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기와, 자기, 토기를 구워내던 가마의 터.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외곽에 있었으며, 양주 회암사지를 비롯한 중요 역사 유적이 분포하고 있던 양주 지역에는 한양 사람들이 필요로 하던 생활 자기와 회암사를 비롯한 중요 전각에 사용할 기와 등을 생산하는 가마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현재까지 밝혀진 양주 지역의 가마터는 주로 장흥면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곡리(釜谷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두 가지의 설이 있다. 첫째, 이곳이 가마골 혹은 교동(轎洞)으로 불려왔다고 한다. 이름난 인물들의 묘가 많아 성묘하는 사람들이 가마를 타고 들어오므로 이와 같은 땅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둘째, 그릇을 굽는 가마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부곡’이 가마 ‘부(釜)’자와 골짜기 ‘곡...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던 산. 또는 그 산이 있던 자연 마을. 서산(西山)은 조선 시대에 한양[서울]에서 볼 때 서북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부곡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는 일영봉·제일봉·종래봉·매봉 등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산을 가리키는 것인지, 네 개의 산 전체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서산은 서산골짜기라고도 불렀으며, 장흥면 전체를 가리키는 지...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조선 후기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愼氏)의 능묘. 양주 온릉(楊州溫陵)은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이자 원비인 단경왕후 신씨[1487~1557]의 능이다. 단경왕후 신씨의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아버지는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 신수근(愼守勤)이다. 1499년(연산군 5) 중종이 진성대군(晉城大君)으로 있을 때 혼인하여 부부인(府夫...
-
경기도 양주는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치열한 쟁탈전의 현장으로서, 고려 시대에는 개성과 조선 시대에는 한양과 가까운 근기(近畿) 지방에 속함으로써 수많은 부침(浮沈)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부침 속에는 역사에 오롯이 이름 한 줄로 남았거나 혹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사연들이 녹아 있다.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과...
-
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행정면이자 법정면. 장흥(長興)이라는 땅 이름은 조선 시대 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기록에 전하고 있다. 따라서 장흥면(長興面)은 백석읍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래 이름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지역이다. ‘장흥’이라는 이름을 우리말로 풀면 ‘오래도록 길이 흥한다’가 된다. 땅 이름이 같은 전라남도 장흥군의 경우 고려 인종(仁宗) 때에 인종의 비인...
-
1919년 3월 28일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경기도 양주 지역은 의병 운동의 전통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국권 회복을 위한 주민들의 역사적 인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점차 격렬하게 확산되고 있던 서울의 3·1 운동 소식이 전해지고,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1919년 3·1 운동 초기부터 만세 운동에 대한 사발통문이 나도는 등 독립 만세의 기운이 일...
-
조선 전기 경기도 양주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한양. 증조할아버지는 총관 부원수 조양기(趙良棋)이고, 할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돈(趙暾)이며, 아버지는 개국공신인 한산군(漢山君) 조인옥(趙仁沃)이다. 아들은 조숙생(趙肅生)이며, 조카는 조순생(趙順生)이다. 조관(趙貫)[1382~?]은 1431년(세종 13) 판내섬시사(判內贍寺事)로 종마관압사(種馬管押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 있는 평양 조씨 집성촌. 평양 조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의 무신인 조춘(趙椿)이다. 조춘은 추밀원 부사로 남송(南宋)에 가서 금(金)을 정벌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워 상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5세손인 조인규(趙仁規)가 고려 충숙왕의 장인이 되었고 후일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평양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파는 제주공파(濟州公派), 병사공파(兵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