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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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益鉉 |
이칭/별칭 | 찬겸(贊謙),면암(勉菴),최기남(崔奇男)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명진 |
출생 시기/일시 | 1833년 12월 5일 - 최익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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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847년 - 최익현 이항로(李恒老) 문하에서 수학 |
활동 시기/일시 | 1855년 - 최익현 명경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870년 - 최익현 승정원동부승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873년 - 최익현 호조참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906년 2월 - 최익현 전라북도 태인에서 거병 |
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최익현 대마도로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906년 11월 17월 - 최익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2년 - 최익현 건국공로훈장 중장 제1호 추서 |
출생지 | 최익현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
학교|수학지 | 최익현 수학지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
묘소 | 최익현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356-2 |
성격 | 문신|의병|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승정원동부승지|호조참판|의병장 |
[정의]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말기의 의병장·애국지사.
[개설]
최익현(崔益鉉)[1833~1906)은 항일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항거하다가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된 뒤 단식 끝에 순국한 우국지사이다.
[가계]
최익현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庵), 초명은 최기남(崔奇男)이다. 아버지는 최대(崔岱)이다.
[활동 사항]
최익현은 1833년(순조 33)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14세 때부터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855년(철종 6) 명경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수봉관·지방관·언관으로 재직하였다. 1868년에 올린 상소에서는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을 비판하였고, 이후 「계유상소(癸酉上疏)」, 「사호조참판겸진소회소(辭戶曹參判兼陳所懷疏)」, 「병자지부복궐소(丙子持斧伏闕疏)」 등의 상소를 올려 대원군과 민씨 일족에 대해 비판하였으나 내용이 과격하다는 등의 이유로 제주도, 흑산도 등지로 유배되었다. 이후 최익현은 고종의 신임을 얻어 경기도관찰사, 공조판서, 의정부찬정, 호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일체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최익현은 나라에 일이 있을 때면 상소로써 자신의 입장을 내비쳤는데, 을사보호조약 때에는 도끼를 메고 반대 상소를 하였다. 말년에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정치적인 투쟁 방법을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상소라는 개인적·평화적인 방법보다는 의병이라는 집단적·무력적인 방법으로 선회하였다. 최익현은 1906년 2월 74세의 나이에 전라북도 태인[현 정읍시]에서 항일 의병을 일으켰으나 오래 지나지 않아 일제에 붙잡히게 되었고, 일본 대마도에 구금되어 단식 투쟁 끝에 순국하였다.
[저술 및 작품]
최익현은 시국이 어지러울 때마다 상소를 올려 진정을 요청하였는데, 대표적인 상소로는 경복궁 중건을 비판한 1868년의 「시폐사조소(時弊四條疏)」, 흥선대원군의 하야를 가져온 1873년의 「계유상소(癸酉上疏)」, 강화도조약 체결에 반대한 1876년의 「지부복궐척화의소(持斧伏闕斥和議疏)」, 을미의병을 촉발시킨 1895년의 「청토역 복의제소(請討逆復衣制疏)」, 을사늑약에 항거한 1905년의 「청토오적소(請討五賊疏)」 등이 있다.
[묘소]
최익현의 묘는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356-1에 있고, 충청남도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충청남도 논산군의 국도변에 있었는데 많은 우국 인사가 찾아오자 일제가 1910년에 오지인 관음리로 이장하였다. 무덤 옆에는 이선근이 글을 짓고 김기승이 글씨를 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최익현은 사망한 뒤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송암리의 모덕사(慕德祠)에 배향되었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 있는 채산사(─山祠)는 최익현이 순국하자 유림들이 최익현의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는 춘산영당이 있어 최익현의 초상을 봉안하고 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최익현의 공적을 기려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을 추서하였다.