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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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相馹永世不忘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Son Sangil |
이칭/별칭 | 행군수 손공상일 영세불망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2[교동1길 1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태문 |
성격 | 금석각류|영세불망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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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72년 8월 |
관련인물 | 손상일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19.5㎝ |
너비 | 53㎝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2[교동1길 10] |
소유자 | 양산시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양산향교 앞에 있는 조선 후기 양산군수 손상일(孫相馹)의 영세불망비.
[개설]
손상일과 관련된 비로는 양산향교 비석군에 ‘행군수손공상일청덕불망비(行郡守孫公相馹淸德不忘碑)’가 있고, 통도사 부도원 비석군에도 ‘순상국김공세호·군수손공상일영세불망비(巡相國金公世鎬·郡守孫公相馹永世不忘碑)’가 있다.
[건립경위]
손상일이 양산군수로 부임해 와서 전답과 관련된 문제 등 잘못된 폐단을 고치고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덕치를 베풀어 가난한 백성이 짐을 덜게 된 것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위치]
양산향교 앞 양쪽 비석군 가운데 왼쪽 비석군의 앞줄, 정문 담장으로부터 8번째에 놓여 있다.
[형태]
비두와 비신, 비좌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비두는 높이 60㎝, 너비 90㎝, 두께 38㎝로 해와 꽃잎이 새겨진 관석(冠石) 모양을 하고 있다. 비신은 높이 119.5㎝, 너비 53㎝, 두께 18.5㎝이며, 비좌는 가로 107㎝, 세로 62㎝, 높이 11㎝인데, 시멘트로 새로 조성되어 있다. 비문은 대체로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 중앙에 큰 글씨로 ‘행군수손공상일영세불망비(行郡守孫公相馹永世不忘碑)’라 적고, 양쪽에 작은 글씨로 4언시를 새겼다. 오른쪽에는 ‘관청이 은덕을 내니 여러 세금의 폐단을 보충하였고, 조포로 실어나르는 일이 어렵더니 집바깥에서 구획하였다네(捐以官德 補諸結瘼 漕浦難辦 戶外區畫)’라고 새겼으며, 왼쪽에는 ‘가난하고 곤궁한 이들이 짐을 내려놓고 쉬게 하니 매화 등걸이 봄마다 싹이 트였다네, 비석 머리가 석자에 불과하니 지나는 이들이 모두 애석히 여긴다네((蔀窮息肩 梅春有脚 螭頭三尺 過者愛惜)’라고 새겼다. 뒷면에는 중앙에 큰 글씨로 ‘동치십일년임신팔월일립(同治十一年壬申八月日立)’이라고 적었다.
[현황]
1985년 당시 양산군수였던 이두연이 손상일 영세불망비를 비롯하여 양산 지역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양산시 양산향교의 정문인 풍영루(風詠樓) 앞에 모아두었다. 이들은 대부분 옛날 관아 터(현 양산문화원)에 있었던 것으로, 비석군은 왼쪽과 오른쪽 비석군으로 나뉜다. 손상일 영세불망비가 있는 왼쪽 비석군은 길이 14m 40㎝, 높이 50㎝의 철제 보호 난간으로 둘러져 있는데, 폭은 5m 26㎝이다. 주변에는 유림회관을 비롯하여, 양산여자고등학교, 춘추공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