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
조선 시대 양주목[현 경기도 양주시]을 관할하던 최고위 관직. 조선 초기 양주는 양주군, 양주도호부를 거쳐 1466년(세조 12)에 양주목으로 승격되었다. 수도 한성부를 보좌하는 기보(畿輔) 지역으로서의 특성을 감안하여 중요 지방 행정 구역인 목(牧)이 된 것이다. 양주목은 연산군 때 잠시 폐지되었다가 중종 때 다시 부활하여 1895년(고종 32) 전국의 지방 행정 구역을 정비할...
-
1765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연희궁(延禧宮) 묘소 주변 등의 전답을 추가 매입해 측량한 뒤 만든 토지 대장. 「연희궁 묘소외 청룡 백호 식목처 추입 전답 타량 성책(延禧宮墓所外靑龍白虎植木處追入田沓打量成冊)」은 1765년(영조 41) 3월 양주목에서 연희궁 묘소의 내청룡(內靑龍) 근처의 전답 및 외청룡(外靑龍)·백호(白虎)의 나무 심는 곳을 단장하기 위해 추가 매입한 전답 현황을 상...
-
양주목사를 역임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전보(展甫), 호는 지수재(知守齋). 증조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 유성증(兪省曾)이고, 할아버지는 대사헌 유철(兪㯙)이며, 아버지는 목사 유명악(兪命岳)이다. 어머니는 이두악(李斗岳)의 딸이다. 부인은 평산 신씨다. 아들은 유언흠(兪彦欽), 유언현(兪彦鉉), 유언전(兪彦銓), 유언수(兪彦銖)이다. 유척기(兪拓基)[16...
-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민시(鄭民始)의 묘와 신도비. 정민시[1745~1800]의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중초(仲初)이다. 생부는 정창유(鄭昌兪)인데 숙부인 정창사(鄭昌師)에게 입양되었다. 1773년(영조 49)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정조를 세손 때부터 보필하였으며,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정민시 묘 및 신도비는 양주시 산북동의...
-
1730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정빈방(靖嬪房)이 새로 구매한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정빈방 신 매득 전답 타량 성책(靖嬪房新買得田沓打量成冊)」은 1730년(영조 6) 3월 경기도 양주목에서 정빈방이 새로 구입한 동목(同牧) 백석면 고령리(高嶺里)[지금의 양주시 백석읍 기산리] 소재 전답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정빈(靖嬪)은 영조의 후궁이며, 진종(眞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