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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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山辛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송석리|신암면 오산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순영 |
본관 | 영산 -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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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영산신씨 예산 입향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오산리 |
세거|집성지 | 영산신씨 예산 집성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오산리 |
세거|집성지 | 영산신씨 예산 집성지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송석리 |
성씨 시조 | 신경(辛鏡) |
입향 시조 | 신후담(辛厚聃) |
[정의]
신경(辛鏡)을 시조로 하고 신후담(辛厚聃)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이거 성씨.
[연원]
영산신씨(靈山辛氏)의 시조는 1145년(인종 23)에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오른 신경(辛鏡)[?~?]이다. 신경의 호는 엄곡(嚴谷)이며, 시호는 정흠(貞歆)이다.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현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
예산의 영산신씨 문중은 여러 인물을 배출하였다. 신후담의 손자인 신의정(辛義貞)은 중종 때 음사로 사재감(司宰監) 직장(直長)이 되었고 후에 병조판서(兵曹判書)와 좌참찬(左參贊)에 추증되었다. 신의정의 아들 신진(辛鎭)은 영원군수를 지냈으며 병조판서와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신종원(辛宗遠)은 1588년(선조 21)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금오랑에 제수된 후 사평, 연천현감, 호조좌랑 등을 지냈으며 1607년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신종원의 아들 선석(仙石) 신계영은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올랐다.
[입향 경위]
신경의 15세손 신후담(辛厚聃)은 음사(蔭仕)로 1473년(성종 4)에 아산현감을 거쳐 충익부도사(忠翊府都事)로 관직을 마치고 예산군 신암면 오산리에 복거하였다. 이후 대술면 신암면 등지에 후손들이 살게 되었다. 대술면 송석리의 영산신씨는 신후담의 고손자인 신계영(辛啓榮)의 묘소가 송석리에 조성되면서 후손들이 살기 시작하였다.
[현황]
영산신씨는 예산군 신암면 오산리에 7가구, 대술면 송석리에 12세대가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