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영월군 북면 문곡리에 있는 절터. 문곡리(文谷里) 노루골 절터는 사명과 연혁을 알 수 있는 문헌이 따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1995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상수원 앞쪽의 경작지 부근에 기와편과 토기편이 산재하여 있고, 석축이 일부 확인되었지만 석축 위쪽으로는 절이나 암자가 들어설 만한 곳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6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문곡리 노루골 절터...
-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시대 사고지. 법흥리 사고지(法興里史庫址)는 조선 시대 사고(史庫)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터이다. 조선 시대 춘추관에서는 전화(戰禍)를 피하여 역사 기록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전국의 깊은 산중에 사고(史庫)를 지었다. 법흥리에 실제 사고지가 있었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사고지라는 지명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
-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쌍용리에 있는 쌍용사로 추정되는 절터. 쌍용사터는 현재 서곡정사로 이동되어 있는 석탑[서곡정사 삼층석탑] 및 불상[서곡정사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출토된 곳이다. 기존 조사 자료에는 절 이름이 ‘쌍용사’로 기록되어 있을 뿐 정확한 위치와 연혁 등을 알 수 없다. 현재는 절터의 위치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며, 다만 절터에 있던 탑과 불상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에 있던 염불사 추정 절터. 염불사터는 기존 조사 자료에는 ‘염불사’의 절터로 보고되어 있으나 정확한 사찰 명칭 및 연혁을 알 수 없다. 염불사터는 현재의 영불사 일원이다. 염불사터는 지형상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영불사 건립 등으로 주변 지형이 변화하여 사찰 터의 근거를 찾기 힘들고, 주변 경작지에서는 소량의 백자 편이 확인되었을 뿐 유물이나 유...
-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 있는 창령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터. 영월 창령사지(寧越蒼嶺寺址)는 초로봉[해발 약 570m] 동북쪽 경사면의 해발 약 400m 정도의 지점에 있는데, 두 차례에 걸친 발굴에 의하여 오백나한의 일부로 추정되는 나한상과 기와류, 도자기류, 철제류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일부 기와 조각에는 ‘창령(蒼嶺)’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기와 조각의 출토지...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에 있는 절터. 정양사(正陽寺)터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계족산[정양산]에 있으며 정양리사지, 정양사지라고도 부른다. 추정 사역에 ‘정양사 창달 반송계 병자이월삼일(正陽寺 創達 潘松溪 丙子二月三日)’이라고 새겨진 각자바위가 있어 ‘정양사’로 전하고 있으나, 관련 문헌은 확인되지 않는다....
-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 있는 조선 시대 도기와 토기를 굽던 가마터. 토교리 사기도요지(土橋里砂器陶窯址)는 17~18세기의 가마터로 추정된다. 해발고도 368.5m의 야산 경사면에 있었는데 현재는 밭으로 변하였다. 밭 가장자리로 무덤 형태의 사기 파편 무더기가 쌓여 있으며, 굽는 과정에서 일그러진 것으로 보이는 사기편도 많이 발견되었다. 토교리 가마터라고도 한다....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에 있는 통일신라의 절터. 흥교사(興敎寺)의 원래 사찰명은 세달사(世達寺)이며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문헌 기록에서 궁예(弓裔)[?~918]의 초창기 세력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흥교사터는 1969년 학계에 처음 알려졌으며 1984년과 1988년 금동불상과 청동...
-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에 있는 통일신라의 절터. 흥녕선원(興寧禪院)[흥녕사]은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하며, 선종 9산문 중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징효대사에 의하여 크게 번창하였다. 신라 891년(진성여왕 4) 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졌고, 고려 943년(혜종 1) 다시 세웠으나 계속되는 재해로 폐허가 되고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흥녕선원지는 1971년 12월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