)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각 면의 동지들과 연락하여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고, 김각배(金珏培)·김경태(金景泰)·김영빈(金永彬)·김학원(金學源)·현건식(玄建植) 등과 함께 독립 만세를...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고흥. 자는 덕용(德容), 호는 강재(剛齋)이다. 유해용(柳海容)[1884~1938]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유해용은 1906년 4월[윤달] 8일 최익현(崔益鉉)이 일제의 침략을 응징하기 위하여 각지에 격문을 보내고 궐기를 촉진하여 일으킨 의병 부대에 들어가서 활동하였다. 일본군이 아닌 대한제국의 군대와 싸울 수 없었던 최익현은 190...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병구(尹炳球)[1880~1949]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병구는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며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교포들 간의 친목 단결과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기울어 가는 나라를 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1903년 8월 예수교 감리교도인 홍승하·박윤섭(朴允燮)·문홍섭·임치성·임형주·김정극·안정수·이교담 등과 함께 하와이 호...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인 독립운동가. 윤원세(尹元世)[1890~1939]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양주군 자둔면 금오리[현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에 거주하면서 천도교 양주교구장으로 이곳의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6년부터 천도교 의정부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천도교당 내에 야학당을 설치하여 생도들에게 일본 배척 사상을 고취시켰고 농촌 청소년과 부녀자에게...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장. 윤인순(尹仁淳)[1880~1909]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인순은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일제의 책동으로 군대 해산이 강행되자 독자적으로 의병 부대를 일으켜 의병장으로서 양주 석치에서 적과 접전하였고, 그 후 파주·적성·포천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말 경기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점차 13도 연합 의병 부대로 확대되어 이인영(...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관료이자 애국지사. 본관은 파평. 호는 운정(雲庭). 아버지는 윤희섭(尹熙燮)이다. 윤응섭(尹應燮)에게 입양되었다. 개항기 종합 잡지인 『조양보(朝陽報)』의 편집 겸 발행인인 심의성(沈宜性)은 사촌누이의 아들이고, 딸 윤정원(尹貞媛)은 한국 최초의 유럽 여자 유학생이다. 윤효정(尹孝定)[1858~1939]은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현 양주시 은현면...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윤희섭(尹喜燮)[188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희섭은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어서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이 체결되는 등 충격적인 사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이자 정치가. 이강국(李康國)[1906~1955]은 경기도 양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서울로 이주하였지만 집안이 몰락하여 충청남도 예산 등지의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하였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보성중학교에 특대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며, 1925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당시 『동아일보』에 그의 사진과...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이긍래(李兢來)[1883~?]는 양주군 이담면 광암리에서 태어났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제 측의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8세이었으므로 1883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긍래는 1908년 음력 10월부터 의병장 정용대(鄭用大)의 휘하에 들어가 양주군·포천군·적성군·영평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이긍래는 다른 의병들과 달리 포천군 서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낙주(李洛周)[1896~1923]는 경기도 양주군 남면 신산리[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서 태어나서 1919년 당시 연천군 미산면 석장리[현 백학면 석장리]에 살았다. 1919년 3월 21일 장날에 모인 군중과 함께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장터에서 조우식(趙愚植)·정현수(鄭賢秀) 등과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이낙주는 면사무...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의 국권을 침탈하면서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요하여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한 이덕현(李德鉉)은 국권 회복 운동을 하고자 결심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7...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사범(李士範)[?~1943]은 1919년 3월 27일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에서 인근 주민 다수를 규합하여 김대현(金大鉉)·안종태(安鍾台)·안종규(安鍾奎)·조필선(趙弼善)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튿날인 3월 28일에도 안종규의 주도로 6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양주군 백석면 오산리 들판에 모여 백석면사무소까지 독립 만세를...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정치가·청년운동가·종교운동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계호(季皜), 호는 월남(月南). 아버지는 이희택(李羲宅)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1864년(고종 1) 강릉 유씨(江陵劉氏)와 결혼하였다. 