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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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潝 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10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도남 |
건립 시기/일시 | 1739년 -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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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91년 - 조흡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61년 - 조흡 사망 |
현 소재지 | 조흡 신도비 -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102-1 N37° 47′ 37.7471″, E127° 03′ 49.3707″ |
성격 | 신도비 |
양식 | 팔작지붕 옥개형 |
관련 인물 | 조흡(趙潝)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260㎝[높이]|98㎝[너비]|55㎝[두께] |
[정의]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조흡(趙潝)의 신도비.
[개설]
조흡[1591~1661]의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흡여(翕如)이고, 아버지는 조수익(趙守翼)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인 조수륜(趙守倫)에게 수학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되었고, 이후 풍안군(豊安君)에 봉해졌으며,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시호는 경목(景穆)이다.
[위치]
조흡 신도비(趙潝神道碑)는 양주시 광사동 군부대 안에 있는 조흡의 묘소로 올라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팔작지붕 옥개형의 4면 비로, 너비가 98㎝, 두께가 55㎝, 높이가 260㎝인 거대한 비석이다.
[금석문]
비석의 전액은 ‘정사공신풍안군경목조공신도비명(靖社功臣豊安君景穆趙公神道碑銘)’이고, 비제는 ‘유명조선국증자헌대부의정부좌참찬겸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시경목공행분충찬모정사공신가선대부한성부좌윤겸오위도총부부총관풍안군조공신도비명병서(有明朝鮮國贈資憲大夫議政府左參贊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諡景穆公行奮忠贊謨靖社功臣嘉善大夫漢城府左尹兼五衛都摠府副摠管豊安君趙公神道碑銘幷序)’이다.
비문은 좌의정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지은 것을 당나라 명필 유공권(柳公權)의 글씨를 집자(集子)해서 만들었다. 전액은 조흡의 증손인 이조판서 조상경(趙尙絅)이 썼으며, 추기(追記) 또한 기록하였다. 비석이 세워진 연대는 ‘숭정(崇禎) 주갑후(周甲後) 51년 기미(己未)’라는 기록으로 보아 1739년(영조 15)임을 알 수 있다.
[현황]
조흡 신도비 위로 조흡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묘는 쌍분이고, 묘표(墓表)·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문인석(文人石) 등의 옛 석물을 갖추었다. 좌향은 서남향이다. 묘표는 원수형 4면 비로, 비석 앞면에는 ‘증자헌대부의정부좌참찬경목공행분충찬모정사공신가선대부한성부좌윤풍안군조흡지묘정부인청해이씨부좌(贈資憲大夫議政府左參贊景穆公行奮忠贊謨靖社功臣嘉善大夫漢城府左尹豊安君趙潝之墓貞夫人靑海李氏祔左)’라 새겨져 있다. 조흡의 묘소 위에는 아버지 조수익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흡 신도비는 규모 면에서 다른 비석을 훨씬 능가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아울러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의 노고산 독재동 추사 필적 암각문(老姑山篤才洞秋史筆蹟岩刻文), 당나라 안진경(顔眞卿)[709~?784]의 글씨를 집자한 남면 상수리의 홍구택 묘갈(洪九澤墓碣)과 함께 양주 지역 금석문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