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에 있는 부여 서씨 집성촌. 족보에 의하면 부여 서씨의 시조는 백제 의자왕의 셋째 아들인 서융(徐隆)이지만, 문중은 고려 시대에 병부 상서를 지낸 서존(徐存)을 시조로 본다. 후손은 주로 평안남도 개천에서 대대로 살고 있다. 부여 서씨 전체 인구는 2000년 기준으로 4,486가구 1만 4312명이었다. 부여 서씨 광석리(廣石里) 집성촌의 입향조(入鄕祖)...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부여. 자는 재이(載邇), 호는 육곡(六谷). 증조할아버지는 서익(徐益)이고, 할아버지는 서용갑(徐龍甲)이며, 아버지는 서운기(徐雲驥)이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현감을 지낸 이택민(李澤民)의 딸이다. 부인도 전주 이씨로, 이성간(李成幹)의 딸이다. 아들은 목사 서경조(徐敬祖)이고 딸은 박태만(朴泰萬)에게 출가하였다. 동생은...
-
경기도 양주는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치열한 쟁탈전의 현장으로서, 고려 시대에는 개성과 조선 시대에는 한양과 가까운 근기(近畿) 지방에 속함으로써 수많은 부침(浮沈)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부침 속에는 역사에 오롯이 이름 한 줄로 남았거나 혹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사연들이 녹아 있다.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과...
-
1466년부터 1895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지방 행정 제도에 의해 설정된 목(牧)·부(府)·군(郡)·현(縣) 중에서 양주는 가장 큰 규모의 행정 단위인 목에 해당하였으며, 해당 지방관의 명칭은 목사(牧使)였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었던 양주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1466년(세조 12) 양주도호부를 양주목(...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양주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역사적 중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더욱이 양주 지역의 남쪽과 북쪽을 흐르고 있는 한강과 임진강은 수로에 근거한 교통의 편리함, 풍부한 수자원, 광활한 평야라는 지리적 장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이를 둘러싼 군사적 쟁탈전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한강과 임진강을 접하...
-
양주목사를 역임한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징지(澄之), 호는 매죽헌(梅竹軒). 아버지는 인조반정 공신 이수일(李守一)이며, 어머니는 완산 이씨(完山李氏)로 이귀년(李貴年)의 딸이다. 이완(李浣)[1602~1674]은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인조반정 공신으로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서(李曙)의 추천으로 만포 첨사(滿浦僉使)가...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납작한...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같은 성씨가 오랜 기간 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지역. 집성촌이란 하나의 지배적인 동성 동족(同姓同族) 집단이 특정 마을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마을이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에 대해선, 어떤 성씨는 고려 시대 혹은 고대까지 올려 잡기도 하고, 실제로 어떤 거주자들은 자신이 속한 집성촌이 300~400년 혹은 500~600년 전에 만들어졌다...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회(子晦), 호는 북정(北汀). 고조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홍춘경(洪春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도승지 홍일민(洪逸民), 할아버지는 금산 군수 홍서룡(洪瑞龍)이며, 아버지는 사재감 첨정 홍명현(洪命顯)이다. 어머니는 해주 정씨(海州鄭氏)로 참판에 추증된 정용(鄭鎔)의 딸이다. 부인은 청송 심씨(靑松沈氏)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