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1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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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興飛鳳山花煎-女性-恨-花煎歌 |
영어공식명칭 | Women are Eased Their Deep-rooted Grudge and Get Excited to Sunheung Bibongsan Hwajeon Game 'Hwajeonga of Dendongeomi'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현주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 순흥 지역에 살았던 한 여인의 애절한 삶을 노래한 화전가.
[개설]
「덴동어미화전가」는 『소백산대관록(小白山大觀錄)』에 수록된 화전가(花煎歌)로, 영주시 순흥 지역을 고향으로 하는 한 여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그녀가 겪었던 네 번의 결혼과 네 번의 상부(喪夫)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하층 여성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덴동어미화전가」의 ‘덴동어미’는 네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이가 불에 덴 후부터 불리기 시작한 이름으로,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탄식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화전가는 규방가사의 일종으로, 영남지방 동족부락의 양반 부녀들이 중심이 된 놀이에서 부르던 가사이다. 일 년에 한 번 청명절(淸明節)을 전후하여 일가의 부녀자들이 명승지를 찾아가서 풍류적인 야유회를 하고, 그 현장에서 두견화(杜鵑花)를 따 모아 화전병을 만들어 먹으면서 화전가를 창작하였다. 화전가 작품은 주로 ‘화전놀이 사전(事前)의 요소’, ‘화전놀이 당일(當日)의 요소’, ‘후일(後日)의 기약’으로 나누어지지만, 「덴동어미화전가」의 경우 이러한 사설에 덴동어미가 겪은 네 번의 결혼과 네 번의 상부를 더한 장편화된 작품이다. 「덴동어미화전가」가 전해지는 순흥 지역은 덴동어미의 고향으로 네 번의 상부 이후 덴동어미가 돌아와 다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장소로 그려지고 있다.
[「덴동어미화전가」의 구성과 내용 전개]
「덴동어미화전가」의 시작은 화전가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가세 가세 화전을 가세 꽃지기 전에 화전 가세/ 이때가 어느 땐가 때마침 삼월이라/ 동군이 포덕택하니 춘화일난 때가 맞고/ 화신풍이 화공되어 만화방창 단청되네/ 이런 때를 잃지 말고 화전 놀음 하여 보세/ ……/ 건너 집의 덴동어미 엿 한고리 이고 가서/ 가지가지 가고말고 낸들 어찌 안가릿가/ 늙은 부녀 젊은 부녀 늙은 과부 젊은 과부/ 앞서거니 뒷서거니 일자행차 장관이라/ 순흥이라 비봉산은 이름 좋고 놀기 좋아/ 골골마다 꽃빛이요 등등마다 꽃이로세”
삼월 꽃놀이하기 좋은 날을 택일하여 덴동어미는 엿 한고리를 이고서 화전놀이에 참석한다. 화전놀이 장소는 바로 순흥 지역의 비봉산으로 「덴동어미화전가」의 주인공인 덴동어미의 고향이다. 화전놀이의 목적은 바로 꽃놀이이며, 「덴동어미화전가」에서도 여러 꽃을 나열하여 꽃을 완상하는 모습을 묘사해 놓았다.
“그 중에도 청춘과녀 눈물 콧물 귀쥐하다/ 한 부인이 이른 말이 좋은 풍경 좋은 놀음에/ 무슨 근심 대단해서 낙루한심 왠일이오?/ 나건으로 눈물닦고 내 사정을 들어 보소/ 열네 살에 시집올 때 청실홍실 늘인 인정/ 원불상리 맹세하고 백년이나 사잿더니/ 겨우 삼년 동거하고 영결종천 이별하니/ 임은 겨우 십육이오 나는 겨우 십칠이라/ 십육 세 요사 임뿐이오 십칠 세 과부 나뿐이지/ ……/ 애고답답 내 팔자야 어찌하여야 좋을거나/ 가자하니 말 아니오 아니 가고는 어찌할고/ 덴동어미 듣다가서 썩 나서며 하는 말이/ 가지마오 가지마오 제발 적선 가지말게/ 팔자 한탄 없을까마는 가단 말이 왠말이오/ 잘 만나도 내 팔자요 못 만나도 내 팔자지/ 백년해로도 내 팔자요 십칠 세 청상도 내 팔자요”
