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진주(晉州). 본명은 강기주(姜基周). 아버지는 강준복(姜俊福)이다. 강기동(姜基東)[1884~1911]은 서울 명동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군 기병부위(騎兵副尉)로 있다가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군을 규합하여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그 뒤 일본 헌병대를 찾아가 위장 귀순하여 경기도 장단(長湍) 고랑포(古浪浦)에서 헌병...
-
1894년 경기도 양주를 비롯한 36개 읍의 세금 징수 대상을 기록한 자료. 「경기 각읍 신정 사례(京畿各邑新定事例)」는 1894년 10월 승총(陞總)[세금 징수 대상에서 빠진 토지 내역을 조사해 장부에 등록하는 일]에 따라 새롭게 정해진 경기도 각 읍(邑)·진(鎭)의 세금 징수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규15234]. 필사본. 2책. 크기는...
-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에 설치되었던 고려 시대의 행정 구역. 1390년(공양왕 2) 7월 서운관에서 송도 개경의 지적을 쉬게 하고 국운을 일으키기 위해 『도선비기(道詵秘記)』를 따라 한양으로 천도할 것을 상서하였고, 한양 궁궐 수리 등 관련 조치들이 행하여졌다. 그중 한양부를 중심으로 한 경기도 재편이 이루어졌다. 도성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 해당하였던 양주 일대는 경기좌...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기도 양주시와 관련하여 양주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898년 부터이다. 양주와 함께 이미 견주(見州)도 이때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고려 시대의 양주를 편의상 건국 후 정종(靖宗) 대까지를 초기, 문종(文宗) 대부터 원종(元宗) 대까지를 중기, 충렬왕(忠烈王) 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후기로 나누어...
-
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법정동. 마전동(麻田洞)이라는 땅 이름은 옛날부터 삼밭이 많아서 삼밭굴·삼밭 또는 마전(麻田)이라 불리다가 정착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마포(麻圃)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마을 이름이 산삼 및 삼베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마전동의 옛 이름은 마전리이다. 마전리라는 이름은 18세기 후반의 문헌인 『호구총수(戶口總...
-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분묘군. 양주시 마전동 125번지에 위치한다. 금오~마전 간 도로에서 마전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문화 유씨(文化柳氏) 묘역이 나타나는데, 마전동 분묘군(麻田洞墳墓群)은 문화 유씨 묘역 북쪽 산자락 상단부에 자리하고 있다. 마전동 분묘군은 2기의 분묘로 이루어져 있다. 1호분 봉분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고, 그 앞쪽으로 하현형(下弦型)의 비...
-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에 있는 후기 구석기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마전동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마전동에 있는 금오~마전 간 도로와 국가지원지방도 86호선이 연결되는 지점에서 동쪽 도로 아래 원예 사업 단지에 있다. 2004년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와 국방유적연구실은 양주 금오~마전 간 도로 개설 및 확·포장 공사와 관련하여 문화재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때 후기 구석...
-
경기도 양주시 삼숭동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삼숭동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삼숭동 푸른솔아파트와 성우아파트 사이 구릉 남사면과 능선 사이의 곡부, 국도 360호선과 국도 379호선이 만나는 삼거리 서쪽에 인접한 구릉 및 경작지 일대, 같은 삼거리에서 양주시청 방향으로 100m 정도 진행한 도로 남쪽 경작지 일대에 있다. 1998년에는 한국토지공사 토...
-
조선 전기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군사 조직. 중앙군과 지방군의 일원화를 위한 진관 체제가 성립되기 전,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설치되어 있던 영(營)·진(鎭)을 내륙에 있는 주현(州縣)에도 설치하여 방어의 허술함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1455년(세조 1) 전국의 각 도를 몇 개의 군익도로 나누고 각 군익도를 다시 중·좌·우의 3익(翼)으로 나누었다. 이것...
-
조선 전기 진관 체제에 따라 경기도 양주 지역에 편성된 군사 체제. 1457년(세조 3) 세조는 군익도(軍翼道) 체제를 강화하여 진관 체제로 바꾸었는데, 이때 경기도에 양주진을 비롯한 수원진, 광주진, 강화진, 개성진 등 총 5개 진을 설치하여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군사 조직으로 활용하였다. 당시 계유정란에 의해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많은 반란의 위기에 처해 있었으므로 군사 조직의...
-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경기도 양주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일으킨 국권 회복 운동. 의병 운동은 1894년 발발한 갑오 농민 운동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봉기한 이후 20여 년간 전개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과 투쟁의 강도가 강화되었다. 군대 해산 이전에는 이인영(李麟榮)·최익현(崔益鉉) 등 지방의 명망 있는 유생 의병장이 의병 운동을 주도하면서 반일 항전을 촉...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구심(求心).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남동생은 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조용한(趙鏞漢)·조용원(趙鏞元)이고,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용하(趙鏞夏)[1882~1937]는 경기도 양주군...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재호(黃在浩)[1872~?]는 1907년 8월 대한제국 육군 참위로 복무하던 중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낙향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적성군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권득수(權得洙)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얼마 후 권득수 부대를 흡수 통합하여 양주·파주·가평·영평 일대에서 양주 출신인 추삼만(秋三萬)·전순만(全順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