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정동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기도 양주시와 관련하여 양주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898년 부터이다. 양주와 함께 이미 견주(見州)도 이때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고려 시대의 양주를 편의상 건국 후 정종(靖宗) 대까지를 초기, 문종(文宗) 대부터 원종(元宗) 대까지를 중기, 충렬왕(忠烈王) 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후기로 나누어...
-
경기도 양주시 회천3동에 속하는 법정동. 고암동(古岩洞)이라는 땅 이름은 고장리(高障里)에서 ‘고’자와 옹암동(甕岩洞)에서 ‘암’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장리는 고장산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옹암동은 독바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고암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공교롭게도 이 마을의 대표적인 두 산봉우리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고암동의 옛 명칭은 고암리였다. 고암리라는 땅 이름은 19...
-
경기도 양주시 양주2동에 속하는 법정동. 고읍동(古邑洞)이라는 이름은 조선 초기에 양주의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고읍(古邑)·구읍(舊邑)·고읍내(古邑內)·구읍내(舊邑內)라고도 하였다. 고읍동의 옛이름은 고읍리였다. 고려 시대에는 견주(見州)라는 독립적인 행정 구역의 치소가 있었으며, 1397년(태조 6)에는 양주의 부치(府治)가 동촌 대동리[현 서울특...
-
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소속 성당. 1900년 초 양주군 회천면 덕정리[현 양주시 덕정동] 등지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 모여 옹기를 구우며 형성된 교우촌을 토대로 종현본당 관할 덕정공소로 출발하여 1906년 개성본당, 1927년 신암리본당에 속하였다. 1934년 덕정성당으로 승격되었으나, 1945년 해방 후 성당 매각에 따라 다시 덕정공소로 격하되었다. 녹양동...
-
경기도 양주시 회천동, 고암동, 옥정동 사이에 있는 산. 항아리처럼 생긴 바위산이라 하여 독바위라고 불리다가 옹암산(甕岩山)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돌산 또는 노적봉이라고도 불리었다. 독바위가 있는 곳이 우리나라의 배꼽에 해당한다고 하며 천지가 개벽할 때 마귀할머니가 이곳에서 술을 빚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옹암(甕岩)’이라는 이름은 『세종실록(世宗實錄)』 1421년(...
-
경기도 양주시 회천동, 고암동, 옥정동 사이에 있는 산. 항아리처럼 생긴 바위산이라 하여 독바위라고 불리다가 옹암산(甕岩山)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돌산 또는 노적봉이라고도 불리었다. 독바위가 있는 곳이 우리나라의 배꼽에 해당한다고 하며 천지가 개벽할 때 마귀할머니가 이곳에서 술을 빚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옹암(甕岩)’이라는 이름은 『세종실록(世宗實錄)』 1421년(...
-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마라니라는 이름의 유래에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 천마산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역마(驛馬)를 탔을 때 말이 땀을 많이 흘려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도읍을 정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다니다가 이 마을을 지나게 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타고 있던 말이 땀을 많이 흘린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
경기도 양주시는 지난 2006년 12월 전철 1호선 경원선 복선 전철의 개통, 2007년 12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의 완전 개통, 2008년 148만 9000㎡ 규모의 고읍 택지 개발 사업 완료 등으로 2011년 11월 기준 인구 20만 명의 경기 북부 중심 도시로 급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옥정·회천 지구에서 현재 추진 중인 11.42㎢ 규모의 양주신도시와 116만 900...
-
경기도 양주시 양주2동에 속하는 법정동. 삼숭동(三崇洞)이라는 땅 이름은 삼가대리(三佳垈里)의 ‘삼’자와 광숭리(光崇里)의 ‘숭’자를 합한 이름이다. 삼가대리는 삼거리에 있는 마을 혹은 세 성씨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숭리는 넓은 벌판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지 주민들은 상삼동(上三洞)·하삼동(下三洞)·광숭동(光崇洞)·야촌동(野村洞) 등을 합쳐 옛날매라...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문자 기록이 없던 태초부터 발생하여, 문자 기술에는 의존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옛날이야기로, 신화(神話)와 전설(傳說), 민담(民譚)으로 분류된다. 신화는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로, 우주의 기원, 신이나 영웅의 사적(事績), 민족의 태고 때의 역사가 주된 내용이다. 전설은 민간에서 전하여...
