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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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致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875년 9월 27일 - 최치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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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3월 - 최치환 산남의진에 후봉장에 임명되어 활약함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9월 10일 - 최치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0년 - 최치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11월 - 최치환 추모비 건립 |
출생지 | 최치환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 510 |
활동지 | 최치환 - 경상북도 일원[영천, 영일, 청송 등] |
묘소 | 최치환 - 경상북도 포항시 죽장면 지동리 460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대표 경력 | 산남의진 후봉장 |
[정의]
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개설]
최치환은 영천에서 거의한 의병 조직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후봉장으로 활약하였다.
[가계]
최치환(崔致煥)의 본관은 전주. 1875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당시 검단리]에서 태어나 1944년 세상을 떠났다.
[활동 사항]
최치환(崔致煥)은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손영각(孫永珏) 등과 더불어 1906년 3월 결성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초모 단계에서부터 참여하여 각 지역을 연락하고 군기를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최치환은 포수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입암 전투를 비롯하여 청하읍 습격 및 청송·신성 등지의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정용기 의병장이 입암 전투에서 사망한 후 그의 아버지 정환직이 재정비한 의병 부대를 흥해·신녕·의흥·영덕 등지에서 분파소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한편 일본 순사와 한국인 순검을 사살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
정환직 대장이 체포되어 사망한 후 최세윤(崔世允)이 의진을 이끌 때, 최치환은 후봉장의 직책을 맡아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수년간 옥고를 겪고 출옥한 후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지하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묘소]
최치환의 묘소는 경상북도 포항시 죽장면 지동리 460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2006년 11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