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군읍지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석리(廣石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곳의 밭 1,000여 평에 돌이 한 자[尺] 깊이로 깔려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과, 마을에 넓은 들이 있어 넓은들·나븐들이라 부르던 것이 ‘너븐’과 ‘너븐돌’과 ‘넓은돌’을 거쳐 ‘광석(廣石)’이라는 한자어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석리(廣石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곳의 밭 1,000여 평에 돌이 한 자[尺] 깊이로 깔려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과, 마을에 넓은 들이 있어 넓은들·나븐들이라 부르던 것이 ‘너븐’과 ‘너븐돌’과 ‘넓은돌’을 거쳐 ‘광석(廣石)’이라는 한자어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
-
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행정면이자 법정면. 광적면(廣積面)은 광석면(廣石面)에서 ‘광’자와 석적면(石積面)에서 ‘적’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광석면이라는 이름은 현재의 광석리에 펼쳐져 있는 넓은 들판에서 비롯되었다. 즉, 넓은 들판을 의미하는 ‘너븐달’이 ‘너븐돌’로 읽히고 이것이 한자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광석(廣石)’이 되었다. 석적면도 들판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즉, 들...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있던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요 도로나 인가가 드문 지역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대개 역(驛)과 관련되어 역의 중간 지점에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驛院)이라 하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원은 중앙 집권적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주로 교통상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 교역...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울대리 및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에 걸쳐 있는 산. 도봉산(道峰山)이라는 지명은 여러 봉우리들이 마치 길을 가듯이 일정한 방향으로 늘어서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도봉산은 조선 중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처음 나타난다. 이후 조선 말기에 편찬된 『조선지지략(朝鮮地誌略)』[1888]과 『양주군읍지(楊州...
-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행정읍이자 법정읍. ‘백석(白石)’이라는 땅 이름은 백석읍 방성리와 양주읍 유양리·어둔리에 걸쳐 있는 양주산성[구 양주 대모산성]에 흰 돌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양주산성에는 흰 돌이 없고, 다만 방성리에 소재한 양주소놀이굿전수회관 부근의 배나무 과수원에 흰 돌이 있어 이를 ‘백석’의 기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과 산북동, 백석읍 방성리 일대에 있는 산. 불곡산(佛谷山)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서부터 등장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에는 불국산(佛國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는 불국산과 불곡산이라는 이름을 혼용하는데, 역사성이 있는 이름은 불국산일 것 같다. 불국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을 부처가 사는...
-
경기도 양주시 어둔동과 백석읍 방성리 양주 대모산성에 걸쳐 있었던 자연 마을. 양주산성[양주 대모산성]이 있어서 원래 산성 또는 산성마을이라고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 산성동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일제 초기의 문헌에서부터 확인된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에서는 이 지역을 산성리(山城里)로 소개하였다. 산성의 일부는 지금까지 남아...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있던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요 도로나 인가가 드문 지역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대개 역(驛)과 관련되어 역의 중간 지점에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驛院)이라 하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원은 중앙 집권적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주로 교통상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 교역...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홍문거리에서 남방동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돌다리. 승학교는 예전 ‘승학하양주(乘鶴下楊州)’라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다리 옆에 1733년(영조 9)에 세워진 비석이 있는데, 문헌상으로는 18세기 중반부터 승학교라는 이름이 확인된다. 1842년판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에 처음 나타나며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양주목읍지』[187...
-
조선 시대 양주목[현 경기도 양주시]을 관할하던 최고위 관직. 조선 초기 양주는 양주군, 양주도호부를 거쳐 1466년(세조 12)에 양주목으로 승격되었다. 수도 한성부를 보좌하는 기보(畿輔) 지역으로서의 특성을 감안하여 중요 지방 행정 구역인 목(牧)이 된 것이다. 양주목은 연산군 때 잠시 폐지되었다가 중종 때 다시 부활하여 1895년(고종 32) 전국의 지방 행정 구역을 정비할...
-
개항기 때 간행된 경기도 양주 지역에 대한 지리지. 『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는 조선 후기 양주목(楊州牧)을 대상으로 한 지리지로 오늘날 남양주시, 구리시, 의정부시, 동두천시, 일부 연천군 지역을 포괄하고 있는 읍지이다. 19세기 중반 양주의 지역 사정과 정보를 전반적으로 잘 알려주는 문헌이다. 『양주군읍지』의 저본은 확실치 않으나 19세기 중반 또는 광무 연간[1897~1907...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의 주요 도로에 세워져 국가가 경영한 여관.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요 도로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의 일종이다. 대개 역(驛)과 관련되어 역의 중간 지점에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驛院)이라 하였다. 공무 여행자의 교통 숙식 시설 중에는 관(館)도 있었는데, 객관(客館) 혹은 객사(客舍)...
-
경기도 양주시에서 공자(孔子)의 정치 이념, 학문, 의례에 관한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던 사상. 유교(儒敎)는 공자가 제창한 정치 이념, 도덕 수양의 방법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사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기산리·홍죽리·가업리에 걸쳐 있는 산. 은봉산(隱鳳山)은 은이 나오고 봉황이 숨어 있던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자명은 은봉산(銀鳳山)이 아니라 은봉산(隱鳳山)으로 전해 오고 있어 봉황이 숨어 있던 산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은봉산이라는 이름은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1842]에 처음 나오며 이후 『양주목읍지』[1871], 『양주군...
-
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행정면이자 법정면. 장흥(長興)이라는 땅 이름은 조선 시대 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기록에 전하고 있다. 따라서 장흥면(長興面)은 백석읍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래 이름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지역이다. ‘장흥’이라는 이름을 우리말로 풀면 ‘오래도록 길이 흥한다’가 된다. 땅 이름이 같은 전라남도 장흥군의 경우 고려 인종(仁宗) 때에 인종의 비인...
-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해 낸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원래 최초의 향토지는 조선 후기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 『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를 비롯한 각종 지리지에서 출발한다. 해방 이후 향토지는 향토사의 개...
-
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에 속하는 법정동. 회암동(檜岩洞)의 옛 이름인 회암리의 땅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옛 회암면 지역에 회암사(檜巖寺)가 있어 회암골·회암동·회암으로 불렸다는 설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문헌에 따르면 ‘회암’이라는 땅 이름은 회암사라는 사찰의 이름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회암사의 창건 시기가 분명하지 않아 연대를 확정하기 힘들다. 다만 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