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조선 후기 경기도 양주에서 개장하여 지금까지 열리는 5일장. 가업리(加業里), 가납리(加納里), 추교리(楸橋里)는 모두 ‘가래비’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가래비는 ‘갈’에서 왔고, 이는 ‘갈림길’, ‘길이 갈라지는 곳’, ‘길이 나누어 두 갈래 길로 바뀌는 곳’, ‘삼거리’라는 뜻을 지닌다. 실제로 가래비는 양주 유양리 관아 거리에서 감악산 지역을 거쳐 파주로 나가는 길...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황방리 와 파주시, 연천군에 걸쳐 있는 산. 감악산(紺嶽山)은 매우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짐작된다. 감악산의 ‘감’자를 ‘가미’의 음차로 보아 ‘감악’을 가미[神]의 산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멀리서 보면 감색이어서 감악산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여러 측면에서 보건대 감색이어서 감악산이라 했다는 말보다는 산신 가미...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감악산에 조성되어 있는 등산로. 감악산[675m]은 경기도 북부 지방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여러 시·군에 걸쳐 있으며, 서울을 기점으로 대략 1~2시간 거리에 있고 높이에 비해 정상에 이르는 산행 코스가 비교적 짧고 산행 시간도 적당해서 서울과 수도권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산이다. 감악산 등산로는 양주시를 비롯하여 의정부시와 서울 등 감악산을 찾는 수도권 등...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일반 산업 단지. 일반 산업 단지는 산업의 적정한 지방 분산을 촉진하고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하여 조성되는 산업 단지로, 시·도지사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장이 지정한다. 검준일반산업단지는 1999년 4월 8일 경기도 고시 제1999-91호에 의해 일반 산업 단지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 3월 17일 산업 단지 실시 계획을 승인 받아 2000...
-
삼국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을 점령했던 국가. 백제와 고구려가 양주 지역을 놓고 대치하기 시작한 것은 대방(帶方)[경기도 북부 및 황해도 일원]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백제를 건국한 온조(溫祚) 집단이 고구려에서 나왔으므로 두 나라는 건국의 연원이 같은 형제국일 수도 있었지만, 대방 고지를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고, 백제가 북방으로 진출하...
-
양주 회암사지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의 천보산 자락에 위치하며, 고려 말, 조선 초 최대의 왕실 사찰(王室寺刹)인 회암사가 있던 곳이다. 조선 전기의 최대 사찰이자 현재 양주시의 유서 깊은 사적지인 회암사를 그 역사적 내력, 회암사와 인연을 맺은 고승들, 가람의 구조, 유물 들을 중심으로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회암사는 고려 말 전국 사찰의 총본찰(摠本刹)이었으며, 조선 초기...
-
고려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의 남쪽 한강 부근에 있었던 나루.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국가에서는 교통로 상의 강변 요충지에 진[혹은 관진(關津)·진관(津關)]이나 도(渡)·도진(渡津)을 설치하여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검색하거나, 여기에 배치된 관선(官船)인 진도선(津渡船)[나룻배]를 이용하여 국가의 명령 전달이나 사람과 물자 수송 등 교통과 통신 기능을 담당하게 하였다. 유명한 나...
-
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가 23부, 336군으로 개편되었다. 신관제(新官制)에 의한 23부제가 1895년 6월 23일에 시행됨에 따라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었다. 한성부에 소속된 군은 양주 이외에 한성·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 등 11개 군이 더 있었다. 23부제는 18...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김진묵(金溱默)은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태어났다. 김진묵은 일제가 1907년 우리 민족의 군사무력(軍事武力)을 약화시키기 위해 7월 20일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7월 24일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고 이때 교환된 비밀 각서에 의하여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고자 결심...
-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과 동두천시 탑동 및 송내동의 경계에 걸쳐 있는 칠봉산 중 한 봉우리. 조선 시대 임금이 수렵을 하는 사냥터임을 알리려고 깃발을 꽂아 놓았던 곳이라 하여 깃대봉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자로는 기대봉(旗臺峰)으로 표기한다. 깃대봉 아래에 소군곡(召軍谷)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이곳에서 왕이 군사를 불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양주시 마전동에도 깃대봉...
