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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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壬甲 |
영어음역 | Bak Imgap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강식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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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
성별 | 남 |
생년 | 1902년 |
몰년 | 1990년 |
본관 | 경주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임갑(朴壬甲)은 1902년 아버지 박도전(朴道銓)과 어머니 문지순(文池順)의 아들로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서 태어났다. 1921년 양서경(梁瑞慶)과 결혼하여 양산시 남부동에서 정미소를 경영하였다. 1990년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에서 타계하였다.
[활동사항]
1919년 3월 13일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 4학년 학생이었던 박임갑은 동래군(東萊郡) 동래읍(東萊邑) 장날을 기하여 엄진영(嚴進永)·고영건(高永建)·김귀룡(金貴龍) 등이 주도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같은 학교 학생 수 백 명과 장터에 모인 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선고 받고 부산형무소(釜山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