이상재(李商在)[1850~1927]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는 전통 교육을 받았다. 1881년(고종...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 고조할아버지는 모양군(牟陽君) 이직(李稙), 증조할아버지는 선사정(仙槎正) 이승손(李承孫), 할아버지는 신당령(神堂令) 이정(李禎)이며,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희검(李希儉)이다. 어머니는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아들은 이성구(李聖求)와 이민구(李敏求)이다. 이수광(李睟光)[156...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순승(李順承)[190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923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던 조용원(趙鏞元)과 결혼한 후 남편을 내조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군자금 모집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인천(仁川)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0일간 구류되었다. 1940년 6월 17일 한국 여성에게 민족...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이순재(李淳載)[1894~1944]는 1919년 당시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던 봉선사(奉先寺)의 승려였다. 1919년 3월 29일 김석로(金錫魯)·김성암(金星岩) 등과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조선독립단 임시 사무소 명의로 독립 시위에 대한 격문(檄文) 200여 매를 인쇄, 인근 주민들에게 배...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1년 11월 11일 워싱턴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전후 문제 처리를 위한 태평양 회의가 개최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한국의 독립 문제와 한국 독립 결의안을 상정시키기 위해 모든 외교적 역량을 동원하였다. 미국 대표단과 접촉하기 위해 서재필(徐載弼)과 이승만(李承晩)을 대표로 파견하여 우리의 요구를 설명하는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
경기도 양주시에 암각 글씨가 남아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전주. 자는 자수(子修), 호는 송월재(松月齋). 태종의 서자(庶子)인 온녕군(溫寧君) 이정(李䄇)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영기(李英基)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권벌(權橃)의 증손녀이다. 부인은 상주의 유학자 이전(李㙉)의 손녀이다. 자녀는 3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근(李瑾), 이해(李瑎), 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규(李用奎)[1888~?]는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행동[석적면은 지금의 양주시 광적면]에서 태어났다. 후에 서울 동부 이현(梨峴)[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가 부근]으로 이주하였다. 일제의 기록에 따르면 1911년 당시 24세였으므로 1888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용규는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는데, 주요 활동지는 양주군 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화(李龍和)[1867~1919]는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운경(雲京)이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광적면에서는 이용화가 만세 시위를 위해 백남식(白南式)·김진성(金辰成) 등과 함께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리고, 마을을 순방하며 시위 계획을 알리고 일장기를 변조해 태극기를 만들었다. 거사 당일인...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관료.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여(允汝), 호는 춘사(春史). 아버지는 이해석(李海錫)이고, 교육가이자 명신여학교 초대 교장인 이정숙(李貞淑)이 여동생이다. 이원상(李源商)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효계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한 이원상은 후에 양구군수·천안군수·안산군수·죽산군수를 역임하였다. 이원상은 1907년 의병을 일으킨 왕...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이은찬(李殷贊)·이언찬(李諺瓚)·이헌찬(李憲瓚)이라고도 한다. 종실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석하이고 동생은 이은호이다. 이은찬(李殷瓚)[1878~1909]은 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현 원주시 판부면]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을 공부하던 유생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경상북도 문경에서 의병...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전주. 자는 성집(聖執), 호는 미석(渼石). 고종의 종척(宗戚)이다. 이재윤(李載允)[1849~1911]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877년(고종 14)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우승지(右承旨)에 이르렀으나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매국 역적들을 참하자는 소...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 정종(定宗)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宣城君)의 후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양에서 경기도 양주로 피란하였다가 광사동에 터를 잡아 전주 이씨 선성공파(宣城公派)의 입향조가 되었다.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에 묘소는 있다. 형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
조선 후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여윤(汝胤), 호는 가곡(嘉谷). 아버지는 효자 최혁(崔爀)이다. 최규석(崔圭錫)[1811~1893]은 최익현(崔益鉉), 유중교(柳重敎)와 교유하였다.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할머니와 부모의 병중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연명케 하여 고을의 뭇사람을 감동시켰다.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