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고려 전기의 무신. 강민첨(姜民瞻)[963~1021]은 문신으로 관직에 나아갔으나, 고려 현종 때 동여진과 거란의 침입을 막으면서 무신으로서 이름을 크게 떨쳤다. 강민첨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들은 강단(姜旦)이다. 강민첨은 963년(광종 14) 강주[현 경상남도 진주시] 개경향에서 태어났다. 목종 때 문...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무신 강민첨의 묘. 강민첨장군묘는 고려 전기 무신으로 여진과 거란의 침입을 막은 장군 강민첨(姜民瞻)[963~1021]의 묘이다. 실전되었던 것을 1960년경 발견하여 복구하였다. 강민첨장군묘는 1990년 12월 31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9호로 지정되었다. 대술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3㎞ 정도...
-
918년 고려 개국 때부터 1392년 멸망 때까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918년 고려 개국 이후 예산군 지역은 고려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후삼국 통일부터 무신 집권기, 몽고 침입기,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고려시대 예산군의 역사를 살펴보며 고려시대 행정구역 개편과 문화유산에 대해 알아본다. 후삼국 시기 예산 지역은 후백제의 웅주(熊州)[공주]...
-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고산현(孤山縣)은 임성군(任城郡)의 속현으로서 통일신라시대인 686년(신문왕 6)부터 고려 초인 919년(태조 2)까지 지금의 예산군 대흥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삼국 통일 후 신라는 고구려 및 백제의 옛 땅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지방 통치 제도를 개편하였다. 신라...
-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 충청남도 예산군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초까지 예산군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이산군(伊山郡)의 속현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금물현(今勿縣)을 신라 통일 후 경덕왕 때에 금무현(今武縣)으로 바꾸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웅주 이산군조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예산 지역에 군현이 설치된 것은 백제 때부터다. 당시 예산 지역에는 임존성과 함께 마시산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삽교천 지역은 내포 지역에서는 큰물로 불렸기 때문에 이 물줄기를 다스리는 현을 큰물현이라 했다. 이것을 백제시대에는 백제식 한자음으로 금물현(今勿縣)이라 하였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
-
한유충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토착 성씨. 『씨족원류(氏族源流)』에 따르면 대흥한씨(大興韓氏) 시조 한유충(韓惟忠)[1080~1146]은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고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아들 한문준(韓文俊)[?~1190]은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후손들이 한유충을 시조로 하고 대흥(大興)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예산군의 대흥면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대흥현은 현 예산군의 대흥면, 광시면, 신양면, 봉산면 등을 포괄하는 지역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있었던 옛 고을명이다. 고려 초기인 940년(태조 23) 등장한 지명으로 고려 중·후기에는 감무가 파견되었고, 조선 전기에는 현감이 부임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대흥군으로 승격되어...
-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존속했던 특수 행정 구역. 고려시대에는 부곡을 비롯하여 향(鄕), 소(所), 진(津), 처(處), 장(莊) 등 일반 군현과는 구별되는 특수 행정 구역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일반군현제와 구별하여 이들을 부곡제라고 한다. 부곡제는 군현제의 하부 구조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부곡이 형성된 경위는 크게 두 가지로 이해되...
-
고려시대 왕실이나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채취하거나 제작하여 공급했던 특수 행정구역. 향(鄕)·부곡(部曲)·장(莊)·처(處)와 함께 부곡제(部曲制)를 구성하며, 주로 왕실·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수공업·광업·수산업 부문의 공물(貢物) 생산과 조달을 담당하였다. 향과 부곡이 신라시대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소(所)는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생겨났다. 소는 생산물의 종류...
-
충청남도 예산군에 거주하고 있는 전통 목조 건축물에서 나무로 창호 등을 제작하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 나무로 집짓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을 목수 또는 목장(木匠)이라 한다. 그중 문짝, 반자, 난간 등과 같은 집의 부분을 구성하는 시설을 제작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소목장(小木匠)이라 한다. 소목장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제작 기능을...
-
고려와 조선시대에 현재의 충청남도 예산군의 교통로상에 세워진 관영 교통 및 통신 시설. 고려와 조선시대에 중앙관청의 공문을 지방관청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와 관리의 여행 또는 부임 때 마필(馬匹)의 공급, 변방의 군정을 보고하던 곳을 역(驛)이라 하고,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여관을 원(院)이라 하였다. 역과 원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설치되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 통...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예산읍, 오가면, 신암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명칭. 예산현은 지금의 예산군 대술면, 예산읍, 오가면, 신암면을 포괄하는 지역에 해당하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옛 고을명이다. 백제의 오산현(烏山縣)이 통일신라의 고산현(孤山縣)으로 바뀌었다가 고려 초에 예산현으로 바뀌었고, 고려 후기에 감무가 부임하였다. 1413년...
-
925년(태조 8) 고려 장수 유금필이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임존성을 함락한 사건. 고려와 후백제가 세력을 다투던 시기 충청남도 지역의 상당 부분이 후백제의 영역으로 넘어가자 고려 장군 유금필은 925년(태조 8) 임성군(任城郡)을 공격하여 후백제 장수 형적 등 3,000여 명을 죽이고 임존성(任存城)[지금의 예산군 광시면 마사리와 상중리 일대]을 차지하였다. 이...
-
조선시대에 편찬된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연혁, 지리, 인물, 산업, 문화, 풍속 따위를 기록한 책. 예산 지역의 읍지는 여러 종류가 편찬되었다. 먼저 예산 지역의 사정이 수록된 지리지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
668년 고구려의 멸망부터 935년 통일신라 멸망 때까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668년 고구려가 멸망으로 통일신라가 성립한 이후부터 935년 통일신라가 멸망할 때까지의 시기를 통일신라시대라 일컫는다. 698년 발해가 세워진 이후 신라와 발해가 병존하였으므로 남북국시대라고 칭하기도 하며, 900년 후백제, 901년 후고구려가 건국된 이후부터 936년에 고려가 재...
-
고려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한문준(韓文俊)[?~1190]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에 이르렀다. 한문준의 본관은 대흥(大興)이며, 시호는 정의(貞懿)이다. 할아버지는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한원경(韓元卿)이고, 아버지는 평장사를 지낸 한유충(韓惟忠)이다. 한유충은 대흥한씨의 시조로, 이후 후손들이 예산에...
-
고려 전기 예산 출신의 문신. 한유충(韓惟忠)[1080~1146]은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대흥한씨(大興韓氏) 시조이다. 한유충의 본관은 대흥(大興)이며 초명은 한주(韓柱), 자는 안석(安石), 시호는 경열공(敬烈公)이다. 아버지는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한원경(韓元卿)이고, 어머니는 시전중내급사(試殿中內給事) 이인효(李因孝)의 딸이다. 아들은 한문준(韓文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