화전놀이를 한창 즐기는 도중에 청춘과부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열네 살에 시집올 때 백 년을 살자 했던 남편이 겨우 삼 년을 함께 살고 영결종천 해버린 일을 이야기한다. 열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남편과 열일곱의 나이에 청춘과부가 된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개가(改嫁)를 생각하는 청춘과부를 향해 덴동어미는 “가지마오 가지마오”라며 그녀의 개가를 말린다. 덴동어미는 배필을 잘 만나는 것도 못 만나는 것도 모두 팔자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일생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덴동어미화전가」의 본격적인 사설이 시작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1. 첫 번째 결혼
“나도 본래 순흥읍내 임이방의 딸일러니/ 우리 부모 사랑하사 어리장고리장 키우다가/ 열여섯에 시집가니 예천읍내 그 중 큰 집에/ 치행차려 들어가니 장이방의 집일러라/ 서방님을 잠깐 보니 준수 비범 풍후하고/ 구고님께 현알하니 사랑한 맘 거룩하되/ 그 이듬해 처가 오니 때 마침 단오러라/ 삼백장 높은 가지 추천을 뛰다가서/ 추천줄이 떨어지며 공중에 매박으니/ 그만에 박살이라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신정이 미흡한데 십칠 세에 과부됐네/ 호천통곡 슬피 운들 죽은 낭군 살아올까”
덴동어미는 영주의 순흥 읍내에서 임이방의 딸로 태어났으며, 예천의 장이방의 며느리가 되어 시집을 가게 된다. 하지만, 혼인한 이듬해 근친(近親)으로 순흥에 왔다 때마침 단오가 되어 추천[그네]을 뛰다가 남편이 그만 그네에서 떨어져 세상을 등지게 된다. 청춘과부와 똑같이 17세에 과부가 된 것이다.
“시부모님 하신 말씀 친정 가서 잘 있거라/ 나는 아니 갈라하니 달래면서 개유하니/ 할 수 없어 허락하고 친정이라고 돌아오니/ 삼백장이나 높은 남기 날을 보고 느끼는 듯/ 떨어지던 곳 임의 넋이 날을 보고 우니는 듯/ 너무 답답 못살겠네 밤낮으로 통곡하니/ 양 곳 부모 의논하고 상주 읍내 중매하니/ 이상찰의 며느리되어 이승발 후취로 들어가니”
친정으로 돌아가 잘 살라는 시부모의 말씀에 따라 친정으로 온 덴동어미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밤낮으로 통곡을 하며 지낸다. 그러던 중 양쪽 부모의 허락을 받아 이승발이라는 자의 후취가 되어 상주로 떠나게 된다.
2. 두 번째 결혼[첫 번째 재혼]
“해로삼년이 못 다 가서 성 쌓던 조등내 도임하고/ 엄혐 중에 수금하고 수만량 이포를 추어내니/ 남전북답 좋은 전지 추풍낙엽 떠나가고/ 안팎 줄행랑 큰 기와집도 하루 아침에 남의 집 되고/ ……/ 용도머리 장목비 아울러 훨쩍 다 팔아도/ 수천량 돈이 모자라서 일가친척에 일족하니/ 삼백량 이백량 일백량에 하지하가 쉰량이라/ ……/ 시아버님은 장독이 나서 일곱 달만에 상사나고/ 시어머님이 애병 나서 초종 후에 또 상사 나니”
이승발과 혼인한 지 3년 되던 해 상주목에 조씨 성의 지방관이 부임하게 된다. 새로운 지방관의 부임은 이승발의 집안을 급속히 몰락시킨다. 수만 냥에 해당하는 이포(吏逋)를 징수하여 재산을 몰수하였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파산해버린 것이다. 「덴동어미화전가」에서도 이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전답은 물론 집과 소소한 가재도구까지 모두 다 팔아도 지방관이 요구하는 값을 채우지 못하였다고 서술한다. 결국, 시아버지는 장독으로 7개월 만에 사망하고, 시어머님 역시 애병[화병]으로 세상을 떠나니 빈털터리가 된 이승발과 덴동어미만 남게 된 것이다.
“서방님아 서방님아 울지 말고 우리 둘이 가다보세/ 이게 다 없는 탓이로다 어디로 가든지 벌어보세/ 전전걸식 가노라니 경주읍내 당도하여/ ……/ 나는 부엌 에미되고 서방님은 중노미되어/ 다섯 해 작정만 하고보면 한 만금을 못 벌을까/ ……/ 주인 불러 하는 말이/ 이백량은 우선 주고 쉰량을랑 갈 제 주오/ 우리 서방님 거동 보소 돈 이백량 받아 놓고/ 일수 월수 체계 놓아 내 손으로 서기하여/ 마죽 쑤기 소죽 쑤기 마당 쓸기 봉당 쓸기/ 평생에도 아니 하던 일 눈치 보아 잘도 하네/ 삼년을 나고보니 만여금 돈 되었구나”
유리걸식하던 덴동어미 내외는 경주에 다다르게 된다. 덴동어미 내외는 군노 부인에게 고용되는 신세가 되고, 덴동어미는 5년만 고생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남편인 이승발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중인 신분이었던 이승발은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하는 것을 마땅해하지 않고 200냥을 선불로 주겠다는 주인의 말에 평생 하지 않던 마죽 쑤기, 소죽 쑤기, 마당 쓸기 등 일을 해낸다. 선불로 받은 돈은 일수, 월수를 놓아 돈을 불리는 목돈으로 이용하고 결국 삼 년이 지나 만여 금의 돈을 마련하게 된다.