-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교리에 따른 예식이 행해지는 건물. 성당(聖堂)은 본당을 말하며, 가톨릭의 경신례를 위해 모든 신자들이 이용하도록 지정된 거룩한 건물이다. 성당은 주임 신부가 상주하며, 공소(公所)는 신부가 방문해야만 미사가 집전될 수 있는 성당보다는 작은 교회의 단위이다. 주교 관구의 중심 교회로서 주교가 직위에 있고 미사를 집전하는 경우 주교좌 성당(...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거주하고 있는 성씨(姓氏).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는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 시대 성주(城主),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회 교역자와 평신도 대표들의 연합 단체. 1981년 12월 양주군 기독교교역자연합회로 발족하였으며, 제1대 회장은 민정웅 목사였다. 1989년 경기도 양주 지역 기독교 교역자와 평신도 대표를 포괄하여 양주군 기독교연합회로 출발하였으며, 2003년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양주시 기독교연합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9년 초에는 회원...
-
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에 속하는 법정동. 옥정동(玉井洞)이라는 땅 이름은 통합 이전의 마을 이름인 옥동리(玉洞里)의 ‘옥’자와 냉정리(冷井里)의 ‘정’자를 합쳐 만든 것이다. 옥동리는 옥같이 아름다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냉정리는 맑고 찬 우물물이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정동의 옛 이름은 옥정리이다. 옥정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
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에 속하는 법정동. 율정동(栗亭洞)이라는 땅 이름은 귀율리(貴栗里)의 ‘율’자와 모정리(茅亭里)의 ‘정’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귀율리는 밤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모정리는 마을 입구에 초모(草茅)로 만든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율정동의 옛 이름은 율정리이다. 율정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 크게 동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일본과의 교역을 단절하여 임진왜란 직전에는 양국간의 교섭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일본...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철기는 청동을 대체하여 사용된 금속으로 무기와 농기구로 가공되었다. 철은 청동에 비해 가공하기가 쉽고 다양한 형태로의 주조(鑄造)나 단조(鍛造)가 가능하여 활용도가 높은 금속이지만 고온의 가공 시설이 필요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철광석을 확보해야하기에 당시로선 철기 관련 제작이 획기적인 선진 기술에 속하였다. 따라서...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할아버지는 예문관 제학 한상질(韓尙質)이고, 아버지는 감찰 한기(韓起)이다. 어머니는 여주 이씨로 대제학 이적(李逖)의 딸이다. 형은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로 우찬성 권제(權踶)의 딸이다. 아들은 대사헌을 지낸 청평군(淸平君) 한언(韓堰)이다. 청주 한씨는 한언 대에 부평부[현 구로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에 있는 해평윤씨 집성촌. 해평(海平)은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이다. 해평윤씨의 시조는 윤군정(尹君正)으로, 고려 고종 및 원종 때에 수사공 상서 좌복야 판공부사를 지냈다. 윤군정의 손자인 윤석(尹碩)이 충숙왕 때에 충근 절의 동덕 찬화 보정 공신에 책록되고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해평윤씨가 시작되었다. 파는 문영공파(文英公派), 충간공파(忠...
-
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에 속하는 법정동. 회암동(檜岩洞)의 옛 이름인 회암리의 땅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옛 회암면 지역에 회암사(檜巖寺)가 있어 회암골·회암동·회암으로 불렸다는 설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문헌에 따르면 ‘회암’이라는 땅 이름은 회암사라는 사찰의 이름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회암사의 창건 시기가 분명하지 않아 연대를 확정하기 힘들다. 다만 적어...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암면(檜巖面)이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 최대 거찰인 회암사(檜巖寺)가 있어 붙여졌다. 회암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암면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부터...
-
1914년부터 1985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암면(檜岩面)의 ‘회’자와 천천면(泉川面)의 ‘천’자를 따서 회천면(檜泉面)이라고 불렀다.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 양주에 속하였고 다시 1308년 한양부에 속하였다. 1394년 양주에 속하였으며, 1895년 한...
-
1985년부터 200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천읍(檜泉邑)은 회천면에서 왔으며, 회천면은 천천면·어등산면·회암면 등이 합쳐질 때 회암면의 ‘회(檜)’자와 천천면의 ‘천(泉)’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삼한 시대 마한에 속하던 지역으로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