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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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四維 |
이칭/별칭 | 내강(乃綱),남강(南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신녕현(新寧縣)]의 인동 장씨(仁同 張氏) 입향조.
[개설]
인동 장씨의 시조는 고려의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이며, 아들인 장선(張善)이 1072년(문종 26) 금오위 상장군(金吾衛 上將軍)에 올라 후손들이 옥산(玉山)에 정착하여 본관(本貫)을 옥산으로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에 옥산이 인동(仁同)으로 개칭됨에 따라 인동을 관향(貫鄕)으로 삼았으며, 조선조 선무랑(宣務郞)을 지낸 장맹우(張孟佑)를 중시조로 하는 인동 장씨 의흥파(義興派) 후예이다.
[가계]
장사유(張四維)의 자는 내강(乃綱), 호는 남강(南崗)이다. 고조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장연(張淵)이며, 증조는 헌릉참봉(獻陵參奉) 장귀영(張貴榮), 조부는 영릉참봉(英陵參奉) 장연부(張連富)이다. 아버지는 군산첨사(群山僉使) 겸 선무사(宣撫使) 장명호(張命虎)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용궁 전씨(龍宮 全氏)로 전응하(全應夏)의 딸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문소 김씨(聞韶 金氏)로 김계생(金繼生)의 딸이며, 슬하에 3남을 두니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 장여재(張汝載)와 장여신(張汝信)·장여철(張汝哲)이다.
[활동 사항]
장사유는 1633년(인조 11)에 태어나 1707년(숙종 33)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뛰어난 문장으로 천거되어 침랑(寢郞)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후일 통정대부(通政大夫) 호군(護軍)에 승차되어 천수를 누렸으며, 시종 변함이 없어 당시 사우(士友)들 중에 가까이 교제한 사람들은 은군자(隱君子)로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본래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신덕리에 살았으나 만년에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서리로 옮겨 살았고, 그곳에는 현재도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묘소]
장사유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산성면 산 45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서리에 남강정(南崗亭)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