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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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山溫泉 |
영어공식명칭 | Deoksan Springs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온천단지3로 72[사동리 348]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최원회 |
개관|개장 시기/일시 | 1917년경 - 덕산온천 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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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0년경 - 덕산온천 온천의 화학성분 감정 및 욕탕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47년경 - 덕산온천 제2천공, 제3천공 착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0년 7월 20일 - 덕산 온천 제4천공 완료 |
최초 설립지 | 덕산온천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온천단지3로 72[사동리 348] |
현 소재지 | 덕산온천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온천단지3로 72[사동리 348] |
성격 | 온천 |
면적 | 3,091,000㎡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동리에 있는 온천.
[개설]
덕산온천(德山溫泉)은 온양온천(溫陽溫泉)과 도고온천(道高溫泉)으로 이어지는 충청남도 온천 지대의 서쪽 끝에 해당한다. 예산읍에서 서쪽으로 15㎞, 홍성읍에서 북쪽으로 9㎞ 지점에 있다.
[건립 경위]
조선시대의 유학자 율곡 이이(李珥)[1536~1584]의 저서인 『충보(忠寶)』에 효능이 탁월한 약수라며 덕산온천의 유래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학 한 마리가 이곳의 논 한가운데서 날아갈 줄 모르고 서 있기에 동네 주민들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날개와 다리에 상처를 입고서 논의 물을 열심히 상처에 찍어 바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3일간 계속한 후 그 학은 상처가 나아 날아 갔다. 이를 이상히 여긴 마을 사람들이 학이 앉았던 자리를 살펴보니 따뜻하고 매끄러운 물이 솟아나고 있어 그 후로 이곳을 약수터로 사용하였는데, 피부병, 신경통 등에 신통하게 잘들어 이 마을을 ‘온천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라고 한다.
덕산온천의 유래와 관련하여, “옛날 덕산 사동리 지방에 부지런한 농부가 있었다. 어려서 편모 슬하에 가난하게 살았지만, 장성하여서는 근면하여,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자식들을 돌보며 그런대로 잘 살았다. 그런데, 2~3년간 흉년이 계속되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괭이를 들고 나가 보았지만 논의 벼는 말라만 갔다. 시드는 벼 포기를 쳐다보다가 문득 들 가운데에 풀이 잘 자라는 부분이 있음이 생각났다. 언젠가는 자기가 개간을 하려고 예정했던 초지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풀이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돋아 있는 부분을 괭이로 힘껏 내리 팠다. 힘주어 몇 괭이 파는 사이 땅에서 물이 비치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그것은 따뜻한 물이었다. 하늘은 부지런한 선인에게 무심치 않았다. 그 농부는 그 후 이 온천의 주인이 되어 유복하게 살았다.”라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변천]
덕산온천은 인근에 널리 알려져서 약수로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오다가 1917년경 홍성에 살던 일본인 야스이 공의(公醫)가 반신불수, 관절염 등에 약효가 있다는 실험을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이 온탕으로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샘은 현 천공(泉孔) 제1호에 해당하며 이종현이 주관하였다. 온천으로서 본격적인 개설을 한 것은 1920년경 이갑진이 온천의 화학성분의 감정과 욕탕 건립을 하면서부터이고, 그 후 윤임득, 임홍정을 거쳐 1947년경에 이한경에게로 양도되었다. 이한경은 제2천공과 제3천공의 착굴, 숙사 증설, 공원 조림, 도로 부설 등 각 방면으로 노력하여 온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6.25전쟁 후 계속 보수와 조림에 힘써 왔으나, 이미 있던 천공들이 모두 41℃ 미만의 온수로서 욕탕에서는 38°~39℃의 저온이 되어 겨울철에는 인공으로 가열을 해야 하는 불만족한 상태였다. 1960년 7월 20일 70m 깊이의 제4천공이 완료되고 수온과 용출량이 양호하게 되었다.
덕산온천은 지구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온천수가 어머니의 젖과 같은 효과를 지녔다고 해서 그 터를 지구유(地球乳)[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0호]라고 부른다.