-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낚시터. 경기도 양주시는 중앙부의 불곡산[468.7m], 도락산[439.8m]을 중심으로 북쪽 외곽으로는 감악산[675.0m], 동쪽에는 칠봉산[506.1], 천보산[336.8m] 등의 천보산맥과 서쪽에는 노고산[400.9m]을 비롯한 마식령산맥 줄기, 남쪽에는 도봉산[717.7m]이 인접 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양주의 전체적 지세는 중앙부의 불곡산과 도...
-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서 발원하여 회정동에서 청담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도덕리와 둔계리, 고장리, 과회리 등이 덕계리(德溪里)로 통합되었다. 이에 이 하천의 중심부가 흐르는 지역인 덕계리의 이름을 따서 덕계천(德溪川)으로 정한 듯하다. 덕계천은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와의 경계에 있는 도락산[440m]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한다. 도락산과 그 남쪽의 불곡산...
-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민주적 신념을 실천하는 예절 바른 사람, 기초 학력을 증진하며 창의력 있는 사람, 바른 인성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높은 이상, 성실한 자세’이다. 2004년 12월 27일 덕현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2006년 3월 1일 개교하였다. 2009년 제2...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백석읍 방성리 도락산에 있는 삼국 시대의 보루. 한강 유역의 쟁탈과 관련하여 고구려에게 있어 양주 지역은 중요한 관문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적을 방어하기 위한 성과 보루 등 군사 시설이 필요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불곡산 일원의 보루가 잘 조망되고, 양주시 광적면 일대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와 적의 이동을 살피고 방어 공격에 유용한 자리에 도락산...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입암리·구암리에 있는 산. 망당산(望唐山)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네 가지 설이 있으나 어느 것이 정설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첫째, 원래는 명당산(明堂山)이었으나 조선 중종 때 임금의 묘지를 잡으러 지관들이 이곳에 들르자 남양 홍씨들이 이곳은 명당산이 아니라 망할 망(亡)자를 쓴 망당산(亡堂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 산을 망당산으로 불렀...
-
경기도 양주 일대에 있던 마한에 속한 소국.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는 삼한에 대한 소개와 함께 마한의 소국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마한 54개국은 현재의 경기도·충청도·전라도에 분포하였으며, 모수국은 이 중 하나이다. 모수국은 임진강과 한강을 이용하고, 갈립산에서 출토되는 옥을 무역하면서 세력을 유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수국의 명칭은 『삼국지』 위서 동...
-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지정 주체에 따라 국가 및 도·시 지정 문화재[향토 유적]로 구분되며, 유형에 따라 유형 문화재·무형 문화재·기념물 등으로 나뉘며, 지정 여부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나뉜다. 2011년 현재 양주시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 9점[보물 3점·사적 2점, 천연기념물 1점, 중요 민속문화재 1점, 국가 무형 문화재...
-
삼국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속했던 한성에 도읍했던 국가. 고조선 멸망 이후 양주 지역은 마한의 영역에 속하였다. 마한은 54개국으로 구성된 연맹체였으므로 이 중 양주 지역을 차지한 나라가 어느 나라였는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명 탐색을 통하여 양주 지역이 마한의 고리국(古離國)이었다고 비정한 이병도(李丙燾)의 학설이 그동안 주목되었으나 근래에 이르러 『삼국지(三國志)』의...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에 있는 농촌 체험 마을. 비암리라는 땅 이름은 이 지역에 있는 견준바위 즉, 비암(比巖)에서 유래하였다. 예로부터 양주골 백성들이 삶의 기초인 소금과 음식의 기본인 새우젓 등을 얻기 위해 임진강 나루터 사이에 있는 길목으로 많이 왕래하여 주막거리가 형성되었다. 그 길에 있는 큰 바위산에 특이한 구멍이 뚫려 있어 지나치는 백성이 나무를 꺾어 그 구멍에 견...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에서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비암리 천태동」은 현석부락(玄石部落), 천태동(天台洞) 등에 얽힌 지명 유래담이자 비암(比岩)에 있는 바위 구멍에 막대기를 꽂으면 생남을 한다거나, 출가를 할 길운이 있다고 하는 암석 유래담이다. ‘현석(玄石)’은 바위가 검은 빛을 띠고 있어서 부르는 명칭이고, 천태동은 하늘 아래에서 첫 동네라는 뜻인데, 원...
