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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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發源愛民善政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Yi Balwon |
이칭/별칭 | 행군수 이후발원 애민선정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2[교동1길 1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태문 |
성격 | 금석각류|애민선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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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30년 7월 |
관련인물 | 이발원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00㎝ |
너비 | 34.7㎝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2[교동1길 10] |
소유자 | 양산시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양산향교 앞에 있는 조선 후기 양산군수 이발원(李發源)의 애민선정비.
[개설]
이발원과 관련된 것으로 통도사 부도군에 ‘군수이후발원견역선정비(郡守李侯發源蠲役善政碑)’가, 춘추공원 내 삼조의열단 왼쪽에 ‘군후이공발원모충기적비(郡侯李公發源慕忠記蹟碑)’가 있다.
[건립경위]
1829년 양산군수로 부임한 이발원은 세금·제방·곡물·재목 운반의 부역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배려하는 세심한 정치를 베풀었다. 그 결과 피폐하고 병든 고을이 소생하고 문학이 다시 빛을 찾게 되자, 그 은덕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위치]
양산향교 앞 양쪽 비석군 가운데 오른쪽 비석군의 뒷줄, 정문 담장으로부터 5번째에 놓여 있다.
[형태]
비두 없이 비신과 비좌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비신은 높이 100㎝, 너비 34.7㎝, 두께 12.8㎝로 상부 모서리가 접혀 있는 규수(圭首) 모양이며, 비좌는 가로 70㎝, 세로 39㎝, 높이 9㎝인데 조금 훼손이 되어 있다. 비문은 양산향교 앞 비석 중 가장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 중앙에 큰 글씨로 ‘행군수이후발원애민선정비(行郡守李侯發源愛民善政碑)’라 적고, 양쪽에 작은 글씨로 4언시를 새겼다. 오른쪽에는 ‘전곡과 부세와 지역과 돈을 거두는 것이며 남쪽에 방죽을 쌓고 북쪽에서 곡식을 내는 것, 모두가 은택이 흡족하니 생령들이 놓여났고 부역을 덜고 재목을 운반하였다네(田稅紙錢 南堰北穀 澤洽放生 役蠲運木)’라고 새기었으며, 왼쪽에는 ‘폐단을 제거하니 모두가 소생되었고 문장과 도학은 다시 빛을 발하였네. 은택이 전파되니 모든 백성들이 영원토록 잊을 수 없다 한다네(獘瘼皆蘇 文學復光 恩播萬口 永世不忘)’라고 새겼다. 뒷면에는 큰 글씨로 ‘도광경인칠월일시립(道光庚寅七月日始立)’이라 적어 1830년 7월에 세웠음을 밝히고 있다.
[현황]
1985년 당시 양산군수였던 이두연이 이발원 애민선정비를 비롯하여 양산 지역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양산향교의 정문인 풍영루(風詠樓) 앞에 모아두었다. 이들은 대부분 옛날 관아 터(현 양산문화원)에 있던 것으로, 비석군은 왼쪽과 오른쪽 비석군으로 나뉜다. 이발원 애민선정비가 속한 오른쪽 비석군은 길이 15m 53㎝, 높이 50㎝의 철제 보호 난간으로 둘러져 있고, 폭은 5m 60㎝이다. 주변에는 유림회관을 비롯하여, 양산여자고등학교, 춘추공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