덕산온천에 관한 고문헌의 기록을 보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덕산현조(德山顯條)에 “온천재현남오리(溫泉在縣南五里)”라고 적혀 있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충청도 덕산현조에도 “온천재현남삼리(溫泉在縣南三里) 윤일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순조(純祖) 때의 기록에도 많은 탕치객(湯治客)이 모여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구성]
덕산온천 일원은 예당평야 내에 있으며, 대체로 남북으로 발달한 가야산 연엽봉[678m]을 최고봉으로 하고, 용봉산과 덕숭산 등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가야산맥의 동부에 있다. 가야산 분수령에서 발단하여 동쪽 또는 서쪽으로 흐르는 세천을 가로막아 서쪽에서는 해미저수지, 동쪽에서는 손강저수지, 덕산저수지 및 합덕저수지를 구축하여 관개에 이용하고 있다. 덕산온천 남쪽을 흐르는 하천은 덕숭산 북쪽 대치리 부근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흘러 사평면 평촌리 부근에서 수량이 늘어난 후 삽교 북방에서 사평천에 합류하여 북상하다가 아산만으로 흘러든다.
덕산온천 부근은 충적층과 세립각섬석화강암과 조립질흑운모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적층은 조양리계곡을 따라 북동으로 발달하고 있으며, 온천장 내 시추결과를 보면 담갈색 내지 적갈 색 점토 및 자갈이 약 3m 내외의 두께로 덮여 있다. 화강암류는 널리 발달하여 있으나 조양리 북부 산지는 세립각섬석화강암이, 남부는 세립 내지 거정질화강암이 분포하고 있어 대략 덕숭산 봉우리와 충적층 중간을 지나는 N50°E 방향선을 경계로 양 암체가 접하고 있으며 이 경계는 단층접촉인 것으로 추정된다. 화강암체내에 발달하는 대표적인 절리면은 북서 사이의 주향을 갖는 절리면은 남서로, 북동 사이의 주향을 갖는 면은 남동으로 경사하는 것이 어디에서나 공통이다. 이들 중에서 현 지형의 산사면이나 산곡면 등에서 우세한 면을 골라보면 N25°W, 48°SW와 N10°E, 77°SE로서 전자는 용봉산 면에서 길게 발달한 산사면과 일치하며 후자는 전자를 끊는 짧은 사면을 이루어 양자가 교차하는 곳에 산곡 또는 산릉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상의 양 절리면과 화강암 접촉대와의 교차로 인해 온천 용출에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덕산온천은 구역 내 천공들의 분포로 보아 N35°~ 40°W 방향으로 연장 약 30m, 폭 4m 범위가 온천증후(溫泉證候) 및 용출 확정 구역을 포괄하고 있다. 이 지대는 쥬라기 화강암체내에 발달하는 N25°W와 N10°E 방향의 절리면과 양 화강암류 접촉대가 교차하는 부분에 해당하며, 이에 발달하는 열극을 통하여 온수가 용출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굴착 심도는 200m이고 온천수의 온도는 44.8℃이며 공당 평균 일용수량은 1,000톤이다. 온천수의 성질은 무색, 무미, 미유화수소취(微硫化水素臭), 약알칼리성반응[PH=8.78]을 하며, 비중은 1.00088이고 고형물총량은 0.22g[천수 1㎏ 중]이며 단순온천으로서 외상성 제장해, 관절류마티즘, 만성습진, 만성부인병, 제병 회복기, 피부미용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천의 수온은 최고 47.7℃이고, 수질은 약알카리성 중탄산나트륨천(Na·HCO3)이며 게르마늄 함량이 0.017㎎/ℓ으로 근육통·관절염·신경통·혈관 순환 촉진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온천 지대의 총면적은 309만 1000㎡이고, 온천공의 수는 42공이다. 부존량은 84만 3000㎥, 가채수량은 하루 9,370㎥, 적정 양수량은 하루 4,700㎥이다.
[현황]
덕산온천은 예산십경의 하나로 예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며, 덕산온천관광호텔, 가야관광호텔, 덕산싸이판대온천, 덕산대온천관광타운, 덕산리솜스파캐슬 등 9개의 온천업소 외에 50여 개의 숙박 시설 및 각종 음식점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덕산온천은 가까운 곳에 가야산을 비롯해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사적 제229호], 수덕사 등이 있는 덕산도립공원, 예당저수지를 비롯해 예당호조각공원 등이 있는 예당국민관광지 등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