-
수도 서울의 북편에 위치한 경기도 양주시는 광주산맥의 끝단으로서 남쪽으로 서울과 양주시·의정부시를 가르는 도봉산·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높고 낮은 산들이 고루 흩어져 있다. 한마디로 양주시는 거의 대부분이 산지 지형이며 여러 산들 사이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양주시 중심가이다. 임진강을 끼고 있는 파주시 적성면과 연천군 전곡읍을 북쪽에 접하고 있으면서, 양주시의 최북단인 남...
-
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양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 지역민의 동조와 호응 속에서 무장 의병 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고장이다. 특히 임진강과 한남정맥의 전략적 지세와 활발한 의병 활동으로 1907년 전국의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13도 창의대진소를 결성하고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을 때 본부...
-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에서 덕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샘내고개라는 이름은 근처에 맑은 물이 솟는 샘내가 있어 유래되었다. 샘내는 지질이 희고 푸석돌이 많은 석비레로 되어 있어 여기서 솟아나는 맑은 물은 유명한 약수였다. 그 중에 꽃바위우물, 즉 화암정(花岩井)이라고 하는 유명한 약수도 있었다. 옛날에 서평강(徐平康)이라는 평강군수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악정을 벌이다가 쫓겨나...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서 발원하여 석우리에서 신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신천 합류점인 석우리의 이름을 따서 석우천(石隅川)이 되었다. 석우리는 조선 시대 양주군 석적면 지역으로 하천변 모퉁이에 있던 돌문에서 ‘돌모루’ 또는 ‘석우’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석우천은 신천의 지류이다. 신천은 한탄강의 지류이고, 한탄강은 임진강의 지류이다. 즉, 석우천은 임진강 수계에 속한다. 양...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서 발원하여 석우리에서 신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신천 합류점인 석우리의 이름을 따서 석우천(石隅川)이 되었다. 석우리는 조선 시대 양주군 석적면 지역으로 하천변 모퉁이에 있던 돌문에서 ‘돌모루’ 또는 ‘석우’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석우천은 신천의 지류이다. 신천은 한탄강의 지류이고, 한탄강은 임진강의 지류이다. 즉, 석우천은 임진강 수계에 속한다. 양...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문자 기록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는 나라와 지역마다 다르며, 또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역사의 발전 과정이나 속도가 나라나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선사 시대는 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철기 시대 등 세 시기로 구분하며, 석기 시대는 다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구분한다....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소래산에 있는 삼국 시대의 보루. 소래산 보루(蘇萊山堡壘)는 삼국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양주 지역은 한강 유역의 쟁탈과 관련하여 중요한 관문으로서 적을 방어하기 위한 성과 보루 등의 군사 시설이 발달하였다. 소래산 보루 역시 양주 지역의 적을 방어하기위한 목적에서 설치되었다. 소래산 보루는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일대에 있는 소래산 정상[228...
-
임진왜란 때 경기도 양주의 해유령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신의충(申義忠)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이다. 신각(申恪)[?~1592]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조 재위 초에 연안 부사와 영흥 부사를 거쳐 1574년(선조 7) 경상 좌수사, 1576년에 경상 우병사를 역임하였다. 1586년(선조 19) 강화 부사를 거쳐 이듬해 경상도 방어사가 되...
-
삼국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을 점령했던 국가. 신라는 법흥왕[재위 514~540] 대에 이르러 불교를 공인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내부의 결속을 확고히 다진 결과 진흥왕 대에는 소백산맥 지역의 고구려 세력을 축출하고 북으로 영토를 넓혀 함흥·평양 일대를 장악하였다. 이어 영서 일대의 말갈을 추격하며 북상하여 한강을 따라 남하하며 한강 유역을 장악할 태세를 갖추었다....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서 발원하여 동두천시와 연천군 청산면을 거쳐 한탄강에 합류하는 하천. 신천(莘川)라는 이름은 청담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앞을 흐르는 내를 신내·신천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하고,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서 시작한다 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초촌천(哨村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강화천(江華川)이라고도...
