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가 23부, 336군으로 개편되었다. 신관제(新官制)에 의한 23부제가 1895년 6월 23일에 시행됨에 따라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었다. 한성부에 소속된 군은 양주 이외에 한성·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 등 11개 군이 더 있었다. 23부제는 18...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김진묵(金溱默)은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태어났다. 김진묵은 일제가 1907년 우리 민족의 군사무력(軍事武力)을 약화시키기 위해 7월 20일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7월 24일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고 이때 교환된 비밀 각서에 의하여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고자 결심...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신(敬信), 호는 송은(松隱). 아버지는 성균관교관 정인식(鄭寅植)이다. 정충환(鄭忠煥)[1888~196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의병 활동 당시의 주소지는 서울 동부 연화방 39통 6호[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였다. 1907년(순종 1) 영춘[현 충청북도 단양]에서 의거를 일으켰으며, 1908년 음력 5월...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추삼만(秋三萬)[1880~1910]은 경기도 양주군 회암면[현 양주시 회암동] 출신으로, 이담면 하봉암리[현 동두천시 하봉암동]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요하여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분노한 추삼만은 같은 해 8월 황재호(黃在浩) 의병 부대에 들어가...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순일(黃順一)[1865~?]은 포군 부장(砲軍部長)을 지냈다. 1904~1905년경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로 이사하였으며, 1907년 9월 황재호(黃在浩)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양주를 비롯하여 적성, 포천, 가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에는 양주 출신의 의병 홍희영(洪喜永)을 포함하여 40여 명의 의병을...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재호(黃在浩)[1872~?]는 1907년 8월 대한제국 육군 참위로 복무하던 중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낙향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적성군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권득수(權得洙)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얼마 후 권득수 부대를 흡수 통합하여 양주·파주·가평·영평 일대에서 양주 출신인 추삼만(秋三萬)·전순만(全順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