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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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洛憲 |
이칭/별칭 | 김영헌(金榮憲),치원(致元),일와(逸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902년 8월 26일 - 김낙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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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김낙헌 영천 임고 지역 3·1 만세 운동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65년 7월 7일 - 김낙헌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김낙헌 대통령 표창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김낙헌 사적비 건립 |
출생지 | 김낙헌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 |
활동지 | 김낙헌 - 경상북도 영천시 |
묘소 | 김낙헌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효리 중곡 북록 제2등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낙헌(金洛憲)은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영천 지역의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김낙헌(金洛憲)의 본관은 경주. 자는 치원(致元), 호는 일와(逸窩), 이명(異名)은 김영헌(金榮憲)으로 1902년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태어났으며 1965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김규정(金奎鼎), 어머니는 월성 손씨(月城孫氏)이다.
[활동 사항]
김낙헌(金洛憲)은 1919년 4월 26일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양평리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천으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를 만들어서 4월 27일 영천시 창구동 장터 부근에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6년에는 융희황제가 붕어하자 국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 규탄하는 글을 보냈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수개월간 구금되었고, 1938년에는 「대한복수가」를 작사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등 지역민에게 독립 계몽 사상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묘소]
김낙헌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효리 중곡 북록 제2등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3년 후손들이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 ‘독립지사 일와 김낙헌 사적비(獨立志士逸窩金洛憲史蹟碑)’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