-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지금의 경기도 양주시 일대에 설치한 행정 구역. 신라 경덕왕 대에 한강 주변 지역을 한산군으로 편제하여 다스렸는데, 양주(楊州) 지역도 여기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898년 왕건(王建)에 의해 양주와 견주(見州)가 정벌되면서 궁예(弓裔)의 세력 아래에 속하게 되었고, 고려 건국 이후 한강과 임진강 일대에 해당하는 양주는 요충지로 인정받았다. 때문에...
-
양주는 2003년 도농 복합 도시로 선정되었으며, 2011년 택지 개발 등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인구는 현재 2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불곡산을 진산(鎭山)으로 감악산, 사패산, 천보산 등의 산이 양주분지를 감싸 안고 있으며,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계곡을 이룬다. 한강, 임진강, 한탄강 등과도 멀지 않다. 역사적으로는 양주목(楊州牧)의 중심 관아가 있던 곳으로 한강...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양주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역사적 중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더욱이 양주 지역의 남쪽과 북쪽을 흐르고 있는 한강과 임진강은 수로에 근거한 교통의 편리함, 풍부한 수자원, 광활한 평야라는 지리적 장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이를 둘러싼 군사적 쟁탈전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한강과 임진강을 접하...
-
개항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명은 왕영종(王榮鍾)이며, 경기도 연천 출신이다. 왕회종(王會鍾)은 1905년 일제의 책동에 의하여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통분함을 금치 못하며 1906년 연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김진묵(金溱默)을 부장으로 50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적군과 유격전을 전개해 북으로 진격하여 혜산진(惠山鎭)까지 올라갔다. 1907년 정...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에서 발원하여 광석리를 지나 가납리에서 신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발원지인 우고리의 이름을 따서 우고천(遇古川)이 되었다. 우고리라는 이름은 여러 개의 골짜기가 이곳에서 만난다는 뜻의 우곡리(遇谷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고천을 아우르는 신천은 한탄강의 지류이고, 한탄강은 임진강의 지류이다. 임진강을 본류라 하면 제3지류에 해당한다. 양주시 광적면...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장. 윤인순(尹仁淳)[1880~1909]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인순은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일제의 책동으로 군대 해산이 강행되자 독자적으로 의병 부대를 일으켜 의병장으로서 양주 석치에서 적과 접전하였고, 그 후 파주·적성·포천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말 경기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점차 13도 연합 의병 부대로 확대되어 이인영(...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기산리·홍죽리·가업리에 걸쳐 있는 산. 은봉산(隱鳳山)은 은이 나오고 봉황이 숨어 있던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자명은 은봉산(銀鳳山)이 아니라 은봉산(隱鳳山)으로 전해 오고 있어 봉황이 숨어 있던 산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은봉산이라는 이름은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1842]에 처음 나오며 이후 『양주목읍지』[1871], 『양주군...
-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경기도 양주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일으킨 국권 회복 운동. 의병 운동은 1894년 발발한 갑오 농민 운동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봉기한 이후 20여 년간 전개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과 투쟁의 강도가 강화되었다. 군대 해산 이전에는 이인영(李麟榮)·최익현(崔益鉉) 등 지방의 명망 있는 유생 의병장이 의병 운동을 주도하면서 반일 항전을 촉...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이은찬(李殷贊)·이언찬(李諺瓚)·이헌찬(李憲瓚)이라고도 한다. 종실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석하이고 동생은 이은호이다. 이은찬(李殷瓚)[1878~1909]은 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현 원주시 판부면]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을 공부하던 유생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경상북도 문경에서 의병...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 크게 동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일본과의 교역을 단절하여 임진왜란 직전에는 양국간의 교섭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일본...
-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7년 동안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전쟁을 가리킨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를 포함시켜 말한다. 우리 민족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던 임진왜란이라 하면, 단연 이순신(李舜臣)...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감악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남면 입암리에서 신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하천이 통과하는 중심 마을인 입암리의 이름을 따서 입암천(笠岩川)이 되었다. 입암리는 망당산 북쪽 기슭에 인형 모양의 큰 바위가 있는데 마치 관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입암 또는 갓바위라 불리었다. 입암천은 양주시 남면 신암리 및 매곡리 상류 지역에서 좁은 계곡을 흐르다가 매곡리...
