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
고려 전기 영주 부석사에서 주지를 지낸 승려. 결응(決凝)[964~1053]의 자는 혜일(慧日), 시호는 원융(圓融), 법명은 결응이다. 속성은 김씨로 증조할아버지는 명주(溟州) 호족 김영길(金英吉), 할아버지는 장보(章保), 기연(器璉), 굉홍(宏洪)을 역임한 김선희(金善熙), 아버지는 금곡경(金穀卿) 김광률(金光律)이다. 어머니는 내의령(內議令) 강명(康明)의 딸인...
-
1899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편찬된 경상북도 풍기군의 읍지. 『경상북도풍기군읍지(慶尙北道豊基郡邑誌)』는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관찬 읍지로 개항기 변모해 가던 풍기군의 상황을 보여준다. 『경상북도풍기군읍지』는 1899년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의해 편찬한 것으로, 이는 역대 조선 정부의 읍지 편찬 작업 중 가장 마지막에 해당한다. 당시 조선 정부...
-
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유배 온 왕자. 금성대군(錦城大君)[1426~1457]은 세종의 아들로 둘째 형 수양대군(首陽大君)[세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후 순흥도호부로 유배되었다. 1457년(세조 3) 단종복위운동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유배지에서 처형당했고, 순흥도호부는 해체되었다. 금성대군의 본관은 전주(全州), 휘는 유(瑜), 시호는 정...
-
1413년부터 1450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기천현(基川縣)은 1413년(태종 13)부터 1450년(문종 즉위년)까지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안정면·봉현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속현으로 지금의 예천군 은풍면과 효자면 일대를 관할하던 은풍현(殷豊縣)을 두고 있었다. 조선 건국 초기부터 군현 명칭에 대한 개정...
-
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담(金淡)[1416~1464]은 세종 연간 문과 급제 후 집현전에서 활동한 문신이다. 왕명을 받아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 등을 편찬하였다. 김담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아버지는 영유현령을 지낸 김소량(金小良)[138...
-
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증(金潧)[1413~1456]은 세종 연간 문과에 급제한 이후 집현전에서 활동한 문신이다. 김증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호는 회송헌(懷松軒)으로 김증(金曾)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영유현령을 지낸 김소량(金小良)[1384~1449], 어머니는 공조판서 황유정(黃有定)[1343~?]의 딸 정부인 평해황씨(平海黃氏),...
-
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서 금성대군과 이보흠이 주도한 단종 복위를 위한 운동. 단종복위운동(端宗復位運動)은 1457년(세조 3) 순흥도호부에 위리안치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도호부사 이보흠(李甫欽)이 향민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관노의 고발로 실패한 사건이다. 단종복위운동으로 말미암아 금성대군, 이보흠, 단종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또한, 단종복위운동의 주...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 경내에 있는 고려 전기 승려 원융국사의 탑비. 부석사 원융국사비(浮石寺圓融國師碑)는 부석사에 세워진 고려 전기 탑비이다. 이수와 귀부를 갖추고 있으나 비신은 일찍이 무너져 아랫부분이 파손되었고, 비문 판독이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원융국사(圓融國師)[964~1053]는 고려 초의 명승으로 속성은 김씨(金氏), 휘(諱)는 결...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소수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서. 소수박물관 소장 『해동명적』(紹修博物館所藏海東名迹)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신공제(申公濟)[1469~1536]가 우리나라 역대 명가의 글씨를 모아 석각(石刻)한 뒤 탁본한 것을 묶은 책이다. 소수박물관 소장 『해동명적』은 2009년 8월 3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8호로 지정되었다...
-
조선 전기 영주에 우거한 문신. 송인창(宋仁昌)[1403~1479]은 할아버지 송구(宋璆)가 순흥교수로서 영주 지역과 인연을 맺은 후, 아버지 송계 대에 영주 지역 사족들과 혼반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기반과 환력으로 인해 송계(宋啓)[1373~1442]와 송인창·송원창(宋元昌)[1426~1496] 부자는 영주에 우거한 직후부터 빠르게 영주 사족들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
조선 전기 경상도 순흥도호부에서 단종복위운동을 전개한 금성대군과 참여한 선비들의 절의 정신.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순흥 지역에서는 안향(安珦)을 필두로 많은 학자와 관료들이 배출되어, 실로 인재의 도량으로 일컬을 만하였다. 하지만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린 조카 단종(端宗)의 왕위를 찬탈하고 세조(世祖)로 즉위하게 되면서, 순흥 지역은 단종복위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중심지가...
-
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향(安珦)[1243~1306]은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한 문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제향되었다. 안향의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안유(安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훗날 이름을 ‘안향’으로 고쳤지만, 조선의 5대 임금 문종과 휘가 같아 조선시대...
-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소백산 아래 교통의 요충지였던 영주는 고대부터 삼국의 쟁탈지가 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석사(浮石寺)가 창건되어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이 배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설립되는 등 유교문화를 꽃피워 나갔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기존...
-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영주 지역에 내속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은풍현(殷豐縣)은 고려 초기에 설치되어 1450년(문종 즉위년)까지 지금의 예천군 효자면과 은풍면 일대에 존재했던 지방행정구역이다. 고려는 후삼국 통일 직후 지방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호족 세력의 공과(功過)를 감안하여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은풍현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
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무신. 전희철(全希哲)[1425~1521]은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권력을 잡자, 관직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영주 지역으로 내려와 은거하며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켜나갔다. 영주 지역 옥천전씨(沃川全氏) 입향조로 방산서원에 제향되어 있다. 전희철의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원명(原明), 호는 휴계(休溪)이다. 고조할아버...
-
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영주는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영천군(榮川郡)·풍기군(豊基郡) 3개 고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영주는 조선시대 동안 우리나라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지금의 영주 소수서원]이 설립되었으며, 황준량(黃俊良)·박승임(...
-
1450년부터 1914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구역. 풍기군(豊基郡)은 1450년(문종 즉위년)부터 1914년까지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안정면·봉현면과 예천군 은풍면·효자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조선 초기 기천현(基川縣)은 은풍현(殷豊縣)을 속현으로 두고 있었다. 그러다 1450년 7월 문종의 태가 안치되면서 은풍현과 기천현을 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