“병술년 괴질 닥쳤구나 안팎 소실 삼십여명이/ 함박 모두 병이 들어 사흘만에 깨어나 보니/ 삼십명 소슬 다 죽고서 살아난 이 몇 없다네/ 이 세상 천지간에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서방님 신체 틀어잡고 기절하여 엎드러져서/ 애고 애고 어일거나 가이 없고 불쌍하다/ 서방님아 서방님아 아조 벌떡 일어나”
그런데 병술년 괴질로 인하여 남편을 비롯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덴동어미는 다시 혼자가 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두 번째 결혼생활이 끝이 난다.
3. 세 번째 결혼[두 번째 재혼]
“죽으려고 애를 써도 성한 목숨 못 죽을래/ 억지로 못 죽고서 또다시 빌어 먹네/ 이 집 가고 저 집 가나 임자 없는 사람이라/ 울산읍내 황도령이 날더러 하는 말이/ ……/ 여보시오 말씀 듣소 우리 사정을 논지컨댄/ 삼십 넘은 노총각과 삼십 넘은 혼과부라/ 총각의 신세도 가련하고 마누라 신세도 가련하니/ 가련한 사람 서로 만나 같이 늙으면 어떠하오/ 저 총각의 말 들으니 육대독자 내려오다가/ 죽을 목숨 살았으니 고진감래 할까보다”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덴동어미는 다시 빌어먹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던 중 울산 읍내 황도령이 덴동어미에게 자신의 불쌍한 신세를 이야기하며 삼십 넘은 노총각과 삼십 넘은 혼과부가 서로 만나 같이 늙는 것이 어떠하냐고 묻는다. 덴동어미의 신세도 가련하지만, 자신의 신세도 가련하니 가련한 사람끼리 같이 살자는 것이다. 두 명의 남편을 먼저 보낸 덴동어미는 황도령의 경우는 두 남편과 다를 것이라 생각하고 세 번째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영감은 사기 한 짐 지고 골목에서 크게 외고/ 나는 사기 광우리 이고 가가호호이 도부한다/ ……/ 돈 백이 될만하면/ 또 하나이 탈이 나서 한푼 없이 다 쓰고 나네/ ……/ 산 밑의 주막에 주인하고 궂은 비 실실 오는 날에/ 천둥소리 볶아치며 소나기 비가 쏟아진다/ 주막 뒷산이 무너지며 주막터를 빼가지고/ 동해수로 달아나니 살아날 이 뉘귈고넌/ 그 주막에나 있었더면 같이 따라가 죽을 것을/ 먼저 괴질에 죽었더면 이런 일을 아니 볼걸”
황도령과 덴동어미는 도부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10여 년을 함께 생활한다. 하지만, 도부장사로 돈이 조금 모이면 둘 중 하나가 꼭 병이 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산 밑 주막에 주인을 청하고 건넛마을에 도부장사를 하러 덴동어미가 나간 사이에 천둥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주막 뒷산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한다. 황도령의 죽음과 “그 주막에나 있었더면 같이 따라가 죽을 것을”이라는 덴동어미의 탄식은 또다시 혼자가 된 그녀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4. 네 번째 결혼[세 번째 재혼]
“내 팔자를 세 번 고쳐/ 이런 액운이 또 닥쳐서/ ……/ 애고애고 어찌어찌 살아볼고/ 주인댁이 하는 말이 팔자 한 번 또 고치게/ 세 번 고쳐 곤한 팔자 네 번 고쳐 잘 살는지/ ……/ 그집으로 들이달아 우선 영감을 자세 보니/ 나은 비록 많으나마 기상이 든든 순후하다/ 영감 생애 무엇이오? 내 생애는 엿장사라/ 그날부터 양주 되어 영감할미 살림한다”
세 번의 결혼이 모두 남편의 죽음으로 끝난 덴동어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게 되고, 주인댁이 “팔자 한 번 또 고치게”라는 말에 고민하지만, 결국 주인댁이 주선한 엿장사 조첨지와 네 번째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한달 두달 이태 삼년 사노라니 어찌하다가 태기 있어/ 열 달 배술러 해복하니 참말로 일개 옥동자라/ 영감도 오십에 첫아들 보고 나도 오십에 첫아이라/ ……/ 어떤 친구 오더니만/ 수동별신 큰 별신을 아무날부터 시작하니/ 밑천이 적거들랑 뒷돈은 내 대줌세/ 호두약엿 많이 고고 갖은 박산 많이 하게/ ……/ 한밤중에 바람이 자 굴뚝으로 불이 났네/ 온 집안에 불 붙어서 화광이 충천하니/ 안방으로 들이달아 아들 안고 나오다가/ 불더미에 엎더져서 구불면서 나와보니/ 영감은 간 곳 없고 불만 자꾸 타는구나/ 덴동이를 뒷더업고 본 고향을 돌아오니/ 이전 강산은 의구하나 인정 물정 다 변했네/ 이팔청춘 청상들아 내 말 듣고 가지 말게”