-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 정기 시장의 변천. 조선 후기에 들어와 활성화되기 시작한 각 지방의 정기 시장을 장시, 또는 장이라고 부른다. 『만기요람(萬機要覽)』 각전조(各廛條)에 “행상이 모여서 교역하고는 물러가는 것을 장(場)이라고 이른다”라고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지방을 떠돌며 상업에 종사하는 장꾼은 이미 백제 가요 「정읍사」에 나타나는 것처럼 오래 전부터 존재...
-
경기도 양주시 남면과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려 및 조선 시대의 현. 임진강을 끼고 있어 교통상, 군사상의 요지였던 경기도 양주 지역에는 삼국 시대 때부터 토탄성(吐呑城)·아미성(峨嵋城)·육계성(六溪城)·수철성(水鐵城) 등의 많은 성이 있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요지로 인식되었고, 고려 시대에 들어 성이 많다 하여 ‘적성(積城)’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주로 속...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조인환(曺仁煥)은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충청도에서 농민을 규합하여 의병 부대를 편성한 뒤 경기도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지역에는 권준(權俊)·왕회종(王會鍾)·연기우(延基羽) 등 많은 의병 부...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현. 중성현(重城縣)은 통일 신라 시대에 경덕왕이 지금의 양주시 남면 일대를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현이다. 본래는 고구려의 칠중현(七重縣)이었으나 진흥왕 대 한강 유역 점령 후 한주(漢州)가 설치되면서 이에 속하였고 후에 내소군(來蘇郡)의 두 영현 중 하나가 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4 지리2 신라 한주 내...
-
경기도 양주시의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과 지층의 성질 또는 상태. 경기도의 지질은 한반도 지체 구조상 경기육괴에 속한다. 기반은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로 이루어졌고 이를 관입한 화강암도 널리 분포한다. 변성암류로는 경기기저변성암복합체가 가장 널리 분포하며 연천층군과 춘천층군도 국지적으로 분포한다. 변성암류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화강암인데, 강원도 철원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화강암대가 포...
-
경기도 양주시에서 나타나는 땅의 기복과 형태. 양주시에서 가장 높은 산은 남면과 연천군 전곡읍 그리고 파주시 적성면과의 접경지에 위치한 해발 고도 675m의 감악산(紺嶽山)이다. 양주 동쪽의 좌장격 산은 양주시 회천동과 동두천시의 경계에 있는 칠봉산(七峰山)으로 해발 고도는 506m이다. 그리고 진산(鎭山)인 불곡산(佛谷山)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양주시에는 감악산, 칠봉산...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과 동두천시 탑동동·송내동에 걸쳐 있는 산. 양주시에는 천보산(天寶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여러 개이다. 첫째, 양주시 봉양동과 동두천시 탑동동·송내동의 경계에 있는 칠봉산의 다른 이름이 천보산이다. 둘째, 양주시 회암동의 회암사(檜巖寺)와 양주 회암사지를 중턱에 품고 있는 산도 천보산이다. 셋째, 의정부시 금오동과 양주시 마전동의 경계에도 천보산이 있다....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과 동두천시 탑동동·송내동에 걸쳐 있는 산. 양주시에는 천보산(天寶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여러 개이다. 첫째, 양주시 봉양동과 동두천시 탑동동·송내동의 경계에 있는 칠봉산의 다른 이름이 천보산이다. 둘째, 양주시 회암동의 회암사(檜巖寺)와 양주 회암사지를 중턱에 품고 있는 산도 천보산이다. 셋째, 의정부시 금오동과 양주시 마전동의 경계에도 천보산이 있다....
-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 천보산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양주시 회정동 지역에서 신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청담천(淸潭川)은 수량이 많아 곳곳에 맑은 소(沼)와 담(潭)을 많이 만들어 내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청담천은 신천의 지류이다. 신천은 한탄강의 지류이고, 한탄강은 임진강의 지류이다. 청담천은 이른바 천보산맥의 동북쪽에서 발원하여 합류점까지 북류한다. 청담천 연안에는 범람원과 낮은...
