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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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在英 |
영어공식명칭 | Shin Jaeyoung |
이칭/별칭 | 율포(栗圃)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성주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효자.
[가계]
신재영(辛在英)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호는 율포(栗圃)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신락(辛洛)이다.
[활동 사항]
신재영은 1873년(고종 10) 12월 28일 영월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출타할 때는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얻은 후 외출하였으며, 자식의 근심은 부모님의 근심이라 여기고 언제나 밝게 살며 몸가짐에 조심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변을 맛보아 증세를 살폈으며, 상태가 위중하게 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수혈하였다.
신재영은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예(禮)에 어긋남이 없이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고, 날마다 삼태기에 흙을 담아 지고 가서 봉분을 보수하였다고 한다. 또한 상중에는 두건과 상복을 벗지 않았고, 시묘살이 중에는 큰 호랑이가 와서 호위하였다고 한다.
이후 신재영은 참봉을 지내고 의관으로 승급하였다고 전한다. 신재영이 지은 금강산(金剛山)에 대한 시 한 수가 전하며, 『장릉시초(莊陵詩抄)』에도 신재영의 시가 한 수 실려 있다. 신재영은 1945년 2월 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신재영의 효행을 기려 지역 유림에서 표창하였고, 일제 강점기 강원도지사였던 이규완(李圭完)과 신영목(孫永穆)도 신재영을 효자로 표창하였다고 한다. 영월군 주천면 용석리에 신재영의 효자비가 있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