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3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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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溪- |
영어의미역 | Deokgye1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 덕계1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규봉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 속하는 덕계1마을은 덕계마을 아래쪽에 있다. 덕계1마을과 관계된 지명으로는 조평(鳥坪)·배나무골·범살미·몰강소·소심산·점비알·옹기점 등이 있다.
[명칭유래]
덕계마을은 『울산지명사』에 따르면 산 아래에 배나무가 만발하다 하여 이천(梨川)으로 불려오다가, 조선 말기에 이르러 덕계로 칭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덕계1마을은 덕계마을에서 분동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양산시 덕계동 지역은 인근 양산 삼호리 고분군과 명곡리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덕계동 지역에 정착민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931년(태조 14) 2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격퇴에 공(功)이 있던 박윤웅(朴允雄)에게 관향(貫鄕)을 하사하면서, 현재의 양산시 덕계동 지역이었던 우풍현(虞風縣)이 흥려부(興麗府) 일명 흥례부(興禮府)에 예속하게 되었다.
그 뒤 조선시대인 1413년(태종 13) 전국 행정구역 재편 때 덕계동 지역을 경상도 울산군 서면(西面)으로, 1786년(정조 10)에는 웅촌면(熊村面)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1896년(고종 33) 8월에 전국 8도(道)를 13도로 분할하면서 용당(龍塘) 이남(以南)은 웅상면(熊上面)으로, 대여(垈如) 이북(以北)은 웅하면(熊下面)으로 각각 분리되었다가, 1906년(고종 43) 9월에 ‘칙령’ 제49호에 의거, 울산군에서 양산군(梁山郡)으로 편입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에는 부(府)·군(郡)·면(面)의 통폐합에 따라 웅하면은 울주군(蔚州郡) 웅촌면(熊村面)으로, 웅상면은 양산군(梁山郡) 웅상면(熊上面)으로 개칭하였다. 2007년 4월 1일 웅상읍이 분동되면서 덕계마을은 덕계동에 속하게 되었고, 이후 도시의 발달과 인구 증가로 덕계1마을이 덕계마을에서 분동하였다.
[자연환경]
덕계1마을 주위는 천마봉과 천룡봉이 둘러싸고 있으며, 덕계1마을 앞으로는 회야강이 흐른다. 덕계1마을 주변에는 논과 밭이 많은 평야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논과 밭을 대신하여 산업 시설이 증가하고 있다.
[현황]
2008년 현재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 덕계1마을에는 총 99가구에 21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부산 지역에서 울산 방향으로 국도 7호선을 타고 진행하다가 보면 월평고개를 만나게 되는데, 덕계1마을은 월평고개 너머 덕계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왼편에 있다. 덕계1마을 주민들은 주로 농업이 주업이었으나, 인근에 공단이 조성되면서부터 근로자를 상대하는 상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
덕계1마을 인근에는 덕계초등학교, 양산경찰서 웅상지구대, 덕계동주민센터, 덕계우체국, 웅상농업협동조합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다양한 학원과 상업 시설이 밀집해 있다. 또한 덕계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웅상농공단지, 천불사, 에이원컨트리클럽, 동부산컨트리클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