-
경기도 양주 적성[지금의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 있던 삼국 시대 산성이자 행정 구역. 칠중성(七重城)은 돌을 이용해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길이는 600m 정도 된다. 백제가 이 지역을 지배했을 당시에는 이곳을 난은별(難隱別)이라 했으며, 475년(장수왕 63) 남진 정책의 성공으로 고구려가 한강 유역 일대의 지배권을 확립한 때에는 낭비성(娘臂城)이라 하였다....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와 은현면 도하리·운암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봉우리. 1869년(고종 6)에 공주에 있던 숙종(肅宗)의 태를 이곳으로 옮겨와 묻은 뒤로 태봉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태봉을 소중하게 여겼다. 태봉 동쪽으로 2㎞ 지점에 신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다. 건너편에는 남북 방향으로 신천을 따라가며 동두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태봉의 동북쪽...
-
경기도 양주시에 분포하는 기복이 거의 없는 넓은 토지. 양주시는 크게 한강 유역권과 임진강 유역권으로 나뉜다. 한강 유역권은 구체적으로 중랑천 유역권과 공릉천 유역권인데, 양주1동과 양주2동의 광사동, 고읍동, 만송동 일부 지역이 중랑천 유역권에, 그리고 장흥면 전역이 공릉천 유역권에 속한다. 두 지역을 제외한 양주시 전역은 신천 유역에 속한다. 양주시의 평야는 이 하천 연안에 형...
-
경기도 양주시에서 지역의 지표수가 모여 일정한 물길을 따라 흐르는 곳. 하천은 육지의 표면에서 대체로 일정한 유로를 갖고 있는 유수의 계통을 일컫는다. 예로부터 큰 하천에는 강(江)이나 하(河)를 이름으로 썼고, 작은 하천에는 천(川)이나 수(水)를 이름으로 썼다. 양주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하천은 신천(莘川)이고, 이어서 공릉천(恭陵川)과 중랑천(中浪川)이 대표적인 하천이다. 신...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가업리, 장흥면 부곡리에 걸쳐 있는 산봉우리. 맑은 날 올라 남쪽을 내려다보면 한강이 보인다 하여 한강봉(漢江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산 정상에 오르면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또한 이 봉우리에 비가 내려 빗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한강으로 들어가고 북으로 흐르면 신천과 덕계천을 흘러내려가 임진강이 된다 해서 한강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
임진왜란 당시 경기도 양주 해유령에서 왜적을 상대로 벌인 전투. 16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 크게 동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일본과의 교역을 단절하여 임진왜란 직전에는 양국 간의 교섭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일본은 오랜 내란을 끝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형(季馨), 호는 왕산(旺山).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4형제 중 막내로, 형은 허훈(許薰)[1990년 애국장 추서]·허신(許藎)·허겸(許兼)[1991년 애국장 추서]이다. 자녀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허학·허영·허준·허국이다. 허위(許蔿)의...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 남쪽 지역과 방성리 및 어둔동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산에 바위가 많으며 범[호랑이]이 많이 울어 대던 산이라 해서 범울산이라 부르다가 호명산(虎鳴山)으로 굳어졌다. 옛날에는 각종 산짐승이 많이 살았으며 특히 호랑이가 밤마다 사납게 울어 대어 사람들이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 세조대에 김질이 녹양평 일대[현재 양주시 어둔동, 의정부 일대]에...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순일(黃順一)[1865~?]은 포군 부장(砲軍部長)을 지냈다. 1904~1905년경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로 이사하였으며, 1907년 9월 황재호(黃在浩)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양주를 비롯하여 적성, 포천, 가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에는 양주 출신의 의병 홍희영(洪喜永)을 포함하여 40여 명의 의병을...
-
경기도 양주시 율정동에서 발원하여 회암동을 지나 봉양동에서 청담천에 합류하는 하천. 회암동에 있는 회암사(檜巖寺)의 이름을 따서 회암천(檜岩川)으로 불린 듯하다. 회암동의 이전 명칭인 회암리도 회암사가 있어서 회암골·회암동·회암으로 불리다가 정착된 것이다. 회암사의 창건 시기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회암천은 공식적으로 청담천의 지류로 분류된다. 그런데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