덴동어미와 조첨지는 장을 돌아다니며 엿장사를 하던 도중 아들까지 낳았다. 아이를 양육하며 행복하게 생활하던 덴동어미는 별신굿이 있을 것이니 호박엿을 많이 고아 두라는 친구의 말을 듣게 되고 사흘 밤낮으로 엿을 고다가 집에 불이 나게 된다. 결국, 화마가 덮친 집에서 아들만 구해 나온 덴동어미는 조첨지의 주검을 보게 된다. 결국, 덴동어미는 수족에 화상을 입은 덴동이를 업고 고향인 순흥으로 돌아오게 되고 화전놀이에서 만난 청춘과부들에게 개가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덴동어미의 일생과 하층 여성의 현실]
「덴동어미화전가」의 덴동어미는 임이방의 딸로 태어난 여성 인물이며, 처음부터 하층 여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이 반복될수록 그녀의 신분은 점점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덴동어미화전가」는 하층 여성의 현실을 몇 가지 측면에서 묘사한다. 첫 번째는 하층 여성의 개가에 대한 인식인데, 과부에게 수절을 강조하는 상층 여성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덴동어미는 네 번의 결혼을 선택하는 삶을 사는데, 이는 하층 여성들에게는 개가가 비교적 개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층 여성이 계속된 개가를 선택한 것은 당시 사회 풍조와 연결된다. 이것이 두 번째 현실로 「덴동어미화전가」에 묘사되는 당시의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인물이라는 것이다. 덴동어미가 거듭되는 개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조선시대의 여성은 남성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덴동어미는 계속된 개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네 번째 남편의 죽음 이후에는 ‘덴동이’라는 아들에게 의지하는 여성을 보여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계속된 개가를 선택하며 남자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던 덴동어미는 현실을 한탄하거나 회피하기보다 언젠가는 고진감래 하리라는 기대하고 살아가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즉 주어진 삶을 억척스럽게 살아내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으로 변화해가는데, 이것이 바로 당시 하층 여성의 현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당극 「덴동어미화전가」로 탄생]
순흥 지역 규방가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마당극 「덴동어미화전가」는 지난 2016년 지역 특화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지역 문화산업 콘텐츠로 육성된 바 있다. 이를 위해 영주시는 「덴동어미화전가」에 대한 학술대회를 지속해서 개최하면서 「덴동어미화전가」의 위상을 확인하였으며, ‘덴동어미’의 사설이 공감과 치유의 문학임을 인지하기도 하였다. 영주시는 마당놀이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덴동어미’를 지역의 문화 콘텐츠로 계속 육성할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덴동어미의 네 번의 결혼과 상부(喪夫)에 대한 결코 평이하지 않은 그녀의 일생담이 지역 문화 콘텐츠로 되살아나 지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탄생되었으니, 화전가 작품으로만 전해지던 덴동어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이제 마당극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치유를 선물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확신한다. 마당극 「덴동어미화전가」는 2016년 10월 영주시민회관에서의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선비촌, 한국선비문화수련원, 경북영주풍기인삼축제 등에서도 공연을 선보였으며 누적 공연 관람객 수가 1만 명을 넘기도 하였다. 또한, 2017년 5월에는 일본 후지노미야[富士宮]에서 열린 산업박람회 때 공연작품으로 초청되었고, 2017년 11월에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초청받았다. 이러한 마당극 「덴동어미화전가」의 세계적 관심은 지역 문화콘텐츠 산업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